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블로그 이미지
이 모든 것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 a_hriman@hotmail.com
by 한윤형
Statistics Graph
  • 500,711Total hit
  • 460Today hit
  • 669Yesterday hit

'대학내일'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8/09/06
    [대학내일] 사회주의자와 국가보안법
  2. 2008/04/28
    [대학내일] 교육현장에 상륙한 ‘규제 완화’ 광풍 (3)
  3. 2008/04/14
    [대학내일] 친박연대 vs 진보신당 (1)
  4. 2008/03/03
    [대학내일] 새내기들을 위하여 (4)
  5. 2008/02/19
    [대학내일] 영어몰입 교육 생산적인 논의가 안 되는 이유는? (21)
  6. 2008/01/23
    [대학내일] 우려되는 외국인 혐오증 (1)
  7. 2007/12/26
    [대학내일] 교육정책 공공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8. 2007/11/28
    [대학내일] 삼성 공화국을 벗어나는 방법은?
  9. 2007/10/31
    [대학내일] 신정아 사건으로 본 언론윤리
  10. 2007/09/12
    [대학내일] 학벌 위조 사회를 바라보며
지난 8월 26일, 오세철 연세대 명예교수 등 사회주의노동자연합(사노련)의 운영위원 7명이 국가보안법 위반을 이유로 긴급 체포 되었다가 같은 달 28일 오후 법원의 구속 영장 기각으로 풀려났다. 오세철 교수가 체포되었을 때 사람들의 놀라움은 굉장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오세철 교수는 원래부터 사회주의자임을 커밍아웃했던 사람이고, 북한체제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비판을 아끼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군사정권도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를 잡아 가두지는 않았다.


오세철 교수의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는 어느 20대의 얘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당시 수강생들이 만일 이명박이 당선되면 교수님 같은 사회주의자는 더 어려워지는 게 아니냐고 말했을 때, 오세철 교수는 박근혜든 이명박이든 그 누가 되더라도 이젠 시대가 바뀐 만큼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오세철 교수의 생각이 틀렸고, 우리 사회가 지난 세월 이룬 것들은 정말 너무나 얄팍해서 최소한의 상식이든 도덕이든 기본적 권리든 다들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빼앗기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것이 그가 이 사건에 대한 놀라움을 표하는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법원은 이틀만에 경찰의 판단에 제동을 걸었다. 법원은 “사노련의 활동이 국가 존립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검경은 이 사실에 대해 승복하지 않았고, 영장 기각 사유를 면밀히 검토ㆍ보완해서 영장을 재청구할 방침이라고 한다.


이쯤에서 국가보안법이 어째서 악법인지 간단히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모든 생명체가 자기보존본능이 있는 것처럼, 모든 체제도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자 한다. 그것은 정당한 일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모든 것에 대한 자유를 허용하는 것 같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를 전복하려는 자유는 예외로 둔다. 그러므로 가령 다수결을 통해 민주주의 체제를 부인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아니한다. 또한 국가를 폭력적으로 전복하려고 시도 또는 모의하는 일도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뒤짚는 일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 이들 중 전자는 헌법에 의해, 후자는 형법의 내란죄나 내란음모죄 등을 통해 금지되고 처벌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법은 이미 국가를 보존할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오랜 세월 동안 이런 방책들 위에 서 있는, 정권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를 처벌하거나 정치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간첩사건을 일으킬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해외동포이던 시절 북한을 방문한 적이 있거나, 그저 조총련 단체와 접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사람을 ‘조직적인 간첩단’의 일원으로 만들 수 있던 마법의 장난감이었다. 이 장난감을 사람에게 적용하는 이들에게 우리는 두 가지 물음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그들은 진정으로 체제를 전복하려는 세력인가? 둘째, 설령 그들이 체제전복의 의사를 표시했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국가에 위해가 되는 세력인가? 친북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사노련 사건을 평가하려는 시각도 있지만 그건 ‘친북세력’을 주로 잡아가뒀던 국보법의 현실태를 용인하는 소극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차라리 “친북(親北)이든 아니든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활동은 모두 처벌대상이다.”라고 말하는 조선일보 사설의 시각이 국보법 옹호론자의 일관성을 담지한다. 우리가 반박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인 것이다.   


