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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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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은 그의 저서 <대폭로>에서 부시 행정부를 ‘혁명적 우익’으로 규정한 바 있다. 재무설계사가 되기 전 인터넷 논객의 하나였던 김대영은 이 규정을 고스란히 노무현에게 적용하여 노빠들의 원성을 샀다. 이 규정의 내용을 재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겉으로 천명된 목표를 보고 정책 제안이 그 이치에 닿는다고 추정하지 말라.
2. 약간의 숙제를 해서 진짜 목표를 찾아내라.
3. 유용한 정치 규칙이 실제 적용된다고 지레 짐작하지 말라.
4. 혁명적 세력은 공격으로써 비판에 대응한다는 것을 예상하라.
5. 혁명적 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적어보니 이것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겉으로 천명된 목표, 즉 물류 비용 감소나 사교육비 절감과 같은 수사를 보고 대운하나 영어몰입교육이 이치에 닿는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약간의 숙제를 해서, 이 정책들의 실제 목표, 즉 땅값상승을 통한 경기부양이나 영어만 잘 하는 강남 중산층 자녀들의 비정규직 영어교사 채용이라는 그들의 목적을 간취할 필요가 있다. 유용한 정치규칙이 실제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비리가 드러난다고 해서 장관이 경질될 거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이재오가 설친다고 대통령의 형님이 일선에서 물러날 거라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총선 당시 공약에서 삭제되었던 정책이 다시 추진된다는 사실에 놀라서도 안 된다. 그들의 목표에 한계가 없다는 점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그야말로 혁명적 우익 만세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에서 생각해 볼 때, 혁명적 우익이라는 개념에 대한 접근은 노무현이나 이명박에 대한 인물 분석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돌연변이와도 같은 부시 행정부의 행동을 마음껏 조소할 수 있었던 폴 크루그먼과 달리, 우리의 경우 과연 ‘혁명적 우익’이 특수한 현상이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한국의 우익들은 언제나 혁명적 우익이었다. 지켜야 할 전통적 가치가 무엇인지 규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우익이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한국의 우익 정치인들은 언제나 이전의 정권을 부인하면서, 혁신적인 수사를 내세우며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해 왔다. 언제나 혁신을 얘기했지만 그런 행동만큼은 모두 비슷비슷했다.   


반면 리영희나 장준하의 사례에서 보듯 오히려 정통적인 보수주의자의 성향을 지닌 이들이 비판적 지성의 전통을 이어왔다. 좌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진보신당이 자신의 테두리를 어디까지 확장할지는 모르지만, 2차세계대전 이전의 사민주의를 옹호하는 노회찬의 모습은 어느 우파 정치인들보다도 더 ‘보수적’이다. 좌파들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볼 때) 전통적인 가치지향을 계승하려는 ‘보수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혁신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요즈음엔 주로 경영학의 내용 안에 포섭되어 사용되고 있다. 부단한 자기 혁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에게 필수적인 덕목이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어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신의 기업에 대한 처자식의 지분만은 필사적으로 고수하려고 하는 이건희 회장의 사례를 생각해 보건대, 과연 한국의 기업인들이 그토록 혁신에 철저한 사람들일까 하는 의문은 들지만, ‘혁명적 우익’을 요구했던 한국 우익의 전통(?)의 맥락에선 기업가가 새로운 정치 리더가 되는 것이 거의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뭐가 문제가 된단 말이냐. 혁신은 필요한 것이며, ‘좋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될 수 있겠다. 혁신을 사랑하는 행동주의자들은 언제나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개발을 이야기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론자들이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를 논증(?)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왜 그들이 혁신적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사례들, 가령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을 조롱하는 매우 전통적인 우화로 ‘끓는 물에 삶아지는 개구리’의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 “개구리는 언제나 폴짝 뛰어 다른 냄비에 튀어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언제나 다른 냄비로 뛰어드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펄펄 끓는 냄비에 제 발로 뛰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혁명적(!)으로 추진한 한미 FTA나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정책을 보면, 정말이지 이 개구리가 어느 끓는 물에 뛰어들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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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극우파들 : 미국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이를 통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이 잘 먹고 잘살 방법이 없느니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인테리어가 아름다워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선진국으로 인도하는 문은 생긴 것이 비굴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주사파들 : 우리 민족의 주권을 억압하는 미국은 악의 축이라능. 하지만 중국은 괜찮다능. 중국은 자주적인 우리 정부의 좋은 친구라능. (정말?) 중국은 킹왕짱임. 티벳 민족의 자주권? 아니 님하는 왜 내정간섭을 하냐능!!!
 

MB-Friendly Fellowship : 저희는 실용주의자입nida. 그러므로 저희는 두 명의 주인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똥개가 됩nida.


