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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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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에 해당되는 글 18건

  1. 2007/11/29
    [펌] 가속하는 플저전, 쾌검 난무 / 김연우 (1)
  2. 2007/11/29
    인물과 사상
  3. 2007/11/29
    "성공하세요." 이명박 후보님! (6)
  4. 2007/11/28
    [대학내일] 삼성 공화국을 벗어나는 방법은?
  5. 2007/11/27
    [프레시안] '코리아 연방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2)
  6. 2007/11/27
    왕과 나 : 거세의 두 가지 방식
  7. 2007/11/27
    독선적 취향 : 청소년기에 세계명작소설을 읽는 방법은?
  8. 2007/11/24
    희망고문과 냉소주의 사이에서 (4)
  9. 2007/11/24
    OSL 8강전 오프 후기 (2)
  10. 2007/11/23
    [펌] 철학자 앙가주망 네트워크의 김용철 지지 선언문 (4)
리플들도 잼있3. 감상요망-.

원주소는
http://www.fomos.kr/board/board.php?mode=read&keyno=23726&db=mania&cate=002&page=1&field=&kwrd=

가속하는 플저전, 쾌검 난무
김연우 ( 2007 년 11 월 29일 00 시 13 분 / 203.252.62.39 )

1.08패치 논쟁 중 한 마디
'사이오닉 스톰 데미지 128로 올리면, 저그가 토스 못이길거다.'

당시 토스가 저그에게 압살당하던 상황. 그래서 위 멘트는 무시당했지.


하지만 토스유저로서, 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토스에게 스캔이 있다면, 저그에게 절대 지지 않을것이다'

즉, 저그가 뭘 하는지만 알고 거기에 보폭만 맞출 수 있다면 '순수 정면 싸움'에서 절대 안질거라는 자신감. 그만큼 사이오닉 스톰은 강한 것 이었으니까.



그리고 현재,
프로토스는 저그의 속도를 거의 따라잡았다.

프로토스의 가장 빠른 유닛인 커세어, 이 커세어의 활용도 상승은 커세어가 나오건 말건 저그가 토스를 '농락'하지 못하게 했지. 과거처럼 이리저리 찔러보고, 그러고도 '뒤'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니까.

속도를 따라잡은 토스에게 저그는 무엇을 대응할까, 정말 궁금했다.





...

겜덕후... 랄까, 저번 정모에도 나왔던 친구 푸른탄환, 녀석이 아머드 코어라는 게임을 하고 있는걸 보고 물었다.

'저기서 속도가 제일 빠른 놈이 누구야?'
'뭐뭐뭐가 빠르긴 한데 별 차이없어'
'왜 차이가 없어? 그거 특성 아냐?'
'속도가 빠르면 장갑이 두껍건 화력이 좋건 뭘 하던 못이겨'



아무리 강펀치를 지녔어도, 날렵하게 피해내는 상대에게는 무력하다.

저그는 그렇게 프로토스를 농락했다. 펀치력에서는 차이가 나도, 속도에서 엄청난 차이가 나기 때문에, 프로토스의 장점은 몽땅 무효가 되었다. 질럿이 강하면 뭘하나, 저글링은 도망다니며 프로브만 잡는데. 아콘이 강하면 뭐하나, 뮤탈이 피하며 프로브만 잡는데.


그런데, 프로토스가 그 '속도'를 따라잡았다.





저그는 어떻게 할까, 정말 궁금했다.
난 보폭을 따라잡은 토스를 인정하고, 빠른 속도 대신 펀치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 반대. 저그도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과거와는 상상하지 못할정도로 판이 급격히 변화한다. 해설자의 입이 쫓아가지 못할 정도로 상황은 계속해서 뒤집힌다. 전장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조합과 테크는 춤을춘다.

프로토스가 속도를 내자, 저그는 더더욱 속도에 매달렸다. 초음속의 사투 속에서 아직 페이스를 잃지 않은 것은 마재윤 뿐이다. 다른 저그들은 모두 프로토스에게 속도를 따라잡혀 그의 손에 내동댕이 치고 처참한.... 짓밟고 터저버리는 상황 속이다.


블루 스톰 전진 해처리는, '기동성'이란 측면에서 정말 '마재윤' 다운 선택이다. 토스가 미처 저그를 정찰하고 반응하기전 그의 공격이 작렬한다. 전진 해처리는 토스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이다. 마재윤은 스스로 빨라지는 것을 넘어서, 토스를 느려지게 만들었다.




프로토스의 더러운 손에 아름다운 자신의 드레스가 닿질 원치 않는 순백의 그녀가 신경질을 부린다. 빨라지고, 빨라지고, 더 빨라진다.
테저전,플테전 등등 다른 싸움들이 모두 갑옷을 굳게 갖추고, '막힐지 아는 공격'을 서로 행하고, 서로 막는 철벽의 병사들이 '예의상'공격하는 이때에
플저전은 서로 모든 갑옷을 벗고, 낭창낭창한 레이피어 하나 들고 자신의 검끝과 서로의 검끝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실날 같은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승부는 단 한합.






