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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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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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에 해당되는 글 19건

  1. 2008/09/12
    이 시점에서 ‘안티조선’ 담론의 실천적 효용성에 대해 (3)
  2. 2008/05/31
    거리시위와 통합의 제의 (16)
  3. 2008/04/12
    두 개의 대체역사소설 (8)
  4. 2008/01/17
    지역주의 뒤집어보기
  5. 2007/10/24
    김순덕 칼럼과 장하준 (30)
  6. 2007/05/28
    홍준표의 선택과 김근태의 선택 (9)
  7. 2003/09/29
    강준만 교수의 '상대성 원리'에 대하여
  8. 2003/08/08
    한국 보수주의의 위기, 그리고 '현실성'
  9. 2003/07/16
    험난한 보수의 길
  10. 2003/06/29
    "2만불 시대" 보론.

진보신당 당원게시판 쟁점과 토론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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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주대환 논쟁”과 관련해서 매체의 문제가 중요한 논점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김수민이 주대환과 최병천을 비판하면서 ‘안티조선’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었다. 이전에도 얘기했듯이 나야 언론문제에 있어서는 주대환 최병천보다야 김수민과 생각이 가깝다. 언론학자 강준만으로부터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은 1)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가 되었다는 사실 2) 게다가 한국의 언론, 특히 조선일보는 대단히 정략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 결과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행위는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타당한 결론을 도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소리이지만 당시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언론은 도구일 뿐이라는 관점이 우세해서 좌파지식인들도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일이 빈번했고 민주당 지지자나 민주노동당 지지자도 조선일보를 구독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런 일을 하면 나이브하다고 욕을 쳐먹는다. 언론문제를 독립적인 성격의 문제로, 분석의 대상으로 격상시킨 것이 (초기) 안티조선 운동의 지대한 공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론문제를 분석하는 관점에서, 혹은 언론운동을 실천하는 관점에서, 여전히 안티조선이라는 프레임은 유의미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답이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김수민의 주대환-최병천 비판이 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너무 단순한 대답을 도출해낸 상황에서 이루어진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안티조선 운동의 정당성이 확립이 되던 시기인 2001년으로 돌아가보자. 그 시기로 돌아가서 이번 논쟁의 주인공인 주대환과 관련이 있었던 사건을 추려내보자. 사실 주대환과 안티조선 운동의 악연(?)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다. 어느날 민주노동당의 운동가 박용진은 감옥에서 심심하게 지내다가 강준만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읽었다. 그리고 읽고 졸라 빡이 돌아서 민주노동당의 월간지 <이론과 실천>에 피토하는 심정의 규탄문을 썼다. “비판적 지지론자 이 개객기야!!!!” 그러자 이 세상의 모든 잡지를 구독하는 강준만이 그 외침을 듣고 다음달에 반론을...아니 달래는 글을 썼다. “제 책은 민주당 지지자들 보라고 쓴 겁니당. 민노당 분들 열받지 마세요.” 근데 달래기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천하의 강준만이다보니 대충 이런 말이 나왔다. “근데 님의 글에 6개의 오류가 숨어 있네요. 첫째는 어쩌구 둘째는 어쩌구...” 그냥 좌파 내부의 비지론자들 단속하려고 고함친 죄밖에 없는 박용진이 머쓱해질 타이밍에 이론과 실천 편집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주대환이 출동하면 어떨까?” 그리하여 주대환-강준만 논쟁이 시작되었다.



링 위에 올라온 주대환은 매우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실패했는데 무슨 또 비지론이냐고 흥분한 박용진을 달래기 위해 “김대중 정부 실패했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에게 실패인 것이 그들에게는 성공이다.”라고 말했다. “양극화는 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개혁이 성공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하준 정승일이 들으면 좋아할만한 얘기였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아예 갈 길이 다르다는 선언이었다. “노무현은 미국으로 가자는 거고, 권영길은 유럽으로 가자는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극우 헤게모니? 그거 이미 깨졌는데 뭘 그래.”라고 주장해서 여러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이에 대해 강준만은 “극우 헤게모니가 깨지긴 왜 깨졌어요. 저기 눈앞에 보이는구만. 그리고 아무튼 노무현은 좀 짱인 것 같다능.”이란 식으로 대답했고 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지라 논쟁은 그쯤에서 끝났다.



매체에서 벌어진 이 논쟁은 인터넷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키보드워리어’라는 말은 생기지 않았지만 키보드워리어 1세대쯤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안티조선 우리모두라는 사이트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말하자면 프로토스의 고향은 아이우, 키워의 고향은 우리모두... 이건 좀 아니고, 여하간 2001년이라면 PC통신의 ‘논객’들이 안티조선 우리모두로 흘러들어와 서로 잘난척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고, 대략 2002년부터 이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거나 들어도 잘 모르는 여러 종류의 키보드워리어의 서식지들을 만들게 된다. 



주대환-강준만 논쟁이 인터넷판으로도 전해지자 김동렬 등을 위시로한 친민주당 or 노무현 성향 키워들이 아예 민주노동당 노선을 밟아버리려고 규탄을 하면서... “민주노동당의 강준만 죽이기”를 막고 있다고 외쳤다. ‘극우 헤게모니’가 없다고 해버렸으니 안티조선 운동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현실 모르는 소리로 비쳤겠는가. 이에 맞서 좌파 쪽에는 주대환을 옹호하기도 하고 아니면 주대환이 좀 성근 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민주노동당은 짱이라능이라고 답변하기도 하는 식이었는데 가만히 싸움 구경을 하던 나는 불현 듯 이렇게 외쳤다. “그, 그러니까...전선이 두 개라능! 왜 두 개냐믄...이렇게 피터지게 싸우는거 보니 하나는 아닌 거 같고....그냥 두 개면 되잖냐능!!” 그 글을 쓴 심정은 대충 이랬지만 실은 졸라 길고 재미없는 글이었다. 훗날 최병천은 2002년 대선국면에서 이걸 들고 가 당시까진 아직 노빠였지만 나중에 ‘반-진중권 좌파연대’의 수장이 되는 전설적인 키워 수군작에게 “이게 아흐리만이란 아해가 쓴 ‘두 개의 전선론’이라는 건데요~”라고 말했지만, 수본좌께서는 “그건 뇌의 착각이며, 비겁한 변명에 불과해. 좌빨은 두 개 세 개 이런 거 모린다...좌빨은 모노닷!!”이라고 반응하여 (비록 본질은 겉은 빨갛고 속은 노란 사과에 불과했지만) 그의 포스를 증명하시기도 했다.