사노련의 문건에서는 혁명을 일으켜 국가를 뒤엎겠다는 얘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검찰은 그들이 입법 사법 행정 등 대한민국의 모든 체제를 부정하고 있다고 말한다. 조선일보 사설은 사노련 문건이 주장하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폭력혁명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한다. 이론의 여지가 있지만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사노련은 현실적으로 국가에 위해가 되는 세력인가? 유럽에서는 선거철이 되면 붉은 깃발을 들고 혁명을 하겠다고 거리로 뛰어나오는 청년들이 있다고 한다. 이런 친구들도 다 잡아가두어야 한다는 얘기일까? 친북세력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공기나 몇 번 흔들고 김정일 사진 보면서 눈물 흘리는 이들이 얼마나 국가에 위협이 된다고 잡아가두어야 하는 것일까? 조선일보 사설은 “법원은 과거 사회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문건을 배포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구속영장을 발부했고 재판에서는 유죄로 판결해왔다.”고 투덜댄다. 이게 그들이 생각하는 “국가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활동”에 대한 처벌이란 말인가? 그들은 진정 대한민국이 문건 몇 개에 허물어질 허약한 나라라고 생각하는 걸까? 쪽팔리게 설마 그런 나라에서 ‘보수’를 자칭하고 있는 걸까? 


영장기각으로 풀려난 오세철 교수는 이 사건을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로 보는 것에 반대하며 국보법을 철폐하지 못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과연 한나라당 당선을 두려워하지 않던 사회주의자답다. 여기서 굳이 따지자면, 국민의 정부는 원내에서 소수정당이었고, 참여정부는 ‘탄핵 역풍’으로 원내 다수당이 되었는데도 국보법 철폐에 실패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 중에서도 국보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오세철 교수의 지적처럼 한나라당의 문제를 넘어선다. 민주주의라는 체제의 탁월함은 통제될 수 있는 수준의 관용성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든 보수주의자들의 문제다. 그들은 구제불능의 겁쟁이거나, 손안에 있는 장난감을 넘기기 싫어하는 편의주의자다. 경찰이 사회주의자를 두려워해준다면 그건 나름대로 고마운 일이겠으나, 실은 그들은 촛불시위에 빨간 물을 들이기 위해 사노련을 체포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정말이지 편의주의의 극치라고 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0

- 교육현장에 상륙한 ‘규제 완화’ 광풍 418호


얼마 전 경제5단체가 지식경제부에 267개의 규제개혁 과제를 제출했다. 비정규직 사용기한 연장, 퇴직금제 폐지까진 그러려니 했건만,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봐도 숨이 턱 막힐 만한 요구가 즐비했다. 그중 하나가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벌칙규정 완화. 아니 성희롱 벌칙규정이 ‘이윤 추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한국 남자들은 성희롱하면서 일해야 생산성이 올라가나? 같은 남자로서 쪽팔려 죽겠다. 게다가 육아휴직제와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축소’를 주장하면서 그들은 ‘개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이렇게나 한국어를 오염시키니, 아무리 점잖게 말해도 ‘미쳐 날뛰는’ 수준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규제 완화’의 황당함 ●
     


그런데 정부가 직접 발표한 ‘학교 자율화 추진계획’이 정확히 이런 수준에서 ‘규제 완화’라는 어휘를 사용한다. 그 기업에 그 정부다. 가장 논란이 많은 ‘0교시 금지’ ‘강제/획일 보충수업 금지’ ‘우열반 금지’를 폐지하겠다는 발상은 차라리 교육철학의 차이일 거라고 이해해 줄 수 있다. 즉, 그들의 생각에는 공교육의 목적을 ‘입시’로 잡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 목적에 매진하는 것이 이상적인 교육정책의 길일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사교육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주장도, 그들의 희망적인 관측을 애써 추인하자면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다. 여기까지는 정부의 ‘ 선의’만은 이해하도록 노력해보자.


하지만 ‘촌지 안 주고 안 받기 운동’을 규제 철폐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그것은 무슨 이유인가. 교사들이 촌지를 받아도 좋다는 발상인가? ‘교복공동구매지침’ 폐지는 또 무슨 말인가. 교복회사가 학부모와 학생들에 대해 마구 폭리를 취해도 된다는 말일까? ‘어린이신문 단체구독 금지’ 폐지도 비슷하다. 그거 폐지 안 해서 불편(?)할 사람은 신문업자 밖에 없지 않나? 산업정책으로 나와도 욕을 먹을 얘기를 태연히 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특정 회사의 이윤율을 높여주는 게 ‘교육정책’의 역할이 되었을까. 아무리 ‘비즈니스 후렌들리’라도 교육정책 얘기할 때는 교육만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런 황당한 수준의 규제 완화 말고도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고 숭배하는 입시교육과 상관없는데도 철폐되는 ‘규제’들이 있다. ‘종교교육 교육과정 지도 철저 지침’ ‘전문계고(실업계고) 현장실습 운영 정상화 방안’ ‘초·중등학교 학교규칙 제정 인가 지침’ 등이 그것이다. 학생들에게 종교 예배를 강요하고 교리교육을 강제할 자유를 허하면 입시 경쟁력이 높아질까? 무분별하게 실업계 학생들을 기업으로 팔아넘기면? 교칙을 마음대로 제정할 자유를 허한다면? 이런 지침들은 자유롭게 입시경쟁을 할 권리를 침해하지도 않는다. 그것들은 입시가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학생들의 기본적인 인권이 함부로 침해받지 않는다는 사실이 교육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소중한 지침들이다. 그러니, 의미를 보는 사람들을 위해 그대로 남겨두기를 바란다. 제 2의 강의석을 보고 싶단 말인가.