...





2007 EVER 스타리그  8강
마재윤 대 김택용




누가 되었건, 단 한번의 실수에 목이 끊긴다.


 
ㅂㅈㅇ 2007-11-29 00:17( 116.36.202.16 )
택의 머리가 좀 아파질 거 같다. 예전에는 선뮤탈만 생각해도 됐겠지만 이제는 히드라까지 계산에 넣어야 하니.. 거기에 발업저글링까지 계산에 넣어야 할테고.. 아.. 그냥 노포지 넥서스 간 택의 저그전이 갑자기 보고싶어지네.
자이데나 2007-11-29 00:17( 121.191.108.41 )
프로토스의 더러운 손에 아름다운 자신의 드레스가 닿질 원치 않는 순백의 그녀가 신경질을 부리는것 같다. ㅡ> 여기서 19금 상업지 떠올리다니, 나도 막장이다.
k.dd 2007-11-29 00:19( 121.88.26.55 )
뻘글을 10번써야 개념글하나 쓴다는 연우씨. 하여튼 글잘봤어요
푸른탄환 2007-11-29 00:28( 220.68.253.157 )
자이데나 // 여기 막장 하나 추가요 묘하게 야한 표현이었음 아 글고 아머드 코어 예는... 음 약간 달라진거 같기도 함;; 난 어려운 미션이면 무조건 장갑+화력으로 끝냈거든 물론 CPU 레벨이니까 그렇게 이길 수 있었던 거 같지만 뭐 여튼 글의 큰 흐름에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니까
니뒤에 2007-11-29 00:29( 58.234.121.148 )
잘 봤어욤. 카트리나에서 블루스톰식 전진해처리를 기대해봅네다.
fel 2007-11-29 00:36( 86.156.92.215 )
빨라진게 아니라 유연해 졌음. 원래 더블넥 이후 저그가 토스를 잡는 기본 공식은 유연함이지만.... 아머드 코어의 이야기로 비유하면 요즘의 저그들(이라 적고 마재윤이라 읽는다.)은 장갑 파츠를 모두 다 떼어내고 맨몸뚱이로 그 유연성을 극대화 시켜 싸우고 있는 중.
fel 2007-11-29 00:37( 86.156.92.215 )
그래고 프로토스 전체를 까 보자면 별로 자기 장갑을 버린거 같지는 않은데? 뭐, 그딴 장갑은 저플전에 예저녁 부터 버리고 싸워서 니가 못보는 거야!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fel 2007-11-29 00:38( 86.156.92.215 )
그렇지만 현대 프로토스가 구 토스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부분이 '기동력' 이라는 점은 나도 동의 함.
김연우 2007-11-29 00:39( 218.209.145.199 )
유연성을 표현하는 말을 좀 애매하게 속도로 표현했음. 회피-의 동작에서는 똑같은 거니까
roi 2007-11-29 00:40( 222.232.217.231 )
와우, 글 진짜 존나 멋있다! 진짜 이런게 입스타의 존재가치... 유연하단 표현이 정확하겠지만 빨라졌다는 표현도 맞는것 같음. 테크의 방향전환과 반응, 추격과 기동성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labyrinth 2007-11-29 00:44( 218.209.75.157 )
우왕굳
labyrinth 2007-11-29 00:45( 218.209.75.157 )
근데 포모스가 어찌하여 이토록 날이 갈 수록 변태화된단 말인가? 이 모든게 다 홍진호 때문이니 콩을 까 분토로 만드는 것 하나가 낙이니라.
김연우 2007-11-29 00:46( 218.209.145.199 )
의도한건 아닌데. 삭제할까
roi 2007-11-29 00:46( 222.232.217.231 )
허허 ㄴㄴㄴ 시적인 표현인데염
labyrinth 2007-11-29 00:52( 218.209.75.157 )
삭제할 필요는 없고 그냥 스갤로 좀 퍼가겠음 ㄳ
Maybach 2007-11-29 00:55( 211.219.164.128 )
글 잘 읽었습니다. 아 정말이지 요새 토스들 너무 무서워요
장롱 2007-11-29 00:58( 118.42.214.70 )
잘 읽었습니다.
음음 2007-11-29 01:01( 125.186.6.88 )
토스가 더블넥 할때 정찰을못햇을경우...                                                            1.일반적인 연탄후 운영      2.4햇온니저글링      3.3햇정통땡히      4.선뮤탈          5.저럴+소수히드라 뚷기    대략 5가지운영이 저그한텐 '일반적으로' 존재한다.    (진짜많다)    한마디로 토스는 정찰을실패하면 저그가 조루가아닌이상 못이긴다.  택만봐도알수있는게 저글링만보이길레 넥서스주위에캐논박더니 사실은 뚫기.  저그가 정찰만 차단하면 토스는 저그를 이길 수없어. 또하나의 예로는 토막박명수vs 오영종만봐도알수있지. 박명수가이겻자나? 떙히페이크후 막멀티. 영종이는 파악못햇지.
리얼 2007-11-29 01:22( 222.114.81.39 )
구구절절 공감. 결국 마재는 택의 눈을 가리고 발을 묶어서 이길 수 있었지. 택의 저그전이 무서운점은 유연성, 그걸 빼앗으면 김택용도 보통토스. 잘봤3.
강상 2007-11-29 01:24( 220.83.131.134 )
역시 붉은 곽달호가 킹왕짱! 우왕ㅋ굳ㅋ
정말 2007-11-29 02:14( 121.141.103.41 )
그 경기는 막장 해설만 아니었어도... 옹겜의 마재윤은 다르다고??? 아 진짜 이제 소리 끄고 봐야 하나.
fourms 2007-11-29 10:46( 125.189.59.136 )
서로 갑옷은 벗었는데 한 쪽은 몸통이 근육질 우와아아앙
fd테란 2007-11-29 11:30( 211.214.33.200 )
잘읽었어요. 개인적으로 진득한 개싸움을 보고싶었었는데, 한번 두고봐야겠다
111 2007-11-29 11:34( 211.209.35.17 )
프로토스의 더러운손>> 이건 표현이 좀 그런뎅.. 다른부분은 공감
말콤 2007-11-29 11:38( 211.46.92.160 )
ㅋ 중간중간 시적인 표현들 좋아~
꾸에에 2007-11-29 11:48( 121.55.165.165 )
순결한 아가씨는 더러운 손에 범해질까 드레스마저도 벗어던져버린 거지.
강민의간지 2007-11-29 12:28( 220.116.94.37 )
└ ......... 내가 개막장인건가;
허브향기 2007-11-29 12:55( 61.42.99.131 )
아머드코어하는 횽들이 여기 있구나. 주변에 거의 없어서 나 혼자 하는 줄 알았는데 ㅋ
ㅇㅇ 2007-11-29 13:26( 222.233.169.105 )
카트리나는 맵빨의 힘을 빌어 택이 가져갈 거 같고, 승부는 몽환2인데 이것도 택이 가져갈 듯 싶다. 어째 마재 대 택의 승부 예상은 개개인의 기량보다도 맵을 더 주시하게 된다 ; 둘다 절정의 고수라
noir 2007-11-29 15:31( 58.151.56.37 )
하얀 드레스 벗겨놓고 보니 A컵. 아놔~
자이데나 2007-11-29 15:49( 220.68.16.126 )
ㄴ난 A컵이 더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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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에서 <우리 시대의 명저 50> 시리즈의 47번째 권으로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이 소개되었다.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711/h2007112817525884210.htm

