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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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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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소주의'에 해당되는 글 13건

  1. 2008/06/06
    [씨네21/유토디토] 누가 10대와 20대를 분리하는가 (19)
  2. 2008/05/25
    이명박이 탄핵당할 확률... (1)
  3. 2008/05/16
    [씨네21/유토디토] 광우병 논란
  4. 2008/04/27
    [씨네21/유토디토] 운동 망해도, 나 안 망한다 (3)
  5. 2008/04/19
    그래프 오타쿠의 정치평론 (18)
  6. 2008/04/15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선거 결과
  7. 2008/04/14
    [대학내일] 친박연대 vs 진보신당 (1)
  8. 2008/04/08
    진보신당은 대안이 아니다? 누구 마음대로? (9)
  9. 2008/03/01
    디 워는 어떻게 ‘애국주의 동맹’을 해체시켰나? (17)
  10. 2008/02/12
    그곳에 숭례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15)

정국이 너무 빨리 변하죠. 가두시위가 시작되고, 20대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이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원고는 잡지가 나간지 2주 후에 인터넷판으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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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 나온 10대들을 상찬하다가 “그런데 20대는…”이라고 비판하는 게 요즘 유행인 모양이다. 386들의 술자리에서 무럭무럭 자란 풍문은 실체없는 허깨비마냥 떠돌더니 급기야 “십대는 촛불시위하는데 대학생들은 원더걸스에 열광해”류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원더걸스에 열광한 대학생들 중에선 촛불시위에 나간 사람이 없었을까? 촛불시위에 나선 십대 중에선 연예인에 열광한 친구들이 없었을까? 이 정도 수준의 보편화(?)가 합당하다면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이런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촛불시위에 나가고 있는데 자신은 술을 마시며 20대나 씹고 있는 어느 386 남성.’ 제발 이렇게 유치하게 놀지 말았으면 좋겠다.


10대들의 목소리는 광우병 정국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밀착한 문제에서 정치성을 느꼈고, 그 모든 것을 지금 현장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그들은 광우병 문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들은 쇠고기 문제에서 폭발한 것이었을까? 이 문제가 ‘약한 고리’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도 장학사와 교사들이 그들을 잡으려고 거리를 헤매고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들은 오히려 교육정책에 대해 당사자인 십대가 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선언을 더 불편하게 받아들였을 거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부모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전략적 목표를 타격했다.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소녀들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기성세대들이 희희낙락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치적이라고 상찬받는 그 청소년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그 부조리에 저항할 권리 역시 철저하게 억압받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나는 그들이 거리로 나올 권리를 지켜주고, 그들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10대와 20대 모두를 타자화시키는 10대 예찬론은 그런 의무를 다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 예찬이 왠지 386세대의 정치적 무기력을 숨기기 위한 자조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설령 이명박이 탄핵되더라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그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그들은 10대에게서 희망을 보아야 할 것이다. 10대가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든 말이다.


‘20대의 보수성’이란 말은 ‘20대의 원자화’라는 표현으로 고쳐져야 한다. 학부제 실시 이후 혼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은 청소년들만큼도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2002년과 2004년의 촛불시위에 거리로 나온 경험이 있다. 이번에 그들이 시큰둥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바람과 참여에 정치권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느꼈고, 그리하여 급속하게 냉소주의로 돌아섰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정말이지 참여정부의 공로가 혁혁했다. 이런 ‘과거’를 상기한다면, 슬프게도 오늘 거리로 나온 10대들이 훗날 그런 20대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물론 나도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그때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오늘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10대를 예찬하고 있지 않을까? 또 한번 20대들을 안주로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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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디시 스동갤(스타크래프트 동영상 갤러리)에서 만든 것이라 한다.

노무현은 한국 국민들을 정치에 대한 냉소주의자로 만들었고,

이명박은 그 국민들에게 다시 정치성을 돌려줬다.


작성일 : 08-05-25 12:02
마재의 3.3혁명이 생각나는 2.69%의 확률
 글쓴이 : 워이  (121.♡.40.117)
조회 : 143  



유머게시판 펌 출처 : 스동겔


칠성 08-05-25 12:09
 222.♡.167.14 답변 삭제  
퍼가게 링크 좀 굽신굽신 ㅋ
ManS 08-05-25 12:43
 220.♡.196.158 답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JN 08-05-25 13:18
 58.♡.169.197 답변  
내가 긁어온거네 ㄲㄲ


원본도 한번 봐줘야겠죠? ㅋㅋㅋㅋ



GomTV MSL 결승전 마재윤 vs 김택용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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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 너무 뜨거웠던 사안인지라, 잡지에 실린지 2주나 지나 인터넷판에 올라온 내용을 올리려니 뭔가 굉장히 옛날 글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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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명박 정부에 억울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들의 말대로 이 협상은 참여정부에서 수립한 일정을 일관성있게 중단없이 진행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도시는 계승 안 하겠다는 그들이 자신들의 판단에 대한 책임을 참여정부에 떠넘긴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 논변으론 누리꾼이 참여정부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는 있어도 현 정부의 책임을 덜 수는 없다.