여하간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극우 헤게모니’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안티조선 운동이나 소위 민주당 개혁파 노선의 유의미성을 강조하던 이들이 그때부터 수 년동안이나 심심할 때마다 읆조리던 단어다. 이 말은 강준만이 주대환과의 논쟁에서 사용했지만, 강준만이 만든 말은 아니다. 척봐도 강준만이 만들 어휘로 생기지는 않았다. 이 말을 21세기 한국사회의 어떤 모습을 지시하는 정치평론의 용어로 끌어온 건 홍세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때려치고 한국사회의 ‘전사’로 거듭나기 위해 귀국한 그는 귀국 일성으로 강준만이 만들던 월간 인물과 사상에 장문의 글을 기고한다. 그 글의 제목이 바로 (워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 극우 헤게모니와 조선일보의 진지전과 기동전”이었다. 이 좌파의 언어가 안티조선 운동 진영으로 흘러들어와 강준만이 그간 경험적으로 추적해 왔던 “조선일보만의 특수성”이란 테제를 이론적 언어로 지시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그 결과 강준만은 주대환과의 논쟁에서 자연스럽게 ‘극우 헤게모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왜 ‘극우 헤게모니’와 ‘진지전’과 ‘기동전’이란 단어가 필요했던가? 그것은 안티조선 운동을, 조선일보가 지지하는 한나라당을 정치적 경쟁자로 삼는 민주당 세력이 아닌, 좌파들에게도 의미있는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했다. 만일 어떤 이가 극우라면, 대충 이런 얘기들이 가능해진다. “유럽에서는 좌와 우가 힘을 합쳐 양극단을 몰아내더라... 좌파들이 자기 정치세력화를 위해 운동하는 건 또 따로 할 일이지만, 이들을 왕따시키는 데 힘을 보태는 것도 좌파가 마땅히 해야할 한 역할이 아니겠니?” 이게 이 논변에 대한 ‘약한 해석’이었고, (내가 만들었다는 ‘두개의 전선론’은 명백하게 이 ‘약한 해석’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십라 극우 헤게모니가 살아있는데 사치스럽게 좌파는 무슨 좌파! 얼른 노무현 짱 밑에 와서 깃발을 바치라능!!”이라고 좌파들을 욕하는 게 ‘강한 해석’이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약한 해석은 2002년 대선 국면이 닥치기 전에 폭넓게 수용이 되었다. 한편 강한 해석은 꾸준하게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이 좌파들한테 뭐라고 하면 좌파들은 또 “비판적 지지론자 개객기야!!”라고 반응을 하기도 하고... 약한 해석을 말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노빠 키워가 대선 때 상황이 급해지니까 갑자기 강한 해석으로 돌아서고.... 등등등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처럼 이 개념은 안티조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긴 했는데, 2001년 말부터 거세게 전개된 ‘노사모 운동’ (...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리라.)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지나칠 수 없는 개념이다. 비록 노사모의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한 노무현 지지자들이 직접적으로 이 단어를 언급하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자 이제 이 담론이 구체적으로 조선일보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말인즉슨 조선일보는 한국 사회의 ‘극우 헤게모니’를 유지시키기 위해 전략전술적 책동을 하는 그런 사악한 집단이다... 라는 얘기가 되겠다. 그런데 이 극우라는 개념은 한국사회에서는 반공주의나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란 소재와 연결될 수밖에 없어서, 주로 장기수들에 대한 사상전향서(김대중 정부에서 ‘준법서약서’로 바뀐 후 나중에 사라짐)의 문제나 국가보안법의 문제, 그리고 문민정부 이후로 언론들이 주도했던 공직자에 대한 ‘사상검증’ 등이 어떤 이가 ‘극우’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가장 중요한 판단의 잣대로 작용한 것은 맨 마지막 것이었다.



김영삼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가’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이후, 언론권력이 정부의 성향을 ‘통제’하는 기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사상검증이었다. 말하자면 김영삼이 뭔가 진보적이라고 알려져 있던 학자를 장관으로 만든다.... 그러면 월간조선이 “그 개객기 빨갱이야!!”라고 소리친다... 조선일보가 “빨갱이를 공직자로 임명하다니...” 그러면 다른 신문들이 그 말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하고 “빨갱이라고 소문난 이를 공직자로 임명하다니 엄훠 그런 경솔한...”이라고 하기도 해서 종국엔 인사에서 낙마하는... 그런 식이었다. 한모 장관, 김모 장관, 이모 장관 (이인제는 아니다.)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조선일보가 저 유명한 “최장집 사건”을 일으켰을 때... 세월이 좀 바뀌었는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월간조선이 선빵을 날리고 조선일보가 심혈을 기울여 지랄을 했는데도 다른 언론사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당시 중앙일보 권영빈 논설위원은 “뭐냐 이 메카시즘....졸 지겹거든?!”이라고 칼럼에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일보가 고립된 것이다.



이걸 보고 강준만이 “오케바리!!!! 딱이군!!!!!! 드디어 걸려들었어!!!!!!!!”이라며 조선일보를 신나게 맹비난해대다가...말지 정지환 기자와 함께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에게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고... 그걸 보고 분노한 홍세화가 한겨레에 “나도 고소하라능!”이라고 칼럼을 쓰고 어이를 상실한 진중권이 “낄낄. 이한우 학동 맛동산 사먹고 싶은가봐. 벌금은 네티즌들이 성금으로 모아서 주자고!”라며 인터넷에서 모금운동을 시작한 것이 소위 안티조선 운동이란 것의 우발적인(?) 시초다. 뭐 이런 식으로 잠깐의 시기 동안 좌파와 우파가 같이 모인 지식인운동이 하나 시작되었고 이것을 대중운동으로 확산시키려고 노력을 했던 것인데... 여기서 우리의 전설적인 홍세화짱의 정리는 이렇다.



“자자, 보라구!! ‘조선일보나 중앙 동아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지? 여기서 실천적으로 그게 아니라는게 드러나잖아? 뭐라고? 그건 그때 한번이고 지금은 별 차이없다고? 문화면에 좌파들 얘기도 잘 받아준다고? 에헤... 이 사람들 답답하네. 그러니까 설라무네 그때 저번이 ‘기동전’이었다면, 지금은 ‘진지전’을 하고 있는 거라능! 이렇게 진지전을 해서 평소에 부드러운 이미지로 지식인과 독자들을 속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영향력을 가지고 다시 기동전, 그러니까 빨갱이 사냥을 할거라능!!! 이제 정리되지? got it??"



......그렇게 조선일보는 나쁜놈이 되었던 것이다.    



홍세화의 논변은 당시의 구체적인 운동 정국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었다. 그렇게 기민하고 정확했던 분석의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그의 ‘진지전’과 ‘기동전’론을 “조선일보만의 특수성”을 위해 적용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조선일보는 그후에 홍세화가 말했던 의미의 ‘기동전’을 펼친 적이 없다......OTL