문제는 말미에 내 코멘트가 들어갔다는 것.

강 교수는 <인물과 사상>이 8년 만에 종지부를 찍은 것에 대해 “인터넷의 활성화가 종간의 가장 큰 이유라고 보면 된다”고 답했다. 인터넷 논객으로 활동하는 한윤형(아이디 아흐리만)씨는“지성계와 생활세계 간의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했지만 <인물과 사상>은 충분히 지적이지 못했고 또한 순간 순간에 대중의 반(反)지성주의에 부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며 그 한계를 지적했다.

이메일로 코멘트를 보낸 셈인데, 내가 생각하는 인물과 사상의 장점과 한계에 대해 기술해 달라고 해서 몇줄 써서 보냈다. 기사를 읽어보니 '한계'에 대한 코멘트를 요구받은 건 나밖에 없는 것 같네. 그냥 기사만 읽어보면 뭐 별 것도 아닌 녀석이 혼자 이 책을 시니컬하게 바라보고 있겠구나 싶겠다. ('인터넷 논객'이란 소개는 '아무 것도 아닌 놈'이란 뜻이랑 비슷하다.)

저 코멘트는 물론 내가 한 것의 축약본이 맞다. 하지만 애초의 의도는 약간 다른 맥락이 있는데....

충분히 지적이지 못했고

이 말은 단순히 강준만이 지적이지 못했다라는 말은 아니고 지성계 전체가 강준만의 작업을 중대하고 심각하게 (seriously)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성계와 생활세계 간의 간극을 메우려'는 의도를 충분히 펼치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때는 강준만도 문제가 있었고, 강준만의 문제제기에 반응한 논쟁 상대방들은 더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동조자들도 언제나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2000년의 상황에서 <아웃사이더>라는 잡지가 과연 따로 만들어져야 할 필요가 있었는가에 대해 나는 종종 의문을 가지고 있고, 이메일 코멘트에서도 그 부분은 직접 거론을 하기도 했지만,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잘려서 나오고 나니 후회막급이다.

또한 순간 순간에 대중의 반(反)지성주의에 부합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 부분은 내가 한 말 그대로다. 지나고 나니 굳이 쓰자면 "인물과 사상의 인기가 대중의 반지성주의와 맞닿은 부분이 있다."라고 하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써도 심난하긴 마찬가지군.