광우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조소하는 이들의 말처럼 협상 반대론자들이 유포하는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조건없는 수입의 정당성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피뢰침을 세워도 재수없는 사람은 벼락에 맞아 죽고, 피뢰침을 안 세워도 대부분의 사람은 벼락과 상관없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이 경우 확률을 계산하여 피뢰침 건립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것이 ‘과학적인’ 태도이겠는가. 물론 한국인들의 안전불감증은 일상화되어 있고 그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평소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이 경우 해야 할 말은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안전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해보자’가 되어야지 ‘너희들은 원래 안전을 신경쓰지 않던 민족인데 광우병이 무슨 대수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인체에 유해한 것인지 확실히 검증되지도 않았던 쓰레기 만두에 흥분하던 국민들이 이 사안에 이만큼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해괴한 일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책적인 접근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하나는 광우병이라는 위험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동물성 사료 사용 금지가 전제되어야 하고, 쇠고기를 어떻게 검역할 것인지 그 방책이 논의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원칙은 한우에게나 수입산 쇠고기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적어도 국민의 건강에 관한 문제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내준다는 식의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나름의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황망하게도 ‘다 내주었다’는 비판이 ‘정치논리’라고 반박했지만, 이 문제를 아예 정치적인 것으로 몰고 가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다.


다른 하나는 이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간주했을 때, 얼마나 타당한 셈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쇠고기 협상이 가장 비난받는 이유는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냉소주의자들의 말대로 정말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심대하게 과장되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그 심대한 과장의 베일을 우리가 애써 벗겨줘야 하는가. 그 과장된 공포의 내용을 미국쪽에 들이밀고, 쇠고기 수입 제한을 푸는 대가로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 ‘국익’을 추구하는 ‘실용주의’적인 자세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얻어낸 것이라고는 한-미 관계에 대한 추상적인 합의와 한-미 FTA 의회 비준에 대한 막연한 동의 정도밖에 없다. 그 동의가 얼마나 효력을 가질지도 미지수지만, 나처럼 한-미 FTA 자체가 ‘국익’에 어긋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이 협상이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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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기간 동안 진보신당의 임시 당직자가 되어야 했던 어느 분의 얘기다. “할머니와 통화를 하는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절대로 그 당에 얽혀들지 마라. 그 당에는 희망이 없어요, 희망이. 할머니 말 허투루 듣지 말고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뭐라 대답할 말이 없었어요.” 그런데 그분은 정규직 회사원은 아니지만 그럭저럭 안정적인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이다. 무급으로 일하는 동안 손해가 없진 않겠지만, 잠깐 선거운동에 참여했다고 미래에 일감이 줄어들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도 ‘희망이 없는 당’에 얽혀들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희망이 없는 당에 얽혀들면, 내 인생도 희망이 없어지나?


시절이 좋아져서 무슨 운동에 잘못 참여한다는 이유만으로 끌려갈 상황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운동을 두려워한다. 하긴 자신의 정치적 지향과 상관없이 ‘될 사람’을 찍는 쪽이 마음에 편하다는 사람도 많은 나라이니 오죽할까. 다양성에 대한 정치적인 억압은 사라졌을지 몰라도 문화적인 억압은 여전하다. 문제는 실제로 정치적 탄압을 경험한 기성세대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서도 이러한 억압의 기제가 강고하다는 데 있다. 언제나 우리가 희망의 근거를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운 ‘다음 세대’로부터 찾아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물론 그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들도 그렇게 교육받았고, 그렇게 생각할 만한 환경에 처해 있으니까. 온 가족이 힘을 합쳐 아이를 지원해주는 무한경쟁의 청소년기를 거친 뒤, ‘좋은 시절’과는 거리가 먼 대학으로 들어온다. 학점에 토익에 기업의 인턴 경험까지 관리해도 취직이 안 되는 이들에게 대학 생활은 그저 고통스러웠던 고등학교 시절의 연장일 뿐이다. 남들 사는 것처럼 안 살면 곧바로 인생의 낙오자가 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래서 <88만원 세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토익책을 덮고 짱돌을 던져라”고 주문하기엔 무리가 있다. 영어가 필요없는 직장에서도 토익점수 900을 요구하는 한국사회에서 토익책을 덮으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한경쟁 속에서 연대성을 체험해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짱돌을 들라고 말하면 어떻게 되는 걸까. 그들은 짱돌이 무엇인지는 알까. 혼자서 우두커니 골목길에서 짱돌을 던질 수도 없는데.


하지만 토익책을 덮지 않고도 정치적 행동은 할 수 있다. 아무리 인생이 팍팍해도 여가시간을 전혀 즐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만일 여가시간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 그에게 정치적 행동을 권유하겠는가). 드라마도 보고, 애니메이션도 보고, 만화책도 본다. 약간의 정치적 관심을 가지고, 어떤 활동의 지지자가 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 리 없다.


