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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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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에 해당되는 글 73건

  1. 2008/07/18
    [씨네21/유토디토] 촛불시위, 그리고 정치 (7)
  2. 2008/06/07
    촛불시위에 있는 것과 이끌어 내야 할 것 (12)
  3. 2008/04/14
    [대학내일] 친박연대 vs 진보신당 (1)
  4. 2008/04/13
    (제안) 당원 권리선언 조직화 (9)
  5. 2008/04/12
    두 개의 대체역사소설 (8)
  6. 2008/03/29
    진보신당 왜 생겨났나? (16)
  7. 2008/03/24
    뉴라이트 역사교과서 출간, 나쁜 일이기만 할까? (41)
  8. 2008/03/12
    [경향신문] ‘20대 비례대표’ 찬성않는 이유 (1)
  9. 2008/02/18
    [프레시안] 새로운 진보정당, 이렇게 만들자 (5)
  10. 2008/02/16
    민주노동당과 나 (15)

블로그는 동면상태지만 이건 원래 쓰는 거라거...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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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최장집은 최근의 촛불시위에 대해 ‘정당정치의 부재’가 만들어낸 사건이라 진단했다. 결국 정당정치 강화가 해답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진단을 “이제 그만 촛불을 꺼야 할 때”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였고, 분개했다. 왜 현 시점에서 ‘촛불시위 반대’로 오인받을 만한 주장을 개진하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맥락’이 아니라는 것인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최장집의 주장에 분명 ‘맥락’이 있다고 본다. 가령 오마이뉴스에서 시위군중의 모습을 비추는 대형 전광판을 동원할 때, 거리에 저 유명한 ‘전대협’의 깃발이 등장할 때, 나는 87년의 스펙터클을 재현하려는 어떤 욕망을 본다. 이 욕망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최장집의 말대로 87년은 정치제도의 변혁이라는 관점에서는 성공한 사례라고 보기 어려운데 말이다. 이번에도 ‘운동’과 따로 노는 정치를 만들 것인가?


87년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대통령 직선제’라고 믿었다면, ‘again 1987’의 감상에 젖은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국민소환제’라고 믿는 것 같다. 87년에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대통령 직선제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했다면 세상은 더 나아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87년과 달리 지금의 촛불시위는 한두 가지 제도의 변혁을 성취하기도 벅찬 처지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직접민주주의가 이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간접민주주의가 실시된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담은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무조건 정당한 흐름이다.” 그리 현명한 생각이라 보기 어렵다. 굳이 ‘민중의 자기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로부터 따진다면, 대의제뿐만이 아니라 다수결조차 문제가 된다. ‘만장일치적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자율성과 국가의 권위를 양립시키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온전히 실현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을 조금이라도 실현하려는 정책이 올바른 것이 될까. 오히려 오늘날의 많은 정치학자들은 만장일치를 유도하는 의사결정에 파시즘의 우려가 있다고 볼 것이다. 가령 정당정치는, 이견과 갈등을 드러내려는 장치로서 만장일치제에 모순된다. 그러므로 정당을 해산하는 것이 더 민주주의적인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이며, 천상의 제도가 아닌 세속적인 이해관계의 타협의 산물이다. 설령 어떤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지닌 정책이 도입된다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본질적인’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나는 최장집이 우려한 낭만주의가 그러한 착각이라 생각한다. 결국에는 국민소환제 역시 이 제도가 어떤 효용을 지닐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할 뿐이다.