단행본 인물과 사상의 종간 이유에 (월간 인물과 사상은 아직도 있다.) 대한 강준만의 코멘트가 '인터넷'인데, 물론 맞는 말이다. 문제는 인터넷이 강준만의 책을 읽으려는 (특정한) 대중의 욕망은 해소시켜버렸으되, 강준만이 하려고 했던 활동을 모두 대변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5년 동안 그 지지자들이 인터넷에서 펼친 담론(?)을 살펴보자면, 이들이 얼마나 강준만의 주장을 단순화시켜서 이해해 왔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점에 대해 나는
강준만 혹은 어떤 무공비급 이라는 글에서 지적한 바 있다.

나는 인물과 사상에 대해서 1999년부터 2002년 경까지는 충실한 독자였을 것이고, 2003-4년 즈음에는 불성실한 독자였을 것이며, 2005년에 군대를 간 이후부터는 오히려 강준만 교수의 단행본은 종종 읽는 일이 있어도 인물과 사상을 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코멘트가 이렇게 독립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뭔가 평가해서는 안 될 것에 대해서 평가해버린 느낌이다. '견해'를 가졌는지 아닌지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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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대기업 사정을 하면서그 회사를 얼마나 번창시켰냐가 아니라, 그런 과정을 거쳐오며 이명박 후보 개인이 얼마나 성공했는가에 사람들은 주목한다. 반대 진영에서 "현대건설이 뭐 그리 잘했으며 대체 뭐가 성공한 CEO란 말이냐"라고 공격하지만 별다른 파급력은 없다. '성공한 CEO'란 말은 개인의 성공을 가리키지 회사의 성공을 뜻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최내현, "2007년, 대선" 중 월간<드라마틱> 12월호


그저께부터 각 후보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지만, 어제 아침에 학교를 가다가 처음으로 그분의 플래카드를 보았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이란 표어가 눈에 뜨였고, 다음으로 왼쪽 구석에 적힌 기호 2번을 확인했는데, 그 윗칸에 "성공하세요"라는 글자가 조그맣게 쓰여 있었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께서 국민들에게 주문하는 것이 '성공하세요'다. 대통령이 국민한테 하는 덕담치곤 참으로 기괴하다. 무엇을 어떻게 할 거라는 것도 아니고, 뭔가를 해준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는 우리에게 '성공하세요'라는 주문을 권유할 뿐이다.


어디서 들은 얘기인데 20대들의 이명박 지지율이 다른 세대들에 비해서 오히려 더 높다고 한다.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개인의 성공'과 '사회적 공익'을 구별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일 테다. 어떤 사람이 개인의 성공을 위해 사회적 문제에 전혀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고 치자. 적어도 그것은 그가 의도한 부분에 있어서는 합리적인 행위다.하지만 어떤 사람이 개인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대통령에 앉히면 자신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치자. 이건 주술의 영역에 들어간다. 뚱뚱한 여성을 족장으로 뽑아놓으면 사냥도 잘 되고 자식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믿었을 어느 원시인 부족의 심성만도 못 하다.


economy의 어원은 그리스어에 있는데 원래 가계를 의미했다. 탈세와 절세를 일삼으며 부를 일구어온 이후보의 '능력'을 보면 대통령 집권 내내 그가 '실천'할 경제행위가 무엇일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실천하는 경제 대통령"께선 집권 내내 탈세와 감세를 통해 축재하면서 자신이 출세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가능성이 높고 국민들에겐 단지 이 한 마디를 던져줄 것이다. "성공하세요."


이 마법의 주문은 국민들을 향한 이명박의 시선이기도 하고, 또한 이명박을 향한 국민들의 시선이기도 하다. 부디 성공하세요, 이명박 후보님! 그러면 우리도 성공할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요. 아참, 그래도 저는 연초에 당신의 당선에 25만원을 걸었으니 당신의 성공에 약간은 더 부유해질 거랍니다. 그래봤자 당신의 성공을 비웃으며 (식견있는 자들의 용어를 빌리자면 시기/질투하며) 그 돈을 알콜로 바꿔 뱃속에 털어넣겠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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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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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에 좋은 것이 대한민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삼성이 잘못되면 우리 사회가 잘못된다. 그래서 우리는 삼성이 잘 되도록 힘써야 한다.” 언젠가 ‘삼성 공화국’ 현상과 관련된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대기업 전문기자의 말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런 삼성이 이윤을 추구할 때 국민경제가 치러야 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윤을 추구할 때는 사기업이지만, 막상 위기에 처하면 국민경제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국민기업’으로 변신하여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할 것이다.


재벌을 향한 두 가지 시선 ●

슈퍼 재벌’이 되어 버린 삼성에게 무엇을 바래야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장하준과 같은 경제학자는 그나마 재벌들이 외국의 투기자본보다는 국내 여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재벌을 활용한 ‘사회적 대타협론’을 주장한다. 스웨덴의 경우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기조를 구성하는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주주자본주의의 원칙을 확립하는 재벌개혁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총수 일가의 전횡적인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용적인 입장에서야 주주자본주의를 강조하는 개혁으로 그들을 압박하다가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터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실제로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의 전략은 그들이 국민여론을 우선시하기보다는 권력을 통제하는 쪽을 택했음을 보여준다. 여론에 대해서도 여론에 우호적인 행동을 하기보다는 언론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유포해달라고 요구하는 쪽이 더 ‘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


내부직원의 제보만으로 강도 높은 비자금 조사를 한 후 총수를 구속시켰던 현대 비자금 사태 때와는 달리 검찰은 미적지근하게 반응하고 있다. 확률적으로 볼 때 이번에 검찰이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삼성을 치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있는 증거는 과거 내부자의 고발뿐인 현 시국에서, 게다가 삼성이 증거인멸을 할 충분한 시간을 준 상황에서, 설령 특검제가 시행되더라도 밝혀낼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검제를 추진하는 여야 각 정당 역시 삼성의 돈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테니까 말이다.