당연히 비용이 조금은 든다. 나는 진보신당에 입당하면서 매달 당비 1만원과 비정규직 연대기금 1만원을 내기로 했고, 창당특별기금 10만원을 별도로 냈다. 창당특별기금은 선택 사항이라 하여 친구들에게 입당을 권유할 때는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국고보조금도 전혀 받지 못하는 이 신생정당이 자금이 풍족할 리가 없는지라 중앙당에서도 지역구 선본에서도 특별당비를 부탁하는 연락이 왔지만, 차마 그것까지 내지는 못했다. 시간과 체력이 허용하는 만큼의 미약한 자원봉사를 했고, 주소록에 저장되어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당투표 지지 부탁 문자를 보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았다. 그리고 사실은 이만큼 하지 않아도 가능한 것이 정당 참여다.


요즈음에 ‘먹히는’ 언어로 바꾸어보자면, 운동은 재테크처럼 생각해도 된다. 원금 보전을 하기 힘들 만큼 리스크가 크지만, 잘될 경우 많은 것을 바꾸어낼 수 있는 그런 재테크 말이다. 다른 투자가 그렇듯 운동에도 장기투자가 필요하다. 미국 주식의 역사를 보면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주식이 오른다. 점쟁이가 아닌 이상 그 기간을 알 수 없으니, 확률적으로 볼 때 그 기간에 주식을 보유하여 이득을 챙긴 사람은 장기투자자들뿐이었다고 한다. 운동 역시 그렇다. 대개의 운동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한 운동에 힘을 빼고 환멸을 느끼며 그만둬버린다면, 단타매매에 올인했다가 손을 털고 사라지는 어리석은 개미투자자들과 비슷한 꼴이 되는 것이다.


운동이 망하면 참여자도 망해야 한다고 믿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는 순혈주의 운동권들이고, 다른 하나는 냉소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운동이 망했는데도 참여자들이 살아남아 다른 운동으로 갈아타는 꼴을 보기 싫어한다. 제 살 궁리 찾아가면서 적당히 운동에 힘을 보태는 것은 모순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모순적인(?) 행위의 결집 속에서만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다. 운동 망해도, 나 안 망한다. 그런데 뭐가 두렵겠는가.

글 : 한윤형 (인터넷 논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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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만족스러운 선거 결과 (아이추판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선거 결과 (한윤형)
민주화 이후 투표율 경향 (아이추판다)
'단호한 글쓰기'로 진실을 호도하기 (한윤형)
민주화 이후 투표율 경향(보론) (아이추판다)
결국은 실력문제 (아이추판다)
재미로 보는 국가별 투표율 추세 (아이추판다)



아이추판다 님의 최초의 글은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적당한 냉소를 담고 있었는데, 사실 그런 것에 내가 신경쓸 바는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문제는 결론이 아니라 논거인 바, 그 논거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얘기해 볼 수도 있겠다. 가령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잘 작동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한 논거로 프랑스의 국민전선과 같은 극우정당이 설치고 다니는 건 아니라는 사실과,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던 하나의 정책(영어몰입교육)이 후퇴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이 논거들이 적절한지 부적절한지를 따지려면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나는 이 두 가지를 그의 글의 주요한 논거로 생각하고 반론을 했다. 재미있는 것은 막상 논쟁이 시작되자 지나가다가 언급되었던 것 같았던 투표율 문제가 논의의 중심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실 우리가 민주주의 얘기한다고, 혹은 얘기 안 한다고 한국 민주주의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니다.) 왜 아이추판다 님에게는 투표율 문제가 논의의 중심이 되었을까, 라는 사실이 된다. 이건 단지 주어진 현상만으로 추론할 수 있는 이야긴데, 간단히 얘기하자면 “그래야 그래프를 그릴 수 있으니까”가 하나의 대답이 된다. 아이추판다 님이나 그의 글에 환호하는 어떤 이들의 입장에서는, 프랑스 극우전선의 정체성과 같은 답이 안 나오는 이야기를 해봤자 재미없다. 그들에겐 이 문제에 큰 관련이 있든 없든 그래프나 하나 그려놓고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언제나 ‘과학적인’ 일이다.


하나의 진술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피려면, 그것에 반대하는 명제가 정확히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빠르다. 즉, 아이추판다 님이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려면, “그가 생각하기에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은 무엇일까?”라고 물어보면 된다. 그런데 거기에 대해 우리는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일단 그가 쿠데타가 일어나거나 실질적인 독재가 일어나는 상황을 ‘민주주의’라 부르진 않을 거라는 초보적인 견해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건 형식적 기준이니까 말을 하나마나다. 그런 걸 언급하려면 “이것은 민주주의다.”라고 말하지, ‘정상적으로’나 ‘잘’과 같은 어구를 따로 붙이지는 않는다. ‘프랑스 국민전선같은 극우정당이 설치지 않는다.’는 기준을 넣어 볼 수 있지만, 도대체 그게 어떤 정당인지에 대해서도 그는 설명하지 않기 때문에 역시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다. 그래프에 대해선 시시콜콜한 설명도 마다하지 않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논의를 위한 최소한의 정의도 내리지 않는 것이 아이추판다 님이다.