다양성 없는 자율화? ●
     


자율화할 것이 있고, 안할 것이 있다. 자율화는 국가 주도의 획일적인 교육에 맞서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 도입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자율화에 무슨 다양성이 깃들어 있는가. 국가 주도의 평준화 교육에 대해 갖은 비난을 퍼부은 그들이 만들 학교 역시, 전국 어디를 가든 다 ‘자율적으로’ 비슷비슷할 것이다. 학교별로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면 오직 평균점수 뿐. 진지한 고민없이 ‘현장’에서 요구하는 규제 완화는 모두 실현시켜주겠다는 근시안적인 태도로 어떻게 교육정책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모든 규제를 차량통행을 막는 전봇대처럼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    


▶학생논단의 글은 본지와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Copyright 대학내일(naeilshot.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1 AND COMMENT 3
친박연대 vs 진보신당 416호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도대체 친박연대를 어떻게 영어로 옮길지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결론은 Park-Friendly Fellowship. 도저히 정치집단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걸 보니, 아주 정확한 번역이다.


친박연대라는 상징


친박연대는 한마디로 정치가 정치로 작동하지 않는 어떤 광경을 상징한다. 사실 애초에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공천혁명’이란 것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지향은 온데간데없이, 실정법 위반 여부만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기준도 수용하지 못한 공천을 받지 못한 인사들이 무소속으로 변신해 당을 뛰쳐나왔다. 밥그릇 싸움 이외의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는 정국이 만들어졌다. 차이를 구별하기 힘든 정치세력 간의 쟁투가 치열하게 펼쳐졌는데, 특히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세 집단의 박근혜에 대한 집단구애 퍼포먼스는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페넬로페가 오딧세우스 기다리듯 꿈쩍 않고 항의 농성을 계속한 박근혜의 근성(?)도 함께. 이 의미 없는 싸움을 재미있게 관전하기 위해 한국 사람들은 정치공학을 좋아하게 되나 보다.


거여를 견제하겠다는 통합민주당도 범 한나라당계와 구별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손학규 대표는 군소정당들의 대운하 반대 연대 제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동작을에서 전국 최대의 빅매치를 펼친 정몽준, 정동영 두 후보는 둘 다 똑같이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다. 한쪽은 현임 서울시장에게 동의를 구했다고 말하여 선거법 위반 조사를 받았고, 다른 한쪽은 서울시장이 (민주당 인사로?) 바뀌면 뉴타운 공약을 추진하겠다는 멋쩍은 소설을 쓰고 있었다. 이런 변별력 없는 테스트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기권율이 높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진보신당



한편으론 친박연대라는 상징의 대극에 진보신당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아직 총선 결과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진보신당의 선거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민주주의 이후에도 국가의 경제정책은 서민을 위하지 않았다. 특히 참여정부는 ‘유연한 진보’의 이름으로 ‘(대)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진보세력이 경제를 망쳤다는 편견을 유포시켰다. 그 와중에 진가를 발휘해야 했을 민주노동당 역시 민생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같은 것에 올인했다. 그 결과가 냉소주의였고,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내홍을 겪다가 17대 총선 기간에 이름을 널리 알린 노회찬 심상정 등이 나와 새로이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분당은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2007년 대선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 등 민생과 전혀 상관없는 공약을 내세우던 민주노동당이 민생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반면 그 민생공약들을 만든 이들이 탈당하여 만든 진보신당은 인지도가 너무 낮아 홍보에 곤란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수도권에서 선전했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두 개의 지역구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있지만,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유권자의 1/3에 해당하는 도시에서 이룬 성과였다. 반면 수도권의 지지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들을 포괄하는 여러 종류의 서민들일 것이다. 비록 아직 정당지지율로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서민의 이해관계를 노회찬, 심상정 두 후보에게 투영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수많은 지식인과 연예인들이 이 두 사람을 지지한 것 역시 그렇다. 이 인물에 대한 지지를 어떻게 정당정치 안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가 앞으로의 진보신당의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 정치를 향한 그들의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2 AND COMMENT 1

'개강'이란 소재에 맞춰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쓰긴 썼는데,
역시 난 이런 글은 별로 안 어울리는 듯.
어쨌든 개강날 아침입니다요-.