우왕ㅋ굳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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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현장에 상륙한 ‘규제 완화’ 광풍 418호


얼마 전 경제5단체가 지식경제부에 267개의 규제개혁 과제를 제출했다.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퇴직금제 폐지까진 그러려니 했건만,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봐도 숨이 턱 막힐 만한 요구가 즐비했다. 그중 하나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벌칙규정 완화. 아니 성희롱 벌칙규정이 ‘이윤 추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한국 남자들은 성희롱하면서 일해야 생산성이 올라가나? 같은 남자로서 쪽팔려 죽겠다. 게다가 육아휴직제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축소’를 주장하면서 그들은 ‘개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렇게나 한국어를 오염시키니, 아무리 점잖게 말해도 ‘미쳐 날뛰는’ 수준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규제 완화’의 황당함 ●
     


그런데 정부가 직접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정확히 이런 수준에서 ‘규제 완화’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그 기업에 그 정부다. 가장 논란이 많은 ‘0교시 금지’ ‘강제/획일 보충수업 금지’ ‘우열반 금지’를 폐지하겠다는 발상은 차라리 교육철학의 차이일 거라고 이해해 줄 수 있다. 즉, 그들의 생각에는 공교육의 목적을 ‘입시’로 잡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목적에 매진하는 것이 이상적인 교육정책의 길일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사교육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주장도, 그들의 희망적인 관측을 애써 추인하자면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정부의 ‘ 선의’만은 이해하도록 노력해보자.


하지만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규제 철폐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교사들이 촌지를 받아도 좋다는 발상인가? ‘교복공동구매지침’ 폐지는 또 무슨 말인가. 교복회사가 학부모와 학생들에 대해 마구 폭리를 취해도 된다는 말일까?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금지’ 폐지도 비슷하다. 그거 폐지 안 해서 불편(?)할 사람은 신문업자 밖에 없지 않나? 산업정책으로 나와도 욕을 먹을 얘기를 태연히 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특정 회사의 이윤율을 높여주는 게 ‘교육정책’의 역할이 되었을까. 아무리 ‘비즈니스 후렌들리’라도 교육정책 얘기할 때는 교육만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황당한 수준의 규제 완화 말고도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숭배하는 입시교육과 상관없는데도 철폐되는 ‘규제’들이 있다. ‘종교교육 교육과정 지도 철저 지침’ ‘전문계고(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 ‘초·중등학교 학교규칙 제정 인가 지침’ 등이 그것이다. 학생들에게 종교 예배를 강요하고 교리교육을 강제할 자유를 허하면 입시 경쟁력이 높아질까? 무분별하게 실업계 학생들을 기업으로 팔아넘기면? 교칙을 마음대로 제정할 자유를 허한다면? 이런 지침들은 자유롭게 입시경쟁을 할 권리를 침해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입시가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권이 함부로 침해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교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소중한 지침들이다. 그러니, 의미를 보는 사람들을 위해 그대로 남겨두기를 바란다. 제 2의 강의석을 보고 싶단 말인가.


다양성 없는 자율화? ●
     


자율화할 것이 있고, 안할 것이 있다. 자율화는 국가 주도의 획일적인 교육에 맞서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도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자율화에 무슨 다양성이 깃들어 있는가. 국가 주도의 평준화 교육에 대해 갖은 비난을 퍼부은 그들이 만들 학교 역시, 전국 어디를 가든 다 ‘자율적으로’ 비슷비슷할 것이다. 학교별로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면 오직 평균점수 뿐. 진지한 고민없이 ‘현장’에서 요구하는 규제 완화는 모두 실현시켜주겠다는 근시안적인 태도로 어떻게 교육정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모든 규제를 차량통행을 막는 전봇대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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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기간 동안 진보신당의 임시 당직자가 되어야 했던 어느 분의 얘기다.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절대로 그 당에 얽혀들지 마라. 그 당에는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 할머니 말 허투루 듣지 말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분은 정규직 회사원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다. 무급으로 일하는 동안 손해가 없진 않겠지만, 잠깐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고 미래에 일감이 줄어들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도 ‘희망이 없는 당’에 얽혀들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희망이 없는 당에 얽혀들면, 내 인생도 희망이 없어지나?


시절이 좋아져서 무슨 운동에 잘못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갈 상황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운동을 두려워한다. 하긴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될 사람’을 찍는 쪽이 마음에 편하다는 사람도 많은 나라이니 오죽할까. 다양성에 대한 정치적인 억압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문화적인 억압은 여전하다. 문제는 실제로 정치적 탄압을 경험한 기성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서도 이러한 억압의 기제가 강고하다는 데 있다. 언제나 우리가 희망의 근거를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운 ‘다음 세대’로부터 찾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물론 그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들도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생각할 만한 환경에 처해 있으니까.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아이를 지원해주는 무한경쟁의 청소년기를 거친 뒤, ‘좋은 시절’과는 거리가 먼 대학으로 들어온다. 학점에 토익에 기업의 인턴 경험까지 관리해도 취직이 안 되는 이들에게 대학 생활은 그저 고통스러웠던 고등학교 시절의 연장일 뿐이다. 남들 사는 것처럼 안 살면 곧바로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88만원 세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토익책을 덮고 짱돌을 던져라”고 주문하기엔 무리가 있다. 영어가 필요없는 직장에서도 토익점수 900을 요구하는 한국사회에서 토익책을 덮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한경쟁 속에서 연대성을 체험해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짱돌을 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은 짱돌이 무엇인지는 알까. 혼자서 우두커니 골목길에서 짱돌을 던질 수도 없는데.


하지만 토익책을 덮지 않고도 정치적 행동은 할 수 있다. 아무리 인생이 팍팍해도 여가시간을 전혀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만일 여가시간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 그에게 정치적 행동을 권유하겠는가). 드라마도 보고, 애니메이션도 보고, 만화책도 본다. 약간의 정치적 관심을 가지고, 어떤 활동의 지지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 리 없다.


