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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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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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길'에 해당되는 글 16건

  1. 2008/09/10
    주대환 논쟁 다듬어 보기 (1)
  2. 2008/03/29
    진보신당 왜 생겨났나? (16)
  3. 2008/02/16
    민주노동당과 나 (15)
  4. 2008/01/19
    [펌] 딴지일보 주대환 인터뷰 (2)
  5. 2007/12/06
    [서울대저널] 냉소주의의 위협과 제국의 역습 - 2007년 대선의 정치극장 (7)
  6. 2007/11/27
    [프레시안] '코리아 연방제'? '개 풀 뜯어 먹는 소리'! (2)
  7. 2007/11/22
    아이센가드 (3)
  8. 2007/10/08
    [프레시안] "바야흐로 '구렁이들의 전쟁'이 도래했다." (29)
  9. 2007/09/17
    대선 정국에 관한 잡담 (14)
  10. 2005/01/05
    진보담론과 개혁담론의 화해를 위해

진보신당 당원게시판 쟁점과 토론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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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노력했으며 민주노동당의 이론가 중 한 명이기도 했던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이 <시대정신>에 기고한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일보의 류근일 주필이 그의 커밍아웃(?)을 칭찬하는 칼럼을 썼고,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 글에 대해 반대의견을 쓰더니 급기야 최병천이 레디앙 지면을 통해 주대환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 논쟁은 논점을 제기한 이들의 선의를 인정한다면 좌파정당의 진로 및 전략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켜야 할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지겹게 반복되어온 얘기들이 재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은 근본적으로는 논점을 제기한 주대환에게 있다고 본다. 그의 논변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외면하고 ‘생산적인’ 논점만 따로 떼어내어 토론하자는 최병천의 시도는 지지받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이 기회에 주대환이 그리고 있는 ‘전략’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밝히고자 한다. 그의 오류가 무엇인지가 드러나면 이른바 ‘생산적인’ 논점들을 따로 떼어 내어 토론할 기회도 생길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주대환 논쟁 다듬어 보기”다.


이번 글에서, 그리고 과거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론할 수 있는 이론가 주대환의 현실인식은 다음과 같다.


1) 한국인들은 이념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2)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 좌파정당의 모델은 이념적 결사체로서 출범한 독일 사민당 모델은 아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탄생한 영국 노동당의 모델이다.

3) 따라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받아 결성된 민주노동당은 한국 좌파들이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이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4) 다른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사민주의’ 정당을 원하고자 한다면 민주노동당 내에서 NL 운동권들과 투쟁을 해서 승리했어야 했다.

5) 명백하게 진실인 4)의 충고를 외면하고 민주노동당은 분당되었기 때문에, 이제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사민주의 정당의 가능성은 없다.

6) 그러므로 다음으로 가능한 것은 미국 민주당의 모델이다. 한국의 좌파들은 미국 민주당과 같은 무지개 스펙트럼의 정당을 기획해야 하고, 그 정당의 한 분파로 참여해야 한다.


그가 그리고 있는 전략은 이처럼 모종의 연역추론에 기반한다. 나는 위에 서술된 명제 하나 하나가 그럭저럭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저것들이 2008년 대한민국의 어느 영역에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명제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저것들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흐름을 서술하는 모든 명제들에게 해당하는 ‘유일하게 보편적인 진실’이다. 그런데 주대환의 모든 추론과 정치적 판단은 위에 서술된 자신의 명제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신념에 기초해 있다. 그런 신념에 기초해서야 주대환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현실과 유리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목표’나 ‘지향’을 설정하면 거기에 맞춰서 하위의 명제들을 수정한다. 가령 전방 200미터에 중국집이 있고 나는 똑바로 직진해서 그곳에 이르겠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치자. 도중에 계산이 잘못되어 내가 오른쪽으로 2도 정도 삐끗하더라도 내가 중국집에 이르지 못할 일은 없다. 왼쪽으로 2도 수정해서 나아가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컴퓨터처럼 치밀하고 냉철한 주대환은 1) 중국집에 간다. 2) 그것은 전방에 있다. 3) 그러므로 똑바로 나아간다. 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모종의 사건이 생겨 자신이 왼쪽으로 2도 정도 삐끗하더라도 결코 3)의 명제를 수정할 생각을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하여 200미터를 나아갔을 때는 중국집이 아니라 문방구점에 이르러 밥을 굶고 만다.


이런 식으로 주대환이 밥을 굶은 사건이 작년부터 시작해서 두 번쯤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가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권영길을 지지한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당시 NL 운동권들은 권영길을 밀었고 NL에 반대한 이들은 노회찬이나 심상정을 밀었다. 결선투표제가 있었기 때문에 2위 후보인 심상정이 권영길과 결선에서 맞붙었고 한번 해볼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 주대환은 당시 다수파였던 NL의 전횡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 어떤 PD 정파의 사람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주사파’를 비판했던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정이 아니라 권영길을 지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민주노총이 선택한 후보였기 때문”이란다. “노조에 기반한 정당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하위명제에 충실하느라 좌파정당 하나를 말아먹을 판단을 내린 셈이다. 대선후보가 된 권영길은 주대환이 좋아하는 사민주의 노선과 가장 거리가 먼 선거운동, 민생공약은 내팽개치고 코리아 연방공화국의 깃발을 펄럭이는 코미디같은 선거운동을 펼쳤다. 이런 꼬라지를 봤으면 자신의 판단의 오류를 자인하거나 반성하거나 적어도 회의는 해야 할 터인데 이후 그가 공적인 글에서 저 지랄맞은 사건에 대한 소회 한마디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위명제에 충실했던 자신이 여전히 옳다고 믿고 있는 걸까?
  

다른 한번은 모두 알다시피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정국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였다. 알다시피 당시 일심회의 범죄자를 옹호하는 NL들에게 질린 사람들은 혁신파 vs 분당파로 나뉘어 팽팽히 맞섰다. 그렇지만 분당파가 이탈하기 시작한 이상 혁신파가 다수가 되어 NL을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능했던 것은 단 하나, 숙주를 죽이길 원하지 않는 NL 정파들의 자정작용이 일어나 혁신안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우직한 NL들의 다행스러운 고집으로 불발되었고 모두 알다시피 진보신당 연대회의가 창설되었다. 주대환은 이 국면 내내 1) 민주노동당이 망하면 사민주의 정당의 가능성은 끝난다. 2) 우리는 죽어도 이 링안에서 싸우다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저 정당의 테두리 내에서 NL을 이길 가망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말이다. 물론 이 역시 위에 정리한 주대환 컴퓨터의 논리회로에 정확히 부합하는 주장이었다. 2월 3일 임시 당대회의 파국 이후 이제 당내에 같이 싸워줄 사람이 없음이 명백해지자 그는 NL 지도부들을 비난하며 자신을 제명하라고 외쳤다. 어제까지 분당에 반대했던 처지로 제발로 걸어나가기는 뻘쭘했던 것일까? 그러다가 NL이 코방귀도 안 뀌자 그는 슬그머니 민주노동당에서 나와, 진보신당에 입당하지도 않은 채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다. 단 한마디, “미안하다. 잘못 생각했다.”라고 하면 끝날 일을 가지고 그는 이렇게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간다. 안쓰럽다. 그냥 2도 왼쪽으로 수정해서 중국집, 아니 진보신당에 와서 밥을 드시면 된다니까요. 왜 문방구에서 먹지도 못하는 지우개를 들고 우두커니 서 계세요.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 혼자 밥을 굶는다면 문제가 심각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가 저토록 논리정연한 글로 여러 사람들을 굶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거다. 기륭전자 앞에서 밥을 굶는다면 칭찬해줄 일이겠으나, 밥을 먹겠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밥을 굶는 것은 매우 볼썽사납다. 주대환은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내의 사민주의자 다수가 권영길을 지지하도록 하는데 성공했고,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국면에서 “NL도 PD도 한심한 건 똑같아. 진보신당? 흥!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반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냉소주의자들에게 친절한 떡밥을 던졌다. 그는 자신의 원칙에 지나치게 충실하면서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본인이 생각하는 목표 및 지향에서도 자꾸 멀어져만 갔다. 도대체 왜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이제 진보신당의 현실로 돌아와, “선생님. 계속 고집피우신다면 내일도 밥을 굶으실 것 같아요. 왜냐하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몇 가지 들고자 한다.


첫째, 나는 민주노동당 분당에 PD 운동권의 책임도 있다고 하는 주대환의 주장을 긍정한다. 가령 PD들이 주장하고 관철시킨 ‘당직 공직 겸직 금지’ 제도나 ‘지구당 폐지 반대’ 당론에 대한 그의 비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특정한 시점, 그러니까 2008년 2월의 시점에서 생각한다면, 진보신당 창당 이외의 답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주대환의 말은 옳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이제 한국에서 사민당의 가능성은 끝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아무런 가능성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소라도 가능성이 있는 쪽으로 이행했어야 했다. ‘좌파정치’ 자체를 포기할 게 아니었다면 말이다.