-------------------------------------------------------------------------------------------------

고3과 새내기 대학생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 있었다. 고3때는 공부하느라, 새내기는 노느라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격언(?)이건만, 요즈음의 세태와는 너무나도 다르다. 입시지옥을 뚫고 도착한 곳은 낭만의 공간이 아니라 취업 전쟁에 필요한 ‘스펙’을 높이느라 무한경쟁을 펼쳐야 하는 또 다른 지옥이다.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온다. 80%가 넘는 대학진학률은 그 자체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어떤 선진국에서는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직종의 경우 고졸 학력만으로도 충분히 고용이 되기 때문에 굳이 대학을 갈 필요가 없지만, 학벌사회에서 대학을 포기한다는 건 그 자체로 차별의 근거가 된다. 그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울며 겨자먹기로 다닐 수밖에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등록금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다. 신입생들은 내가 입학했을 때보다 두 배 이상 많은 등록금을 학교에 납부한다. 한해 등록금 1천만원 시대. 그런데도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의 금리는 시중금리와도 별 차이가 없다. 대학생들이 취업에 목매는 현실을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앞으로도 이런 사정이 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학생활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윤리적인 행위, 혹은 어떤 종류의 사치가 되어 버렸다.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급기야 지난해엔 ‘88만원 세대’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에 20대의 대다수는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갈 운명에 놓여 있다는 주장이었다. 암울함에 암울함이 더해지는 느낌이지만, 어쩌면 바로 그 지점에서 희망이 보이는 것일 터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는 몰개성화된 우등생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 줄만한 상황이 아니다. 취업 전쟁의 요건이 갈수록 까다로워지는 이유는 기업이 슈퍼맨을 원해서가 아니라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의 인격과 개성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로도’ 현명한 일일 수가 있다. 모두가 가판대에 제 영혼을 진열해도 악마가 거들떠보지 않는 시대엔, 영혼을 가슴 속에 감춰두는 이가 오래 살아남는 법이다.


씀씀이가 평균 수준인데도 용돈이 남지 않는 처지라면 굳이 재테크 책을 봐야 할 필요가 없다. 그 책들은 단지 잠시동안 ‘나는 미래를 열심히 준비하고 있어.’라는 만족감을 주기 위해 소비될 뿐이다. 그 시간에 정말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을, 혹은 그런 것이 없다면 전공에 관련된 책을 한권이라도 더 읽는 것이 낫다. 토익 공부를 안 할 수는 없지만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 전공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어리석은 일이다. 어차피 우리는 자신의 전공으로 세상과 승부를 볼 수밖에 없다. ‘쓸모’라는 말을 너무 좁게, 근시안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공부의 쓸모라는 것은 원래 돌아서 돌아서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서 오는 것이니까.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마음에 맞는 친구와 만나서 수다를 떠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런 낭비가 없다면 우울함에 젖어드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도 물론 좋은 일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생각하려고 억지로 애쓸 필요는 없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언제나 미소지어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자. 미소짓는 것이 일의 일부인 사람이라도, 언짢을 때 찡그릴 수 있는 공간을 어딘가에 마련해야 하는 거니까. 그리고 가끔은 서로를 향해 돌아보기. 힘든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기. 이상은 이기는 법이 아니라 견디는 법밖에 알려줄 수 없는 무능한 선배의 어줍잖은 조언이었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410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4
영어몰입 교육 생산적인 논의가 안 되는 이유는?


영어몰입 교육을 둘러싼 논란은 한국 사회에서 정책담론이 어떤 수준에서 유통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이명박 당선인과 이경숙 인수위원장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그리고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영어몰입 교육을 실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적 효용과 개인적 효용의 혼동 ●


이런 주장에서는 일단 영어교육의 사회적 효용과 개인적 효용이 혼동되고 있다. 옹호자들은 국가경쟁력 이야기를 하다가 말문이 막히면 기러기 아빠들의 고생스런 사연과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시장 규모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자녀에게 영어 사교육을 받게 하는 이유는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개인의 경쟁력이 강화되면 국가경쟁력도 강화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단순한 견해다. 영어권 어학연수와 영어 사교육을 배우는 학생 중 영어권 사회에서 그곳 학생들과 경쟁을 하여 취업을 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는 이들이 많겠는가, 아니면 한국 사회에서 유리한 입지를 취하기 위해 공부하는 이들이 많겠는가? 당연히 후자가 압도적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영어 능력자를 가려내는 몇 가지 시험들이 실제의 영어실력과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영어 점수를 통해 사람을 구별 짓는 것, 이것이 한국 사회 영어 교육의 개인적 효용이라 볼 수 있겠는데, 기껏 그것을 위해 각 가정에서 무지막지한 비용을 쏟아 부었음에도 기업들은 영어를 진짜로 잘 하는 인재를 얻지 못 해 전전긍긍하
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국가경쟁력의 차원에서 봐도 ●