당연히 비용이 조금은 든다. 나는 진보신당에 입당하면서 매달 당비 1만원과 비정규직 연대기금 1만원을 내기로 했고, 창당특별기금 10만원을 별도로 냈다. 창당특별기금은 선택 사항이라 하여 친구들에게 입당을 권유할 때는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국고보조금도 전혀 받지 못하는 이 신생정당이 자금이 풍족할 리가 없는지라 중앙당에서도 지역구 선본에서도 특별당비를 부탁하는 연락이 왔지만, 차마 그것까지 내지는 못했다. 시간과 체력이 허용하는 만큼의 미약한 자원봉사를 했고,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당투표 지지 부탁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은 이만큼 하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 정당 참여다.


요즈음에 ‘먹히는’ 언어로 바꾸어보자면, 운동은 재테크처럼 생각해도 된다. 원금 보전을 하기 힘들 만큼 리스크가 크지만, 잘될 경우 많은 것을 바꾸어낼 수 있는 그런 재테크 말이다. 다른 투자가 그렇듯 운동에도 장기투자가 필요하다. 미국 주식의 역사를 보면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주식이 오른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그 기간을 알 수 없으니, 확률적으로 볼 때 그 기간에 주식을 보유하여 이득을 챙긴 사람은 장기투자자들뿐이었다고 한다. 운동 역시 그렇다. 대개의 운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한 운동에 힘을 빼고 환멸을 느끼며 그만둬버린다면, 단타매매에 올인했다가 손을 털고 사라지는 어리석은 개미투자자들과 비슷한 꼴이 되는 것이다.


운동이 망하면 참여자도 망해야 한다고 믿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순혈주의 운동권들이고, 다른 하나는 냉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운동이 망했는데도 참여자들이 살아남아 다른 운동으로 갈아타는 꼴을 보기 싫어한다. 제 살 궁리 찾아가면서 적당히 운동에 힘을 보태는 것은 모순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순적인(?) 행위의 결집 속에서만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운동 망해도, 나 안 망한다. 그런데 뭐가 두렵겠는가.

글 : 한윤형 (인터넷 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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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저일 바빠서 요새 도저히 스타리그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었는데,

며칠 전부터 훈훈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홍진호가, 비록 이벤트전이긴 하지만 곰티비로 중계가 된 개인전 경기에서 2 대 1, 2대 0 승리를 거두면서 관련 커뮤니티를 설레이게 만들었고,

(하지만 -아무리 이벤트전이지만- 현실은 다음 상대 윤용태 ㅠ.ㅠ ㅅㅂ 우리 뇌제 고려장 토스되나 ;; )

KTF가 20일 열린 프로리그 경기에서 공군을 3 대 0으로 물리쳤는데,

그것 자체가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KTF가 공군에게 약한 면모를 보여왔기 때문에, 꼭 그렇지만도 않을 듯)

그 중엔 무려(!!) 강민과 박정석의 승리가 끼어 있었다.

2경기 강민. 대 박대만 전 승. 114일만에 출전한 개인전이었고, 무려 215일만에 맛본 개인전 승리였다고 한다.

3경기 팀플. 박정석/임재덕. 대 김환중/조형근 전 승. 드디어 이윤열에 이어 사상 두번째로 프로리그 80승 달성.

79승을 달성한 이후 168일만에 기록한 승리였다고 한다.

이 팀플은 김환중의 전진투게이트와 조형근의 4드론의 투칼라 러시를 박정석이 거의 일 대 이 기분으로 소수 질럿 - 다수 프루브 컨트롤로 절묘하게 막아내는 동안 임재덕이 준비하고 나와서 승리를 거두는 게임이었는데...

나중에 다시 찍어보니 박정석의 어느 프루브는 4킬. 이거 저거 찍어 보면 프루브들이 10킬을 넘었다.

아아, 현재 잘나가는 게이머 팬들도 비웃지 말지어다.

나중엔 당신들도 이렇게 이런 한경기 한경기에 열광하게 된다구......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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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여론조사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선거를 유권자의 행태로 환원해 설명하는 경향이 과도하게 확대되었다. "유권자가 바로 서면 나라가 바로 선다"는 등의 비민주적 논리나 심지어는 "유권자 의식개혁운동"과 같이 극도의 권위주의적 언어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될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민주주의 정당이론의 고전들이 말하는 것은 그 반대이다.

 
사회학적 정당이론을 대표하는 것으로 유명한 립셋·로칸(Lipset & Rokkan)은 "정당으로 조직된 대안들이 유권자에 앞서 존재한다"고 말한다. 유권자가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가 하는 정치적 조건을 먼저 살펴야 한다는 말이다. 갈등이론에 근거해 정당이론의 한 패러다임을 개척했던 샤츠슈나이더(E. E. Schattschneider) 역시 대의제 민주주의 체제에서 인민주권이 실현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좋은 정당 대안을 가질 때 뿐이라는 점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유권자가 어떻게 선택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도외시 한 채 여론조사를 근거로 유권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이론들이 왜 반민주적인가를 통렬히 비판했다.