둘째, 나는 진보신당이 대중적 사민주의 정당이 아니라 PD 운동권의 당이었기 때문에 총선에서 실패했다는 주대환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주대환은 자신의 노선에 따라 당을 만들면 지지자가 금방 생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치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중적 사민주의’ 강령을 선포한다 하더라도 (사실 진보신당은 당강령도 없이 몇 개의 민생정책만으로 총선에 임했다. 주대환이 생각하는 대중적 사민주의 정당의 총선홍보와 뭐가 그리 달랐을지 의문이다.) 사람들이 곧바로 신뢰를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은 부당하다. 진보신당은 만든지 너무 얼마되지 않아서 신뢰를 줄 수 없었고, 노회찬 심상정 등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그나마 선전할 수 있었다. 진보신당은 총선에서 고전했지만, 그 고전은 분당하는 순간 예견된 것이었다. 만일 분당이 필연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이 고난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진보신당은 고난을 당한 이후에야 대중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를 주게 되었고, 그 결과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원 출신이 아닌 입당자가 증가했다. 진보신당은 이런 식으로 ‘대중’과 만나게 되었던 것인데, 주대환은 이런 현실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평을 하고 있다.


셋째, 나는 그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PD 운동권’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로 정확한 용어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나도 편의상 ‘PD 운동권’이란 말을 사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명백한 정치적 실체를 추종하는 NL 운동권과는 달리, 소위 PD들은 소련 붕괴 이후에 다양한 이론적 모색을 겪게 되었고 그 결과 자기들끼리도 높은 수준의 이념적 동질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어린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주대환은 이런 상식을 뒤집고 과거 민주노동당의 PD 운동권들을 단일한 실체처럼 호명하고 마치 그들이 모두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도정”이란 원칙에 반대하는 이들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나로서는 믿기 어렵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 진보신당에는 민주노동당을 경유하지 않은 당원들이 즐비하다. 누군가의 통계로는 6 대 4 정도로 오히려 비-민주노동당 출신이 많다고 한다. 이질적인 문화의 이 두 집단이 어떤 식으로 의사소통할 것인가, 진보신당의 지도부는 이들을 ‘운동권 정파의 조직원’ 대하듯이 하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대우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문제가 내가 지금 생각하는 진보신당의 구성원과 관련된 문제다. “PD 운동권 문화 축출”이라는 그의 구호(?)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진보신당은 지금 주대환의 현실인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비록 그것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주대환의 비평이 진보신당에 무용한 까닭도 그것이다.


넷째, NLPDR을 비판하는 주대환의 논법은 NLPDR과 마찬가지로 ‘단계론적 사유’에 기초해 있다. 즉 우리 사회의 단계는 이 정도이므로, 우리에게 있는 문제나 과제는 이것이고, 이전 단계의 문제나 이후 단계의 문제를 고민하거나 해결할 수는 없다는 식이다. “먼저 수구세력을 척결하고 그 다음에 좌우대립구도를 만들자.”고 좌파들을 압박한 ‘비판적 지지론’ 역시 단계론적 사유의 전형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좌파”를 평가절하할 때 주대환은 강고한 ‘단계론적 사유’를 보여준다. 반면 나는 하나의 사회, 특히 한국처럼 압축성장한 사회에선 서구 사회의 다양한 시대에서 발생했던 문제들이 중첩되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이런 문제들 모두를 대면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대환식의 ‘단계론적 사유’는 극복해야할 ‘과거 운동권의 악습’ 중 하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주대환의 비평이 올바른 것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고 그 다음을 말해보자. 진보신당은 어떤 정당을 지향해야 할까? 1) 양당제의 한축이 되기를 욕망할 수 있다. 2) 녹색당과 같이 문제제기를 하는 소수정당이 되기를 희망할 수 있다. 3) 중앙정치에서 성공하지 못할 경우 일본 공산당과 같이 중앙정치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지방자치 레벨에서 진보적인 실천을 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논의가 가능할 것인데, 주대환은 이에 덧붙여 4) 미국 민주당 모델 정당의 한 분파로서의 좌파 정치세력화를 주장한다. 


먼저 이 문제가 몇 명의 전략가들이 방향을 제시하고 이론적인 논쟁을 해서 결론을 내야 하는 성격의 문제인지가 의문이다. 처음부터 녹색당이나 일본 공산당을 욕망하는 사람이 있을까? 현실적인 조건들에 부딪히고 좌절하면 차선, 차선을 택하다가 그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1)은 아예 가능성이 없으니 애초에 2)나 3)을 추구하는 맞춤형 전략을 짜자는 주장도 가능하기는 한데 내가 보기엔 좀 에러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은 양당제의 한축인 민주당이 전적으로 신뢰를 잃고 이탈한 이명박 지지층도 ‘줏어먹기’ 하지 못하는 ‘난세’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양당제의 한축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과 투쟁이 있을 텐데, 이 정국에 무언가를 노려보지 않는다는건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또한 그러한 논의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진보신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인 이상 당원들의 논의의 차원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가령 나는 4) 미국 민주당 모델 정당의 한 분파로서의 좌파 정치세력화라는 주장이 때려죽어야 할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지려면 전체 당원들의 의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덧붙여 나는 정당 레벨에서 한나라당 이외의 보수정당들과 사안별 연대를 하거나 연정 등을 꿈꾸는 것도 유효한 전략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최병천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전략’을 꿈꾸려고 해도 일단은 진보신당이 모종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의석이 있는 정당이라야 상대편에서 연대니 연정이니를 논의할 건덕지가 생길 것이다. 의석이라는 점에서 보면 진보신당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당인데, 탄생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시기에 나중에 커서 외교관이 되니 판사가 되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까. 진보신당이 독자생존할 수 있는 세력이 되야 연대니 연정이니도 가능할 것이다.


한편 주대환을 향한 비판 중에는 필요이상으로 과잉된 것도 있는 것 같다. 변절의 테크트리를 타고 있다는 비판도 그렇고, “위대한 대한민국”이라는 수사에 대한 반감도 그렇다. ‘위대한’이란 수사가 찜찜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주대환이 말한 것은 1) 대한민국이 NLPDR의 단계를 넘어서 있다는 것, 2) 공화주의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좌파질을 하자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정통성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나는 주대환이 대한민국의 나쁜 면도 모두 긍정하자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는 정통성이라는 단어를 우파들이 쓰듯이 정태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사가 진전되면서 쌓여온 것이라는 식으로 동태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적절한 언급방식인 것 같다. 그의 역사관에 동의안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언급 자체가 부적절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해서 그를 ‘사민주의 우파’라고 비판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이에 대해선 Lollapalooza 님의 “주대환의 사민주의? 1900년산 영국제 시계를 버려라”라는 탁월한 텍스트가 있으니 내가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주대환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사민주의 우파’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입장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 시대엔 사민주의 우파라도 진보신당에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 우파 정당들도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물론 좌파정당의 성장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진보신당이 직접 ‘사민주의 우파’의 정책을 입안하고 실현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진보신당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기타 보수정당들이 ‘사민주의 우파’의 정책을 추구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나는 PD 운동권들의 ‘한계’를 질타하는 주대환이 진보신당에 와서 자신이 싫어하는 PD 운동권들도 제어하고 비-민주노동당원 출신의 새로운 당원들과도 소통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이것은 2004년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그를 위해 운동했던, 그것도 단지 ‘반 NL 후보’로서 지지한게 아니라 (비록 종종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의 논리적이고 유려한 글을 좋아했던 한 명의 지지자, 아니 왕년의 팬이 그에 대해 가지는 바람이다.  




P.S Lollapalooza 님의 두 번째 글, “조선일보에 놀아나는 다원주의는 없다”에 대해서도 할말이 좀 있다. 물론 나는 주대환-최병천의 언론관이 아니라 Lollapalooza 님의 언론관에 동의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안티조선 운동의 현황에 대해 비판적 점검없이 그 논변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나는 그와는 달리 ‘안티조선’이라는 구호가 지니는 타당성이 즉각적으로 납득될 정도로 충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이 글의 논점에서 다소 벗어나는 것이므로 가까운 시일 안에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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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보신당의 지지를 호소하는 글은 아니다. 나는 소심한 사람으로, 선거법을 위반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다. 다만 나는 진보신당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보신당이 왜 생겨났고 어떤 당인지에 대해 약간의 정보를 전달하려고 한다.


1. 왜 민주노동당에서 떨어져 나왔나?


2004년 소위 민주노동당에서 '자주파'가 당권을 잡은 후 많은 문제가 누적되었다. 자주파의 세계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남한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를 실현시키는 '자주적 민주정권'이 탄생하면, 이 남한 정부와 북한 정권이 연방제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문제가 해소된다고 그들은 믿는다. 자주파를 북한의 의중을 대변하는 완전한 '종북주의자'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연방제 통일 방안은 북한 정권이 체제 경쟁에 나름대로 자신있을 때 만들어낸 것으로, 지금의 북한 정권은 이런 방식의 통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주파는 대선 정국에서 김대중이나 노무현 등 개혁적이라 알려진 민주화 진영의 후보에 대해 소위 '비판적 지지'를 해왔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국보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기대가 좌절되자 그들은 대거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여, 민주노동당 집권을 통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려고 했다.