한국처럼 경쟁의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곳에서는, 교육의 목표를 잘 설정해줄 경우 각 가정에서 자발적으로 그 목표에 부합하는 인재들을 키워 주게 된다. 그러므로 교육의 목표 설정은 매우 중요할 것일 텐데, 인수위가 설정한 영어 교육의 목표가 국가경쟁력과 정말로 관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이 강조하는 회화중심 교육은 일종의 서바이벌 잉글리시이거나 좋게 봐줘야 비즈니스에 도움이 되는 영어교육으로 보이는데, 이쯤 되면 이건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감의 문제에 속한다. 유창한 통역이 몇 사람 이상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규교육이 아니라 별도의 교육을 통해 양성되어야 할 것이다. 인수위원장은 식당에 가서 오렌지를 시키지 못해 애를 먹었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럴 때는 그저 메뉴판의 오렌지를 가리키며 “디스원, 플리즈.”라고 말하면 된다고 권하고 싶다. 유럽쯤 가면 그들도 유창한 영어발음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으니, 그쪽이 웨이터들로서도 훨씬 편할 것이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볼 때도 중요한 것은 다수의 적당하게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 기업의 업무에 필요한 정도 숫자의 유창하게 영어를 잘 하는 사람들이다. 정보화 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 시급한 것은 한국어와 외국어에 둘 다 능통하여 외국의 전문지식을 비교적 신속하게 한국어로 옮길 수 있는 전문번역자들의 확충이다. 그러면 나머지 외국어를 못 하는 사람들도 핸디캡이 줄어든 상황에서 세계인들과 경쟁할 수 있다. 내 전공인 인문학만 두고 이야기하자면 번역이 활성화된 일본의 경우 20대 중반만 되어도 최신 트렌드를 섭렵하고 독자적인 저서를 내는 저자들이 등장한다. 편차는 있겠지만 다른 학문들도 비슷한 효용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사교육비 경감 대책은 영어가 그렇게까지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취업시장에서 영어를 통해 차별받지 않는 방법을 강구하면서 고민되어야 한다. 두 가지 정책 목표를 분리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더욱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2 (대학내일 408호)




......01학번인데...멋대로 학번을 바꾸시네...(하긴 어려지면 좋다; )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21
학생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그동안은 블로그에 옮기지 않다가, 날짜 계산해서 소급적으로 다 올렸습니다. '대학내일' 태그를 클릭하시면 모두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그나저나 이 글은 술 한잔 하고 썼더니 원고 분량에 비해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고 했군요.

-----------------------------------------------------------------------------------------------------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것은 이른바 ‘보수언론’들이 주동하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쉬운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서다. 언론들은 이제야 이 현상에 주목하기 시작했지만, 사실 누리꾼들의 반응을 유심히 지켜봤다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천 참사에 희생당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누리꾼들의 싸늘한 반응은 이례적인 것이 아니다.


근거가 없는 외국인 혐오의 논거들 ●

불법체류자들을 비롯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우리의 일자리를 뺏고 있는가? 물론 서구의 선진국에서도 그러한 이유로 외국인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이 타당한 이유 같지는 않다.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한 학자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유입된 직업의 경우 일종의 ‘낙인효과’가 생겨서 그 후로는 내국인들이 고용을 기피하게 된다고 한다. 외국인들을 쫓아낸다고 해도 한국인들이 그 일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사실 기업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다 더 싸게 부려먹을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기용하는 것일 게다. 자본이 마음껏 이동하는 세계화의 질서를 대개 긍정하는 우리들이, 노동의 이동을 부인한다는 것은 무언가 앞뒤가 안 맞는 일이 아닐까? 국민경제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도 굳이 혐오를 한다면 외국계 투기성 금융자본을 혐오해야 더 타당할 것이다.


어떤 이들은 단체를 만들어 시위를 하면서 불법체류자를 반대하는 것이지 외국인 혐오는 아니라고 강변한다. 하지만 외국인 혐오에 대한 사전적인 설명을 보자면, 원래 그것은 불법체류자들의 범죄에 대한 과민반응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의 범죄율이 현저하게 높다고 단체들은 주장하지만, 데이터는 그들의 범죄율이 합법적인 외국인들보다 오히려 더 낮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결국 그들의 말은 다른 나라의 외국인 혐오는 A이지만, 우리는 A여도 외국인 혐오가 아니라는 말과 같다. 그들은 차라리 “외국인 혐오가 왜 나쁜가? 극우파가 왜 그른가?”라고 물어야 할 것이다.