 
현 정부에 대한 책임 추궁 경향이 국면을 지배한다고 해서 이를 유권자의 비합리성으로 비난하는 것도 잘못이다. 정당이론에 대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석자로 인정받는 피터 마이어(Peter Mair)가 강조하듯, 현직 정부에 대한 평가가 유권자 투표결정을 좌우하는 '회고적 투표'의 양상은 정당 간 차이가 약해질 때 나타난다. 이 차원에서 문제를 보면 이라크 파병과 한미 FTA의 사례가 상징하고 있는 것처럼 집권당의 정책이 보수적 야당과 동일해진 정치구조가 더 중요한 요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김영춘 의원의 사례가 보여주듯, 80년대 학생운동의 지도자로 활동하다 신한국당-한나라당에서 국회의원을 하고, 열린우리당으로 또 옮겨 국회의원을 하다가 다시 움직여 문국현 후보의 선대본부장을 맡을 수 있는, 그야말로 좌우를 넘나들 수 있는 정당체제의 무이념성이 더 문제인 것이다.


이 글은 정치학 박사이자 후마니타스의 대표인 박상훈이 지난해 대선 직전이었던 11월 13일에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 중 일부다.  


박상훈 대표는 "한나라당의 공천 결과 이명박계가 독점했지만 친박연대가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집권당을 안정적이고 통합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매우 안 좋다"며 "집권당 안에서도 정당 응집성이 굉장히 떨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한다고 해도 그것이 순조롭게 관리되는 보수독점 체제는 현실화되기 어렵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표는 이를 자민당 장기집권의 토대를 구축했던 일본의 55년 체제와 비교했다. 그는 "일본이 30년 장기집권 체제가 될 수 있었던 건 사회당과 공산당까지 포함한 모든 세력에게 경쟁의 장이 허용되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의사표현이 충분히 허용된 결과였다"고 말했다. 요컨대 사회적 의견을 반영하는 통로로서 정당정치가 뿌리내린 바탕에서 장기집권의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2004년부터 지금까지 기존의 정당체제가 해체돼 왔으며 이번 총선도 그것이 분해되는 혼란한 상황이 진행되는 와중에 치러지는 선거"라고 박 대표는 규정했다. 진보개혁진영은 물론이고 보수진영 역시 지지기반이 형편없이 무너져 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는 진단이다.
 

이를 반증하는 건 유례없는 부동층의 증가와 50%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는 투표율이다. 박 대표는 "만약 투표율이 매우 낮고 보수세력이 200석이 된다면 이 선거를 민주적 결과로 인정할 수 있겠는가 하는 고민에 봉착할 것 같다"고 난감해 했다. 그는 "사실 우리정치의 제1당은 기존 정당에 거부감을 가진 투표거부층"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건 그 박상훈 대표가 이번 총선 직전이었던 4월 4일에 역시 <프레시안>지와 한 인터뷰 내용이다.


여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투표 안한, 혹은 한나라당 찍은) 국민이 개새끼다."라는 의견과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 혹은 "민주주의가 허약해지고 있다."라는 의견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오히려 민주주의 약화의 원인을 정당에서  찾는다면, 그 책임은 국민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정치세력에게 돌아간다. 첫번째에 인용한 박상훈의 글이 바로 그런 내용이다. 이 글에서 낮은 투표율은 정치세력에 대한 정당한 경고라고 해석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최근의 인터뷰에서 지나치게 낮은 투표율은  민주주의적 정당성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킬 거라고 우려하고 있는데, 이 역시 상식적인 생각이다. 적어도 투표율이 낮아진다고 좋아하는 정치학자는 세상에 없다. 그러니까 의무투표제를 도입하는 나라들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국개론'은 언급할 필요도 없는 인터넷 유저들의 마스터베이션이다. 그렇다고 현 상황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모조리 다 '국개론'으로 치부해선 안 되지. 얼핏 보아도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은 하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기능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고, '국개론'은 도덕적 품성론에 해당할 텐데, 이 양자를 동일시하는 심보는 도대체 무엇인지. 어디선가 가소롭게 허수아비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길래 잠깐 짬을 내어 글을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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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방문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21일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과 관련,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없더라도 했어야 할 문제였다. 시기적으로 맞아 떨어져 그런데, 일찍했으면 관련이 없었을 일을 미루다가 이렇게 됐다”며 “우리가 양보했다고 하는 주장은 너무 정치 논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유선진당이나 친박연대 성향의 정치인이 저런 문제에 대해 발끈했다면 "우리가 양보했다고 하는 주장은 반미주의자들의 이념 공세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를 지탱하고 있는 환상도 그런 것이 아니다. 대운하에 찬반을 표하는 것은 좋지만 그걸 두고 총선에서 쟁점화하는 것은 정치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이명박이다. 요즘 택광 선배가 자주 말하는 '중립국가의 환상'이란 것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한국 정치는, 정치 영역 자체를 부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강준만 교수의 경우 이명박과 노무현을 인물비평의 차원에서 비슷한 캐릭터로 분류하고 있고, 그 평에 동의할 수 있는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인물비평을 넘어 각 정당에 대한 기능적인 측면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적어도 이 지점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열린우리당 vs 한나라당이라는 정치적 맥락 안에 들어와서 정치를 하려고 애썼고 그렇게 하면서 커다란 반발을 낳았다. (비록 당시의 청와대도 정당을 중시하지는 않았지만, 열린우리당이 존중할 만한 정당이 못 되었다는 면도 있었다.) 반면 이명박은 정치에서 초연한 초월적인 지위로 올라서려 한다. 그가 하는 것은 '통치'고, 거기에 대해 찬반을 표하는 것은 '정치'인데, 놀랍게도 후자는 별로 쓸데없는 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인 것 같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그런 태도가 한국인들에게 별로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는가 보다. 이 경제 모르는 자칭 '경제 대통령'의 정치 혐오증이 어디까지 치달을 것인지, 그리고 언제까지 추인받을 수 있을 것인지 어디 한번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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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홍정욱 인터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4/18/2008041800888.html


jiva 님이 활자로 된 조선일보 홍정욱 인터뷰를 읽더니 "뭐야 이거, 무릎팍 도사아냐?"라고 말하며 웃었다. 당연히 노회찬을 지지했던 패잔병인 나는 네이버 메인에 올라왔던 그 인터뷰를 차마 정독하지 못했지만, 그의 말에 호기심이 생겨 한번 들여다 보았다. 과연, 그랬다.


jiva 님이 지적하고 내가 동의한 부분은 이 부분.