삼성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한 관리비용이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하기 위한 비용보다 ‘싸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삼성이 변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직 그 ‘싸다’는 판단이 ‘비싸다’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하다. 우리는 그들의 판단을 교정하기 위해 설득하거나, 지속적인 비판을 통해 실천적으로 그 관리비용이 더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삼성이 알아야 할 것 ●


삼성은 그들의 ‘오묘한 인력관리 능력’이 김용철 변호사를 통제하지 못한 점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조직론의 관점에서 봐도 삼성의 상황은 좋지 않다. 노조 없이 높은 연봉만으로 인력을 관리한다던 그들의 오묘한 시스템은 평생 고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십 수 년 근무한 연구 인력이 다른 기업에 삼성의 기술을 팔아넘긴다면 개인의 입장에선 더욱 ‘합리적인’ 선택이다. 시장의 원칙은 무제한적인 이윤추구가 아니라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하라고 가르친다. 삼성은 자신들만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3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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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리아 연방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대선, 삐딱하게 읽기 <7> 권영길이 저 지경인 이유
  2007-11-27 오전 9:48:37
  
2007년 대선을 맞아 <프레시안>은 기존 매체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재를 마련했다. 여론조사의 통계 수치로만 존재
했던 20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에게 들려주기로 한 것. 그간 정치 평론을 독점해 온 40대 이상과는 다른 위치에서 정치
현상을 바라보는 이들의 '새로운' 시각이 오는 대선을 둘러싼 얘깃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리라고 본다.
 
  고심 끝에 권영길 후보가 아닌 민주노동당에 한 표를 던지기로 마음먹었다는 한윤형 씨는 민주노동당의 주요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코리아 연방제'를 호되게 비판한다. 이 글은 민주노동당의 '코리아 연방제' 공약에 대한 논평뿐만 아니라 학계의
뜨거운 쟁점인 민족, 통일 문제에 대한 20대의 개입으로도 볼 수 있다. <프레시안>은 이 글을 계기로 논쟁이 더욱더 활발해
지기를 기대한다.

 
  한편,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후보와 관련해서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도 23일 대화문화아카데미 학술 행사에서 권 후보를 향
해 "(민주노동당이라는) 정당명과 달리 ('코리아 연방제' 공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노동자, 저소득 소외계층을 대표하기보
다는 중산층적 관심사인 민족통일 문제를 대표하는 후보"라고 꼬집었다.
<편집자>

  '미워도 권영길'이냐 '적극적 기권'이냐의 기로에서 고민한 끝에, 나는 민주노동당에 표를 던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내 표는
권영길에게 주는 표가 아니다. 2007년 현재 대선 정국에 임하는 민주노동당의 입장에 던지는 표도 아니다. 어쨌든 좌파 정당이
필요하다는 내 의사를 한국 사회에 표현하고자 던지는 표다. 그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나는 이 글에서 민주노동당의 주요 대선
공약(?) 중 하나인 '코리아 연방제'를 호되게 비판할 생각이다.
 
  헌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
 
  코리아 연방제에 대한 비판의 논거는 크게 두 가지. 하나는 그저 통일 정책 중 하나에 불과한 그것이 어떻게 한국 사회 전반의
문제를 바라보는 민주노동당의 시각을 총괄하는 구호가 될 수 있느냐는 것. 그리고 둘은 그것이 결정되는 과정이 민주주의적
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합당한 말들이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 말을 하려고 글을 쓰고 있지는 않다. 나는 코리아 연방제가
통일 정책으로도 엉터리라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일단 코리아 연방제는 헌법에 어긋난다. 이 점은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에서 박세일이 명백하게 지적했다.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천명하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수로 1국가 2체제를 지향한단 말인가? 박세일의 말을 인용했
으니 네 주장은 무효라는 외침이 벌써 내 귀에 들려오는데, 한나라당원이 말했다 해도 진리는 진리다. 박세일 정도에게 발릴
정책을 정책이랍시고 들고 나와서 설치는 민주노동당 꼴이 한심할 따름이다.
 
  민주노동당은 이게 헌법적 문제라는 사실을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만일 인지라도 했다면 "우리의 정책은 헌법의
개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지해 주십시오."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해야 정상이다. 알고 있었는데도 그렇게 안 했다면
개념이 없는 것일 테고. 그들은 그냥 두루뭉수리하게 사람들이 이걸 좋은 거라고 생각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이브하게 정치할 거면 정치 때려치워라. 진보정치연구소장 조승수의 말처럼 코리아 연방제는 "우린 꼴통 운동권이요"
라고 전 민중 앞에 선언하는 꼴이다.
 