그럼 이제 뭐가 남았지? 아, 하나의 정치세력이 ‘삽질’을 했을 때 심판을 받느냐 안 받느냐. 근데 이것도 참 자의적이다. 내 기준에서 자의적이라는 얘기는 아니고 그래프 오타쿠의 입장에서 자의적이란 말이다. 이 말이 내 기준에서라도 다소나마 의미를 가지려면 그 준칙이 구체적인 현실에서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봐야 할 것 같은데, 이런 작업은 그래프 오타쿠에겐 매우 귀찮은 작업이므로 당연히 생략된다. 모든 논거를 버리고 그래프를 그릴 수 있는 투표율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이 언제나 그가 해야 할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다.


기호태 님의 트랙백을 받아 보고 읽어 보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 얘기를 왜 나한테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진보신당의 어느 당직자가 투표율이 낮아서 자기들이 망했다고 주장했던가? 기호태 님의 말대로 사실 투표율이 낮아서 그나마 진보신당의 득표율이 높았다고 볼 수도 있다. 투표율에 대한 개탄은 주로 자신들이 개혁적이라고 생각하는 몇몇 블로거들이 했던 것 같은데, 이 개탄이 한나라당 세력의 성공(?)에 대한 규탄과 맞물려 있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들의 심정과는 별도로 따로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얘기다. 낮은 투표율에 대한 규탄이 정당한지 부당한지는 따로 얘기해야 할 문제지,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지 없는지는 또 다른 얘기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이 1) 투표율이 낮은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의 징후다. 라고 말할 수도 있고, 동시에 2) 한나라당의 성공은 민주주의의 위기의 징후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3) 투표율이 낮아서 한나라당이 이긴 거다. 라고 말했다고는 볼 수 없다. 88만원 세대 문제에 대한 귀찮은 잡무를 보고 있는 나같은 사람에게 “너희들보단 우석훈이 올바르다.”고 얘기하니 이것도 좀 웃긴 얘기이긴 하지만, 그거야 모르고 그랬을 테니 그냥 넘어가자.


아이추판다 님의 ‘실력론’ 역시 노정태의 주장을 “진보신당이 망한 건 민주주의의 위기다.”로 치환시키고 “위기가 아니라, 실력 때문이야.”라고 훈수를 두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에 대해 언급하다가 진보신당의 성패에 대해 언급할 수는 있겠는데, 그렇더라도 양자는 전혀 다른 문제가 아닌가? 왜 거기에 대해서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걸까? 이 질문에 대해서도 '그래야 얘기하기가 편하니까'라는 편리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 어차피 그가 고차원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 대답에서 만족하기 바란다. 답변 내용도 재미있다. 역시 그는 그래프를 그릴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가 말하는 실력이 무엇인지가 전혀 정의되어 있지 않다.


정치의 영역에서 실력이라 하면 간단하게 1) 권력을 획득하는 능력과 2) 권력을 운용하는 능력을 구별할 수 있다. 그가 1)을 얘기한 것이라면 진보신당의 패인은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자기 PR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라 말할 수 있고 누구나 다 아는 얘기다. 하나마나한 얘기도 정확히 그렇게 언급하면 그나마 얘기가 되는데, 이를 두루뭉술하게 ‘실력’이란 단어로 포장한 것은 자기 정당성을 좀더 추상적인 차원에서 강변하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들으면, 그는 1)이 아니라 분명 2)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용어를 대충 쓰는 이들이 언제나 의도적으로 범하는 실수다. 


권력을 운용하는 능력에 대해 말한다면, 정치적 경험이 부족한 진보신당이란 당이 한나라당이나 통합민주당에 비해 그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은 인정된다. 가령 당장에 진보신당이 정권을 잡는다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고 혼란만 가중될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무슨 SF소설 쓰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가정을 ‘0 아니면 100’으로 해야 할 필요는 없으니 현실적인 개연성에 맞춰 ‘국회의원 한 두명’을 언급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노회찬이나 심상정은 17대 국회에서 가장 유능한 (그렇다고 사람들이 인정하는) 국회의원에 속했다. 그렇게 본다면 그들은 적어도 그 측면에서는 ‘실력’이 있는 거고 있는데도 떨어진 거다. 그래서 도대체 그가 말하는 실력이 뭔지 우리는 잘 알 수가 없게 되는데, 되게 재미있는 것은 그가 ‘떨어진 너희들은 실력이 없어서 그래.’라고 말해놓고 ‘붙은 애들도 실력이 없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그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말이 됐든 막걸리가 됐든 그래프를 그릴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제 꼴리는 대로 내뱉어도 된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이념이다. 거기에 대해 누가 뭐라고 그러면 다시 그래프 하나 그려놓고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고 말하면 될 일이다.