문 : 누군들 좋아할까마는, 지는 거 너무나 싫어하지요?

답 : 이렇게 말하면 제대로 '안티'가 생길 텐데…. 사실은 져본 적이 없어요."

문 : 벤처 하다 망해 먹었고, 중국 유학 갔다가 중도 포기 한 건 진 게 아닌가요?


여기까지 들으면, 화면이 멈추고, 홍정욱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며, 킬빌의 배경음악이 흐르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action! 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답 : 그건 스스로 잘 합리화했어요.


강호동과 주변 인간들 폭소. 뭐 이런 식.


홍정욱은 약점이 많은 인간이다. 예전에 가끔 본 조선일보 인터뷰는 억지로 없는 약점도 만들어서 공격하는 경우가 많아 보기가 불편했는데, 상대가 홍정욱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약점이 그냥 사실 자체로 주어져 있으니 찌르는 것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문제는 이 정확하게 약점을 타격하는 질문들이 결국엔 홍정욱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을 증폭시키는데 쓰인다는 거다. 언젠가 진중권이 다른 텍스트를 비평하면서 썼던 말을 활용한다면, 이 인터뷰는 풍자의 대상이 되어야 할 홍정욱을 해학의 대상으로 만든다.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그를 보호한다.


홍정욱의 답변은, 굳이 따지자면 그의 '성공'이 '그의 성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그의 '실패'는 그 실패에도 불구하고 다음 도전을 준비할 수 있는 그 자신의 계층적 환경의 문맥에서 '성공을 위한 준비'로 탈바꿈 되니까. 그런 합리화는 억지로 돈 끌어다 자녀를 유학보낸 중산층 기러기아빠의 자녀들이 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유학은커녕 등록금 대기에도 허리가 휘는 서민층의 자녀들에겐 말할 나위도 없고. 인터뷰 기사는 홍정욱의 아버지가 아들의 유학자금을 대기 위해 밤무대를 전전했다는 '사실'을 애틋하게 보도하고 있지만, 이 역시 마찬가지. 기러기아빠들도 그만한 출혈은 감수하고, 기러기아빠가 되지 못하는 서민층 부모들도 자식새끼 때문에 허리가 휘는 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과 실패는 나뉜다. 이건 심지어 입지전적이지도 않건만, 존경의 대상이 된다.


인터뷰 자체가, 쇼프로그램이 되어 버렸다. 명사들의 약점을 찌르고, 거기에 대한 '인간적인' 변명을 들으며 친근감을 증폭하는 방식이 언제부터 널리 유행하게 되었는지를 나는 잘 알 수 없다. 쇼프로그램을 즐기지 않으니까. 다만 이 익숙해진 코드가 홍정욱과 같은 위인을 방어하는데 유용하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조선일보의 인터뷰는 그 의도에 부합한다는 면에서 볼 때는, 매우 탁월하다. 이것은 정치신인 홍정욱이 아니라 가령 박근혜와 같은 중량급 정치인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는 방법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용비어천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중들 앞에서 정치인을 보호하는 어떤 방식이 탄생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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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만족스러운 선거 결과 (아이추판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선거 결과 (한윤형)
민주화 이후 투표율 경향 (아이추판다)
'단호한 글쓰기'로 진실을 호도하기 (한윤형)
민주화 이후 투표율 경향(보론) (아이추판다)
결국은 실력문제 (아이추판다)
재미로 보는 국가별 투표율 추세 (아이추판다)



아이추판다 님의 최초의 글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적당한 냉소를 담고 있었는데, 사실 그런 것에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결론이 아니라 논거인 바, 그 논거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얘기해 볼 수도 있겠다. 가령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논거로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같은 극우정당이 설치고 다니는 건 아니라는 사실과,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던 하나의 정책(영어몰입교육)이 후퇴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 논거들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따지려면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그의 글의 주요한 논거로 생각하고 반론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막상 논쟁이 시작되자 지나가다가 언급되었던 것 같았던 투표율 문제가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민주주의 얘기한다고, 혹은 얘기 안 한다고 한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왜 아이추판다 님에게는 투표율 문제가 논의의 중심이 되었을까, 라는 사실이 된다. 이건 단지 주어진 현상만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이야긴데, 간단히 얘기하자면 “그래야 그래프를 그릴 수 있으니까”가 하나의 대답이 된다. 아이추판다 님이나 그의 글에 환호하는 어떤 이들의 입장에서는, 프랑스 극우전선의 정체성과 같은 답이 안 나오는 이야기를 해봤자 재미없다. 그들에겐 이 문제에 큰 관련이 있든 없든 그래프나 하나 그려놓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언제나 ‘과학적인’ 일이다.