자주파가 아닌 사람들은 이들이 대중정당에서 운동을 하면 무언가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춰 있었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소득을 거둔 이후 적극적으로 민생정치를 펼치는데 큰 장애가 되었다. 가령 이들에겐 국가보안법 철폐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당 예산의 대부분을 거기에 쏟아부으면서 다른 문제는 외면했다. 국가보조금까지 받는 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의 재정이 날로 악화되었다.


열린우리당이 소위 4대 개혁입법에만 신경을 쓰고 사회경제적 문제에선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태도를 취하여 지지를 잃어 가고 있던 그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역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좀 더 과격하게 열린우리당의 노선을 표방하는 것으로 인지되었고, 의미있는 세력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일심회 사건'이라는 것이 터졌다. 민주노동당의 주요 간부에 대한 정보를 어느 자주파 활동가가 북한에 넘겼다는 사실이 밝혀진 사건이었다. 민주노동당의 친북성향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이 증폭되었고, 자성과 혁신의 목소리가 일어났지만,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자주파들은 '코리아 연방 공화국'을 내세운 권영길 후보를 대선 3수생으로 선출했다. 권영길 의원은 원래 자주파는 아니었지만, 이때엔 자주파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2007년 대선에서 2002년 대선만큼의 지지율도 얻지 못하는 '참패'를 기록하자, 당내에서 혁신을 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자주파 노선에 대한 비판과,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원에 대한 징계 요구가 이어지면서, 조승수 전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원들이 탈당하기 시작했다. 심상정 의원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되어 민주노동당을 개혁하려고 했지만, 일심회 사건 연루자 제명 등의 내용을 담은 최소한의 수준의 당대회 안건이 자주파에 의해 부결되자 신당 창당에 합류하게 되었다.


심상정, 노회찬 전 의원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탈당자들이 나와서 기존의 탈당자들과 함께 '진보신당 연대회의'라는 것을 결성하게 되었다.



2. 왜 진보신당이란 당명을 채택했나?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현재 진보신당의 정식명칭은 '진보신당 연대회의'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1만 5천명이 넘는 당원이 탈당했으되, 그중에서 8천명 가량의 당원이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진보신당은 아직 당 체제와 당 강령을 완전히 확정짓지 못한 상태다. 총선에 너무 임박한 상태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창당 당원 사이에 충분한 토론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고, 바로 총선 정국에 뛰어들어야 했다. 심상정 전 의원 등 당 지도부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총선 전 진보신당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1차적으로 창당하고, 총선 후 민주적 논의를 통해 창당의 절차를 마무리 짓자는 2단계 창당론을 제시했다. 현재 진보신당 연대회의는 1단계 창당만 진행되어, 총선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민 경제의 문제를 끌어안는 진보정당의 가치는 표명했으되, 구체적인 체제와 강령, 당명 등은 총선 후에 완전히 결정될 것이다.



3. 그들은 왜 진보신당이 필요하다 생각하나?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경제적 이념이 동일하다고 보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 기존의 민주노동당이 올바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제는 누가 해도 똑같다."라고 말한 바 있고, 이명박 정권의 경제 브레인인 이한구 역시 "참여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버려서 (경제정책에서) 그다지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대북정책과 일부 정치적인 문제에서 차이가 있고 반목할지라도, 경제 문제에서는 대동소이하다는 의미다. 그런 결과로 경제성장과는 상관없이 서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가고 있다고 진보신당 사람들은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이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 대응해야 했으나, 앞서 언급했듯 자주파들의 세계관을 따라 국보법 철폐 등의 문제에만 지나치게 강경대응함으로서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사람들은 이명박을 지지해서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금세 지지율의 거품이 꺼지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에게도 온전한 신뢰를 보내지 못한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이 서민들의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는 정치적인 것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매우 낙후한 국가가 될 것이다. 진보신당은 민생 정치에 대한 요구를 정치권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 한다. 비록 당장은 조직도 부족하고 역량도 부족할 수 있지만,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진보신당은 그외에도 민주노동당 시절 많이 챙기지 못했던 생태 문제와 여러 종류의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평등 / 생태/ 평화 / 연대 라는 구호는 이런 맥락에서 배출되었다.




4.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나?


앞서 언급된 것처럼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후 우수한 의정활동을 벌인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이 주도적이다. 홍보대사로 <말죽거리 잔혹사>에 출연한 영화배우 김부선, 문화평론가 진중권, 영화감독 변영주, 박찬욱, 임순례, <불멸의 이순신>의 소설가 김탁환 등이 활동하고 있다. 영화계와 지식인들은 별도의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른 네명의 지역구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노원병에서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 박빙 우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회찬 후보의 선거운동 현장에는 영화배우 박중훈과 가수 하리수가 도움을 주고 있고, 고양 덕양갑에서 한나라당 후보에 맞서 선전하고 있는 심상정 후보를 영화배우 문소리가 적극 지지하고 있다. 비례대표 후보는 11명인데 1번에 장애인 여성 운동가 박영희, 2번에 이랜드노조의 이남신이 선출되었다.  





진보신당연대회의 홈페이지 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성명/논평이나 정책 공약 해설 등의 자료를 통해 어떤 성격의 당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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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번호 25074. 정확히 몇 월 며칠에 입당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홍세화 선생님이 2002년 3월 30일에 입당하시면서 당원번호 25994를 받았다고 하니 그 직전이었을 것이다. 2001년 말 혹은 2002년 초. 그런데 나는 술자리에서 홍세화의 권고로 입당하지 않았던가? 상황설명을 하자면 선생은 진즉 민주노동당에 입당할 결심을 굳히고 있었고, 나같은 청년에게 입당 선동도 하고 있었지만, 몇몇 지식인을 모아 입당선언을 하고 입당을 해달라는 민주노동당의 만류에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즉 홍세화에 대한 당의 요구는 이벤트를 하나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는데, 천성적으로 이벤트와 궁합이 맞지 않았던 선생은 부산의 모 대학에서 강연한 후 뒷풀이를 하다가 ‘필’을 받고 그만 나보다 약간 늦은 당원번호를 받으며 학생들과 함께 입당해 버린 것이다. 그다운 일이다. 한편 나는 술자리에서 홍선생님의 권고를 받고 입당 의사를 천명한 그 순간, 만취해서 필름이 끊긴 상태, 즉 의사무능력의 상태에 있었는데, 이 역시 나다운 일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2001년 9월, 전국연합이 “3년의 준비, 10년의 계획”이란 표어로 대변되는 저 유명한 “9월테제”라는 것을 발표했다. 3년 동안 민주노동당을 민족민주정당으로 만들고, 10년 후엔 연방제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계획이 골자인 이 테제 이후 자주파들이 속속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인 후각의 예민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진중권은 2001년 말쯤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소위 ‘주사파 논쟁’을 일으켰다. 마침 그 시기가 소위 ‘용산 지구당 사태’가 일어났던 시기일 텐데, 이 사건에 대한 설명은 조금 있다 하기로 한다. 하여간 내가 그때쯤 입당하게 된 큰 원인은, 비록 나 자신을 좌파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이상한 친구들이 좌파정당을 집어삼키는 꼴은 보아 넘기지 못하겠다는 심보 때문이었다.



입당하고 나서 지구당도 배정받기 전에 나는 당당모라는 모임에 가입했다. 이 모임은 공식적으로는 “당의 진로를 고민하는 당원 모임”의 준말이었지만, 사실 구성원들은 흔히 “당을 당답게 만드는 모임”이라고 불렀다. 이 모임은 ‘용산 지구당 사태’를 보고 지금의 나와 나이가 같은, 6년 전 당시 26살 청년이었던 강병한이 만든 모임이었다. 당시의 민주노동당은 당원이 소속 지구당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일군의 자주파들이 모조리 용산 지구당에 몰려 들어 민주적인 방법으로 지구당 위원장을 갈아치우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것이 용산 지구당 사태다. 그때의 피해자가 현재의 분당파 중 한 명인, 전진(당시엔 전진이란 이름의 정파가 없었지만)의 김종철이라고 기억된다. 당당모는 개인의 지구당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고, 무정파 평당원의 권리를 보호하는 몇 가지 정책적 제안을 성명의 형태로 발표하여 당 내외 인사들의 주목을 받았다. 최초의 성명서에는 민주노동당의 여성위원장이었으며, 훗날 커밍아웃 후 민주노동당에 최초로 생긴 성소수자위원회위원장이 되는 최현숙 동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민주노동당 탈당 후 신당 혹은 무소속으로 지역구 출마하신다고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못 되는 것이 안타깝다.