투표율 그래프가 튀어나오는 순간 이 논쟁(?)은 코미디의 세계로 워프했다. 이를테면 그의 그래프를 보고 “아, 한국 민주주의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군.”이라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2012년 총선에서 투표율이 40%쯤 나오고 자유선진당이 의회 다수당이 되더라도,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실정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안세력이 없어서 자유선진당을 찍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우리 그래프 오타쿠의 회귀분석 강의를 지겹게 들어야 할 테니까. 투표율이 비슷한 비율로 떨어지고 있으니까 누구누구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말해서는 안 된다. 모름지기 과학적인 인간이라면 투표를 안 한 60%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되고, 2008년 총선에서는 투표를 했다가 2012년 총선에서는 투표를 안 한 7%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어서’ 투표를 안 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게 과학적인 인식이다.


2016년 총선에서 투표율이 33%쯤 나오고 친박연대 Park-Friendly Fellowship 가 의회다수당이 되더라도 우리는 “자유선진당의 실정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안세력이 없어서 친박원정대를 찍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4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그래프 오타쿠의 회귀분석 강의를 또 들어야 한다. 투표율이 비슷한 비율로 떨어지고 있으니까 누구누구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모름지기 과학적인 인간이라면 투표를 안 한 67%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봐서는 안 되고, 2012년 총선에서는 투표를 했다가 2016년 총선에서는 투표를 안 한 7%의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성숙한 민주주의 때문에’ 투표를 안 했다고 판단해야 한다. 그게 과학적인 인식이다. 내 생각에 투표율이 이쯤 낮아지면 2020년에는 허경영 주니어가 파시즘 정당을 하나 만들어 성공을 거둘 듯도 싶지만, 아이추판다 님의 생각에는 그런 게 진정한 의회민주주의다. 파시즘 세력이 헌법을 고치면 그때는 정의상으로도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겠지만, 그렇게 항의해봤자 그래프 오타쿠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저 쿨하게 “그게 바로 너희들이 좋아하는 의회민주주의라능.”이라고 냉소하면 된다. 그리고 아마 뭔가 다른 그래프를 그리고 있을 거다.


그래프만이 진리를 말해준다고 생각하는 건 그들의 자유다. 하지만 신기한 건 그들이 그래프 이외의 다른 ‘말’도 곧잘 내뱉는다는 것이다. 가령 "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국가일 수록 투표율이 낮은데는 누굴 뽑아봐야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는데는 이견이 없다."라는 식의 주장 말이다. 왜 자신의 신념을 배반하는 짓을 곧잘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질문에 대해 진지하게 반응하지 마시라. 이 모든 의문 역시 ‘재미로’ 제기된 것이다. 사실 오타쿠의 모든 글은 재미로 읽어야 하므로, 그 글에 대한 의문 역시 재미로만 제기되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나 오타쿠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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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만족스러운 선거 결과

총선과 연이은 중간고사 탓에 라캉 논쟁을 오랫동안 버려두고 있는 탓에 (아직 라캉에 대한 아이추판다 님의 글들을 제대로 다 읽지도 못했다.) 아이추판다 님의 이 글에 굳이 반응하지 않았는데, 노정태가 반박문을 썼다. http://basil83.blogspot.com/2008/04/blog-post_14.html  하지만 노정태의 글은 자신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어서 아이추판다 님의 글에 대한 반박이 명료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말이 나온 김에 나 역시 이 글에 대해 코멘트 해보려고 한다.


먼저 나는 “역사상 등장했던 민주주의는 언제나 시궁창이었는데 그나마 고여서 썩는 물보다는 흐르는 시궁창이 낫기 때문에 민주주의를 하는 것이다. 항상 이상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면 그건 이미 인간계의 일이 아니다.”라는 아이추판다 님의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권력이 민주당에서 한나라당으로 넘어가지 않는것이야말로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딘가 고장나 있다는 확실한 증거다.”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보더라도 정상적으로 잘 작동하고 있다.”는 진술이다. 그는 이 진술의 근거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내용적 근거로, “프랑스의 국민전선 같은 극우정당이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기능에 대한 것으로 “야심차게 추진한 영어몰입교육이 '오해'가 되어 스러지는 과정은 적어도 한국의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나는 이 두 가지 근거가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극우파가 가장 자유롭게 활동하는 편에 속한다. 워낙에 '똘레랑스' 정신이 강하기도 하고, 독일처럼 극우파들에게 심각하게 데인 적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정당들이 ‘프랑스의 국민전선 같은 극우정당’을 비웃을 만큼의 수준에 이르는지는 모르겠다. 르펜의 국민전선은 “이민의 중지, 노동조합의 권리 축소, 경찰 지원, 테러리즘과 마약부정거래자에 대한 사형 실시, 해외 영토에 대한 프랑스 지위의 유지, 국가의 경제제한 폐지” 등을 주창하여 유럽 사회를 경악시켰다. 단일민족 국가를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머리에 ‘이민’이란 개념이 없고 대한민국엔 해외 영토가 없다는 사실을 빼고 생각하면, 이 정도 얘기는 우리나라에선 네이버 리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나의 경우 한국처럼 이념 분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한나라당은 극우정당이고 민주당은 보수정당이다.”라는 식의 진술은 나이브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많은 서민들은 한 입에서 극우적인 얘기와 좌익적인 얘기를 서슴없이 내뱉는다. 엠네스티 회원인 아는 형이 지난 대선에 문국현 후보 지지 모임에 나갔다가, ‘불법체류자 추방’을 단호하게 주장하는 참석자와 그 참석자에 동조하는 다수 회원들을 보고 황당했다는 말을 전한 적이 있다. 이런 문제나 사형제에 대한 인식 수준을 생각해 보면 한국인들의 인권 감수성은 서구 민주주의 국가의 그것에 훨씬 뒤쳐져 있다. 물론 그것과 민주주의 기능은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는데, 그러려면 ‘프랑스의 국민전선 같은 극우정당’의 사례를 제시하지 말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엔 꽤 많은 극우파들이 국회의원의 명패를 달고 설치고 다닌다. 이 점을 부인하기는 힘들 것이다.


