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블로그 이미지
이 모든 것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 a_hriman@hotmail.com
by 한윤형
Statistics Graph
  • 500,705Total hit
  • 454Today hit
  • 669Yesterday hit


세계명작소설을 연애물로 대하는 것은 사춘기에 그것들을 몇 권이라도 읽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나 역시 <좁은 문>을 삼각관계물로, <첫사랑>을 팜므 파탈 원톱물로 읽으며 사춘기를 보냈다.

요즈음의 세상에는 소설 말고도 재미있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혹여 소설을 읽게 되더라도 재미있는 대중소설이 많아 소위 ‘문학’이라는 것들에 접근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안 든다. 1990년대 초반에 <퇴마록>이 나왔을 때 나는 교실에서 한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그것을 열심히 읽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친구들에게 ‘책을 좋아하는 아이’라는 평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내가 읽던 책들은 주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쓰여진 3천원 안팎의 아동소설이었고, 종종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나 그 이후 범람한 ‘북한붕괴물’들을 보며 ‘어른들 소설’을 읽었다고 뿌듯해 하는 처지였다. 중학생 때의 내 독서이력은 <일본은 없다> 이후 범람한 ‘일본물’들과 김용 무협소설, 그리고 <은하영웅전설> 정도에서 멈췄다. 아동용 축약본 소설이 아니라 진짜 명작소설들에게 관심을 가질 기회는 요원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문학작품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 소설들을 어떤 방식으로 읽으면 꽤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최초의 깨달음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부터 왔다. 어떤 허영심에 의해 책을 펼쳐들었던 나는, 30여 페이지를 넘어가는 베르테르의 주변 자연경관에 대한 찬미에 GG를 치기 직전이었다. 바로 그 때, 로테가 등장했다. 그러자 갑자기 이 소설은 잿빛 이론에서 푸른빛 생명의 나무로 변신했다. 로테와 베르테르가 만나자마자 춤을 추면서 친해지고, 약혼자이면서 나중엔 남편이 되는 알베르토가 엮이면서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사춘기 청소년은, 문학작품에서 묘사되는 연애는 어떤 매체에서 묘사되는 그것보다도 가슴을 후벼판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성공에 힘입어 나는 다른 소설에 도전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유행하던 <고교독서평설>에서 <좁은 문>의 대략적인 스토리를 읽은 나는 이것 역시 연애물이라는 짙은 확신 속에 소설을 펼쳐들었는데, 역시 소설은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 이 소설의 주제는 종교적 구원과 현세적 행복 사이의 갈등이다. 그러나 이미 연애물로 이 소설을 읽기로 작정한 내 눈에는 제롬과 알리사, 줄리에트의 삼각관계물이었다. 이 관계는 <신세기 에번게리온>에 나오는 신지, 레이, 아스카의 관계와 흡사했다. 사실 당시의 내 눈으로는 알리사는 아야나미 레이와 비슷한 캐릭터였고, 줄리에트는 소류 아스카 랑그레이와 비슷한 캐릭터였다. 나는 전자를 ‘얼음공주’라고 부르고 후자를 ‘다른 타입’이라 칭하면서 애니메이션과 세계명작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애물의 공식을 내 멋대로 확립했다.

<좁은 문>은 정말로 슬픈 소설이었는데, 나는 한번도 알리사에게 감정이입을 한 적이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자신의 공식에서 볼 때 언제나 ‘얼음공주’가 아닌 ‘다른 타입’의 지지자였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러 흘러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에게 시집갔던 줄리에트가 몇 명의 자식을 낳은 애엄마가 된 후, “제롬, 이제 세월이 오래 지났으니 나도 당신을 보면 아무렇지도 않으리라고 믿어요.”라고 편지에 쓰면서 제롬을 초대하는 마지막 장면을 나는 오래도록 기억했다. 여전히 알리사를 잊지 못해 “나는 사랑하지 않거나, 누군가를 사랑하는 척하며 살 수밖에 없겠지.”라는 제롬 앞에서 눈물을 감추는 줄리에트의 모습.

이런 연애물(?)을 여주인공이 두 명이라는 점에서 ‘투톱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세상에는 ‘원톱물’이라는 것도 존재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원톱물은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이었다. 몰락한 백작가문의 영애 지나이다는 ‘팜므 파탈’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모르는 내 마음속에 각인된 팜므 파탈이었다. 소년 블라디미르는 다섯 살 연상의 지나이다를 연모하고, 그녀의 주변에는 언제나 숭배자 남성들이 들끓는다. 지나이다는 다른 숭배자들에 대해 ‘어장관리’를 충실히 하면서도 블라디미르에게 호감을 품은 듯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진실은 저 너머에. 블라디미르의 진정한 연적은 그의 아버지였음이 드러난다. 유부남과의 스캔들에 휘말린 지나이다는 마을을 떠나게 될 때,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작별인사차 그녀의 방을 찾은 블라디미르에게 울면서 키스를 퍼붓는다. “나는 그 키스가 정말로 누구를 갈망하는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첫사랑’을 떠나보내는 ‘소년’의 말이다.

그다지 문학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 세계명작소설을 연애물로 대하는 것은 사춘기에 그것들을 몇 권이라도 읽기 위한 좋은 방법이다. 다만 이 방법에 너무 경도되면 <죄와 벌>을 ‘여자가 남자를 무조건적으로 구원해주는 정말로 나이브한 이야기’로 취급하게 되고,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의 코제트에 대한 진심을 변태적인 것으로 오해하게 된다는 부작용이 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한윤형 (드라마틱 28호, 2007년 11월)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0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649)
공지 (3)
정치 (301)
문화 (335)
잡담 (8)
사진 (1)

CALENDAR

«   2008/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