강병한과 나는 안티조선 운동에서 만난 사이였다. 초기의 당당모는 안티조선 운동에서 만난 좌파들 몇몇과 기타 정파 패권에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던 이들의 연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들은 민주노동당의 노선을 좀 더 대중적이고 상식적인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견해를 지닌 사람들이었다. 싫어하는 쪽에서는 이들을 사민주의자, 개량주의자, 의회주의자 등으로 불렀지만, 그런 흐름은 이념적 지향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당당모의 맴버들 중에선 민주노동당 내에서 수용되기 어려울 만큼의 래디컬한 환경주의자도 있었다. 이들은 당 내에서 김석준이나 이문옥 같은 정치인에게 친화성을 느끼고 있었는데, 특히 감사원 내부고발자 출신이 이문옥을 설득하여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하게 만든 것은 이들이었다. 당시 민주당 경선 이후 노무현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고, 노무현 지지자들의 개혁적 정체성에 어울린다고 보기는 힘든 김민석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 참이라서, 이문옥의 지지자들은 노무현 지지자들에게도 이문옥 지지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논쟁이 격해져서 안티조선 우리모두 진영이 분열했고, 대략 2002년 4월 즈음에 안티조선의 좌파들은 짐을 꾸리고 진영을 이탈했다. 그들은 노사모를 벤치마킹한 이문옥 팬클럽을 만들었고 그 이름을 ‘깨끗한 손’이라고 했다. 5월에는 이문옥-김민석 논쟁이 저 유명한 진중권-강준만 논쟁으로 격화되었다. 어쨌든 논쟁과 상관없이 깨손 사람들은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하나로 민주노동당 측에서 내세운 서울 시장 선거 공약안을 검토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을 했다. 공약을 보아하니 검토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 후에도 종종 느낀 것이지만, 민주노동당의 공약 역시 극심한 ‘중앙정치 중독증’에 걸려 있다. 집권이나 하고 나서야 실행할 수 있을 공약을 당의 정체성을 알린다는 미명 하에 지방선거 공약에도 집어넣는 것이다. 풀뿌리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이 전무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한 일은 가령 “국공립대 통폐합”이라고 써 있는 공약안을 보고 혀를 끌끌 찬 뒤 “이게 어떻게 서울시장 선거 공약이에요? 적어도 서울시가 할 수 있는 서울시립대 관련 공약으로 바꿉시다.”라고 조언하는 일이었다.



지방선거가 참패로 끝난 후 깨손은 부패방지를 중심으로 사고하는 측과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측이 갈등을 겪어, 비교적 온건한 합의 이혼 끝에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이 진보누리라는 새로운 사이트를 만드는 수고를 했다. 이 사이트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진보누리다. 이후부터 나의 당 활동은 주로 이 사이트와 당원 게시판에서의 글쓰기 활동, 즉 키보드 워리어질로 한정되었다. 2002년 하반기부터 2003년 상반기에 걸쳐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에 미디어비평을 연재하기도 했다. 당시 나와 함께 돌아가면서 미디어비평을 썼던 사람들 중에는, 당시엔 편집국장이었던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도 있었다. 나는 원고료를 받는 계좌와 당비가 빠져 나가는 계좌를 평소에 쓰는 계좌와 별도의 하나로 지정해 놓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당비가 체납되고 있다구요? 그럼 진보정치가 원고료를 안 넣어준 모양이네요.” 2002년에서 2003년에 걸쳐 내가 한 일은 거의 노무현 지지자들과 싸운 일밖에 없었다. 대선 정국에서는 당 상근자들이 이러저러한 글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해서 글을 쓴 일도 있었다. 정작 나는 투표권이 없었는데도 그 짓을 했다.



2004년 총선 직전에는, 비록 2002년 지방선거에서 그랬던 것처럼 몸으로 선거운동을 하진 않았지만, 문화위원회에서 문화 관련 공약을 확정하는 회의를 할 때 몇 번 참석을 했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총선 이후 곧바로 민주노동당 당직 선거가 시작되었고, 드디어 자주파는 약속했던 “3년의 준비”를 실행시켜 12명의 최고위원 중 8명을 장악했다. 결국 나는 입당할 때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 국면에서 내가 한 일은,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주대환을 지지한 일이었고 결국 주대환은 경기동부연합의 이용대를 꺾고 당선되었지만, 그것조차도 자주파의 분열에 의한 것이었다.



입대할 때 나는 탈당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고민했지만 학생당원이 많았던 민주노동당답게 당권도 일종의 ‘군휴학’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기뻐했다. 하지만 2년간 정지시켜놓은 당권을 나는 전역하고서도 찾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정서적으로 이미 탈당상태였다. 2007년 대선에서 생애 첫 대선투표를 권영길에게 했지만, 그건 민주노동당을 욕할 권리를 찾기 위한 행동이었다.



나는 애초부터 심상정 비대위가 아니라 조승수 김석준 등의 탈당파를 더 지지한 사람이었지만, 2008년 2월 3일 저 운명의 당대회가 지나고 나서야 당적을 확실하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2008년 2월 4일 오후, 나는 소속된 지역위원회 사무실에 가서 탈당계를 제출하러 왔노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근자들 역시 탈당을 하려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가능하면 지역위원회의 해산을 결의하거나, 그것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성명서 제출 후 집단 탈당을 할 예정이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굳이 그런 부탁을 거절해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에, 나는 탈당계 대신 탈당위임계를 쓰고 나왔다. 당적을 가진 지 6년, 순수하게 당비를 낸 세월로는 3년의 당활동에 대한 종지부였다.



탈당자 숫자가 얼마 되지 않더라는 민주노동당의 선전을 보면 헛웃음이 난다. 첫째로는 나처럼 탈당위임계를 쓴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탈당자 숫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조직원의 숫자가 중요했다면, 전국연합의 자주파들이 굳이 민주노동당에 들어와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민주노동당의 강령 뒤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숨기고 대중을 기만하여 지지를 획득했다. 이 말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정치를 하면 된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기는커녕 나가는 우리들에게 재는 뿌리지 말아달라고 말한다. 당 대회에서 그들은 동료들의 신상정보를 북한 정보국에 넘긴 (손석춘은 최기영이 그 행위를 부인하고 있다며 ‘양심의 자유’를 지켜달라고 말하지만,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난 사안에 대해서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하는 건 어느나라 논법인지 모르겠다. ‘우리편’이면 거짓말도 믿어야 하나?) 이의 제명은 거부하면서 민주노동당에 종북주의는 없다는 선언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우리와 함께 운동을 하려면, 우리가 대중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에 협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를 뿌리지 말아 달라는 말은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나가는 건 좋지만 우리의 거짓말을 폭로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정신세계가 지구를 떠나야 할 수준이다. 탈당하는 사람들은 탈당하는 이유를 말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주파가 한 짓거리를 생각해 볼 때, 이번 총선에서 조중동에게 당할 공격도 스스로 방어해야 마땅할 것이다. 심상정 비대위와의 타협 없이도 어느 정도의 지지율 유지와 국회의원 수 확보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 짓을 했을 테니, 그 선택의 결과가 어찌 될지는 직접 몸으로 체험해야 할 것이다. 그건 탈당파 책임이 아니다.  



이 글은 무언가에 대한 분석도 비평도 아닌 민주노동당 안에서 내가 했던 미약한 일들을 떠올리는 사담이다. 이런 사담을 먼저 쓰지 않고는, 민주노동당의 문제를 반추할 수도 진보신당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주장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두서없이 이 글을 쓰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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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가치가 있는 듯 해서 그대로 긁어옴. 건질 내용이 많다. 하지만 주대환은 전략은 잘 짜지만 전술적 판단에서 미스가 많은 듯. 그리고 그가 짜온 전략은, 괜찮긴 했는데, 이미 빵구가 났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너뷰] 주대환 민주노동당 전 정책위의장

2008.01.18. 금요일

대선 패배 후 민노당의 후폭풍이 심상치 않다. 당 안팎으로 탈당과 분당, 그리고 재창당 등의 주장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민노당 내의 고질적인 정파적 갈등이 임계치에 달한 듯하다. 용암이 분출하듯 당내 자주파의 친북 민족주의를 겨냥한 분노의 분출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분당 등 파국 직전으로까지 몰려있는 민노당의 자세한 내막을 염탐하고자 본지는 민노당 내 저명한 논객으로 알려진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을 찾았다. 80년대를 관통한 '386 학생', 혹은 '선진 노동자'였다면, '김철순'이라는 필명으로 인민노련(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과 한국사회주의노동당에서 활약했던 이론가로서의 주대환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너뷰가 예약된 날 공교롭게 어떤 모임 술자리에 붙들려있던 그는 불콰한 얼굴로 나타났다. 속내를 자세히 들여다 볼 기회인 듯 싶다. 이너뷰는 자연스레 취중진담 컨셉으로 진행되었다. 본지에서는 논설위원 직빵맨과 신짱이 출동했다.


 

논설위원(이하 논): 반갑습니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긴 하셨지만 같은 길을 걸으셨던 노회찬 의원에 비해 대중정치인으로서는 덜 알려졌는데, 혹시나 모르는 독자들을 위해서 그 동안 살아오신 역정을 소개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주대환(이하 주): 제 경력이라면 1992년에 한국노동당 창당 준비위원장 했던 거는 뭐, 영광이라면 영광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요, 통합민중당을 거치고, 개혁신당, 국민승리21 등을 거쳤지만 아시다시피 진보정당이라는 게 장사가 잘 안 됐고요. 우여곡절 끝에 민주노동당 창당하고 창원에서 권영길 선거대책본부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뭐 두 번 지역구(마산)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를 했고요, 2004년 원내진출 이후에 정책위의장을 하면서 1년 5개월 정도 중앙정치, 여의도 생활을 조금 했죠.