다음으로 아이추판다 님이 민주주의의 기능이 작동하고 있다는 근거로 제시한 영어몰입교육의 사례를 살펴보자. 물론 새정부의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태도는 포퓰리즘이란 말로 비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책이 좌절된 것은 민주주의의 기능이었다는 식의 서술까지는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문제는 이런 단편적인 사례는 심지어 남미의 위임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추판다 님은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례를 들어 "이래도 이게 정상이냐?"고 되물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민주주의로서' 건강하고 정상적이라는 말이다.”라고 말하며 위에서 언급한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을 피력하기 시작하는데, 이 얘기가 이 맥락에서 나오는 것은 반칙이다. 이 문제를 논하려면 당연히 최근의 사례들의 다발에서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있는지를 다져야 한다.


단적으로 말해 나는 다음과 같은 예시를 들겠다. 한나라당은 국민의 심판이 두려워 대운하를 공약에서 삭제했지만, 총선 후에는 여전히 그것을 추진하려고 의도하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이미 총선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졌다. 지난 대선부터 한나라당 소속 정치인들은 TV 토론 등의 검증 절차를 회피하고 있다. TV 토론 시청률이 낮아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TV 토론을 기피하는 데도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다. (적어도 후보들을 TV 토론의 장으로 끌어낼만큼 많지는 않다.) 이런 현상은 서구 사회와의 비교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맥락에 비추어 봐도 문제가 있다. 몇년 전에 비해서도 퇴보한 것이다. 실제로 이번 총선에선 모든 정당이 지난 총선에 비해 한달 정도 늦은 시기에야 공약의 제출을 완료했다고 한다. 즉 이번 선거는 정책에 대한 평가의 장이 되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평가를 회피하려는 정치세력들의 반칙이 규탄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을 눈앞에 두고 민주주의가 잘 기능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아이추판다 님은민주주의가 잘 정착된 국가일수록 투표율이 낮은데는 누굴 뽑아봐야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투표율이 낮다는 사실에서 민주주의가 잘 정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역으로 추론하는 이 논법은 옳지 않다. 같은 논법대로라면 우리는 한국의 노령인구 비율을 두고 이 나라의 국민소득이 적어도 3만불은 넘을 것이라는 역산을 할 수 있다. 물론 이 계산은 사실이 아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평균수명이 높아지고 출산율은 낮아져서 노령인구가 증가하게 되지만, 한국의 경우 양육과 육아에 대한 사회의 뒷받침이 없기 때문에 출산율이 다른 나라보다 더 빨리 떨어져서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나는 투표율의 경우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한국 사회에선 누구를 뽑든 사회가 별로 변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투표를 안 하는 게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지난번에 대통령이 된 어느 말썽꾼은 한미 FTA라는 무지막지하게 파급력이 큰 정책을 밀어부쳤고 이번에 대통령이 된 말썽꾼은 대운하를 파겠다고 난리다.


언론매체에 보도된 부분만 보더라도 일반 서민들이 정치에 대해 요구하는 것은 매우 많다.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TV 광고에 나왔던 국밥집 할머니를 생각해 보라. 그 정도 목소리를 듣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요구하는 것이 많지만, 요구를 들어줄 것 같지 않기 때문에 냉소하게 되는 이 현상은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기능이기는커녕 민주주의의 위기다. 물론 이런 상황은 양당제 국가의 한축을 담당하던 정당 하나가 우여곡절 끝에 결코 대안으로 선택받지 못할 지경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한쪽이 바지에 똥을 싸고 있으니 한나라당은 민주주의의 정상적인 기능을 마음껏 방해하고도 다수당이 될 수 있다. 투표율이 낮아진다 해도 그들에겐 큰 문제가 아니다.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과는 달리, 정당이란 조직은 무조건 많은 지지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다만 상대편보다 조금 더 많은 지지자면 충분하다. 