물론 조선일보는 노무현도 괴롭혔고... 요번에 촛불도 괴롭혔다... 그런데 그 논변...혹은 논변 수준에도 못 미치는 땡깡들이 다른 신문들과 비교해 ‘극우’라고 규정지을만한 어떤 특수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명백해져갔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두 가지 정도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조선일보의 ‘최장집 사건 학습효과’... 결국 최장집은 공직에서 낙마했고 월간조선에 걸었던 명예훼손 소송도 취하하긴 했지만... 조선일보로서도 두 번 다시 그런 식으로 왕따당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둘은...중앙과 동아가 그후 더욱 꼴통이 되었다는 것... 그 계기는 2001년에 있었던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였다. 솔직히 안티조선 초기에 중앙과 동아는 이 운동을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데 이용해 먹고픈 유혹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한놈만 패! 그러면 효과는 나와!!”라는 전략전술적 거시기로 시작한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들이 바랬던 것이었다. 동아는 “신동아 보라능?! 우리 가끔 진보적이라능!!”이라고 말했고... 중앙일보는 “우리는 저렇게 허접한 반공주의자는 아니고 시장의 합리성을 믿는 보수거등여?!”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들을 강타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안티조선 운동은 대중운동의 영역에서 크게 확산되기는 했지만 ‘조중동’은 서로 결합해 버렸다. “아...안되겠다능?!! 우린 같은 편이라능!!!” 특히 90년대 말까진 ‘자유주의자’ 유시민이 칼럼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독립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던 동아일보가 사주의 그릇된 판단으로 ‘조선보다 더한’ 길로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조선일보’의 특수성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빛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최근의 정국을 통해 생각해보자. 사노련 관계자들 체포 때 조중동은 어떻게 반응했던가? 조선일보는 “옛날엔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문건만으로 법원이 영장 청구해줬는데 투덜투덜... 하여간 조사 좀 더 잘해보라능!”이라고 말했고 중앙일보는 “조사 좀 잘해서 넘기지 왜 바꾸를 맞고 지랄이냐능?”이라고 반응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선 반응이 없었다. 약간의 차이가 감지되기는 하지만, 이거 가지고 뭐라고 하기는 우습다. (예전처럼 조선일보가 ‘기동전’을 한번 더 뛰어준다면 “이...이건 진지전이라 비슷한 거라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명박에 대해선 동아일보가 가장 격렬한(?) 옹호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고, 시장권력에 대한 맹동적인 추종에서 중앙일보는 조선일보를 찜쪄먹는다. 이런 사정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세 신문을 구별하기가 그렇다. 참여정부 말기에 언론운동 단체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조중동’이 아니라 ‘조동’이라고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참 한심했던 적이 있다. 중앙일보의 폐해도 만만치 않은데 단지 중앙일보과 노무현과 잠깐 밀월관계를 형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빼려고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히려 촛불시위 지지자들의 조중동 반대운동이야말로 안티조선 운동이 지니고 있던 실천적 효용성이 끝났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판단된다. 물론 조중동에 이번에 문제의식을 지니게 된 시민들은 과거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들이 만들어낸 많은 이론이나 서사를 통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환기시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과거에는 ‘조선일보’로 특징지을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조중동’으로 묶어서 비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 변화가 있었기에 그들이 ‘안티조선’이 아닌 ‘안티 조중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초의 안티조선 운동과 촛불정국의 안티조중동 운동은 시민사회의 언론운동의 연장선상에 있고, 문제의식도 동일하다. 그러나 전략의 부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특수성을 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친일, 친독재, 수구세력 옹호...의 레퍼토리로 대변되는 조선일보 88년의 역사를 모두 읊는다. 그것은 이른바 ‘극우 헤게모니’론을 통해 조선일보의 특수성이 이론적으로 분명히 정립된 상황에서는, 가능하고 필요한 서사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너져버린 지금 상황에서, 그 역사를 읊는 것만으로 조선일보와 다른 신문의 차이를 말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가령 친일을 생각해보자. 1930년대 조선일보의 맹목적인 친일은, 현재의 조선일보 문제와 연관을 지니는가? 큰 맥락에서 그들이 줄곧 권력추종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말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친일로 따지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아일보도 했다. 물론 프랑스에서 그랬듯 그런 신문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폐간시켰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건 정당하다. 그런데 그 친일을 한 동아일보가 1970년대까지 ‘일등신문’이었고, 그것도 조선일보식의 ‘일등신문’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가장 매서운 비판자로서의 일등신문이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의 광고탄압 사건 이전까지의 동아일보를 부인할 수 없다면, 친일을 했기 때문에 바로 너는 오늘도 ㅅㅂㄹㅁ다라는 식의 접근은 무리가 있다. 친일파야 개인의 정체성을 지니지만, 오늘의 언론사를 구성하는 이들은 그때의 구성원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은, 물론 친독재였고 박정희한테 ‘밤의 대통령’이란 별명을 하사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별명은, 훗날 그의 팔순잔치 때 조선일보 임직원들이 주장했듯 그가 정치적으로 힘이 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라 밤에 박정희랑 안가에서 술먹고 놀 때 기생이랑 잘 논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친일, 친독재 운운하지만 박정희 정권 때까지 조선일보는 굳이 안티를 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전두환 집권 당시 노골적으로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그후 파시스트 정권의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으며 동아일보를 제끼고 일등신문이 된 이후의 조선일보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일보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80년전에 친일을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연성과 힘의 관계들이 조응하여 벌어진 일이다. 1990년대 후반의 동아일보가 나름의 품격은 지키고 있다가 급격하게 ‘수구’세력에 합류한 사건도 그렇고, 21세기 이후 소위 ‘조중동’이 예전에 비해서도 점점 더 친화성을 키워가고 있는 현실도 그렇다. 안티조선 운동의 분석틀은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안티조선’이라 일컬어지는 전략의 부분에서는 분명 현실의 힘의 관계들을 토대로 다시 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안티조선이라는 프레임은 여전히 유효한가? 즉, 진보신당의 언론 정책에서, ‘조선일보’만을 특별히 배제해야 할 어떠한 실천적인 타당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아예 안티조중동을 실천하는 것은 논변적으로는 깔끔하지만 현실에서는 지나친 손해를 보게 되고, 안티조선을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에서 체면치레를 하는 수준에 그친다. 굳이 나더러 택한다면 후자를 택하는게 좋겠다고 주장하고는 싶지만, 이 정도 수준의 타당성이라면 이 모든 것을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에도 일리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김수민의 (안티조선 논변에 입각한) 주대환-최병천 비판이 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너무 단순한 대답을 도출해낸 상황에서 이루어진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첫 번째 문단에서의 나의 말에 대한 의미가 이제는 드러났기를 바란다. 물론 맨처음에 언급했듯이, 이는 “주대환 논쟁”의 핵심적인 논점과는 관계없이 별도의 논점을 구성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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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문화제에서 촉발된 거리시위가 굉장히 흥미로운 정치현상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또한 그것이 (그것이 가진 모든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 정치 문화를 곧바로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사실 역시 명백한데, 그 이유는 이 시위가 '통합의 제의'이기 때문이다.


거리에는 무당파와 좌파와 민주당 지지자가 모두 나와 있다. 심지어 박근혜 지지자도 나와 있다. 이들은 아주 오랫동안 한국 사회에 존재하지 않았던 '정치적인 통합성'을 경험하는 중이다. 이 경험에 준하는 사례를 끌어올려면, 결국에는 정치적인 행사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축제를 언급해야 한다. 즉, 월드컵 당시의 거리응원 말이다.


2002년 당시 월드컵 거리응원이 파시즘적 요소를 지니고 있다고 했던 박노자의 진단에 대해 나는 반만 동의했다. 그것이 파시즘으로 전환될 요소가 있다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하지만 그것은 그 자체로 파시즘의 발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전근대적이었다. 박노자는 그 거리응원의 동력을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정치로부터 끌어왔다. 반면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는 그 연원을 동맹, 영고 등의 고대국가에서 통합의 기능을 담당했던 제천 행사와 비교했다. 당시 나는 차라리 후자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대한민국'이라는 외침은 온 천하를 뒤덮었고 거기에 나는 조금 충격을 받았는데, 왜냐하면 내가 읽는 모든 책들에서 '한국'은 온전한 조국이 아니라 '둘로 갈라진 조국의 반쪽'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붉은 악마'는 그 사실을 부정했고, 이 하나의 국가에서 우리가 온전하게 통합성을 느낄 수 있음을 주장하고 또한 증명했다.  (관련글:
붉은악마와 민족주의 )


우리가 바로 전세대를 계승하지 않고 저 먼 고대를 계승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당시의 내 생각은 이런 식으로 수정해야겠다. 우리의 독재자들도 그런 식의 통합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는 가설을 세워보는 것이다. 가령 윤해동은 박정희에 대해, 박정희가 대부분의 국민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한 후, 결코 설득이 되지 않는 소수자들에게만 폭력을 행사하는 식의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바로 이것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그 시대를 잘 모르지만, 여전히 이견의 존재를 용인하기 힘들어 하는 현대 한국 사회의 문화를 생각해 볼 때, 이 의견은 굉장히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가령 한국적 폭력의 축소판이며 한편의 희극이기도한 <디 워> 사태에 대해 생각해 보자. 아주 선량한 어느 디빠는, 최선을 다해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노력할 것이며, 그런 노력이 전혀 무용하다고 생각되는 상대에게만 사이버 테러를 가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폭력을 가한 건 자신이 아니라 '통합'을 거부하고 이죽거린 상대방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의 마음 속에서 그것은 완벽한 진실이다. 이 얼마나 한국적인 현상인가?


