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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엄마 따라잡기>가 보여주는 허영심은 단순히 황금에 대한 허영심이 아닌, 여러 종류의 가치들에 대한 허영심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거대한 욕망의 환율 중계소다.
한국 사회에서 돈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뭔가 있을 수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대개 드라마에선 돈보다 중요한 어떤 정신적인 가치를 말한다. <쩐의 전쟁>에서 주희(박진희)는 돈보다 더 중요한 자신의 양심을 챙긴다. <메리대구 공방전>에서 메리(이하나)와 대구(강대구)는 돈과 명성의 유혹 앞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신현모양처>에서 국희(강성연)는 자신의 남편을 뺏어간 돈많은 태란(김태연)에게 “너에게 없는 것은 진심”이라고 강조한다. 이들 드라마에서 시청자들은 ‘현실’과 대비되는 정신적인 가치의 승리의 현장을 훈훈하게 챙길 수 있다.
하지만 <강남엄마 따라잡기>는 마치 르포와 같은 현장의식에서 출발한다. 강남엄마들은 아이들의 학습매니저이며, 철두철미하게 아이에게 얽매인 사람들이며, 아이의 성적에 따라 자신들의 지위를 결정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정의 부유함보다 자식의 성적을 자랑하며, 주로 그것을 기준으로 남을 깔본다.
그들의 노력은 부유함을 자식에게 되물림하려는 노력이므로, 결국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결론을 지지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그렇게 간단하진 않다. 강남엄마와, 강남엄마를 경원시하면서도 따라잡기를 원하는 강북엄마들의 가치관은 남편의 부․남편의 학력․자식의 성적 등 여러 가지 기준을 혼합한 복합적인 성격의 것이다. 가난하지만 강북 전교1등이었던 아들을 강남으로 전학시킨 민주(하희라), 부유했으나 강북 전교꼴지였던 아들을 강남으로 전학시킨 미경(정선경), 강남에 집 한채 가지고 있는 정도의 부유함에 아이들을 위해 끝없는 뒷바라지를 하는 도도한 수미(임성민) 등 여러 종류의 캐릭터가 각각의 우월감과 열등감을 드러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지점을 더 극적으로 드러내는 인물은 서상원 선생님(유준상)이다. 그는 신춘문예에 등단한 시인으로써, 엉터리 같은 시집에 추천사를 써주며 촌지를 받으면서도 논술학원 강사가 되어볼 생각이 없냐는 선배의 제안을 거절한다. 이때에 그의 내면은 ‘정신적 가치 vs 황금’의 이분법으로 판별할 수 없다. 그는 그가 지닌 시인으로써의 정체성을 논술강사와 맞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비도덕적인 촌지시인은 어쨌든 시인이지만, 논술강사는 시인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그는 비도덕적 행위의 결과로 시인협회에서 제명되었을 때 곧바로 다시 선배를 찾아간다. 여기서 그가 지키려는 것은 정신적 가치가 아니라 어떤 ‘가오’다. 그 가오가 무너졌을 때 그는 사립학교 기간제 선생님이란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흔히 대한민국 부르주아들은 돈만 밝히지 교양이 없다고들 말한다. 여기서 교양이란 황금과 구별되는 어떤 특수한 가치일 것이다. 예술의 경우엔 이것을 작품에 대한 아우라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사회학자 부르디외는 이 아우라에 대한 관심이 황금에 대한 관심이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는 황금과 구별되는 가치를 인정해야만 예술을 인정할 수 있다. 이때 예술적 영역에서 발생한 아우라에 대한 숭배는 본질적인 측면에서 황금에 대한 숭배와 유사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 부르주아들이 돈만 밝히고 교양이 없다고 말할게 아니라, 교양 대신 다른 상징가치들(넓은 의미의 아우라)을 탐닉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강남엄마 따라잡기>가 보여주는 허영심은 단순한 황금에 대한 허영심이 아닌, 여러 종류의 가치들에 대한 허영심이다. 그것이 보여주는 것은 거대한 욕망의 환율중계소다. 이곳에서는 학벌과 황금의 교환율, 시인의 무게와 황금의 교환율이 논의된다. 그것이 이 드라마가 노골적으로 현실을 드러내는 지점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재단의 비리에 맞서 싸우고 재단 이사장의 딸 수진(김성은) 대신 민주를 추구하는 서상원을 통해 또 한번 모종의 도덕성을 교훈적으로 전달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나로서는 되도록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한윤형 (드라마틱 25호,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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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 전쯤에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드라마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커피프린스 1호점>이었을 게다. 그러면 지금 이 순간 한국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드라마는 무엇일까? 한국 드라마 시장에 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대답할 것 같다. 하지만 <커프>는 순정만화 틀로 분석해야 하는 지라 나같은 사람이 쓸 말이 없고, <개늑시>는 드라마틱에 9월호에 리뷰를 쓴데다가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리뷰는 아니었다.- 며칠 전 <필름 2.0>에 넘긴 작가 인터뷰까지 하고 왔으니 블로그에 역시 더 쓸 말은 없다. 그저 이 엄청난 장르물에 매주 경탄하면서 시청하는 일만 남았을 뿐. 그러니까 나는 동시간대 <커프>의 잔혹한 통치 속에서도 15% 정도의 시청률로 소리소문없이 종영된 <강남엄마 따라잡기>에 대해 코멘트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드라마틱 8월호에 이미 나는 <강남엄마 따라잡기>에 대해 스코프 형식의 리뷰를 남겼는데, 그 내용의 대강은 다음과 같다. 대개의 드라마에서 황금은 어떤 정신적 가치와 대립한다. 그리고 우리의 선량한 드라마들은 후자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옹호하려고 한다. 그러나 <강남엄마 따라잡기>에선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강남엄마들의 지위를 결정짓는 건 집안의 재력, 자식의 학력, 부모의 학력 등 다층적인 요소다. 다른 사람들(가령 교사들)에게도 이 상황은 마찬가지라, 어떤 종류의 명분이라는 것도 사실 황금과 교환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드라마가 ‘거대한 욕망의 환율중계소’를 보여주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 리뷰의 제목은 벤야민을 기념하며 “황금 vs 아우라”이다.)