인종주의인가? ●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개 지금의 세계질서에서 우리의 조국보다 못 사는 나라 국민들이기 때문에, 이 혐오증이 일종의 인종주의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물론 그런 부분이 있겠지만, 좀 더 총체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도 있다. 불법체류자처럼 법적인 논리를 들이밀 수 없어서 구체적인 행동이 덜 보인다 뿐이지 백인계 외국인 영어강사에 대한 일반의 혐오도 만만치 않다. 주로 그들이 한국 여성들을 꾀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남성들이 그러한 혐오를 드러낸다. 여기에는 괴상한 민족주의 정서와 서구적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묘하게 중첩돼 있다. 이러한 열등감이 분명히 실존한다는 사실은 인도 파키스탄 지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경제능력으로는 제3세계 출신에 속하면서 외모는 아리안 민족의 핏줄을 따라 서구적인 이들은, 한국 남성들에게 가장 격렬한 증오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 멍청한 이들의 외모에 속아나가는 한국 여성들의 무지함과 품위 없음에 대한 조소도 잊지 않는다.


인권감수성이 필요하다 ●


쇄국정책을 펼 수 없는 이상 한국 사회에 외국인 문제는 계속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북한과의 평화협력 교류가 지속된다면, 대한민국은 ‘섬’을 벗어나 대륙과 맞닿게 된다. 러시아와 중국, 특히 중국인들의 유입이 많아지게 될 텐데 그들을 멸시해서는 중국 정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 인간적인 대우를 못 해주다가 갑자기 중국이 그러므로 한국에 있는 자국민들을 보호해야겠다고 모종의 조치를 요구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구가 많은 강대국과 맞닿은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 인권감수성을 키우는 일은 우리의 품위를 높이는 일일 뿐 아니라, 실리적으로도 올바른 일이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405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1 AND COMMENT 1
학생논단란에 실린 글입니다.
---------------------------

해마다 이맘때쯤 되면 꽃다운 나이의 청소년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듣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처지를 동정하기도 하고 그들이 성급했다고 나무라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 사회의 구조를 생각해 볼 때 이것이 몇 년 이내에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내년에도 같은 소식을 듣게 될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이 문제의 비극성에 무뎌지고, 매년 똑같이 자살한 수험생들만을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입시정책이 실패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


내신 강화, 수능 등급제, 논술시험 외 본고사 금지 등으로 요약되는 현 정부의 입시정책에 대한 불만이 높다. 입시경쟁의 과열을 해소하고, 명문대들이 돈 많은 집안에서 태어난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취지의 이 정책들은 소기의 효과를 거두기는커녕 수험생들의 불안과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내신 강화 정책은 ‘13번의 수능’이라는 자조를, 수능 등급제는 한 문제 차이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로또 수능’이라는 한탄을 낳았고, 논술시험은 입시에 찌든 그들이 ‘슈퍼맨’이 되길 요구한다. 대학이나 논술학원에서 추천하는 교양도서를 보면 그래도 인문대를 오랫동안 다닌 필자가 읽은 책이 절반도 안 되는 것이 현실. 상위권 학생들은 비싼 돈 주고 받아온 학원에서 나눠준 프린트를 ‘암기’하며 불안을 달랜다.


무엇이 공교육인가? ●

현 정부는 3불정책(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 본고사 금지)을 옹호하면서 교육의 공공성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여입학제나 본고사는 시행되는 방식에 따라서는 현재의 정책보다 나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것을 단순히 부자들을 위한 주장이라고 공박한 결과, 사람들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주장하는 경제주의자들이 ‘경쟁력(?)’을 옹호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되었다. 당장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면 교육정책이 크게 변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 과정에서 공교육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사장되고 있다. 시급한 것은 두 가지다. 첫째, 저소득층 학생들이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교육인 공교육의 질이 담보되어야 한다. 둘째, 공교육에서 제시하는 입시의 기준이 학생들의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잣대가 되어 경쟁의 에너지를 발전적인 방향으로 인도해야 한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는 한국인들이 결코 입시경쟁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배웠다.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없는 학벌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모든 가정에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것에 강제로 찬물을 끼얹으려는 입시정책은 전혀 성공을 거둘 수 없다. 내신과 논술의 오묘한 조합은 그것을 억제하지도 못하고, 사교육을 강제하며, 한 두 번의 실수나 실력의 완만한 향상가능성을 부인하면서 교육의 공공성을 훼손하고 참가자들의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통합적인 비전에 대한 토론이 필요하다 ●

입시정책은 대학정책과 맞물려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뿐더러, 그 자체가 주의 깊게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의 교육여건에 비춰 볼 때 실행이 가능하면서도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비전에 대한 토론이 바로 지금 시작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몇 년 후 또 다시 더욱 거대한 혼란의 현장을 지켜보게 될 수밖에 없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401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0
학생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

“삼성에 좋은 것이 대한민국에도 좋은 것이라는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러나 삼성이 잘못되면 우리 사회가 잘못된다. 그래서 우리는 삼성이 잘 되도록 힘써야 한다.” 언젠가 ‘삼성 공화국’ 현상과 관련된 토론회에 참석했던 한 대기업 전문기자의 말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런 삼성이 이윤을 추구할 때 국민경제가 치러야 하는 비용 역시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윤을 추구할 때는 사기업이지만, 막상 위기에 처하면 국민경제를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국민기업’으로 변신하여 공적자금 투입을 요구할 것이다.