민주주의 정치 문화는 근본적으로 이견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위에서 타협을 추구하는 기술이 되어야 한다. 투표를 해서 패배한다 해도 나는 생각을 바꿀 필요가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근대 사회와, 근대화 시기의 한국 사회에선 그런 문화가 수용되지 않았음이 틀림없다. 박정희식 통합의 리더십은 되도록 우리가 같은 생각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의 아버지 박정희는 그것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 후, 다수에 합류하기를 한사코 거부했던 소수자들에겐 폭력을 행사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독재국가에서도 대다수의 시민들은 폭력을 당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빨갱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견해는 '막걸리 반공법' 같은 것을 생각해면 굉장히 러프한 면이 있는데, 우리의 문화적 감수성을 설명하는 하나의 가설로 이해해 주면 되겠다. 실제의 박정희가 이렇지는 않았더라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박정희에게 이런 식의 판타지를 투영한 후에야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련글 :
혼네의 민주주의 )


민주화가 이루어진 후 도래한 김대중-노무현 시대는 정치적인 면에서 이러한 (한국인들이 어머니의 요람처럼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는) 통합의 정치가 사라진 시대였다. 조중동은 자신들이 대통령을 우습게 여길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미칠듯이 저주했다. 정신분석적으로 바라보면 아버지가 자신을 때려주길 바라면서 히스테리를 부리는 아이같은 증세였다. 이 시기에 우리가 갈등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것을 조율하는 민주주의적 정치의 기술을 배울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모두 알다시피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대신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정책을 있는 정책 그대로 보고 비판하려는 사람들과 그래서는 안 된다고 본 민주당 지지자-노빠들의 싸움이 있었다. 물론 큰 틀에선 한나라당-조중동 동맹과 기타 세력의 싸움이 있었지만, '통합성'이란 측면에서는 오히려 전자가 더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도 모른다.


다음 아고라를 잠깐이라도 살펴보면, 이명박이야말로 골수 한나라당 지지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반대할 수 있는 강력한 유인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그러다가 누군가 민주당의 무능함을 질타하면,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금세 반대하는 이들이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요즘 시위의 '대중성'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만일 노무현이 이런 짓을 했다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한 명이 이탈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1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 한명은 또 남들이 노무현을 씹는 것을 참을 수가 없기 때문에, 씹는 사람들에게 언제나 싸움을 걸고 있다. 한명이 이탈할 때마다 -2 혹은 -3의 효과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명박 시대에 그런 것을 걱정할 이유는 없다. 이제 한때 청소년들 사이에 퍼졌다는 "이명박이 독도를 포기했다."라는 괴담에 대해 생각해 보자. "청소년들은 자신들에게 피부로 와닿는 교육정책과 급식문제에 관련된 쇠고기 정책에 일어났다."는 표준적인 설명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현상이다. 괴담이 있었어야 했다면 왜 "이명박이 사립학교 1천개를 지으려 한다."가 아니라 "독도를 포기하려 한다."는 것이어야 했던 것인가? 왜냐하면 그들은 이명박을 외국인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10대들은 물론 윗세대와 구별되지만, 한국 사회의 문화적 맥락에서 전적으로 독립적이지는 않다. 그들이 말하는 바는 명백하다. "이명박은 '대한민국'이 아니다. 이명박은 '우리'가 아니다."


노빠와 창빠와 박빠와 문빠와 주사파와 좌파가 다툴 필요가 없는 시위다. 앞열에 선 예비역과 그 뒤에선 페미니스트들이 굳이 으르렁댈 필요가 없는 그런 시위다. '좋은' 것인가? 지금으로선 그렇다. '잃어버린 십년'이란 말도 안 되는 레토릭에 사람들이 동의했던 것은 그동안 이런 식의 통합성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명박을 '이방인 통치자'로 만드는 판타지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정체성을 회복했다. 그래서,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거기에 대한 '답'은 아직 없다. 그게 우리의 거리시위가 아직 온전한 민주주의를 담고 있지는 못한 이유다. 하지만 '진화'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시 이 출발점으로 돌아와야 했을 것이다. 거리의 인파들은 바로 그러한 의미에서 매우 긍정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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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승리'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들이 조합된 기막힌 우연의 산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는 '운이 좋았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최근에는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당장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었을 것만 같은 두 개의 대체역사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하나는 큰 사건에 대한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단 좀 더 작은 사건에 대한 가정이다.


첫번째 가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운좋은 일이라 여겨졌던 2002년 노무현의 당선.


2002년 당시로 돌아간다면 다시 노무현을 찍을 수밖에 없겠다는 사람들의 말에는, 동의한다. 그 당시 주어진 자료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왕 한나라당 정권 5년을 견뎌내야 한다면 이명박보다는 이회창 쪽이 훨씬 나아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2002년의 이회창은 지금의 이회창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성향과 삶의 궤적이 전혀 다른 두 대선후보의 불꽃튀는 대결이 된 대선정국에서, 이회창은 진보 쪽 표를 흡수하려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집권 초에 오히려 상대편을 안배하는 정책이 나왔으리라고 생각해도 어색하지는 않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무슨 짓을 할 수 있었던 간에, 한미 FTA가 그리 갑작스럽게 추진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당이 결사반대했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한나라당 경제정책이 전혀 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염증으로 그동안 야당정치를 통해 좀더 성숙한 민주당의 노무현이 2007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면, 이건 지금보다 나쁘기는커녕 훨씬 좋은 시나리오다.


이 역사소설의 아이러니는 노무현과 개혁당의 능력치를 높게 잡을수록 우리가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회창이 집권하자마자 구민주당계는 노무현과 개혁당을 탄압하려 했을 게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유시민-개혁당계는 가령 이라크 파병 같은 여당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개혁적 유권자들을 결집해 나갔을 것이고... 이들이 이 결집을 통해 민주당을 서서히 바꾸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이 시나리오의 미래는 아주 좋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통합민주당과 접점이 사라져버린 개혁적 지식인 그룹의 의견 역시 청취되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반면 노무현 그룹이 버티지 못하고 쓸려나갔을 거라든가, 버티긴 했으되 어차피 지금처럼 한나라당과 비슷한 경제정책으로 이행해 나갔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정치공학을 생각해 볼 때 이건 좀 극단적인 가정일 것 같은데) 이 시나리오 역시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재수가 없으면 이 시나리오에서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일이 (민주당이 깨지지 않았으므로 박빙 승리였겠지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 민주노동당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집권 초기에 분노에 찬 노빠들에게 조낸 밟혀서 사이트가 만신창이가 되었겠지. 이라크 파병할 때 "봐!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라는 소리도 들었겠지. 우리 세계를 아는 사람 눈으로 보면 좀 우스운 상황이겠지만,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성장이 억압되어서 자주파에게 점거를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주파들도, 민주당 비판적 지지론자와 민주노동당 접수론자로 양분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군소정당의 운명은 작은 변수에도 요동치기 때문에 소설가가 그리기 나름이다.


두번째 가정은...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조승수가 같잖은 이유로 선거법의 제재를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9석의 정당과 10석의 정당이 의정활동에서 크나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자주파가 역시 민주노동당을 말아먹었다고 치고, 분당 정국에 들어섰을 때다.