이 리뷰를 썼을 때 나는 드라마를 6회쯤 보고 있었을 텐데, 다행히도 18화로 종영될 때까지 이런 기조가 유지가 되었다. 가령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라 볼 수 있는 서상원 선생님(유준상)을 생각해 보자. 그는 서울대 출신에 대학시절 신춘문예에 시인으로 등단했으나 그후 30여세가 될 때까지 빌빌 거리다가 촌지받고 엉터리 시집에 추천사나 써주는 인간으로 전락했는데 (이 전락의 시점부터 드라마가 시작된다.) 그래도 논술강사하라는 선배의 요구는 거절한다. 이런 건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정신 vs 물질 구도와는 다르다. 촌지시인도 시인은 시인이기 때문에, 그리고 시인은 가오가 있기 때문에 그는 그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것뿐이다. 그래서 시인협회에서 제명당하자 다시 논술학원 원장하는 선배를 찾아가는 것이고. 하지만 재미있게도 그의 선택은 언제나 어긋난다. 가만히 있을 때는 학원에서 모셔가려고 찾아오지만, 그때 잠시 학교선생을 계속할까 고민하다 학교에서 여의치 않아 논술강사로 가려고 하면 또 그쪽에서 못 받아들일 사정이 생긴다.
이런 에피소드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가령 <메리대구 공방전>의 말미에서 메리는 마치 자신들이 잘 나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탓이며, 언제든지 그 자리에 복귀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해서 나를 화나게 했다. 물론 꿈을 버리고 현실과 타협하여 이득을 얻는 순간이 있기는 할 게다. 하지만 영혼을 팔아버리는 것도 언제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악마는 당신 옆에 붙어사는 24시간 대기조가 아니다. 어떤 때는 정말로 영혼을 팔아버리고 싶어 미칠 지경인데도 악마가 다른 데로 가 있어서 못 파는 경우가 있다. 영혼을 안정적으로 팔려고 해도 여유돈이 좀 있어야 한다. “영혼팔자!”는 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려면, 악마가 다른 사람 둘러보고 다시 당신에게 관심을 가질 때까지 최소한 몇 달간은 먹고 살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 돈 없어서 영혼 못 팔고 다시 꿈의 세계로 나가는 사람도 있다. 서상원은 이렇게 오락가락하면서도 한걸음 한걸음씩 윤리적 선택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을 보는 건 꽤나 감동적이다. ‘윤리적 영웅’들에 비해 훨씬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서상원 얘기만 했지만 전반적으로 이 드라마는 강남엄마들에 대한 르포적인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현실을 풍자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시나리오도 굉장히 세심하고 탄탄한 편이다. 가령 인물들의 갈등을 보더라도 1) 교사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2) 엄마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3) 아이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4) 몇몇 중요한 캐릭터들의 경우, 각 가정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골고루 섞여 있으며 이것들이 서로 영향을 맺으면서 새로운 갈등을 창출하기도 한다. 저기서 가능한 조합의 숫자는 장난이 아니다. 생각해보면 굵직굵직한 사건이 없었던 이 드라마가 언제나 긴장감을 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멜로 라인 역시 삼각관계 냄새를 약간은 풍기지만 결론은 내어주지 않으면서 ‘이 드라마는 멜로가 아닙니다.’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풍자에서 대안을 제시하려는 순간 이 드라마는 한계에 부닥치고 만다. ‘올바른 교육’에 대한 이 드라마의 관점은 ‘강남엄마’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의 것에 불과하다. 18화의 전면적인 해피앤딩 구조가 어색한 건 해피앤딩 자체가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그 해피앤딩에 깔려있는 ‘교훈’이 너무 낡은 것이고 그래서 그것의 실현 안에서 저 등장인물들이 그토록 해맑게 웃을 수 있을까 의심이 되기 때문이다. 교사의 양심을 대변하는 김선생님의 목소리는 추상적인 언어로 가득차 있다. 전인교육이라든지, 아이들의 가능성을 실현하게 하라든지. 이런 명제는 반박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현실에 적용할 무언가를 끌어낼 수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드라마의 한계이겠는가. 현실이 이토록 꼬여 있다면 그건 마땅히 ‘정답’이 무엇인지를 아직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뻔히 성립할 수 있는 ‘정답’을 눈앞에 두고 ‘오답’에 열을 올리는 사회는 없다. 그러니까 우리에겐 아직 정답은 커녕 그 비슷한 것도 없는 것이다. 아직 한국 사회는 교육문제에 대해서 총체적인 고민은커녕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한 합의도 도출해 본 적이 없다. 단순히 삼불정책의 고수는 개혁이며 평준화를 깨는 건 보수라는 이분법 안에선, 하나의 정책에 대한 찬반이 그것의 (작은 틀에서, 그리고 큰 틀에서의) 효용성에 대한 평가에서 이루어지지 못하고 단지 (유사)이데올로기적인 대립으로 소비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17화 중반까지만 두고 볼 때, 이 드라마는 꽤나 훌륭했고 나름대로 공적인 문제제기를 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특정한 사회문제를 단순히 선정적인 설정으로 떨어뜨리지 않고 이 정도까지 풀어낸 드라마를 보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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