논: 20년 가까이 진보정당 외길을 걸었던 것으로 아는데 요즘 민노당의 붕괴를 보는 심정은 참 남다를 것 같습니다.


주: 글쎄요... 아주 근본적으로는 한국의 정치 제도나 문화적 풍토를 볼 때 진보정당이 이 땅에 뿌리내릴 가능성은 제로다, 이런 명제로부터 전 출발을 합니다.


논: 의외네요. 진보정당을 하는 사람들, 아니 정치하는 사람들은 희망적 전망이 동인(動因)아닙니까? 스스로든, 대중을 향해서든 말이죠.


주: 네...허허...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다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냐 이렇게 힐난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내가 대답이 궁해질 때 불교가 신라에 뿌리내린 과정을 예로 듭니다. 신라의 불교, 지금 경주가면 온통 불상과 불탑이 지천으로 널려있어서 원래부터 불교 나라인줄 아는데 그게 아닙니다.


1만 6천킬로미터쯤 됩니까? 당시로 보면 지구 서쪽 끝 저 멀리 떨어진 인도 유럽인들의 세계관은 우리 민족의 지배적 뿌리인 몽골족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여러 민족들의 세계관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것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사상이었던 거죠. 불교가 이런 토양에 뿌리를 내린다는 거 자체는 기적이었다고 봅니다.


논: 그럼 진보정당을 뿌리내리고자 했던 지난 십 수 년의 활동은 결국 이차돈의 순교 행위겠네요?


주: 사람들의 오랜 생각, 상식, 문화를 바꾸는 데는 때론 이차돈이 필요하죠. 목숨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고 작은 그런 희생이 필요합니다.


논: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원내 제3당으로 단숨에 올라있는 민노당은 이미 기적을 일으키고 있는 거네요?


주: 아닙니다. 기적이 일어날 뻔 한 정도죠. 아직 뿌리를 내린 상태는 아닙니다.


논: '기적'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당이 뿌리 내리기 쉽지 않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주: 한국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생각이 우선 달라요, 완전히. '사상', '주의'에 대한 무관심이 심각하죠. 정치 그러면 한국 사람들은 포장마차에서 정치인들 다 도둑놈 개새끼들이라고 씹는 그런 문화, 냉소주의 같은 거죠. 그러나 유럽에서는 정치는 지식인들의 의무로 되어 있잖아요? 유럽에서는 정치한다고 그렇게 사람들이 냉소하지도 않고 그런거 같습니다. 나는 뭐 편하게 잘 사는데 그래도 공직, 의원을 하는 자들... 그 자들은 조금 뭐 그래도 잘났다고 의무적으로 하는 자들이다, 우리가 좀 도와줘야지, 대략 이런 정서인거죠. 근데 한국에서는 정치하는 새끼들 다 개새끼들 도둑놈들, 그러면서 자기는 정치 후원금 한 푼도 안 보태잖아요. 그게 한국 사람들의 의식에 뿌리내린 정치 문화인거죠.


신짱(이하 신): 근데 그건 굉장히 결과론적인 이야기한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럼 애초에 왜 그런 정치문화 풍토가 생겼을까요?


주: 저도 평생 화두로 삼아 고민 중입니다만, 아무래도 한국도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원래는, 그러니까 한국전쟁 전까지만 하더라도, 정치라 하는 것은 어떤 이상의 실현, 어떤 이념의 현실화, 뭐 그런 거였겠지요. 그러니까 대중들이 정치에 대해서 최소한의 존경심을 가지고 그 정치한다는 한량들에 대해서 나하고 생각이 같고 이상과 꿈이 같으면 지지도 하고 참여도 하고 이랬던 거 같은데, 한국 전쟁 이후에는 이제 그런 개념의 정치는 완전히 없어져버렸어요.


그러니까 이제 정치라는 게 뭐냐, 가문의 영광을 위하여, 개인의 영달을 위하여, 명예욕과 권력욕의 추구가 되고 그래서 또 비아냥거리고 비웃고 욕하는 대상이 된 거 아닌가. 그러니 정치라는 게 공공의 이익과 사회적 이상과 목적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고 개인 권력욕 명예욕의 추구로 되다 보니까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대해서 비웃는 것이 예사로 된, 그것이 한국의 정치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논: 그런 걸로 보면 한국전쟁 전이 아니라 구한말 같은 경우에 부정부패가 굉장히 만연했고, 위정자들이 굉장히 무능했고, 또 입신양명이라고 하는 유교적, 이른바 출세지향주의적인 토양도 한편으로는 돼 있고, 그런 거 아닙니까?


주: 글쎄, 거기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근데 어쨌건 식민지 시대를 거치고 독립운동을 거치면서 그래도 해방 직후에는 좌든 우든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이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니 민중이 정치가에 대해서 기본적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좌든 우든 말이죠. 최근에 읽고 있는 역사책을 보면 제헌 국회, 2대 국회만 해도요, 이게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식으로 돈 많은 놈이 돈 뿌려가지고 하는 이런 식이 아니었더라고요, 보니까. 처음에 어떤 독립운동 시절의 명망이 있는 분들, 이런 분들이 주로 국회의원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제 한국전쟁 전 상황은 그런 게 있죠.


논: 나름대로 정치의 본령인 이상이나 이념을 추구하는 정치가 있었다...


주: 즉 다시 말해서... 사상과 정치가 분리가 안 돼 있었다 이 말입니다. 지금은요, 사람들이 정치, 하면 사상하고는 상관이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논: 이권하고 관련 있다고...


주: 그렇죠, 정치는 개인의 영달, 출세욕, 명예욕에 결부되어 있다고 생각하고요, 이상, 사상 가진 사람은 무슨 학자를 하거나 최소한 시민운동 정도까지는 몰라도, 정치는 아니라고 본다는 거죠. 운동하고 정치는 다르잖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래서 자네같이 고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정치를 하려고 그러나, 이렇게 묻는 식인거죠. 이럴 때 어떻게 답변을 해야 할지 몰라요...허허..


논: 그러니까 정치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상하고 지조가 있고 이런 사람들은 가는 곳이 아니다, 시궁창 같은 곳이다. 이런 정서가 바탕에 깔려있다는 거네요.
 

주: 그렇죠


신: 이번에 이명박 씨가 대통령이 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할 수가 있는 건가요? 이명박의 도덕성이나 이념 주장 같은 것은 아무 관계 없이 묻지마 지지로 귀결되었는데요. 이미 정치에 대해 그런 기대심리가 전혀 없기 때문에 그런 지지가 가능하다 이런 해석으로 연결되는 건가요?


주: 근데 우리나라 국민들을 생각하면, 굉장히 이중적이거든요. 그러니까 정치에 대해서 그토록 혐오하고 경멸하고 비웃으면서도, 그것이 자기들 생활에 굉장히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굉장히 실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국민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말씀하신 맥락이 그렇게 되는 거겠죠. 아마도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편안하게, 도덕성 하고는 상관없이 또는 굉장히 실리적으로, 그러니까 어느 때는 박정희를 전두환을 지지했다가, 또 발로 차 내버리고, 또 김영삼 김대중을 지지했다가, 뭐랄까, 이기적이라고 하면 말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좀 굉장히 실리적인 그런 행태를 보이는 거 같아요, 한국 사람들이.


논: 정치를 그런 실리적인 면으로 사고한다면, 서민들의 복지 혜택 등을 중심에 두고 판단할 수도 있고, 그렇게 보면 진보정당에 대해서도 실리적으로 판단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정당정치의 본류로 자연스럽게 찾아갈 수도 있을텐데...


주: 그러니까 우리가 보면 너무 단기적 이익에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닌가... 장기적 이익을 이야기하는 그게 곧 사상과 결부되는 영역이잖아요.


신: 그렇다면 보수정당은 단기적 이익이라도 서민들에게 어느 정도 가져다 줄 수 있나요?


논: 가령 경상도 사람들이 한나라당 지지하면 우리 지역은 얘네들이 키워주겠지, 지금 이명박이 대운하라든지 경제 살리기가 성장을 지금 바로 시켜주면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겠지...  이런 식의 단기 실리에 민감하다 이런 이야깁니까?


주: 허허... 내가 깊이 연구를 안 해서 잘 모르겠지만 한국 정치의 특성을 설명하다가 이렇게까지 왔는데, 예를 들어 경기 부양을 한다든가 해서 떡고물이라도 좀 떨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을까, 그런 것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겠죠. 공화당시절, 전두환 시절을 경과하면서 극빈국에서 경제성장이 엄청나게 이루어졌고, 그 과정에서 서민들도 생활수준이 높아졌던.. 그런 경험의 원형이 대중들에게 깊이 남아있는 거겠죠. 그것보다 더 근원적인 것이 있습니다.