조승수는 우리의 세계에서 선도탈당파였다. 그리고 저쪽 세계에서도 조승수는 선도탈당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역구 의원은 탈당을 해도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으니까. 노회찬 심상정이 나올 때까지 진보신당이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못했던 상황을 생각해 보라. 의원직을 유지한 조승수의 선도탈당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구조의 진보신당을 만들었을 것이고, 도전할 만한 지역구를 두 개에서 세 개로 늘렸을 것이며, 1명에 불과하지만 의원을 보유한 정당으로서의 진보신당은 우리 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여론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신당은 지금보다 아주 약간 더 좋은 성과, 즉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이건 득표수로 치면 아주 약간 더 좋은 성과이지만...... 그것이 미치는 결과로 치면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이 생각을 하면 약간 속이 쓰린다.


부질없는 짓 같지만, 이런 상황을 상정해 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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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원고는 프레시안에서 기획했던 "대선, 삐딱하게 읽기"에 보내기 위해 작성된 것인데, 이번 대선에선 도통 지역주의 문제가 이슈가 되지 않는 바람에 시의성을 찾지 못하고 묻혀 버리고 말았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건대 총선에서도 지역주의가 이슈가 될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현재 정치적 파벌들이 어떤 도형을 그리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른 글에서 말하게 되겠지만, 이 글은 그저 과거의 사건을 명확히 정리하고 평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똑같은 일이 일어나지는 않더라도, 과거의 사건을 세밀하게 평가하지 않은 사람들은 미래에도 비슷한 수법에 당하기 마련이지요.

2007년 12월쯤 작성된 글이니 시차를 감안하고 읽으셔야 겠습니다.


지역주의는 사라졌는가?


옛날 옛날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라는 정당이 있었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자들은 민주당이 호남 지역주의 정당이라고 비난했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열린우리당이 영남 패권주의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그후 대선이 다가왔고 지지율이 지지부진하자 진절머리가 난 두 정당은 합당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합당은 쉽지 않았다. 민주당엔 열린우리당이 분당에 대해서 사과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었고, 열린우리당엔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정당의 주요인물들이 두가지 사안에 대하여 애매하게 사과하는 가운데, 양당 국회의원들은 ‘제3지대’라는 것을 만들어 통합을 추구하기로 했다. 즉, 이 당도 깨고 저 당도 깨서 새로운 당에서 미팅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해서 대통합민주신당과 잔류 민주당이라는 당이 탄생했다. 분당과 창당의 마술적 힘 덕분에 이제 과거의 과오는 전혀 중요하게 언급되지 않았다. 대통합민주신당과 잔류 민주당은 최근 당대당 통합을 하기로 결정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완전한 합방이 이루어진 것. 결국 이 와중에 ‘지역주의’ 이야기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지역주의에 관한 이야기가 대선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 지역주의가 사라진 걸까? 물론 그것이 ‘좋은’ 현상일리는 없으니, 사라졌다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면 찝찝하다. 민주당 분당과 열린우리당의 창당, 그리고 대통령 탄핵, 게다가 그후의 논쟁들까지, 민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의 갈등에는 국회의원들끼리의 권력다툼이라는 층위를 제외하면 언제나 지역주의가 ‘명분’으로 존재했다. 그것이 사라졌다면 얘기가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단지 “그들은 지역주의를 핑계로 권력투쟁을 했다.”고만 하면 문제가 설명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양당의 지지자들조차 자기 당이 올바르다고 상대방을 비난했기 때문이다. 그 싸움들은 다 무용한 것이었을까?



지금 지역주의가 대선정국에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언뜻 생각해 볼 때 세 가지의 논리적 가능성이 있다. 하나는 애초에 호남 지역주의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잘못한 세력은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이다. 둘은 원래 문제가 존재했지만, 그후의 사건들을 통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다면 잘못한 세력은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나머지 하나는 두 세력의 이견은 여전하지만 대선 때문에 침묵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두 정당의 이합집산은 야합이 된다. 한나라당의 무엇에 대해 반대하는지도 모르면서 반한나라당을 외치는 촌극이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지역주의에 관한 문제는 담론적인 차원에선 전혀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나라당 후보가 전국적으로 맹위를 떨치는 현재의 대선정국에서 정치세력화에 의미있는 담론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외면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역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당장 내년 총선이 다가오면 각 정파는 또 지역주의를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치장하는데 써먹을 것이다. 억압되었던 것이 귀환하면 더 무섭다. 그것은 이미 뒤틀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도 지역주의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때, 다시 한번 저 논쟁을 발굴해서 정리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래야 다시 살아 돌아올 저 유령의 귀환에 맞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지역주의에 관한 두 가지 시선


지역주의라는 담론에 대한 표준적인 이해는 다음과 같다. 일단 특정정당에 대한 영호남 각 지역의 몰표현상이 있다. 이 현상을 보고 사람들은 원인을 추리한다. 먼저 그것은 지역주민들이 자기 지역의 이익을 보장하는 정당에 투표하려는 경향을 의미한다. 가령 한 정당을 지지하면 그 정당이 어떤 개발사업을 특정 지역에 유치해 준다는 식으로. 만일 이런 이유로 한 지역의 유권자들이 한 정당에 몰표를 준다면, 그것은 ‘지역이기주의’로 불릴만한 것인데, 언제나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선 누구나 이기적인 투표를 하도록 기대되고 있고 문제는 이기적인 투표의 총합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매 선거마다 일어날 수는 없고, 새만금 사업이나 정선 카지노 사업 등의 경우가 증명하듯, 저 ‘개발사업’이 반드시 그 지역 사람들에게 두루 혜택을 주는 사업이라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증명하기 쉽다.) 그래서 몰표현상에 대한 두 번째 원인 추리가 탄생한다. 지역몰표는 자기 지역 출신의 사람들을 공직에 많이 진출시켜 지역인맥을 형성하는 것을 의도한다는 것이다. 이때에 지역주의는 소수 지역 엘리트의 영달을 위해 전 지역민이 동원되는 허구적인 이데올로기로 파악된다.


만일 문제가 이렇다면 지역민들의 투표는 부도덕하거나 무능한 것이다. 그래서 문제를 이렇게 보는 언론들은 그간 민주주의를 좀먹는 망국적 지역주의에 대한 개탄을 문제의 해법(?)으로 알았다. 이 시선에 대항하는 사람들은 지역주의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으며 실제적인 문제는 호남차별이라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구체적으로는 강준만을 위시한 민주당을 지지하는 자유주의 평론가들로부터 그런 입장이 나왔다. 지역의 표 동원은 역사적으로 1971년 김대중을 떨어뜨리기 위해 박정희의 공화당이 조직한 것이다. 그후 광주민주화 항쟁과 3당합당을 통해 호남을 고립시키는 정치적 책동은 계속되어 왔다. 정치적인 탄압과 문화적인 호남차별 속에서 태생한 호남의 지역몰표는 저항적 지역주의로, 영남의 그것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라는 게 그들의 해석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도식에서 영남의 지역몰표는 부도덕하거나 무능한 것이지만, 호남의 지역몰표는 극우 정당에 대한 실체적인 저항이다.