다시 문제는 정치다. 촛불시위에 거는 희망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것은, 떨어지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제 것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타 정당들의 한심한 역량이다. 시위를 지도하려다가 욕먹은 민주노동당과 얌전히 시위를 따라다니면서 ‘아고라의 여당’이라 불리게 된 진보신당의 길을 넘어, 시민들의 욕망을 정치적 지향으로 전환하는 설득에 성공하는 그런 정당과 그런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게 최장집이 은퇴 강연에서 말한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역할이 아닐까. 지금 정당이 촛불시위에 결합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고, 거리의 대중과 호흡하면서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가진 이가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정치에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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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상황 브리핑


최초의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을 계기로 터진, MB식 사회정책과 (아마도, 특히) 교육정책에 대한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학부모와 청소년들의 참여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 불씨를 지피는 데엔 MBC PD 수첩의 저널리즘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조중동이 이에 대해 ‘잘못된 방송의 선동’, ‘비과학적인 괴담’, ‘배후세력론’으로 대응하면서 점차 ‘사람들이 뿔났다’. 다이나믹하고 감정적인 한국 사람들은 머슴을 자처하던 대통령의 흰소리를 참지 못했다. 갑자기 사람들의 정서는 “너는 대체 뭔 용가리 통뼈길래 우리 말을 이렇게 안 쳐듣는 건가효?”로 바뀌기 시작했다. 즉, ‘국민 여론을 수렴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 쪽으로 가닥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할 정치세력은 거의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 ‘민주주의’론은 촛불시위의 대세가 되었다. 박근혜와 이회창마저도 재협상론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성난 시민들의 ‘조중동 광고 기업 불매운동’은 조중동의 논조를 길들여 드디어 조중동조차 이명박 정부의 협상은 졸속적이었고, 이유야 어찌됐든 정부가 여론과 소통하는데 실패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청와대가 제발 독자적으로 사고치지 말고 자신들의 ‘보수적(!)’ 태도에 귀기울이길 원한다. 거리에서 십만 명이 자신들을 욕하는 꼴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청와대 사람들도 사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항복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2) 시위의 성격


앞서 얘기했듯이 이 시위는 참여자들이 느끼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는데,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다시피 국제적으로는 ‘반-세계화 시위’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호를 반-세계화의 문맥에서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무지(?)’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 시위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명박이 독재정권이라서가 아니라, 1)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국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2) 그 결과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달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외칠 수 있도록 국가의 권한을 시장에 양도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사람들이 국가와 시장을 하나의 대상을 포섭하는 두 개의 다른 권력으로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국가가 삼성에 권력을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보다는, 국가의 바깥에 존재하는 외국기업에게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이 월등한 것이다. FTA에 대해서도 그것이 우리 국가를 허문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말타고 벌판 달리는 참여정부의 공익광고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의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듯 싶다. 그것이 이 시위의 성격을 ‘친 참여정부’적인 것으로 만든다. 노빠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를 한번이라도 지지했거나 잠깐이라도 호감을 가졌던 이들이 모두 그러하다. 


여기서 참여정부의 성격을 간략하게 규명하면, 시위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민주주의’나 ‘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참여정부는 간단하게 말하면 ‘관료들의 나라’였다. 정치경제적으로는 관료들이 대기업 편의적인 경제정책과 그 편의적 정책의 한 방편으로서의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체제였다. 참여정부가 2002년 이회창 후보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임종인 전 의원의 지적이나, 참여정부가 써버릴 수 있는 정책을 다 써버려서 (이명박 정부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지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양극화의 심화는 참여정부의 정책이 실패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의도한 바대로 성공을 거두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관료조직의 외곽에 있는 ‘위원회’를 통해 문화적인 면에서는 민족-국가담론을 유포하는데 힘썼다. 민족주의자들의 용어를 활용하면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다. 조중동이 비아냥거린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거기서 나왔다. 과거사 진상규명, 친일파 청산, 문화재 복원 등을 실시했던 이 위원회들을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는 이념적인 이유로, 그리고 이명박은 반실용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부인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참여정부의 개혁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 위원회에 있고, 이것을 통해 참여정부의 경제시책마저 국가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희망의 군국주의자 노무현’이라 일컬어진 참여정부의 군비 확장 정책을 보자면, 참여정부의 담당자들조차도 지지자의 판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즉, 그들은 실제적으로는 국가를 약화시키고 있었으면서도, 스스로는 국가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수입 정책은 이처럼 다소 혼란스러운 ‘국가’나 ‘민주주의’의 개념으로 봐도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국가’의 이념을 훼손시키는 것이 명명백백한 정책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참여정부의 ‘우파적 관료주의’를 더 오른쪽에서 혁명적으로 돌파하려다 삽질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시위대와 그 지지자들은 그들이 이명박이 노무현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정당하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문제를 갈파하는 이들이 아무리 분석한다 해도, 이 경험은 넘어설 수 없고,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도 막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이 시위대의 구호가 자기 진화하여 그 향수에 모순되는 행위에 나서도록 시위대와 ‘함께 하는’ 일이다.