통합민주당이 대안이 아니며, 대안이 될 수도 없다는 사실은 명백했기 때문에 한나라당의 과반의석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선거 결과”다. 그러나 통합민주당의 몰락은 한나라당에 대한 새로운 파트너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서민들이 그것을 발견해 내지 못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결코 “대단히 만족스러운 선거 결과”는 아니다. 이게 만족스럽다면 이명박 정권이 남은 기간 무언가를 말아먹었을 때 다음 선거에서 그저 지금과 같은 수준의 통합민주당이나, 친박연대 혹은 자유선진당이 ‘선택’받는 것을 보고도 “대단히 만족스러운 선거 결과”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의 정국이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런 현실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내가 총선 정국에서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실책에 대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히 민주주의의 기능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민주주의의 기능의 전부는 아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민주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 최장집의 (그리고 굳이 최장집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다수 정치학자들이 동의할 수밖에 없을) 통찰은 시민들의 문제제기가 정치권에 받아들여지는 시스템이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를 문제삼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기능의 면에서 보더라도 아직 한국 민주주의의 수준은 미약하다 할 것이다. 의료보험은 우리보다 뒤지지만, 가령 미국 시민들의 경우만 해도 평균적으로 볼 때 (계층에 따라 편차가 크긴 하다.) 자신의 권리를 지킬 제도적인 방책들을 한국인들보다 훨씬 많이 가지고 있다. 아이추판다 님의 견해는 사실상 최장집보다는 “민주화의 완성”을 이야기한 중앙일보나 홍준표의 견해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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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연대 vs 진보신당 416호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도대체 친박연대를 어떻게 영어로 옮길지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결론은 Park-Friendly Fellowship. 도저히 정치집단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걸 보니, 아주 정확한 번역이다.


친박연대라는 상징


친박연대는 한마디로 정치가 정치로 작동하지 않는 어떤 광경을 상징한다. 사실 애초에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공천혁명’이란 것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지향은 온데간데없이, 실정법 위반 여부만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기준도 수용하지 못한 공천을 받지 못한 인사들이 무소속으로 변신해 당을 뛰쳐나왔다. 밥그릇 싸움 이외의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는 정국이 만들어졌다. 차이를 구별하기 힘든 정치세력 간의 쟁투가 치열하게 펼쳐졌는데, 특히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세 집단의 박근혜에 대한 집단구애 퍼포먼스는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페넬로페가 오딧세우스 기다리듯 꿈쩍 않고 항의 농성을 계속한 박근혜의 근성(?)도 함께. 이 의미 없는 싸움을 재미있게 관전하기 위해 한국 사람들은 정치공학을 좋아하게 되나 보다.


거여를 견제하겠다는 통합민주당도 범 한나라당계와 구별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손학규 대표는 군소정당들의 대운하 반대 연대 제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동작을에서 전국 최대의 빅매치를 펼친 정몽준, 정동영 두 후보는 둘 다 똑같이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다. 한쪽은 현임 서울시장에게 동의를 구했다고 말하여 선거법 위반 조사를 받았고, 다른 한쪽은 서울시장이 (민주당 인사로?) 바뀌면 뉴타운 공약을 추진하겠다는 멋쩍은 소설을 쓰고 있었다. 이런 변별력 없는 테스트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기권율이 높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진보신당



한편으론 친박연대라는 상징의 대극에 진보신당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아직 총선 결과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진보신당의 선거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민주주의 이후에도 국가의 경제정책은 서민을 위하지 않았다. 특히 참여정부는 ‘유연한 진보’의 이름으로 ‘(대)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진보세력이 경제를 망쳤다는 편견을 유포시켰다. 그 와중에 진가를 발휘해야 했을 민주노동당 역시 민생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같은 것에 올인했다. 그 결과가 냉소주의였고,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내홍을 겪다가 17대 총선 기간에 이름을 널리 알린 노회찬 심상정 등이 나와 새로이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분당은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2007년 대선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 등 민생과 전혀 상관없는 공약을 내세우던 민주노동당이 민생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반면 그 민생공약들을 만든 이들이 탈당하여 만든 진보신당은 인지도가 너무 낮아 홍보에 곤란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수도권에서 선전했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두 개의 지역구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있지만,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유권자의 1/3에 해당하는 도시에서 이룬 성과였다. 반면 수도권의 지지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들을 포괄하는 여러 종류의 서민들일 것이다. 비록 아직 정당지지율로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서민의 이해관계를 노회찬, 심상정 두 후보에게 투영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수많은 지식인과 연예인들이 이 두 사람을 지지한 것 역시 그렇다. 이 인물에 대한 지지를 어떻게 정당정치 안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가 앞으로의 진보신당의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 정치를 향한 그들의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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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은 대안이 아니다 (이녁 님)


이글루스 유저가 아닌지라 누군가의 제보에 의해 글을 좀 늦게 보았다. 사실은 아직도 이런 논변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는 과거처럼 '비판적 지지'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정국이다.


이녁 님은 대한민국은 우파국가이기 때문에 우파를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논변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체지방 과다라면, 그는 오늘 저녁 식단도 햄버거를 선택해야 하는 가보다. 지금 <슈퍼 사이즈 미> 찍으시나? 과도한 우파국가라면 좌파도 좀 있어야 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상식적이다. 이 상식을 뒤틀기 위해 이녁 님은 묘한 곡예를 시작한다. 그 곡예가 얼마나 타당하지 않은지는 이녁 님이 지적한 '시궁창 현실'을 같이 탐구하면서 말해보자.