한국은 세계사적으로 잘 볼 수 없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토지개혁'이에요. 한국은 건국 당시 소농의 나라로 출발을 한 거에요. 전 국민이 조그만 땅뙈기들을 다 나누어가진 거예요. 예를 들어 집값이 올라간다 땅값이 올라간다, 그래서 전 국민이 혜택을 받는 나라가 어디 있겠어요, 이 세상에. 지금은 60년이 지난 후에 토지소유도 많이 양극화 되었습니다만 그간의 경험으로 본다면, 옛날 그 잘살거나 못살거나 해도 시골에 조그만 땅뙈기를 다 갖고 있었던 겁니다. 그게 개발되면 버는 거에요. 그러니까 충청도나 경상도나 어디에, 우리 동네 무슨 공단이 들어선다, 개발한다, 이런 것에  그 지역민들이 다 기대를 관심을 갖는 겁니다. 나름대로 조금씩 다 나눠 가지고 있거든. 브라질이나 남미 필리핀 이런 데는요, 대개 대지주, 대토지 소유자와 토지 없는 농업노동자로 이루어져 있어요, 농촌 사회가. 한국은 토지개혁을, 우리 조봉암 선생이 주도를 했어요, 토지개혁을 해서 그래요. 그게 참... 그게 근원적으로 박정희 시절의 급속한 경제발전 혜택을 전 국민 골고루 볼 수 있었고요, 또 바로 그것 때문에 급속한 성장 자체가 가능했어요.


논: 그것 때문에 경제 발전이...


주: 그렇지, 조그만 토지들 나눠주고 나니까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요, 새벽부터 밤까지 그 조그만 땅뙈기에서 열심히 일해서 자식들 먹이고, 소 두어 마리 길러가지고 대학을 보내는 겁니다, 아들은, 큰아들은 반드시 보내지. 그 에너지가 대한민국을 이렇게 만든 근본적 원천이라고 볼 수 있겠죠. 뭐 박정희 리더십이 대단한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논: 그렇다면 진보정당이 안 된다는 회의감을 느끼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주: 내가 그거를 느끼게 된 거는요, 대중정당 하기 전부터 느꼈어요. 대중정당 하기 전 십 수년 이상을 저는 맑스-레닌주의자로써 살았잖아요. 맑스-레닌주의, 이 '진리'를 선전해가지고 사람들이 '어, 맞네!'하고 동조자들이 마구 늘어날 줄 알았어요. 이렇게 '좋은 생각', '사상', '훌륭한 이념'을 막 듣자마자 노동자들이 그럴 줄 알았어요. 근데 안 하더란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사상', '주의' 이런 게 잘 장사가 안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자꾸 고민을 한 거죠.


논: 오래 전부터 회의주의자가 되었군요.


주: 아니, 그래서 이제 '장사'하는 방법을 바꾸게 된 거죠. 이제 한국에서는 사상은 장사가 안 되는구나, 그래서 보
니까 사상을 안 팔고 진보정당을 만든 나라가 있더라구요, 영국노동당이 그렇더라구요. 영국에서도 사회주의가 인기가 없었어요, 사회주의가 도대체 '장사'가 안 되는 나라였어요.


논: 실용주의가 바탕이 된 나라라...


주: 글쎄요, 왠지 모르겠는데, 영국은 노동자들이 사회주의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래서 거기선 사회당이나 사회민주당을 만든 게 아니라 노동당을 만들었잖아요. 그런 방법으로 진보정당을 만들려고 한 게 92년부터, 16년 된 거죠. 의식적으로 영국노동당을 모델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지나고 보면 제가 하고자 했던 것이 영국노동당의 길이었던 것 같습니다.


논: 민주노총을 기반으로 한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성장 전략이 그런 것과 연관되어 있군요.


주: 그렇죠. 97년에 권영길 당시 민주노총 초대위원장이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면서...


논: 그때는 국민승리21이었죠?


주: 네.. 그렇죠. 그 양반이 어떻게 보면 노동운동의 분위기는 전혀 성숙되지 아니했을 때 본인이 대선 출마를 결단해서, 한 동안 맥이 끊어졌던 진보정당을 다시 시작을 했죠. 얼마 전 한겨레 신문에 단병호 위원장도 얘기했잖아요. 당신 스스로 이야기하길 4시간 동안 말렸다고, 4시간 동안 이야기했는데도, 묵묵히 듣고만 있으니까 자기가 지쳐가지고 그럼 출마하시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그만큼 그 길의 시작도 순탄치 못했죠.


논: 그러면은 그 당시 심상정 의원도 단병호 의원과 비슷한...


주: 그렇죠, 시기상조론자.


논: 시기상조론자로서 대선이라든지 진보정당 이런 일에 조금 소극적이었다...


주: 그렇죠,


논: 그런 분이 민노당의 간판급 대표 주자로써 떠올라 있으니 감회가 새롭겠습니다.


주: 세상 일이 원래 그렇죠.


논: 그 분들이 평등파라고 불리우는 민주노총의 중앙파-전진파 이런 계파의 대표적인 사람들이죠?


주: 일반적으로 그렇게들 얘기하죠.



논: 그렇다면 당시에 민주노총에서 초대 위원장이 권영길씨였는데, 그 권영길씨가 진보정당을 창당하는 것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었고, 나머지 사람들, 특히 그 당시에 이른바 중앙파라고 하는, 지금 평등파의 주 원류,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소극적이었다는 거네요?


주: 국민파든 중앙파든 다 노동조합주의자들이죠. 그런데 상대적으로 어떻게 보면 국민파'가 덜 조합주의적이죠, 왜냐하면, '국민파'라는 이름이 왜 붙었습니까? '국민과 함께 가는 노동운동'이라는 슬로건에서 붙여진 거 아닙니까? '국민'을 의식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좀 덜 조합주의적인 노선으로 갈 수 있는 거죠.


논: 민주노총의 계파를 분류하면 크게 '국민파'와 '중앙파'로 대별된다고 하는데, 그 두 계파의 차이는 노선상 어떤 점에 있는 겁니까?


주: 대체로 강경 노선(중앙파)-온건 노선(국민파)로 대별되는 듯 합니다만, 뭐 딱히 어떤 분명한 이념을 두고 다투는 분파는 아닙니다. 다만 민주노총 초기 중앙 집행부를 강경 노선 쪽이 장악을 하고 있어서 '중앙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고, 그들 강경노선에 대한 반발 세력이 국민파로 이름 붙여지는 셈인데, 그러니까 통상 이념적 분파와는 거리가 있는 것인데요. 지금은 소수파(중앙파)-다수파(국민파)같은 개념 정도로 생각해도 되겠네요.
 

논: 대체로 보면, 민주노총의 중앙파는 민노당의 평등파(PD)와 친화력을 갖고 있고, 반대로 국민파는 NL 세력들과 연합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대환 씨의 경우에는 당 내에서 NL-주사파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비판적이신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이하게 국민파에 더 친화력을 갖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주: 예, 어찌된 인연인지 저는 줄곧 국민파와 함께 민주노동당을 해왔습니다.


논: 민노당이 정파연합당이라고도 불리우지 않습니까? 처음 창당할 때부터 그랬나요?


주: 지금 같은 정파 갈등은 당시에는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2000년 1월에 창당하고 그 해 4월에 총선을 치루었습니다. 지역구 출마자는 21명이고요. 총선 직후부터 사실 민노당의 창당과정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갔죠. 2004년도까지...그때 123명 출마했으니까 그 사이에 많이 조직이 갖추어졌다고 봐야죠. 그런데 바로 그 과정에서 NL-PD 운동권들이 막 들어온거죠. 민주노총 조합원만으로 당을 만들었다면 그렇게 빨리 지구당 조직이 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어쨌든 그런 지구당 조직들은 주로는 운동권 NL-PD가 하게 됩니다. 당원들의 절반은 노동자들이 점하고 있지만, 그들은 당비만 내고 당 활동에 적극 참여를 잘 안하죠. 그러니까 이게 이원화가 되었습니다. 당의 주인이 노동자들인데, 그들이 주인 노릇을 해야 하는데, 머슴들-운동권들이 당의 주인 노릇을 하게 된 겁니다.


논: 근데 2004년도에 원내 진출에 성공을 하고 그 직후에 당직 선거가 있지 않았습니까? 그 때 정책위의장으로 당선되시고 중앙당에 근무하시게 되었는데, 그때 민노당의 고질적인 문제인 ‘정파 갈등’을 많이 느끼셨습니까?


주: 아주 그냥, 아주 아주 심.심.심.심하게 느꼈죠!


논: 하하.. 아주 심하게 느끼셨나 보군요. 그 전까지는 마산 지구당 위원장으로 있었죠? 지역위원장으로 지구당... 그러다가 올라와 보니까 생각보다 심각하더란 얘기죠?
 

주: 뭐 지역에서도 느꼈지만 이제 그런 정도는 비교할 수가 없었겠죠. 왜냐면 지역은 뭐 내가 지구당 위원장하고 있으니까 대충 뭐… 그런데 중앙에 오니까 소수파가 됐으니까요. 2004년부터 소수파가 된 거죠.


논: 당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기관이 최고위원회인가요?


주: 13명의 최고위원회...


논: 그럼 그 속에서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주: 국민파가 한 5명, NL-주사파가 5명, PD파가 2명, 사민주의자는 나 단 한 명... 이런 식으로 분포되었네요.


논: 그럼 그 당시 당의 노선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노선 대립을 많이 겪었습니까?


주: 노선 대립 이전에 상식(=국민의 상식)과 비상식(=운동권의 상식)의 충돌이 당선 첫날 회의 때부터 있었습니다.