하나의 진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피려면, 그것에 반대하는 명제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빠르다. 즉, 아이추판다 님이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려면, “그가 생각하기에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무엇일까?”라고 물어보면 된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일단 그가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실질적인 독재가 일어나는 상황을 ‘민주주의’라 부르진 않을 거라는 초보적인 견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형식적 기준이니까 말을 하나마나다. 그런 걸 언급하려면 “이것은 민주주의다.”라고 말하지, ‘정상적으로’나 ‘잘’과 같은 어구를 따로 붙이지는 않는다. ‘프랑스 국민전선같은 극우정당이 설치지 않는다.’는 기준을 넣어 볼 수 있지만, 도대체 그게 어떤 정당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프에 대해선 시시콜콜한 설명도 마다하지 않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논의를 위한 최소한의 정의도 내리지 않는 것이 아이추판다 님이다.


그럼 이제 뭐가 남았지? 아, 하나의 정치세력이 ‘삽질’을 했을 때 심판을 받느냐 안 받느냐. 근데 이것도 참 자의적이다. 내 기준에서 자의적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그래프 오타쿠의 입장에서 자의적이란 말이다. 이 말이 내 기준에서라도 다소나마 의미를 가지려면 그 준칙이 구체적인 현실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작업은 그래프 오타쿠에겐 매우 귀찮은 작업이므로 당연히 생략된다. 모든 논거를 버리고 그래프를 그릴 수 있는 투표율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이 언제나 그가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다.


기호태 님의 트랙백을 받아 보고 읽어 보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보신당의 어느 당직자가 투표율이 낮아서 자기들이 망했다고 주장했던가? 기호태 님의 말대로 사실 투표율이 낮아서 그나마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높았다고 볼 수도 있다. 투표율에 대한 개탄은 주로 자신들이 개혁적이라고 생각하는 몇몇 블로거들이 했던 것 같은데, 이 개탄이 한나라당 세력의 성공(?)에 대한 규탄과 맞물려 있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심정과는 별도로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얘기다. 낮은 투표율에 대한 규탄이 정당한지 부당한지는 따로 얘기해야 할 문제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또 다른 얘기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1) 투표율이 낮은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의 징후다. 라고 말할 수도 있고, 동시에 2) 한나라당의 성공은 민주주의의 위기의 징후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3) 투표율이 낮아서 한나라당이 이긴 거다. 라고 말했다고는 볼 수 없다. 88만원 세대 문제에 대한 귀찮은 잡무를 보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너희들보단 우석훈이 올바르다.”고 얘기하니 이것도 좀 웃긴 얘기이긴 하지만, 그거야 모르고 그랬을 테니 그냥 넘어가자.


아이추판다 님의 ‘실력론’ 역시 노정태의 주장을 “진보신당이 망한 건 민주주의의 위기다.”로 치환시키고 “위기가 아니라, 실력 때문이야.”라고 훈수를 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에 대해 언급하다가 진보신당의 성패에 대해 언급할 수는 있겠는데, 그렇더라도 양자는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닌가? 왜 거기에 대해서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해서도 '그래야 얘기하기가 편하니까'라는 편리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 어차피 그가 고차원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 대답에서 만족하기 바란다. 답변 내용도 재미있다. 역시 그는 그래프를 그릴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실력이 무엇인지가 전혀 정의되어 있지 않다.


정치의 영역에서 실력이라 하면 간단하게 1) 권력을 획득하는 능력과 2) 권력을 운용하는 능력을 구별할 수 있다. 그가 1)을 얘기한 것이라면 진보신당의 패인은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자기 PR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라 말할 수 있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하나마나한 얘기도 정확히 그렇게 언급하면 그나마 얘기가 되는데, 이를 두루뭉술하게 ‘실력’이란 단어로 포장한 것은 자기 정당성을 좀더 추상적인 차원에서 강변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으면, 그는 1)이 아니라 분명 2)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용어를 대충 쓰는 이들이 언제나 의도적으로 범하는 실수다. 


권력을 운용하는 능력에 대해 말한다면,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진보신당이란 당이 한나라당이나 통합민주당에 비해 그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인정된다. 가령 당장에 진보신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혼란만 가중될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무슨 SF소설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가정을 ‘0 아니면 100’으로 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 현실적인 개연성에 맞춰 ‘국회의원 한 두명’을 언급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노회찬이나 심상정은 17대 국회에서 가장 유능한 (그렇다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국회의원에 속했다. 그렇게 본다면 그들은 적어도 그 측면에서는 ‘실력’이 있는 거고 있는데도 떨어진 거다. 그래서 도대체 그가 말하는 실력이 뭔지 우리는 잘 알 수가 없게 되는데, 되게 재미있는 것은 그가 ‘떨어진 너희들은 실력이 없어서 그래.’라고 말해놓고 ‘붙은 애들도 실력이 없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이 됐든 막걸리가 됐든 그래프를 그릴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 꼴리는 대로 내뱉어도 된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이념이다. 거기에 대해 누가 뭐라고 그러면 다시 그래프 하나 그려놓고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고 말하면 될 일이다.