반면 시위의 성격을 그 자체로 뜯어 고치려는 행위는 아예 가능하지 않고, 따라서 적절한 반응도 아니다. 차라리 그보다 일관성있는 비평은 아예 시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위가 해야 할 일들이 좀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적절한 반응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파트에서 논의한다. 


(3) 이명박이 할 수 있는 일


카드가 별로 없다. 크게 보아 1) 계속 이대로 간다! 와 2) 한나라당(박근혜와 홍준표?)에 항복한다. 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재협상 수준에 근접하는 자율규제라는 카드를 내밀었지만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것은 비관세 무역장벽이며, WTO 위반에 해당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재협상보다도 미국 행정부를 더 당황하게 만들 일이다.


이명박은 재협상을 실시하여 시위대를 만족 혹은 분열시키고 한나라당에 대한 청와대의 우위를 지속시킬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게 임기 초반 레임덕을 막을 유일한 카드다. 왜냐하면 계속 이대로 밀어붙여봤자 길게 보아 2년 후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는 한나라당에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그게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결단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는 결코 한미 FTA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멍청하다. 만일 그가 정말로 스스로 말한대로, “한미 FTA 협정은 한국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협상을 파기할 생각이라면 말이다. 어느 정도 멍청하냐하면, 한미 FTA가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고 믿는 노무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두 멍청한 정치인들은 의도되지 않은 합작 플레이로 그 둘보다 멍청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위인인 이명박을 외통수로 몰아넣고 있다. 이명박이 처한 곤경을 ‘노무현의 덫’, 혹은 ‘거짓말쟁이의 늪’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정권을 ‘잃어버린 10년’ 동안 되뇌어 왔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1) 참여정부는 한미 동맹 관계를 훼손해 왔거등요~ 
2) 어머, 근데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체결했어!
3)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값으로 한미 FTA만은 비준해야돼!!


뭐 이런 논법이다. (덧붙여, 지금 한국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성장의 방법으로 한미 FTA 이외의 대안을 못 찾고 있다는 점이 있고 이게 더 큰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이건 다른 파트에서 설명한다.) 그래서 부시 있을 때 협정처리하려고 다 퍼주며 매달렸는데, 촛불시위대에 부딪혀 어떻게 하지도 못하게 생겼고, 조금 있으면 또다른 멍청이 오바마가 나타나 친히 밥그릇을 차줄 운명이다. 이명박, 두 멍청이들의 뚝심에 아주 바보되게 생겼다.  


자 그렇다면 이것은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립인가? 박근혜라는 건 영남 보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호에 불과하고, 크게 보아 이 싸움은 한나라당 내부에서 ‘제가 한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는 멍청이들’ vs ‘제가 한 거짓말이 거짓말이란 사실은 알고 있는 악랄한 놈들’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멍청이들보다는 악랄한 놈들이 이기는 쪽이 대한민국에는 좋다. 이명박은 멍청이들의 수장이고, 계속 전진하다가 악랄한 놈들에게 패배하거나, 바로 지금 항복하는 길밖에 없다.


(4)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이런 틀에서 볼 때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할 일도 생기게 된다. 죽쒀서 개주는 꼴이지만 일단 한나라당과 조중동, 혹은 구체적인 인물로서 박근혜가 승리하는 것만으로도 시위대는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국면에서 좀더 완벽한 승리는 앞서 말했던 ‘악랄한 놈들’을 확실히 승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의 참여정부로의 회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재협상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지만, 대운하와 민영화를 저지하고, 다시 관료들의 느긋한 흐름에 나라를 맡길 수 있게 된다면 이 정부는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가 된다. 박근혜와 홍준표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면 이 정도까지는 갈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정당의 지지기반이라는 것이 있어서 대북정책은 되돌리기 힘들 것 같기도 한데, 적어도 관료들에게 맡긴다 치면 지금의 꼴통 외교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압박이 시위대가 할 일이다.