편의상 전자의 시선을 A라고, 후자의 시선을 B라고 부르기로 하자. 지난 5년간 B의 입장에 선 사람들은 ‘노빠’와 ‘좌파’들이, 그러니까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지지자들이 수구세력과 동일한 A라는 시선에서 지역주의를 바라본다고 개탄해왔다. 그런 시각은 인터넷에 차고 넘치지만, 굳이 저서를 통해 확인하고 싶다면 김욱의 <영남민국 잔혹사>를 참조할 수 있다. 지역주의 문제에 관해선 노빠와 좌파들이 연합전선을 취해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령 진중권은 열린우리당을 한번도 지지한 적이 없지만 열린우리당의 창당 자체는 올바른 일이라고 논평했다. 그런데 문제는 노빠나 좌파들도 2002년 이전에는 대개 B에 찬동하는 이들이었다는 점이다. 나는 여기서 하나의 가설을 세우고자 한다. 즉, 문제의 진실은 A와 B를 넘어서는 차원에 있다. 하지만 ‘노빠’나 ‘좌파’들은 B 시선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 보이면 그것에 분개하고 A로 회귀해 버리는 일을 반복해 왔다. 대개 그들은 B가 고발하는 문제점들이 김대중 집권 이후로 그럭저럭 해소되었고 따라서 A 시선에서 잡힐 수 있는 문제만이 남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하여 양자 사이엔 소통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분석적으로 바라본 지역주의


여기까지만 논해도 현명한 독자들은 지역주의라는 낱말 안에 너무 많은 현상이 녹아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투박하게 나눠보아도 그것은 지역몰표의 문제, 지역불균형의 문제, 그리고 호남지역에 대한 문화적 차별 혹은 경멸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이 ‘지역주의 현상’의 세가지 측면은 각기 서로의 부분적인 원인이 되기도 하는 등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이것들이 모두 하나의 원인을 가지는 현상인 것인지, 그러니까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세 가지에 해당하는 것인지에 대해선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오캄Ockam식으로 말할 때 ‘복잡한 진술들을 간편하게 생략하는 어휘’에 해당할 뿐이다. 이 현상들을 모조리 지역주의라는 이름 밑에 넣어두고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그 자체로 ‘지역주의 현상’을 보전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저 두루뭉술하게 이해된 ‘지역주의’에 대한 비판은 “전국정당 건설이 지역주의 해체다.”라는 열린우리당식의 해법으로 귀결되기 쉽기 때문이다. (물론 저 명제는 한나라당을 통해 지역주의를 해체한 열린우리당의 위대한 업적을 상기시키고 있다.)


군사정권 시기에 분리통치를 위해 호남차별을 통해 지역몰표를 유도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하여 문화적 차별 혹은 경멸의 문제가 남아있다면 언제까지나 시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지역몰표가 아직까지도 저 호남차별 의식을 통해 기능하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지금은 문국현 후보 캠프에 있는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이제는 지역주의가 이념적인 문제로 고착화되었다는 견해를 피력한바 있다. 즉, 만일 영남인들이 햇볕정책에 찬성하는데도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면 뭔가 다른 이유를 따져봐야겠으나, 애초에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영남인들이 한나라당을 지지하는데 다른 이유를 찾을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고착화된 지역몰표는 실제로 지역민의 의식을 변화시켜 왔다. 그러므로 이제는 순진하게 ‘지역민들의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효력을 얻을 수 없다.


한편 지역불균형의 문제는 단순히 영남과 호남 사이에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첫째로는 서울 대 지방의 문제요, 둘째로는 서울의 하위 파트너로서의 영남과 기타 지역의 문제다. 지역불균형의 문제를 호남의 문제로 치환시키는 데에서 어떤 노빠나 좌파들은 반감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게다가 영남정권이 영남에 공단을 많이 지었다는 식의 이해는 경제학적으로 지지받기 어려운 감성적인 논변이다. 중화학 공업정책은 수심이 깊은 동해를 중심으로 추진될 수밖에 없었고, 국가의 책임은 그것이 추진되지 않은 지역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지 중화학 공업정책 자체에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파워엘리트들을 인터뷰해보면 대개 경상도 사투리를 쓰더라는 문화인류학적(?)인 증언이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서울대 신입생이야 지역안배를 하면 되고 중산층 역시 경제정책으로 육성이 가능할지도 모르지만, 특정 지역 부르주아를 국가가 나서서 키우거나 탄압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출신성분이 비슷한 그들이 고만고만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나머지 시민사회가 감시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리하여 김욱은 영남패권에 대해 말하기 연습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나는 그가 영남패권이라 부르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르겠고, 그 무엇이 있다 해도 그게 말하기 연습이나 반영남 지역 몰표를 통해 극복될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분석적으로 바라본 지역주의는 우리가 각각의 문제에 대해 각각의 해법을 추구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 역시 ‘영패’집단이라는 증오의 선동(?)을 통해 해결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열린우리당의 오류를 반성해야


한편 지역주의에 대해 철저하게 분석하는 것은, 지역주의 타파를 거의 존재의의에 해당하는 최대의 강령으로 내세웠던 열린우리당의 실패의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들은 영남개혁세력과 호남개혁세력의 통합을 추구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볼 때 우향우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차이의 차별점은 햇볕정책밖에 없다. 그렇다면 햇볕정책에 반대하는 영남인들이 열린우리당에 찬동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자 열린우리당은 크게 세 가지 공세를 펼쳐서 영남지역을 공략하려고 했다. 하나는 호남유권자에 대한 거리두기다. 물론 이것은 윤리적으로 볼 때 글러먹은 정치행위였다. 둘은 한나라당이 영남경제를 살리지는 못한다고 홍보한 것이었다. 앞서 우리가 분석한 지역몰표의 매커니즘을 따른다면 이 역시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것은 지역주의에 대한 지성적인 오류요, 전략의 실패이기도 하다. 이 두가지 공세는 주로 유시민을 통해 유포되었다. 이것들이 효력을 못 거두자 급기야 그들은 여당을 찍으면 지역에 도움이 될 거라고 주장하기까지 이르렀다. 주로 김혁규를 통해 경남지방에 유포되었던 이 주장은 주민들로 하여금 표준적인 지역이기주의 모델에 따라 투표하기를 권유하고 있다. 지역주의를 극복하겠다는 이들이 펼친 지역주의 공세. 그리하여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에 관한 한 윤리의 파탄, 지성의 오류, 전략의 실패라는 위대한 삼위일체를 달성하였다.


지역주의가 문제가 된다면 그것이 다른 종류의 합리적인 정치행위를 가로막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당을 지지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지역주의를 넘어서야 한다.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 지역을 보고 투표하지 말고 정당 마크의 디자인의 우수성을 보고 투표하십시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데 왜 “열린우리당이 영남에서 의석을 얻는 것이 지역주의 타파다.”라는 헛소리에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인가? 영남의 보수성을 해체하려면 각 정당이 햇볕정책 이외의 많은 사안에서도 정책적 변별점을 가지고, 그 정책들이 지역사회의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어필하는지를 충실히 설명해야 한다. 그쯤 되어야 유권자의 투표행태의 무능함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정론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정당끼리의 변별점이 없기 때문에 지역주의라는 담론이 성립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닐 것이다.


지난 5년을 돌이켜보면 비록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싸움이 희극에 가까웠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동원되었다. 앞으로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비웃을 줄 알아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주의 논쟁을 찬찬히 돌이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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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장하준과 ‘착한 경제학자들’


드디어 우리도 세계적인 경제학자를 갖게 되는 모양이다. 영국에서 먼저 출간된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책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외국 언론에 잇따라 평이 나오고, 아직 책도 안 나온 미국에서 관심을 보일 정도다. 우리나라에선 지난주 번역돼 벌써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참여정부가 극찬한 이단 경제학

그런데 반응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와 파이낸셜타임스는 “역사적 기록이 불확실하다” “역사적 교훈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보호주의로 성공했으면서도 개발도상국에는 자유무역 자유시장을 강요하는 선진국을 ‘나쁜 사마리아인’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식으로 해석하자면 ‘주류’ 보수언론의 악의적 보도가 아닐 수 없다. 2년 전 비슷한 논지의 장 교수 책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읽었다며 국정에 응용했던 대통령이 안다면 내심 난처할 것 같다. ‘대못질’을 지시할 수도 없고.