재벌을 향한 두 가지 시선 ●

슈퍼 재벌’이 되어 버린 삼성에게 무엇을 바래야 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장하준과 같은 경제학자는 그나마 재벌들이 외국의 투기자본보다는 국내 여론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재벌을 활용한 ‘사회적 대타협론’을 주장한다. 스웨덴의 경우에도 그런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의 기조를 구성하는 일군의 경제학자들은 주주자본주의의 원칙을 확립하는 재벌개혁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총수 일가의 전횡적인 권력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용적인 입장에서야 주주자본주의를 강조하는 개혁으로 그들을 압박하다가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터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실제로 김용철 변호사가 폭로한 삼성의 전략은 그들이 국민여론을 우선시하기보다는 권력을 통제하는 쪽을 택했음을 보여준다. 여론에 대해서도 여론에 우호적인 행동을 하기보다는 언론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유포해달라고 요구하는 쪽이 더 ‘싸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


내부직원의 제보만으로 강도 높은 비자금 조사를 한 후 총수를 구속시켰던 현대 비자금 사태 때와는 달리 검찰은 미적지근하게 반응하고 있다. 확률적으로 볼 때 이번에 검찰이 무언가 새로운 사실을 밝혀내고 삼성을 치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있는 증거는 과거 내부자의 고발뿐인 현 시국에서, 게다가 삼성이 증거인멸을 할 충분한 시간을 준 상황에서, 설령 특검제가 시행되더라도 밝혀낼 것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검제를 추진하는 여야 각 정당 역시 삼성의 돈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테니까 말이다.

삼성은 이 모든 사태에 대한 관리비용이 사회적으로 올바르게 처신하기 위한 비용보다 ‘싸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삼성이 변할 수 있는 순간은 오직 그 ‘싸다’는 판단이 ‘비싸다’로 변하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하다. 우리는 그들의 판단을 교정하기 위해 설득하거나, 지속적인 비판을 통해 실천적으로 그 관리비용이 더 들도록 만들어야 한다.


삼성이 알아야 할 것 ●


삼성은 그들의 ‘오묘한 인력관리 능력’이 김용철 변호사를 통제하지 못한 점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조직론의 관점에서 봐도 삼성의 상황은 좋지 않다. 노조 없이 높은 연봉만으로 인력을 관리한다던 그들의 오묘한 시스템은 평생 고용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십 수 년 근무한 연구 인력이 다른 기업에 삼성의 기술을 팔아넘긴다면 개인의 입장에선 더욱 ‘합리적인’ 선택이다. 시장의 원칙은 무제한적인 이윤추구가 아니라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행위를 하라고 가르친다. 삼성은 자신들만 ‘합리적인’ 선택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397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0
학생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

검찰이 변양균과 신정아의 ‘부적절한 관계’를 폭로하는 순간, 갑자기 사건은 학위조작극에서 선정극으로 바뀌었다. 검찰은 두 사람의 사적인 정황들을 실실 흘리기 시작했고, 언론들은 관음증 환자가 된 마냥 그것들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신씨가 변씨를 평소에 어떻게 불렀다느니 하는 비리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기사들이 난무했다.

이 상황에 대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언론은 없지만, 그중에서도 한 신문은 단연 부각을 나타냈다. 9월 중순 한 석간신문은 ‘신정아 누드’라는 제목의 기사를 싣고 알몸 사진 두 컷을 기재했다. 다른 신문들은 앞 다투어 이를 따라서 보도했다. 최근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그 신문에 2단 크기의 사과문 게재를 요구했지만 신문사는 재심을 청구했다. 노조에서는 사과를 요구하고 있지만 경영진에선 재심의를 원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리더니, 막판 사과문 문안 작성을 두고 진통하고 있다고 한다.


국민의 알 권리? 선정성? ●

굳이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겠다. 알몸사진이 있었지만 로비는 없었을 논리적 가능성을 우리는 충분히 머릿속으로 가정해 볼 수 있다. 반대로, 알몸사진이 없었지만 로비는 있었을 가능성 역시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알몸사진과 사건의 본질은 별 관련이 없는 것이다. 사진의 존재가 로비를 증명하는 것이므로 충분히 공익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편집진의 변명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설령 일말의 설득력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진을 굳이 1면에 게재했어야 할 필요성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국정감사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청래 의원은 “올해 7월 ○○일보의 강안남자가 다시 선정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이유로 신문윤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며 “그런 상황에서 신정아 누드사진 게재 사건이 벌어졌다”고 말했다고 한다. 언론의 선정성 역시 큰 문제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단지 선정성이라는 범주로 바라볼 게 아니다. 한 명의 사적인 개인(비록 그 사람이 범죄자로 추정되는 처지였다 하더라도)에 대한 폭력적인 시선의 문제인 것이다. 연재물의 선정성과 이 사건을 언급하는 것은, 비록 그가 한 신문을 비판하기 위해 그랬다손 치더라도, 사태의 핵심이나 심각성을 읽지 못했다는 느낌을 준다.