나는 2008년 6월에 이명박 정부에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낙관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명박이 입조심 좀 한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서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명박이 갑자기 미쳐서 한번 더 폭력진압을 하고 말 그대로 6. 10 항쟁이 일어나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폭력진압이 오히려 사람들을 흥분시킨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쪽 문만 굳게 걸어 잠그고 "너희들은 떠들어라. 하지만 국가는 내가 운용한다."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인터넷 여론 담당자'를 두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그의 여론에 대한 태도를 고려해 보건대, 이 담당자는 '수렴'보다 '통제'를 위해 활동할 것이다. 정부는 네이버나 다음에 대해 어떤 식의 통제가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이미 금칙어 설정 등의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올블로그에 대한 누군가의 해킹 시도도 석연치 않다. 만일 이명박의 속내가 그러하다면, 정말로 이제 변수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된다. 유가폭등으로 인해 파업을 선언한 화물연대는 또한 미국산 쇠고기 거부 투쟁 역시 선언한 상태인데, 촛불시위와 ‘불법파업’을 분리시켜 대응하려는 정부에 대해 시위대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인지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의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화물연대 파업을 시위대가 지지하고 강경진압에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시작한다면 이명박은 정말로 궁지에 몰린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행정부는 힘이 세다. 지방선거가 참패한 이후라면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궁극적으로 패배하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명박 시대에 우리는 안타깝게도 ‘거리의 정치’를 지속적으로 보게 될 것이고, 거기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박근혜가 승리한 이후라도 한나라당 정부의 남은 임기를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의 수준은 되도록 압박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 된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다고 나라가 확연히 좋아지는 건 아닌데도 그렇다.


천운이 도와 시위대가 이명박을 수월하게 패배시킨 경우에도 ‘민주주의’라는 시위의 구호에서 도출될 수 있는 정치적인 행위가 남아 있다. 이명박의 독선은 선거가 없는 기간에 대통령의 폭주를 막기 힘든 ‘87년 체제’의 허점을 드러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수세력들도 불만이 있다. 조중동의 일각에선 ‘(노무현의 원포인트) 개헌안을 받을 걸 그랬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통령이 단임제라서 여당이나 ‘여당 나팔수’말도 안 쳐듣는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하야하고 박근혜 스스로 대통령이 되는 사태가 오지 않는 이상, 박근혜와 홍준표의 한나라당은 내각제 개헌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정치 행위는 시위대가 원했던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배치되는 행위다. 행정부의 임기와 입법부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노무현식 개헌안은 선거가 없는 기간 동안 국민들이 무력한 ‘위임 민주주의’를 오히려 조장한다. 내각제 역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제보다도 시위를 통해 압박하기 힘든 정치체제다. 이런 제안에 반대하여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의제 등을 고민하고 의미있는 의제로 주창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심지어 성취해낸다면, 시위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니 200% 이상 달성한 것이다.  


(5) 참여정부도 싫어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


참여정부에 향수를 느끼는 시민들의 시위대가 해야 할 일도 이렇게나 많기 때문에, 나는 이들에게 이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이런 저런 비일상적인 변수가 오묘하게 개입하여 정말로 우리의 시위가 더 이상을 이룩해버릴 가능성도 없지는 없겠으나, 그런 가능성에 기대고 상황을 분석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참여정부의 그것과 구별되는 사회경제정책으로 민주화를 심층화시키려는 이들은 시위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보정당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말하자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다른 종류의 실현성 있는 사회경제정책을 총괄적으로 수립해 나가고, 또한 홍보해야 한다. ‘거리의 정치’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러한 홍보의 장도 더 크게 열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위대 자체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이는 다른 문제다.