시장과 세계화를 중시하는 주류 경제학계의 시각에서 장 교수가 비주류인 건 사실이다. 빈부격차 등 세계화의 부작용에 대해서도 주류는 교육과 직업훈련 일자리를 통한 해결을 찾는 반면, 비주류는 세계화나 신자유주의 반대를 주장한다. 글로벌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에선 시장보다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학자가 많아야 15%여서 ‘이단(heterodox)’으로 불린다. 장 교수의 프로그램 역시 이들이 정보를 나누는 이단 경제학(heterodox economics) 뉴스레터에서 찾아볼 수 있다.

3년 전 대통령이 성장과 함께 가는 분배를 강조하며 거론했던 조지프 스티글리츠도 남미 포퓰리즘 부활에 한몫한 인물로 평가된다. 참여정부 경제를 설계한 이정우 전 대통령정책실장의 정신적 스승 헨리 조지 역시 주류와는 거리가 멀다.

물론 학자에게는 학문의 자유가 있고 학문적 소신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하필 우리나라 경제정책이 학계에서 인정받고 세계적으로 입증된 주류이론 아닌 비주류의 논리에 좌우됐다는 건 비극이다. 그 결과가 ‘잃어버린 5년’이고 외환위기 이후 11년 만에 닥칠 경상수지 적자다.

포퓰리즘의 큰 특징은 정권이 선거에 의해 뽑혔다는 이유만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데 있다. 경제에선 시장은 물론 재정적자를 무시한 분배정책으로 나타나고, 정치에선 헌법과 사법제도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무시한 비자유적 민주주의로 군림한다. 민주주의가 자유의 제도화를 뜻한다면 그 제도를 박살내고 정권의 자유만 추구하는 게 포퓰리즘이다.

시장이 경제발전을 촉진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재정건전성 정책 또한 나쁜 사마리아인의 요구이니 ‘세입을 초과한 지출’도 해야 한다는 장 교수의 주장은 지난날 남미를 말아먹은 포퓰리즘과 다르지 않다. 더욱이 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의 손에서 중요한 결정을 빼앗아 선출되지 않은 기술 관료들의 손에 넘기는 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고 했다. 참여정부가 숱하게 외쳐 온 주장과 기막히게 일치한다.

나쁜 정책에 죄 없는 국민만 피해

영국에 살고 있는 장 교수는 쉽고도 당연하게 연구 결과를 밝혔을 것이다. 하지만 국책연구기관조차 재정지출 억제를 권고한 이 땅에 사는 우리는 내 아이가 짊어질 나랏빚이 무섭다. 정당과 국회는 물론 헌법도 우습게 아는 정권을 만난 탓에 대통령선거가 코앞인데도 범여권 후보조차 감감한 우리는 올해가 무사히 지나갈지 두렵기 짝이 없다.

정부 개입을 강조한 비주류 경제학자들은 죄가 없다. 그러나 무능한 정부를 모신 죄 없는 국민은 피해가 막심하다. 만일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이 당선돼 장 교수 주장대로 보호주의를 채택한다면 당장 우리나라가 피해를 볼 판이다. 착한 경제학자는 있을지 몰라도 착한 경제학은 없다. 되는 경제학(주류)과 안 되는 경제학(비주류), 그리고 이를 이용하는 정치꾼이 있을 뿐이다.

김순덕 편집국 부국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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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글써서 밥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은 몇명 되지 않는다. 그런 이들 중에 이렇게 무식한 사람도 섞여 있다는 걸 알면 화가 나는 것도 당연하다. 더욱 화가 나는 건 '집단지성'을 자랑하며 평론가와 지식인들을 우습게 여기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네티즌들께서도 이런 무식한 소리를 그냥 지나치신다는 사실.

장하준 가지고 검색하다가 발견한 글인데, 나온지는 벌써 2주나 지났다. 하지만 잠깐 검색해본 바로는 이 글을 비판한 블로거는 없는 것 같다. 이건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팩트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나쁜 사마리아인> 아직 안 읽었다. 하지만 장하준은, 경제정책에 관한 한 박정희가 옳고 김대중-노무현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나오는 그의 주장을 정리하면 박정희는 반민주주의-반자유주의자고, 노무현은 민주주의-자유주의자다. 박정희는 전자는 틀렸지만 후자 때문에 경제를 발전시켰고, 노무현은 전자는 옳지만 후자 때문에 경제를 말아먹고 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에 나온 장하준과 정승일의 대담을 도식적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영어로 쓰여진 <나쁜 사마리아인>에서도 역시 서문에 자신의 모국인 한국 경제가 발전한 이유를 서술하면서, 개발도상국에게 자유무역을 하면 경제가 발전할 거라고 우기는 선진국들의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다. 김순덕이 언급한 영국 언론들이 그랬듯이. 하지만 장하준=참여정부 경제학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첫페이지부터 마지막까지 참여정부 경제정책을 까고 있는데, 그게 "참여정부가 극찬한 이단 경제학"이라고? 이정우 등과 같이 엮은 건 웃기지도 않다. 장하준은 이정우 등과 토론회에서 언제나 싸워왔고, 심지어는 그들보다 오히려 중앙일보 (고)정운영을 편들었을 정도인데.

도대체 이런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는 강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간단하다. 꼰대들은 동아일보는 읽지만 책을 안 읽고, 애새끼들은 인터넷은 하지만 책은 안 읽으니까. 그리고 책을 읽는 1만명 가량의 사람들 중에 인터넷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설령 활동해봤자 무시당하기 일쑤니까. 기껏 이 칼럼을 비난한 네티즌 의견은 '참여정부 잘했다' 운운이다. 네티즌이 '무지'한 언론을 교정하고 싶다면, 적어도 그보다는 더 '유지'해야지. 이건 뭐 우리 다 같이 무지하니 니가 그 회사에서 돈받는거 인정할 수 없다는 '하향평준화' 논리도 아니고. (하긴 그런 논리도 성립하긴 한다.)

유시민의 <대한민국 개조론> 등식 박정희=노무현=한미 FTA
김순덕의 '착한 경제학자들' 등식 박정희=신자유주의↔노무현?  

정말 대한민국을 양분하는 정치적 세력의 경제인식이 이 모양이니. 나라꼴 좋다.

두줄요약:  남 욕하는 건 안 말리겠는데, 제발 남의 총알 뺏어들고
              자기 거라고 우기지는 말지 말입니다.

 


P.S
"만일 미국의 새 대통령으로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이 당선돼 장 교수 주장대로 보호주의를 채택한다면 당장 우리나라가 피해를 볼 판이다."
-> 힐러리가 FTA 비준 거부해준다면 나는 덩실덩실~

P.P.S
"되는 경제학(주류)과 안 되는 경제학(비주류)"
-> 설마하니 알고도 거짓말한 거라고 좋게 이해해 주려고 했는데, 이런 구절을 보니 일부러 거짓말 했다 해도 김순덕은 무식하고 천박한 사람이다. 경제학자 개인의 입장에서, 주류경제학이 되는 경제학이고 비주류 경제학이 안 되는 경제학일 수는 있다. 아무래도 주류 쪽이 교수자리가 더 많을 테니까. 하지만 주류가 한 나라 경제를 되게 하고 비주류가 한나라 경제를 말아먹는다는 견해는 성립하지 않는다. 학문적인 관점에서 주류와 비주류를 저렇게 나누는 건 중심화가 지나치게 심한 한국 땅의 관점에 뇌수를 푹 절여서 살다보니 기본개념이 마비되어서이다. ('15%'를 우습게 아는 것도 지극히 한국적이다.) 가령 의학에서 어떤 병에 대한 주류 견해와 비주류 견해가 있다고 쳐보자. 그 비율이 85% 대 15% 쯤 된다고 치고. 그럼 그때 주류 견해는 '사람 치료하는 견해'이고 비주류 견해는 '사람 더 아프게 하는 견해'인가? 지금 장난하나? (그렇게 썼다간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게다.)