  더 큰 문제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개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좀 있다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대한민국 영토로
규정하는 헌법 조항을 개정해야 성립할 수 있는 정치적 주장을 하게 될 텐데, 이 조항과 그 조항은 위상 자체가 다르다.
민주주의 국가가 자신이 민주공화국임을 부인하고서도 존속할 수 있는가? 그게 법리적으로 가능한가?
 
  그것이 가능한 논변을 굳이 찾아내라면,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법실증주의적 논변밖에 없을 텐데, 그것은 바이마르가
공화정을 통째로 히틀러에게 갖다 바친 이후엔 법철학계에서 존중받지 못하는 논변이다. 민주주의 체제에 동의하는 한,
코리아 연방제를 구원할 지적인 논변은 이 세계는 물론 가능세계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통일이 아니라 평화 체제 구축이 답이다
 
  그럼 어쩌라는 말이냐, 통일하지 말자는 말이냐는 외침이 벌써 내 귀에 들려온다. 바로 그거다. 내 얘기는 통일하지 말자는
거다. 극우파들이 꿈꾸듯 민주공화국의 정체를 북한에 강요하는 식의 제국주의적 흡수 통일은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지
못한다. 그렇게 싸가지 없는 짓을 하다간 북한을 송두리째 중국 공산당에 넘겨줄 우려조차 있다. 이렇게 한국 극우파들은 심지어
공산주의자들을 이롭게 할 만큼 멍청하다. 한편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에 자신의 정체를 부인하는 과도기적인 통일
방안을 실천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 통일을 안 하면 된다.
 
  지금 돈 많이 들고 나 가난해지니까 통일하면 안 된다고 '징징'대는 멍청한 냉소주의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분단 비용'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것들(과도한 군비 경쟁, 이산가족 문제, 북한 주민의 굶주림 등)은 실은 '적대 체제 비용'이다.
대한민국이 헌법을 개정하고, 북한을 별개의 외국으로 인정하며, 중국식의 개방화 노선을 채택하는 공산주의 국가 북한을 같은
언어를 쓰는 이웃으로 지원하고, 점진적으로 양국의 주민이 교류할 수 있게 만들면 끝나는 문제이다.
 
  이것이 논리적으로 유일하게 가능한, 언어유희를 좀 부려보자면 '통일을 욕망하지 않는 통일 방안'이다. 극소수의 주사파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이 북한 공산당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통일을 향한 욕망은
대한민국에 북한을 편입시키겠다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욕망일 뿐이다. 그건 윤리적으로도 그릇되었을 뿐더러, 그 욕망을
실현시킬 수도 없다.
 
  대한민국은 북한의 동반자로서, 북한의 경제 발전에 투자하는 최대의 주주가 됨으로써, 북한 인민의 복지를 향상시키고, 소수
민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북한 땅을 넘볼지도 모르는 중국의 야욕을 분쇄해야 한다. 만약 이런 식의 평화체제가 구축되어 먼
훗날 남북한 국민의 사고방식이 비슷비슷해지고, 북한에서도 사실상의 민주화가 진행된다면, 그때 가서 굳이 두 집 살림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 합치도록 하자, 는 식의 통일 논의가 가능할 수 있다. 그런 것이 통일이다. 우리 머릿속의 통일 강박증을
없애버려야 올 수 있는 바람직한 통일이다. 지금 '통일', '통일'거리는 것은 싸우자는 얘기다. 누구랑? 북한이나, 혹은 중국이랑.
 
  그러므로 통일이 아니라 평화체제 구축이 정답이다. 백낙청과 최장집이 논쟁을 하고 있으면 최장집 편을 들면 된다.
 
  왜곡된 민족 정체성 그만 좀 주입시켜라
 
  지금까지 한국의 민족주의에서 '민족'이란 아직 오지 않은 노스탤지어였다. 친일파 척결 실패, 대미관계 종속, 그리고 무엇보다
(이 두 가지 사안과 어느 방향으로든 인과관계를 지니고 있는) 민족분단으로 인해 우리의 '민족'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고,
민족주의는 그 오지 않은 민족의 형성을 위해 '우리'가 복무해야 한다는 그런 이데올로기였던 것이다.
 
  가장 과격한 판본의 민족주의는 민족모순이 모든 사회문제의 근원이며, 하나인 우리가 갈라져 있는 한 우리는 반쪽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리라고 주장한다. 그런 주장 위에 '통일'에 대한 그들의 강박도 생긴다. 지금 민주노동당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이들의 정신세계가 그렇다.
 
  헛소리하지 마라. 반쪽인 건 민족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의 정신상태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꼭 대한민국을
꼬박꼬박 남한이라 부르며 국가가 반쪽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려 든다. 어떤 이들은 대한민국을 남한이라고 부르는 것이 올바른
지식인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정말이지 별 꼴이 반쪽이다.
 
