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을 찍은 이들이 잘못이라고 하기엔 정동영 캠프가 한 일이 너무도 없다. 이명박을 지지한 이들은 투표한 이들의 절반이 채 안 되니 국민의 30%에 해당할 따름이다. 나머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없었던 것은 전적으로 참여정부와 정동영 캠프의 잘못이다.
이문열의 지적처럼 이명박의 도덕성은 이미 자녀의 위장취업 문제에서 그 바닥을 드러냈다. '좌파 정권 종식'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소설가마저 곤혹스러워했던 이 사건을 국민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여기서 범여권은 더 이상 도덕성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달았어야 했다.
정말로 이명박의 집권이 끔찍했을 어떤 유권자의 소망을 범여권이 충족시켜 주려는 의사가 있었다면, 문국현이 그렇게 주장했듯이 정동영의 사퇴가 길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이 그토록이나 좋아하는 '감동의 드라마'에 군불이나마 붙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을 상책이라고 해보자. 하지만 이건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정동영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의 조직을 확장하고 관리해 왔는데, 그가 패를 던진다고 결심해 봤자 밑에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권영길도 민주노동당 경선 후보 사퇴를 못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런 걸 못 했다고 정동영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명박의 득세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파악했다면 선거대책은 달랐어야 했다. 문국현이 말했던 것처럼 '부패가 무능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 국민들의 의식이었다. 그리고 그 국민들은 자신들이 그런 의식을 가지게 된 책임을 참여정부에게 돌리고 있었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계승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단 두 가지, 그 의식에 동조하거나 부인하는 일뿐이었다.
만일 그들이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의 어느 어느 부분이 잘못되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그 부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면서, 이명박 후보의 대안이 이 문제를 여전히 해결할 수 없음을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장 대선에서는 이기기 힘들었다 하더라도, 향후 총선에서 시민들은 한나라당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어떤 선택지를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중책이라고 해보자. 물론 이것도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왜냐하면 참여정부에 참여했던 자들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하는 이라도 당장의 소란을 피하기 위해 "반성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러이러한 부분을 잘못했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기술하는 사실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 기술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를 명확히 알고, 하지만 시정하려는 의지는 없이, 거짓 반성을 명확하게 하는 일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하기엔 참여정부는 자기 확신이 강한 집단이었다.
그러므로 이번 대선에서 소위 범여권 진영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공익에 부합하는 활동은 "도대체 참여정부가 무엇을 잘못했냐?"고 솔직하게 사람들에게 싸움을 거는 것이었다. 하지만 국정홍보처가 5년 내내 조중동에 대항해서 했던 그 짓거리를, 그들은 대선에서는 피해갔다. 그 짓을 대신 해줬던 네티즌 몇몇이 이제와서 "대중은 우매하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되도록 논쟁을 피하고 BBK를 물고 넘어져 정권을 날로 먹으려고 했던 것은 바로 정동영 캠프가 아닌가?
참여정부에 대한 세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하나는 얼치기 좌파 운동권 386들이 정권을 장악하여 좌파 정책을 추진하고 반기업정서를 확산시켜 5년 평균 4.6%밖에 국가를 성장시키지 못하는 경제난국을 만들었다는 조중동과 이에 동의하는 이들의 시선이다. 둘은 참여정부는 한나라당이 만들어낸 IMF와 김대중 정부가 물려준 경기 부양 정책의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경기부양 정책 없이 4.6%의 견실한 성장을 일구어냈다는 국정홍보처와 이에 동의하는 이들의 시선이다. 마지막으로 참여정부는 수사적으로는 수구세력과 결연한 전쟁을 치뤘으나 실은 강화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청년실업을 방치하는 등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높은 경제성장률을 만들기 위해 부동산 규제에 미적거리다가 한국 경제의 체질도 나쁘게 만들었다는 시선이 있다. 이중에서 세번째 시선은 평균적인 사람들에게는 듣기 힘든 소수자의 말에 해당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했을 때, 실제로 체감경기의 악화를 느끼고 있고 가계생활이 답답한 사람들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당신은 뭐라고 답변하겠는가? 조중동은 비록 막강하지만, 마술지팡이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그 사실을 망각한다.