P.P.P.S
......덕분에 저는 아주 가끔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나 푸는 용도로 블로그를 유지하기로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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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자의 여자>의 홍준표가 아무리 그 존재감에 덧칠을 하더라도, 국회의원 홍준표는 기억에 남을 정치인이다. '반값 아파트' 공약은 참여정부 임기 내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망라해서 유일하게 반향을 일으킨 '서민' 공약이었고, 군기피자는 재외동표 혜택을 보지 못하도록 한 법률 개정안은 비록 악법이지만 민족주의를 실현해야 할 '우파'의 입장에서는 일관성을 지키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었다. '민족'을 언급하면서도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는 숱한 국회의원들에 비하면 말이다. 그런 그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는 한나라당의 집권가능성에 의문을 던진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한나라당의 집권가능성에 의문을 던지는 홍준표의 행위가 한나라당의 집권가능성을 높인다. 그는 한나라당이 서민을 대변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고 있고, 서민의 대변자로 자신을 위치지운다. 이명박의 경부대운하를 '환경재난'이라 규정하며 경부고속도로에 화물 전용도로를 보강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이명박의 7-4-7 경제론(7% 성장, 4만불, 세계 7위)에 조소하며 진짜 문제는 대한민국이 OECD 국가중 자살율이 1위라는 사실이니 국민소득보다 행복지수 개선에 신경써야 할 거라고 일갈하며, 북한에 대해 '마셜 플랜' 비슷한 것을 수립해야 한다고 천명하는 그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튼튼하게 만드는 자양분이나 다름없다.

손학규의 경우, 서민적 이미지 혹은 서민성이라는 것이 있었는지 몰라도 컨텐츠면에서는 홍준표만큼 파격적이지 못했다. 더군다나 그는 어찌됐건 한나라당의 집권보다는 자신의 당선에 더 욕심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는 한나라당을 탈당해서 <근혜 명박 공방전>을 격화시킨 주역이 되었다. 이제와서 경선출마를 선언한 홍준표는 다르다. 비록 그의 말대로 정치인이 1%의 가능성에라도 도전하는 생물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자신이 말했든 그의 부차적인 목표는 두 사람의 대결의 완충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는 그 역할을 서민적 정책을 제시함으로써, 경선을 정책 검증 구도로 만들면서 수행하려는 것 같다. 홍준표는 아마도 이명박과 박근혜 두 '메이저' 후보에게 자신의 정책 일부를 받아들이게 하여 한나라당의 본선 경쟁력을 높이는 상황을 원할 것이다. 또한 이를 통해 본인의 정치적 입지가 탄탄해지기를 원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의 발상은 한국 정치판에서는 새로운 시도이니, 그의 '이기심'을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지금의 그는 "좋은 일을 하고 (불확실한) 이득을 바라는" 윤리적인 인간에 가깝다.

문제는 그 윤리성과 현명함의 수혜자가 한나라당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을 좋아할래야 좋아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은 씁쓸한 일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미국의 역사에서도 공화당과 민주당의 위치가 한번은 뒤집혔음을 기억해야 한다. 홍준표의 운신은 기본적으로 열린우리당이 더 이상 서민을 대변하는 정당이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열린우리당 탈당 1호 임종인 의원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2002년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대 선공약과 거의 동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게다가 한나라당으로서도 하기 힘들었던 한미 FTA까지 성사시켰으니. 참여정부가 말하는 개혁의 등식은, "한나라당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조선일보에게 욕먹는 이가 참다운 진보다."라는 것. 그들의 오도된 개념 속에서 모든 이가 혼돈에 빠져있을 무렵에, 오직 홍준표만이 -아마도 그의 본래 성향의 도움을 받아- 한나라당이 나아가야 할 가장 윤리적이고 또한 가장 전략적인 길을 제시한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한나라당이 -박근혜 라인이든, 이명박 라인이든- 홍준표 노선을 수용하리라고 기대하지는 않는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한나라당은 올해 대선이 문제가 아니라 향후 십오년 이십년은 집권할 수 있을 터전을 닦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정당은, 유럽 기준으로 '극우파'에 해당하는 정당이 될 것이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극우파'는 흔히 쓰이는 경멸어의 용법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문학평론가는 "박정희를 히틀러라고 표현하는 것은, 박정희에 대한 극존칭"이라고 표현한 바 있는데, 그와 비슷한 논지에서 나는 지금 극우파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만약 지금 한국에서 유럽적 의미의 극우파를 구성한다면, 그는 마땅히 홍준표처럼 북한에 대한 마셜플랜을 주장해야 한다. 북한정권을 혐오만 하다가 중국 공산당에게 남한보다 더 큰 땅덩이와 2천만의 값싼 노동력을 공짜로 넘겨줄 칠칠맞은 조갑제 류 극우파와는 차원이 다른 '극우파'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건설자재의 스케일 이외의 사이즈는 상상하지 못하는 이명박과 경상북도에 거주하는 아버지 친구들의 '말씀'을 얌전히 듣는 박근혜가 그런 식의 '극우'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그 주변인물들도.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그토록 똑똑한 이가 도와줌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이 십오년 이십년 집권할 일은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실패에 안도했다면 이제 다른 쪽에서 뭔가가 나와줘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한나라당이 진짜 극우파 정당이 되는 것만도 못한 미래가 대한민국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나는 홍준표에 대응하는 범여권의 키플레이어는 김근태라고 생각한다. 물론 스타일로 볼때는 화끈한 홍준표와 결단이 느린 김근태 사이에 많은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은 개인의 커리어를 넘어 적어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미래를 큰 틀에서 고민한다는 공통점은 있다.

범여권의 딜레마는 앞서 말했듯 참여정부 그 자체다. 열린우리당은 경제정책을 한나라당처럼 수행한 후 여전히 서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말해야 하는 처지인데, 덕분에 서민들은 '진짜 서민정당'이 나타나도 믿지 않고 이명박에게 표를 줄만큼 냉소적으로 변해버렸다. 이제 이 냉소주의를 타파할 유일한 방법은 열린우리당의 원래의 임무를 수행할 어떤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것이다. 최장집 교수가 요구하고, 임종인 의원이 의도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일 게다. 그러나 비록 그것이 정답이라 하더라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열린우리당은 자신의 노선을 바꿀 의사가 없다. 그게 제일 옳다고 믿고 있으니까. (다시 한번 열린우리당적 개혁의 준칙, "한나라당처럼 행동하고, 조선일보에게 욕먹어라."를 상기하라.)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열린우리당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세력과는 연대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참여정부 인사들이 한나라당 경선에 참가한다면 범여권의 희망은 무럭무럭 자라난다. 하지만 결코 그런 일이 벌어질 리는 없다.

그런 열린우리당을 서민적인 견지에서 질타해야 할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원한감정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그것 때문에 한나라당과 공조한 탄핵이라는 최악의 정치행위를 저질러놓고서도 말이다. 아마도 민주당은, 그 지지자들의 희망과는 달리, 김대중이라는 걸출한 정치인의 존재를 빼놓고 나면 호남 토호들의 정당에 불과했던 것 같다. 그들 역시 서민층을 대변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주제에, 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