  혈통이 같은 집단이 두 국가로 갈라져 살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비정상적인 질문이다. 나는 상식적으로 답하겠다. 아무
일도 안 생긴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보라. 아무 문제없지 않은가. 심지에 벨기에 인은 과거에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통일'된
국가였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네덜란드가 벨기에를 부당하게 통치'했다고 생각한다. 혈통이 같아도 국가는 다를 수 있다.
어떻게 그 사건이 그 자체로 사회문제를 만들 수 있다는 걸까.
 
  '근대적 민족국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런데 우리에겐 '민족'이 없으니 일단 통일부터 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얼마나 웃긴 이야기인가. 그는 '민족이 없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하나의 민족을 제시하며 일단 이것부터 만들어내라고
생떼를 부리고 있는 셈이다. 그들보다는 차라리 붉은 악마가 '근대적 민족국가'를 만드는 여정에 가까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남한'이라고 외치지 않고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니까.
 
  붉은악마가 민족을 호출하고 있다면, 여기서의 민족은 그 형성되지 않은 민족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대ㆍ한ㆍ민ㆍ국'
이라는 구호로 집약되듯이 국가의 구성원, 혹은 국가의 '형상'이라는 의미에서의 민족을 불러낸다. 그것은 하나의 국가와
그 정체를 온전히 드러내는 하나의 단위를 말한다. 전후세대는 드디어 7000만 명의 오지 않은 민족 대신 실존하는 5000만
명의 민족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의 선택이 차라리 서구 담론에 나오는 '근대적 민족국가'의 개념에 부합한다. 국가가 있고 그 형상으로써의 민족이
있는 거지 여기 민족이 있으니 이것에 입각해서 국가를 만들자는 그런 논변은 세상에 없다.
 
  '통일'에 대한 자신의 '페티시'가 무슨 학술적 토대 위에 있는 것처럼 '근대적 민족국가' 운운하는 이들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차라리 '전근대적 민족국가'를 위해 복무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의무라고 솔직하게 주장하라. 그들이
비유적으로 하는 말처럼 인간은 반으로 절단 나서는 살 수가 없다. "그러니까, 무조건 통일을 추구하자!" 그게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정체성을 그따위로 주입하지 않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반쪽이 아니다. 그냥 대한민국이다.
 
  물론 당연히 하나의 국가를 열망하였을 해방 직후에는 분단이 사람들의 심리에 실질적인 좌절의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과 남한의 대립과 전쟁은 분명히 역사의 아픔이다. 하지만 시간은 흐른다. 사람들은 변한다. 사람들은 익숙해졌다.
익숙해졌어도 우리는 반쪽이고 장애인이라고? 그래서 지금껏 우리가 만들어낸 것,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어떻게 그런 논변이 가능할 수 있단 말인가? 자칭 '민족주의자'에게 정말로 물어보고 싶다.
 
  '근본 적대'는 없다… 헛소리하지 말라
 
  민족문제를 '근본 적대'로 보는 데에 민주노동당 내 자칭 '민족주의자'의 세계관의 정수가 있고 대선정국에서 무식하게
'코리아 연방제!'를 외칠 수 있는 강단도 거기서 나온다. 일단은 근본 적대라는 개념 자체가 낡아빠졌다. 그것이 다른 모든
사회문제를 낳기 때문에, 반드시 그것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근본 적대는 더 이상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민족주의자의 논변은 근본적대에 관한 이론 중에서도 가장 한심하다. 마르크스주의에서 말하는 근본 적대야
헤겔 철학에서 왔으니 적어도 지적으로는 완결된 틀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코리아 연방제의 지지자들이 말하는 근본 적대는
도대체 그게 무엇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다. 운동원에게 물어보면 "우리 전위가 대답해줄 거예요"라고 하고, 그 전위라는
분에게 물어보면 헛소리만 해댄다.
 
  이들이 그 자신의 알량한 이데올로기로 한국의 좌파 정당을 오염시켰다. 다른 이들에게 민주노동당 찍어달라고 말할 수도
없게끔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내 한 표를 민주노동당에게 주면서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언어로 그들을 규탄한다.
내가 아는 한 역사상 남을 씹는데 가장 유능했던 사람은 니체니까, 그의 <안티크리스트>의 몇 구절을 변형하겠다.
 
  "나는 코리아 연방제의 지지자들을 한국 정치의 한복판에 떨어진 단 하나의 엄청난 저주라고 부른다. 단 하나의 엄청난,
가장 내면적인 타락이라고 부른다. 단 하나의 엄청난 복수 본능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악독하게 지하에 숨어 은밀하게 권력을
추구하는 비소한 무리들이 존재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한국 정치의 단 하나의 영원한 오점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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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동은 소화를 욕망할 뿐 아니라, 소화를 경유해서 임금까지 욕망한다. 그래서 거세의 순간 그의 환상은 삼각관계를 만든다.