진보신당은 노회찬 심상정 두 지역구가 당선되거나, 재수없으면 한 곳도 당선이 안 될 것이다. 맞다. 시궁창이다. 진보신당의 정당투표율은 3%를 넘지 못해 비례대표 의원을 당선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3% 턱걸이 한다고 해도 1-2석 확보가 고작일 것이다. 맞다. 시궁창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보신당의 예상의석수가 낮다는 '사실'에서 어떻게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냐는 거다.


반한나라당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 안 된다. 이녁 님의 글을 읽고 감명받은 누군가가 노회찬 심상정 두 지역구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를 찍는다고 치자. 그러면 그는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도와주게 된다. 이녁 님의 글을 읽고 감명받은 누군가가 정당 투표도 통합민주당에 던진다고 치자. 그런다고 반한나라당 세가 커지는가? 그렇지 않다. 정당투표는 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기 때문에 진보신당의 의석이 생긴다고 해서 한나라당의 의석이 늘어나지 않는다. 반한나라당 세력의 의석수는 (상황에 따라 한석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동일하게 유지된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걸까?


아니면 이런 얘기일까?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대립각을 세우는 부분, 즉 가령 대운하, 영어몰입교육,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같은 문제에서, 진보신당이 한나라당 편을 들지도 모른다는 얘기일까? 만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반한나라당 세가 흐트러진다는 주장이 실천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녁 님이라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으실 거다.


남은 것은 딱 하나, 진보신당과 그 지지자들(지식인을 포함해서)이 통합민주당 비판하는 것이 기분나쁘다는 것이다. 그게 냉소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이녁 님을 포함한 민주당 지지자들이 시궁창같은 현실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과반의석 저지는 애저녁에 물건너 갔는데도 진보신당 압박하는 게 무슨 의미 있느냐는 소리까진 안 하겠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는 평가가 늘어나고 냉소주의가 팽배한 이유를 조중동 등 수구언론의 공세와 좌파들의 비판에서(만)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2002년 참여정부는 분명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개혁을 바라는 이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2004년에는 탄핵 열풍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동반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후 열린우리당은 정체성을 잃고 흔들거렸다.


이명박 이전에 '실용주의' 운운했던 정동영 등만 집어서 말하는 게 아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가장 지지자들에게 어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지지자들도 인정하듯이, 그리고 널리 선전하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개혁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정치개혁을 첫번째 이슈로 생각한 나머지, 경제정책은 한나라당과 똑같아졌다. 임종인 의원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이회창 후보의 공약대로 움직였음을 지적한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가 임기 말에 이렇게 말했다. "경제는 누가 해도 똑같다."고. 지금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이렇게 말한다. "참여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써버려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이미 법인세 같은 걸 다 내려버려서 이명박 정부가 재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억지로 성장률 높이려고 대운하나 파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말로는 진보, 그것도 좌파들을 비난하면서 유연한 진보를 자처했다. 국가전체의 경제성장률은 나쁘지 않았지만, 서민경제는 어려워졌다. 서민경제 어렵게 만들면서 스스로를 진보라 자처하니 당연히 서민들은 진보가 나라말아먹은 줄 안다. 민주노동당이라도 다른 이슈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자주파가 잡고 있다 보니 열린우리당 따라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이슈에나 전 당력을 집중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누가 해도 똑같은 그 경제'의 기조를 벗어나는 다른 것을 체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놈이 안 되니 저놈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고, 거기서 좌절하면 또 급속히 실망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해봤자, 정치권력 바꿔봤자 나아지는 게 없더라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야말로 냉소주의를 불러온 것이다. 이게 참여정부 씹은 좌파지식인들 책임인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심히 싫어할 최장집 같은 사람이 (이 사람은 좌파가 아니다. 그냥 민주주의의 신봉자일 뿐이다.) 노회찬이나 심상정의 생환을 위해 유세장에까지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적어도 진보신당은 국가 권력이 서민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좌파고 우파고를 떠나서 이것이 핵심이다. 대운하 파서 경제 살리겠다는 야바위를 믿을 게 아니라면, 빈곤층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서구 사회의 좌우파는 주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싸운다. 어떻게 돕느냐를 가지고 싸우는 거지, 빈곤층은 죽게 냅두라는 그런 법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이 한미 FTA 추진해놓고 비전 2030으로 복지정책도 늘리고 있다고 말한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비전 2030이 그대로 진행될 수도 없었을 거라고 보지만, 이미 이명박 정권이 그 계획을 폐기했고 민주당이 그에 대해 별다른 반발도 안 하는 상황이다. 손학규 대표는 대운하 반대 회동을 하자고 해도 종종 파토를 놓는다. 이게 무슨 '반한나라당'을 하자는 태도인가?


진보신당이 냉소주의를 유포하고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오히려 진보신당이야말로 냉소주의를 주적으로 삼아 싸우고 있다. 내가 좌파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진보신당의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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