논: 누가 상식이고 누가 비상식입니까?


주: 제가 볼 땐, NL이고 PD고 간에 당시 운동권 계파 모두가 비상식이었어요. 13명입니까? 12명 모두가 비상식적
인 운영 방식을 고집하더라고.


논: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주: 쉽게 말하면은 '정당법대로' 당 운영을 안 한다는 거야. 국민의 세금으로 국고보조금을 받잖아요.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이 국고보조금은 받으면서 정당법대로 안 하는 거야.


논: 그 정당법이라는 것이 지구당을 폐지하는 것이 골자인 세칭 오세훈 법이죠?


주: 그렇죠. 돈 잡아먹는 하마인 지구당을 폐지하자는 것은 정치개혁 차원에서 이루어졌어요. 한 달에 예사로 수천 만 원 깨지는 지구당을 운영하게 되면, 그 운영비 마련을 위해 정치인들이 음성적으로 정치자금을 받을 수밖에 없고 그래서 정치 부패의 근원으로 지목된 거 아닙니까? 때문에 국민적 지지도 받은 거고요. 민노당 입장에서 보아도 그것이 또 불리한 법도 아니에요. 저도 지구당 사무실을 수년간 운영해봤지만 말이죠.


그런데 그걸 ‘악법’으로 규정하고 불복종 운동을 한다는 발상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사업비로 써야할 재정을 200개 가까운 지구당에 편법으로 지원하고 그러다보니 중앙당과 광역 시도당의 사업비가 만성적으로 부족하고, 중앙당의 전문 인력의 인건비가 턱없이 낮게 책정되어 이직이 속출하고 그 마저도 제때 지급조차 못하게 됩니다.


정당법상 유급 사무원은 중앙당 100명, 광역시도당 100명, 이렇게 200명을 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한나라당같은 거대 정당도 200명인데, 의원 10명의 민노당은 얼마인 줄 아십니까? 지구당 사무국장들의 월급까지 책임지면서 400명의 유급사무원을 두고 있는 셈입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이러다보니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정당이 되어버렸어요. 이런 상식 밖의 운영에는 좌파다 우파다, NL이다 PD다 하는 것도 다 나발 부는 소리입니다. 모두가 한 패거리인 셈이죠.


제가 정책위의장으로 한 일이 뭔지 아세요? 그 40명이 넘는 정책연구원들한테 일을 시키고, 닦달하고, '야 니들 법안 언제까지 만든다더만 왜 아직 안 된거야, 만든 자료 갖고 와봐' 이래야 되는데, 저가 한 일이 주로 노동조합 위원장이나 할 일. 본인들이 뭔가 일은 해 놓았는데 사업비는 안 나와 있고, 본인 카드 긁어가지고 어떻게 뭘 했다는 하소연 들어주고,  저녁 되면 아 이 짓은 못해먹겠다, 월급이 처음에 채용할 때의 약속과 다르다. 결혼한 사람들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 이런 하소연을 소주 한 잔 먹으며 '석 달만 참아줘' 하면서 달래고...


논: 그들이 지구당 폐지를 반대하는 데는 '지역 정치'를 해야 한다는 당위를 내세우고 있잖습니까? 또 중앙당 상근자와 지역 상근자를 왜 차별 두느냐는 '평등' 원칙을 주장할 수도 있지 않나요?


주: 지역 정치 4년 동안 잘 했으면 지금 민주노동당이 이 꼬라지에요? 그러니까 활동비 좀 주고 말고는 상관 없는... 오히려 주면 어떤 사람들이 지구당 사무국장으로 오느냐 하면은 그 지역하고 아무 상관없는 운동권, 지역에 가 보면은 30대 후반은 PD, 30대 초반은 NL, 운동권들 이런 사람들이 옵니다. 근데 다른 보수 정당들의 당원협의회 사무국장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 지역에 뿌리 박고 있는 마당발들 영입하겠죠, 형님, 절 도와주세요 이러면서요. 그들은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동네 다니면 전부 형님 아우인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당원협의회 사무국장하지. 근데 우리당 사무국장들은요 지역 사회에서 아무도 몰라요. 그러니 민중연대, 진보연대, 통일연대, 집회 깃발 들고 나가고 그거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유급사무원과 자원 활동가로 구별해야 해요. 자원 활동가는 다른 당도 다 많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사람들, 유급사무원은 4대 보험 들어주고 월급도 어느 정도 시장 가격의 60-70%라도 맞춰주고, 노동3권 보장해 주고... 말하자면 전문직을 채용하는 거지, 대신에 정파에 가입 금지하고, 그럼 당의 관리 시스템이 구축될 거 아닙니까. 어떤 조직이든지 인력과 돈이라는 자원을 제대로 쓰지 않고서 성공할 수 있는 조직이 어디 있겠어요. 한정된 돈, 한정된 인력, 이것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지.


논: 음...그렇다면 이런 현실에 대해 국회의원들이나 당의 책임있는 인사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않았나요?


주: 그들 자체가 정파의 눈치를 보는 사람들인데 뭘 기대하겠습니까? 나는 국고보조금을 받는, 원내 진출한 합법 정당에서 정당법대로 운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당은요, 중앙위원회 열어가지고 그 때 개정 정당법 반대한다, 지구당 폐지 반대한다, 저항운동 한다 이렇게, 불복종 운동으로 결의했어요. 그러니까 12명은 그 당론에 따른 입장이었고요, 나는 당론이고 뭐고는 모르겠지만 이건 아니다, 상식이 아니다 이렇게 주장했지만 12명이 나한테 설득 당할 리가 없지.


논: 그러면 현재 민노당의 위기나 붕괴가 정파갈등이나 그런 것보다 심층적으로 이런 배경이 있네요?


주: 그렇죠, 그렇죠. 원내 진입 이후 4년이 지난 오늘 당의 부채가 60억입니다. 60억. 이렇게 된 것에는 NL이다 PD다 하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논: 만약 과실 비율로 따지고 본다면, 현재의 당 위기에 대한 책임 비율은 그 두 정파 중에 어디에 더 있다고 봅니까?


주: 제가 볼 땐 5 : 5입니다. 지금 말씀드린 지구당 폐지 반대 투쟁은 이른바 PD 쪽이 훨씬 더 적극적이었고요, 당직공직 겸직 금지라는 초유의 제도도 PD 들의 발상에 비롯되었어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친북노선으로 당을 끌고간 것은 NL 주사파들이었던거고요.


논: 근데 원내 진출 이후, 당권은 주사파-국민파가 지금까지 장악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현 당의 위기에 대해 NL 계열의 책임을 묻는 것이 당내외의 여론인데요.


주: 근본적으로 보면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절반이 민주노총 조합원들인데요, 그들의 대부분은 NL, PD가 뭔지 잘 몰라요. 그러다가 이야기했듯이 운동권들이 들어와서 운동권들이 당을 장악하면서 머슴들이 주인 노릇을 한 거죠.


논: NL이라든지 PD 이런 걸 떠나서 일단 운동권들이 당을 전반적으로 운영관리를 하면서...


주: 그게 문제라는 거죠.


논: 당을 말아먹었다?


주: 민주노총이 대 주주로써 주인 노릇 제대로 안 하고, 경영의 전략도 없이 그냥 투자만 한 거야. 실제 투자액 다 합치면 일 년에 민주노동당 조합원이 내는 당비하고 그 세액공제 후원금하고요 합치면요, 아마 이번에 대통령선거 나온, 돈 많은 문국현이 쓴 만큼 일년에 낼 걸요? 민주노총 조합원이 내는 당비와 후원금을 합치면요. 그렇게 많은 돈을 내요, 투자해요. 그런데 경영전략이 없어. 그래서 NL, PD 막 싸우고 있는데...


논: 그렇다면 주 선생님 보시기에 이른바 PD나 NL나 다 당을 말아 먹는 데는 거의 동일한...


주: 그럼요, 2004년 전까지는 PD가 당권을 잡고 있었고, 2004년 이후에 NL이 잡았는데요, PD나 NL이나 그 과오를 다 이야길 하자면 거의 비슷하죠.


논: 네. 그럼 이제 화제를 돌려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얘기를 나누어 보도록 하죠. 이번 대선에서 당내 경선 때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셨죠?


주: 네. 그렇습니다.


논: 세간의 평가로 본다면 권영길은 주사파나 NL들이 전면적으로 내세운 후보라고 합니다. 물론 권영길은 NL이 아니지만 주사파들의 노선이 잘못된 줄 알면서도 그렇게 따라가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았나 그런 비판들이 굉장히 많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로 본다면은 권영길에 비해서 좀 더 스마트해 보이는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됐다면...


주: 그 대목이 제일 나로서는 괴로운 대목인데, 권영길 대표가 NL이 아닌데, 분명히 아닌데... 왜 그런 말들을 하고,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저로서도 알 수가 없어요. 나는 진짜 그 대목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해야 될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 12월 19일 이후에 내가 권영길 대표하고 두 번 통화를 했지만 나는 정말 모르겠어요, 차마 면전에 대고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왜 그랬는지, 난 절대 안 그럴 거라고 생각했거든.