대선 정국에서 참여정부 정책을 옹호하는 것은 사람들이 정권교체라는 선택을 내리게 된 바로 그 지점에서 논쟁이 일어나게 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비록 앞서 지적한 두 개의 선택지에 비하면 하책이었겠지만, 이것이 아마도 정동영 캠프에서 추진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이 전략이 수행되는 와중에서 그나마 여러가지 말이 섞이면서 사람들에게 사태를 더 분명하게 바라보게 할 수 있는 어떤 정보가 주어졌을 것이다. 비록 이 과정에서 권영길의 민주노동당이 별 역할도 못하고 빌빌거렸을 거라는 것을 상상하면 기분은 좀 나쁘지만, 여하간 이런 상황은 그 자체론 공익적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노선을 비판적으로 변경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옹호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선을 치른 정동영은 자신의 모든 말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었다.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문제에 대해 답을 안 해주는데, 그가 무슨 정책에 대해 말한들 그게 어떻게 '참말'로 들린단 말인가? 허경영이 이번 대선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를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집권여당이 마치 집권해본 적이 없다는 듯이 '과거'는 얘기하지 않고 '공약'을 남발한다면, 설령 그 공약이 좌파적이라도 좌파들에게 감흥을 줄리 없고 친시장적이라도 시장주의자들에게 찬동을 얻을리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기에 그 공약은 훨씬 더 진지하고 약간 더 말이 되게 다듬어진 '허경영 공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은 지지를 얻을 수도 없거니와, 심지어 우습지도 않다.
BBK에 대한 범여권의 집착은 그들의 상식은 물론이거니와 후각조차 의심스럽게 만든다. 5년 내내 친노 네티즌의 글만 눈팅하다가 그들은 모든 종류의 감각을 상실해버린 것일까? 아마도 우리는 이명박이 BBK를 설립했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는 (추가적으로) 발견할 수 있을지 몰라도, 주가조작을 했다는 사실은 발견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가 실제로 김경준에게 사기를 당했건, 아니면 그 부분만은 매우 솜씨좋게 덮었건 간에. 그런데도 이명박이 BBK 설립자임을 부인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이미지에서 도덕성보다는 '성공한 CEO'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음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한번 더 거짓말쟁이가 되는 게 낫지, 사기꾼에게 속은 멍청한 경영자임을 제 입으로 고백하고 싶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검찰에 대한 탄핵으로 BBK 정국을 연장시키려고 한 것은 범여권의 최대의 패착 중의 패착이었다. 검찰 수사가 미심쩍어 특검을 제의했다면, 특검 결과를 보고 탄핵을 하든 말든 해야지, 어떻게 자기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왔다고 탄핵을 운위할 수 있단 말인가? 복잡한 정치문제를 동네 어린이를 취조하는 문제로 전환시킨 "진실이 거짓을 이깁니다."는 선거 구호는 그들의 우스꽝스러움을 증명하는 최고의 수사였다. 이제 패배했으니 그들은 자신들이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걸까?
이러한 철지난 조소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한 이유는, 대선이 끝난 이후에도 대통합민주신당의 행보가 저따위 정신상태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검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니다. 몇몇 386 의원들이 정동영과 친노그룹의 퇴진을 주장한 것을 보고 말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장인즉 최대한 참여정부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을 중심으로 당을 재편하자는 것이다. 대충 사람만 바꿔 채우고 입씻은 후 이명박 네거티브 전략으로 총선을 치르겠다는 얘기다. 유권자더러 금붕어가 되라는 주문을 '정치'라고 부르면서, 그들은 더럽게 더럽게 질긴 목숨을 연명하려고 작정하고 있다. 이들이 살아남을지 못 살아남을지는 내가 점쟁이가 아니라서 알 수 없지만, 이들이 살아남는 것이 한국 정치의 희망이 못 된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아마 이들의 생사는 앞으로 우리에게 닥쳐올 비극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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