투표율 그래프가 튀어나오는 순간 이 논쟁(?)은 코미디의 세계로 워프했다. 이를테면 그의 그래프를 보고 “아, 한국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군.”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2012년 총선에서 투표율이 40%쯤 나오고 자유선진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더라도,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안세력이 없어서 자유선진당을 찍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우리 그래프 오타쿠의 회귀분석 강의를 지겹게 들어야 할 테니까. 투표율이 비슷한 비율로 떨어지고 있으니까 누구누구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과학적인 인간이라면 투표를 안 한 60%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되고, 2008년 총선에서는 투표를 했다가 2012년 총선에서는 투표를 안 한 7%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어서’ 투표를 안 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게 과학적인 인식이다.


2016년 총선에서 투표율이 33%쯤 나오고 친박연대 Park-Friendly Fellowship 가 의회다수당이 되더라도 우리는 “자유선진당의 실정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안세력이 없어서 친박원정대를 찍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4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그래프 오타쿠의 회귀분석 강의를 또 들어야 한다. 투표율이 비슷한 비율로 떨어지고 있으니까 누구누구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름지기 과학적인 인간이라면 투표를 안 한 67%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되고, 2012년 총선에서는 투표를 했다가 2016년 총선에서는 투표를 안 한 7%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성숙한 민주주의 때문에’ 투표를 안 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게 과학적인 인식이다. 내 생각에 투표율이 이쯤 낮아지면 2020년에는 허경영 주니어가 파시즘 정당을 하나 만들어 성공을 거둘 듯도 싶지만, 아이추판다 님의 생각에는 그런 게 진정한 의회민주주의다. 파시즘 세력이 헌법을 고치면 그때는 정의상으로도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겠지만, 그렇게 항의해봤자 그래프 오타쿠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쿨하게 “그게 바로 너희들이 좋아하는 의회민주주의라능.”이라고 냉소하면 된다. 그리고 아마 뭔가 다른 그래프를 그리고 있을 거다.


그래프만이 진리를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신기한 건 그들이 그래프 이외의 다른 ‘말’도 곧잘 내뱉는다는 것이다. 가령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국가일 수록 투표율이 낮은데는 누굴 뽑아봐야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라는 식의 주장 말이다. 왜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는 짓을 곧잘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반응하지 마시라. 이 모든 의문 역시 ‘재미로’ 제기된 것이다. 사실 오타쿠의 모든 글은 재미로 읽어야 하므로, 그 글에 대한 의문 역시 재미로만 제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오타쿠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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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호한 글쓰기는 그 자체로는 미덕도 악덕도 아니다. 하지만 근거를 대지 않고 단호함만을 견지한다면 그건 웃음거리가 된다. 게다가 근거가 아닌 것을 근거로 제시해놓고 뻣대고 있으면 보는 사람의 입장이 더 난감해진다.


아이추판다 님의 반응이 바로 그런 글쓰기의 한 예시라 볼 수 있다.
대단히 만족스러운 선거 결과 라는 글에 대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선거 결과 라는 반론을 썼더니 그는 민주화 이후 투표율 경향 이라는 그래프 하나로 반박한다. 문제는 이 그래프는 무엇에 대한 반박도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아이추판다 님의 주장의 근거를 두 가지로 파악한 후 그것들에 대해 반론했고, 투표율 하락 문제에 대해선 그 후에 언급했다. 그러니까 내 반론은 크게 세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추판다 님의 그래프가 최소한 투표율 문제에 대한 반박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내 글의 1/3에 밖에 반박하지 않은 셈이다.


만일 내가 이전 글을 아이추판다 님 방식대로 썼다면 이렇게 썼을 거다.


아이추판다 님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하더라도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는 근거로, 프랑스의 국민전선같은 극우 정당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극우전선이 뭔진 알고 말하는 걸까. 극우전선의 정책을 보면 "이민의 중지, 노동조합의 권리축소, 경찰 지원, 테러리즘과 마약부정거래자에 대한 사형 실시, 해외 영토에 대한 프랑스 지위의 유지, 국가의 경제제한 폐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게 유럽에서야 제나라 국민 쪽팔리게 할 만한 극우 정당이지만, 한국으로 오면 어떤가? 이념 분화가 명확히 되어 있지 않은 한국 사회지만 적어도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는 극우전선에 맞먹거나 그보다 심한 정당들이 아닌가. 그런 정당들의 의석 합계가 200석이다. 아이추판다 님의 견해에 따른다면 한국은 오히려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셈이다.  


이렇게 글을 맺은 후 태그에 "부끄러운줄알아야지"나 "양심이있어야지" 혹은 "무슨말이더필요한지" 정도를 덧붙이면 완벽한 재현이 되겠다. 그런데 이런 짓은 내 취미가 아니다. 일단 논의를 지나치게 협소화시키는 면이 있고, 블로그에 올리는 글에 대한 기대치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지식인의 칼럼이나 기자의 기사라면 또 모를까, 블로그 포스트에다 대고 저렇게까지 비아냥 대고 싶진 않다. 하지만 대충 넘어가도 지적을 하면 알아는 먹어야 할 게 아닌가.  


나는 공대생이 아니라서 저런 그래프를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는지, 회귀분석 결과라는 걸 뽑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모른다. 하지만 저런 거 만들 시간에 남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나 찬찬히 들여다 보는게 사태파악에 더 도움이 될 거다. 아이추판다 님은 상대방의 글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혹은 자신이 설명할 수 있는, 또는 자신이 유일하게 이해할 수 있는 논점만을 뽑아내어 그것에 대해 반론한 후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도 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심리학이야 자기 전공 분야이니 계속해서 새로운 정보를 제시하면서 나름대로 논쟁을 끌어나갈 수 있었지만, 이렇게 주제가 일반적인 토론으로 넘어오면 얘기가 또 다르다.