신: 정파지지 문제를 떠나서라도 대중적으로 볼 때 심상정씨라든가 노회찬씨에 비해서 권영길씨는 삼수잖아요, 약간 노쇠한 이미지가 있고, 특히 진보정당이라면 새로운 사고로써 신선한 이미지를 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이게 무슨 이인제나 이회창처럼 조롱이나 비난을  받는 그런 측면도 없지 않아 있거든요. 진보정당에서 인물이 그렇게 없냐, 그런 측면에서 자세한 내막은 모르더라도 후보 자체 때문에 선거 결과가 참패로 나온 그런 측면도 있다고 보거든요.


주: 근데 삼수냐 사수냐 이런 문제는.. 글쎄요. 국민들이 이런 거죠, 싫으면 핑계를, 쉬운 핑계를 대는 거죠. '에이 그 친구는 얼굴도 시커멓고, 표정도 어둡고...' 이런 식으로 하듯이, 쉽게 삼수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일반 국민들은 삼수인줄 잘 몰라요, 97년도 처음에 나왔을 때는 텔레비전도 못 나왔구요, 2002년도 대선에 나왔는데, 삼수냐 사수냐 지식인들 사이에서 나온 이야기라 생각하는 데요, 굉장히 중요한 것은 삼수든 사수든 활기차고 뭔가 파격적인 모습을 또 보여줬으면 그런 말이 안 나왔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근데 그런 모습을 못 보여준 거죠. 문제는 거기에 있는 거죠, 예를 들어 일심회 사건 이런 것도 거쳤기 때문에 당의 이미지가 이렇게 친북으로 오해를 받고 있잖아. 그래서 질문을 받으면 명쾌하게 잘라서 '국민 여러분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그러나 우리 당은 조선노동당 2중대가 아니다, 북한의 국가체제 문제가 많다, 북한 체제는 가혹한 비판을 받아야 된다' 하면서 조선로동당 2중대스런 이미지를 과감하게 떨쳐냈어야 되는데 그런 것조차 못 한거죠. 전 그렇게 할 거라 믿었어요.


논: 그런 믿음 때문에 권영길 씨를 지지했던 겁니까?
 


주: 뭐 꼭 그거야... 셋 다 그건 비슷했고, 셋 다 누가 후보로 나왔어도 중간에 국민들로부터 그 요구를 받을 거고, 후보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 자기가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서 당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는 게 생리죠. 그런 면에서도 할 거라고 봤죠, 셋 다 누가 나오더라도 할 거라고 봤죠.


논: 그러면 근본적으로 본다면 권영길 씨를 지지하게 된 이유는 뭡니까?


주: 그건 민주노총 집행부가 지지했으니까요. 돈 대고 몸 대고 조직 댄 민주노총 집행부가 이미 권영길 씨를...


논: 그러니까 영국노동당의 길이라고 하는 애초의 노선에 가장 충실해서...?


주: 15년, 16년 동안 나는 오직 그 길로만 왔어요.


논: 그걸 놓고 보면은 권영길 지지는 새삼스러운 건 아니네요.


주: 16년 동안 나는 민주노총 집행부가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노동당의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논: 민주노총 같은 경우에 지금 보면은 국민파와 중앙파라고 이렇게 둘이 나눠져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런 정파적 시각으로 보면은 국민파가 지지한 후보다, 이렇게 또 생각할 수 있지 않습니까, 민주노총 안에서도 중앙파들은 노회찬이나 심상정을 지지했잖습니까?
 
 

주: 소수파가 아니라 다수파, 집행부를 장악하고 있는 다수파가 그게 민주노총 조합원의 다수의 의견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요. 소수의견을 우리가 따를 수 없잖아요, 그렇잖아요, 그럼 그 소수의견, 다수의견 따로따로 당에 전달되다 보면 당이 이제 쪼개지는 거죠.


논: 만약 다수파가 심상정이나, 노회찬을 지지했더라면 그대로 따랐겠네요?


주: 당연하죠.


신: 영국노동당을 모델로 삼는다고 하지만 지금 사실 민주노총도 과거의 이미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정규직 귀족
노동자 이익집단이라는 비판도 거세고요. 그런 가치지향으로 생각해서 현재의 민주노총이 그렇게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들을 그대로 추수하는 것도 좀 문제가 있을 거 같은데요.


주: 그러니까 이런 거죠. 한국 노동운동, 특히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운동의 문제를 몰라서가 아니고, 그것을 바꾸어나가고 발전시켜 나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거죠. 텔레비전에 나오는 노동자 투쟁 화면, 외국 노동자들 보면 깜짝 놀라요, 한국 노동운동 저렇게 엄청나나하고 한 번 놀라죠. 거리에서 막 과격한 투쟁을 하는데 알고 보니까 목적이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몸을 막 불사르는 게 아니고요, 딱 저거 회사 월급 때문에 막 몸을 불사르는, 놀래버리는 거지 또 한 번. 한국 노동자들이 20년을 그래 왔거든, 87년부터. 그러니까 지금 오늘날의 민주노총의 모습은 그 20년의 노동운동의 결과죠. 그게 갑자기 그렇게 된 게 아니에요. 다시 말씀드리면 대기업 정규직 이기주의같은거 그게 어제 오늘 갑자기 생겨난 게 아닙니다. 전두환 시절이라 하더라도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특별한 투쟁을 했던 것도 아니고요. 그 때부터 그 뿌리가 그렇게 된 거죠. 이런 노동운동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려면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래서 그에 따른 욕은 먹어가면서, 민주노총당이라는 말을 감수해 가면서 갈 수밖에 없어요. 노동당은. 다만 조선로동당 2중대란 말은 우리가 들어서는 안 된다...


논: 민주노총당이라고 하는 그런 욕은 감수해 가면서도?


주: 감수해가면서, 왜, 그건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니까. 민주노총의 노동운동,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이기주의라는 것을 변화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민주노총 안에서 그런 변화가 이제 생겨나고 있어요, 왜냐면 정규직 노동자들의 조합비를 걷어 그 사업비를 가지고 비정규직 노동자를 위한 사업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점차 점차 그런 방향으로 우리가 계속 교류하고 해서 노동자들의 계급의식, 말하자면, 좁은 직장의, 좁은 우리만이 아니라 넓은 노동자 계급의 이익을 위한 노동운동을 해야 된다, 이걸 계속하고 있거든요. 이건 시간이 걸리는 문제니까, 지금의 한계 속에서나마 산별 노조나 또는 기업별 단위노조하고는 다른  총연맹의 입장에서 끊임없는 교육 같은 걸 통해서, 이념을 가지고 계속 업그레이드시켜 나가는 거니까요.


논: 최근 들어서 일부 평등파들을 중심으로 분당론이 당 안팎으로 거셉니다. 당내의 주사파들과는 도저히 같이 못하겠다는 주장인데요. 주 선생님 입장은 어떻습니까?


주: 난 분당은 반대... 아니, 분당을 할 때 하더라도, 먼저 세게 붙어야지...


논: 아! 세게 붙어야 된다?


주: 당 노선을 바로 잡기 위한 투쟁을 한 번도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갑자기 이혼선언을 해버리니까 노동자들은 좀 어리둥절합니다. 맨날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부인이 갑자기 이혼 해! 이러는 거지, 동네사람들이 너 왜 이혼하자는데, 한판 붙어야지 남편하고, 폭력 남편하고 붙어야지, 왜 문제가 되는지 다 알고 동네사람들이 '야, 너희들 도저히 안 되겠다 이혼해라' 할 때까지 가야 되는 거에요. 지금 분당론자들은 지금 사실상 탈당을 하겠다는 거거든요. 이건 뭐 미리 포기하는 패배주의잖아요.


논: 당직 선거라든지 비례의원 선거라든지 이런 데 있어서 계속 패배해 왔잖아요.


주: 패배를 왜 했는데, 왜 했습니까? 


논: 다수파가, 머리수가 더 많아서 그런 거 아닙니까?


주: 노동자들이 그들 PD파를 안 도와줬지, 그들 편이 아니었거든. 굳이 이야기하면 민주노총 집행부 국민파 이쪽이 NL편에 손을 들었잖아요. 실제 NL친구들이 대중사업적인 면에서 보면 훨씬 합리적이에요. 실제 아주 구체적 실천적 문제에서 현실적이에요. 자기들의 어떤 종교, 신앙은 감춰놓으면서 말이죠. 반면에 PD친구들은 지들이 진리를 독점하고 있다 보니까 세상 상식을 무시하고...


논: 그러면 지금 보면 홍세화, 조승수 또는 손호철이나 진중권 씨 등 당 안팎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 얘기도 이미 임계점에 왔다. 싸워봐야 어차피 화해가, 봉합될 수도 없는 거고, 이럴 바에야 빨리 나가서 새 살림 차리는 게 낫다, 이런 얘기들로 분당을 부추기지 않습니까?


주: 그렇지 그런 얘기까지 포함해서 모두를, 이제 지금까지 숨겨놨던, 덮어놨던, 그 문제들...


논: 친북 문제 같은 것...


주: 그렇죠. 그것을 드러내서 이제 한 판 붙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