‘황색’화가 언론의 살 길인가 ●

문화일보의 뻔뻔스런 변명과 그에 대한 맥락이 어긋난 비판을 바라보면,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서 상식의 건전성을 측정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 인디밴드 카우치가 공중파 방송에서 성기노출을 감행했을 때 많은 상식적인 시민들은 불쾌감을 느꼈고 분노했다. 이 하위문화를 향유하는 젊은이들이 추구했을 순수성을 생각하면 체제의 관용이 모자라다고 볼 수 있을 만큼 심각한 반향이 있었다. 반면 그 문제의 신문은 카우치보다 훨씬 더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데에도 이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그다지 크지 않다. 돈을 벌기 위해 그랬는데 어쩌겠냐는 식이니 차라리 유교윤리가 그리울 지경이다.

그 신문이 노출한 것은 한 여성의 알몸이 아니라 한국 언론의 현주소다. 한국의 언론들은 인터넷 시대에 굳이 돈을 주고 사봐야 할 정보를 제공한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주지 못했다. 한국에서 이것이 신문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신문이 자초한 문제인 것도 사실이다. 윤리 문제를 떠나서, 인쇄매체의 신뢰성을 폭력적인 선정성으로 얻으려는 매체가 맞이하게 될 운명은 자명하다. 포털 사이트에 대한 불평을 털어놓기 전에 언론은 스스로를 돌이켜야 한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393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0
학생논단에 실린 글입니다.
-------------------------

신정아씨 사건 이후로 학력을 허위기재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있다. 너무나도 광범위해서, 한국 사회를 ‘학벌 사회’가 아니라 ‘학벌 위조 사회’라 불러야 온당하게 느껴질 판국이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되는가에 대한 사람들의 입장도 판이하다. 보수언론 등은 주로 개개인의 도덕성을 질타하는데 앞장서고 있고, 진보의 목소리들은 ‘학벌 사회의 희생양’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구조냐, 개인이냐 ●



하나의 사회문제는 구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고 개인적인 문제로 바라볼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며, 각자의 선택이 서로를 보완하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럼에도 우리가 사태의 본질을 올바로 바라보고 있느냐는 것이다. ‘학벌 사회의 희생양’이라는 수사는 쉽사리 “거짓말한 사람들이 뭐가 희생양이냐?”는 반응을 불러오게 되고, 그것은 일련의 사건들이 말하는 구조를 드러내기 보다는 은폐하게 된다. 마치 우리의 머릿속에는 한 사람의 능력을 학력으로 밖에 계산하지 못하는 ‘고장난 계산기’가 박혀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렇게 은폐되고 모순된 ‘학벌 위조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인문학이 아니라 자본주의로 봐도 ●


‘학벌 없는 사회’와 같은 단체는 사람을 잘못된 잣대로 차별하는 것의 폭력성을 지적한다. 좋은 시각이다. 또한 학벌사회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학벌에 따라 사람을 평가하지 말고 실력을 보고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좋은 지적이다. 그런데 문제는 도대체 우리가 그 실력이란 것을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가이다. 신정아씨는 학력 위조가 발각되기 전에는 대중적인 기획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았다. 그리하여 학력 위조가 밝혀진 후에도 그녀의 실력만은 인정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었다. 그녀는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이었나? 예술에 안목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의 입장에서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예술에 안목이 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에게조차 그러한 평가의 기제가 없다면?


기업의 실무자들은 가끔 “우리도 토익이 영어실력을 대변해 주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토익점수가 높은 학생은 그 성실성은 증명한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무의식적인 ‘진리’의 발설이다. 토익점수가 영어실력이 아니라 성실성을 보여준다면 학력 위조도 ‘성의’는 보여준다고 말해야 할까? 한국 사회 전체가 각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실력을 평가하는 잣대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력은 가장 큰 잣대가 될 수밖에 없고, 그게 그렇게 중요한 가치로 기능하는 이상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은 나올 수밖에 없다.


고장난 계산기는 우리의 미래를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이 계산기를 대체할 다른 연산방법을 찾으려는 시도 없이 우리의 장래가 밝을 거라고 기대하기 어렵다.


한윤형 서울대 인문 01 (대학내일 386호)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0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649)
공지 (3)
정치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