사실 노정태의 반론에 대해서, 약간 우려되는 지점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새로운 글을 썼다. 그의 글은 "이 모든 건 다 유시민 때문이다."로 요약될 수 있다. 그 견해에 동의하는 면이 없는 바는 아닌데, 결국에 노정태의 글은 이 투표율 하락의 책임도 유시민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 적어도 아이추판다 님은 그렇게 읽었다. 그래서 그는 이 그래프에 대해" 이번 총선 투표율이 특별히 낮은게 아니란 거죠. 예를 들면 "노무현 정권을 심판하는 대신 정치적 의사표현을 포기했다"라는 식의 주장은 무리가 있습니다. 정치적 의사표현을 포기하는 비율은 10년전 정권교체 때나 지금이나 똑같거든요."라는 변명을 덧붙인다.

확실히 이 그래프를 보면 이번 총선의 투표율이 낮은 것이 아니라 2004년 총선의 투표율이 지나치게 높다. (61%) 그래서 문제는 해결된 것일까? 하지만 투표율이 낮아지는 비율이 일정하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기울기가 (절대값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크다는 것이 문제가 된다. 그의 덧글에서 한 말을 다시 옮겨오자. 최장집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p20을 보면 "물론 투표율이 낮아지는 경향은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투표율이 우리의 경우처럼 이렇게 급격하게 떨어지고 그 결과 선거의 절차적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할 지경에 이른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나는 최장집의 말을 신뢰하지만, 말이 나온 김에 한번 민주주의 선진국들이 보여있다는 유럽지역의 총선 투표율을 찾아보자.


2007년 프랑스 총선의 득표율은 60% 정도였다. 1차 투표 때 기권율이 39%, 2차 투표 때 기권율이 40%였다고 하는데, 이쪽의 투표율 역시 역대 최저 수준이라 한다. 아무래도 국민전선이 활개치는 이 나라는 민주주의가 한국보다 후져서 아직도 투표를 많이 하고 있나 보지? (그런데 2002년도 대선에서 낮은 투표율 때문에 장 마리 르펜을 결선으로 보냈던 이 나라의 투표율은 2007년 대선 때는 무려 84%로 치솟았다. 이 친구들 왜 이럴까. 2007년 한국 대선투표율도 60% 간신히 넘는데. 과연 극우전선이 설치고 다니는 민주주의 후진국이라서?)  

 
2005년 영국 총선의 득표율은 61%였다. 2004년 한국 총선의 득표율이 60.6%였으니 그나마 근접한 값이다. 하지만 아이추판다 님의 그래프에서도 2004년 한국 총선의 득표율은 예외적으로 높은 곳에 있다. 이 수치는 2000년 총선의 득표율보다 오히려 약간 더 높고 1996년 득표율보다는 좀 낮은 수치다. 반면 2005년 영국 총선의 득표율은 2001년(59%)과 비슷하게 예외적으로 낮은 득표율로 기록되었다. (1997년의 득표율은 71%였다.) 2008년 한국의 투표율은 50%가 안 된다. 아무래도 이 나라도 우리보다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은 것 같다.


2005년 독일 총선의 득표율이 77.7%였다. 민주주의 후진국이다. 2006년 스웨덴 총선 득표율은 82%였다. 물론 민주주의 후진국이다. 2007년 덴마크 총선 득표율은 86.6%였다. 후진국? 명백히 밝히지만 이 나라들은 의무투표제를 실시하는 나라가 아니다. 의무투표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의 투표율은 90%를 웃돈다.


그런데도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나라일 수록 투표율이 낮"고 한국도 그런 선진국의 경향성을 따라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보자면 전세계를 다 뒤져도 우리만큼 민주주의가 잘 발달한 나라가 없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한국의 투표율 하락세는 서구 유럽을 뛰어넘는 세계적인 수준이다. 지금껏 한국말로 떠들었으니, 굳이 그래프 그려주지 않아도 기울기를 얼추 예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기울기의 절대값만 큰 게 아니라, 이젠 투표율 자체가 선진국보다 낮다. 무려 46%란다. 누가 이에 대항할 것인가? 그나마 한국의 투표율에 근접한 영국의 상황에 대한 분석을 가져와 보겠다.


이것은 사람들이 냉담하기 때문이 아니다. 압도 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전국적 정치 의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기성의 정치는 이런 관심에 집중점이나 접근 수단을 제공하지 않는다.

국민의 3분의 2가 국가 운영의 방도에 관해 발언하고 싶어하지만 겨우 27%만이 실제로 발언권을 갖고 있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주요 정당들 사이에 차이점이 거의 없다는 확고한 믿음과 이런 현실이 결부되어 있다. 1980년대 초에는 국민의 80%가 보수당과 노동당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선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그 수치는 27%로 떨어졌다

선거 특별호 Socialist Worker(영국) 2005년 5월 중에서


내가 한국 상황 설명하면서 하는 말이나 비슷하다. (최장집의 말이기도 하다.) 투표율이 낮아지면 선진국에서조차 민주주의의 위기를 운운한다. 민주주의의 안정기에 들어서면 점진적으로 투표율이 낮아지는 추세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게 투표율 하락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더군다나 이토록 급격하게 투표율이 떨어지는 상황의 원인을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기능'으로 진단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