김용의 <소오강호>로부터 시작하자. 무공비급 <규화보전>은 “신공을 연마하는 것은 칼을 자궁으로 인도하는 것과 같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절대고수가 되려면 먼저 남근을 잘라내라는 것. 동방불패는 잘라낸다. 다른 야심가들도 잘라낸다. 남근은 권력욕의 상징이다. 비급은 신체적인 남근을 잘라내면 상징적인 남근을 가져다주겠다고 제안한다. 고수가 된 그들은 세상의 비웃음을 피하기 위해 가짜수염을 붙여가며 고자라는 사실을 숨긴다.


대부분의 내시들의 사정은 그들보다도 좋지 않다. 그들이 남근을 잘라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소오강호>의 몇몇 고수들은 페니스(신체적 남근)를 잘라가며 팔루스(상징적 남근)를 추구하지만, 그들은 페니스를 잘라내는 순간 팔루스마저 상실했다. 조치겸(전광렬)은 단종을 복위시키자는 친구의 청을 거절한다. 단종을 복권시켜봤자 조치겸은 충신들의 그늘에서 부각되지 못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세조 시해 계획을 좌절시키고 그에게 신임을 얻는 편이 낫다. 내시는 비웃음의 대상이니까, 눈에 보이는 것들, 물질적인 풍요나 권력을 추구하는게 낫다. 정한수(안재모)의 삶의 방향은 노내시(신구)나 과거 조치겸의 삶의 방향과 같다. 이것이 거세를 하는 하나의 방식, 일반적인 방식이다.


역사적인 인물인 김처선은 여러 왕을 섬기며 충직한 인물로 기록된 예외적인 내시다. 그 점은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그리고 권력과 부귀영화를 손에 쥔 조치겸은 자신의 가문에 예외적인 내시를 들이고자 한다. 내시들에게 막혀버린 길을 택하는 삼릉삼무의 내시를 들이고자 한다. 그렇다면 초반부 드라마의 설득력은 그가 다른 내시와 다른 방식의 거세를 택하는 과정이 얼마나 그럴 듯하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왕과 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성공하고 있다. 천둥이(오만석)는 12화에서 스스로 양물을 자르게 되는데,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은 분명 정한수와 대비된다.


‘윤소화(구혜선)에 대한 사랑’ 때문이라고 너무 단순하게 정리해서는 안 된다. 사랑에도 여러 가지 방식이 있으니까. 그가 택한 사랑은 정신분석학에서 히스테리자의 방식에 해당한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체계에서, 대부분의 정상인들은 신경증자에 해당한다. 신경증자는 크게 강박증자와 히스테리자로 구별되는데, 대개는 남자들이 강박증자이고 여자들이 히스테리자다. 이들은 타자와 욕망을 대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난다.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물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처음에 아이는 자신의 몸과 엄마의 몸을 구별하지 못한다. 문제는 아이가 자신을 어머니와 분리하기 시작할 때다. 강박증자는 여기서 어머니라는 타자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젖가슴을 나의 욕망의 대상으로 치환시켜버리는 사람을 말한다. 그는 타자를 자신의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다. 반면 히스테리자는 주체의 존재를 지워버리고 나 자신을 어머니에게 욕망의 대상으로 제공한다. 그녀는 자신을 타자에게 욕망의 대상으로 제공한다.


그렇다고 해서 강박증자가 이기적이고 히스테리자가 이타적인 것이 아니다. 신경증자는 모두 타인에게 자신을 맞추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들이다. 강박증자는,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자신의 모습을 상실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반면 히스테리자는, 타인이 욕망에 대해 완전히 만족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타자가 완전히 만족한다면 그는 더 이상 대상으로 기능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히스테리자는 타인의 불만족한 욕망을 욕망하는 자이다.


정신분석학은 근대의 학문이므로, 신분의 차이에 따른 금지명령을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런 차이를 감안하고 다소간의 단순화를 용인한다면, 천둥이는 소화를 히스테리적으로 추구하는 사람이다. 그는 소화에게 성종(고주원)을 추구할 것을 권유하고, 자신은 그 욕망을 위한 조력의 대상으로 남는다. 히스테리자는 타자의 욕망을 자신의 욕망처럼 추구한다. 프로이트의 사례에서 정육점 여인은 꿈속에서 남편이 좋아한다고 생각되는 자신의 친구를 욕망한다. 천둥이는 소화를 욕망할 뿐 아니라, 소화를 경유해서 임금님까지 욕망하는 것. 그래서 거세의 순간 그의 환상은 삼각관계를 만든다. 이 삼각관계는 남성 히스테리자의 삼각관계다. 그는 물질적인 욕망이 아니라 어떤 다른 욕망으로 거세를 하게 되는데, 이 색다른 욕망의 공간에선 분명 정한수와 다른 캐릭터가 튀어나올 수 있다.


정신분석학에 따르면 우리가 정신적 가치라 믿는 것들도 특정한 방식으로 세팅된 욕망의 움직임이다. 역사적인 처선은 그저 충직하고 입바른 사람이었을 뿐이었을 게다. 하지만 설명을 하려고 든다면 <왕과 나>의 방식이 더 매력적이다. 남성 히스테리자는, 분명 ‘충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윤형 (드라마틱 28호,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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