진보정당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관료주의의 문제다.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관료다. 지금껏 한 가지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해온 우리의 관료들은 우리의 지향에 도움을 줄 수 없는데, 그렇다고 그들을 경험적인 면에서 이기기란 매우 어렵다. 구호를 통해 권력만 잡는다고 그들을 통제하여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료들을 닦달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은 좌파 정치인의 무능으로 답습될 수도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정책보좌관 출신들이 대거 합류한 진보신당의 경우 이 문제에 신경쓰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관료들의 경험을 습득할 수 없는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심화된 정책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두 번째는 성장 동력의 문제다. 성장-분배 논쟁이란 건 이름부터가 성장주의자들의 승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그 실현과 성과가 매우 의심스러운) 한미 FTA 이외에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문국현의 ‘중소기업론’이었겠지만, 그는 이 대안이 고통스러운 개혁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심화된 정책연구로 제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CEO 시절의 업적과 불가능한 구호(몇백만 일자리, 8% 성장)로 그 이미지를 압축시키면서 자신을 진정으로 이명박의 대항마인 코미디언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진보신당도 가령 심상정의 3박자 경제론 등을 보완 발전시켜 분배 문제뿐 아니라 우파 정당과 구별되는 성장 동력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좌파정당 있는 민주주의 정당체제’를 한국에서 보기란 어려울 것이고, 진보신당은 일본 공산당식으로 기초의원의 구역으로 내려가 지역 사회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에 힘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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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연대 vs 진보신당 416호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도대체 친박연대를 어떻게 영어로 옮길지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결론은 Park-Friendly Fellowship. 도저히 정치집단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걸 보니, 아주 정확한 번역이다.


친박연대라는 상징


친박연대는 한마디로 정치가 정치로 작동하지 않는 어떤 광경을 상징한다. 사실 애초에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공천혁명’이란 것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정치적 지향은 온데간데없이, 실정법 위반 여부만 문제 삼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기준도 수용하지 못한 공천을 받지 못한 인사들이 무소속으로 변신해 당을 뛰쳐나왔다. 밥그릇 싸움 이외의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는 정국이 만들어졌다. 차이를 구별하기 힘든 정치세력 간의 쟁투가 치열하게 펼쳐졌는데, 특히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 세 집단의 박근혜에 대한 집단구애 퍼포먼스는 길이길이 기억에 남을 것이다. 그 와중에도 페넬로페가 오딧세우스 기다리듯 꿈쩍 않고 항의 농성을 계속한 박근혜의 근성(?)도 함께. 이 의미 없는 싸움을 재미있게 관전하기 위해 한국 사람들은 정치공학을 좋아하게 되나 보다.


거여를 견제하겠다는 통합민주당도 범 한나라당계와 구별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손학규 대표는 군소정당들의 대운하 반대 연대 제의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동작을에서 전국 최대의 빅매치를 펼친 정몽준, 정동영 두 후보는 둘 다 똑같이 뉴타운 공약을 내걸었다. 한쪽은 현임 서울시장에게 동의를 구했다고 말하여 선거법 위반 조사를 받았고, 다른 한쪽은 서울시장이 (민주당 인사로?) 바뀌면 뉴타운 공약을 추진하겠다는 멋쩍은 소설을 쓰고 있었다. 이런 변별력 없는 테스트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의 기권율이 높아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진보신당



한편으론 친박연대라는 상징의 대극에 진보신당이 있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아직 총선 결과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결과와 상관없이 진보신당의 선거운동이 한국 사회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민주주의 이후에도 국가의 경제정책은 서민을 위하지 않았다. 특히 참여정부는 ‘유연한 진보’의 이름으로 ‘(대)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진보세력이 경제를 망쳤다는 편견을 유포시켰다. 그 와중에 진가를 발휘해야 했을 민주노동당 역시 민생 문제를 얘기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 같은 것에 올인했다. 그 결과가 냉소주의였고, 이명박 정부의 탄생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내홍을 겪다가 17대 총선 기간에 이름을 널리 알린 노회찬 심상정 등이 나와 새로이 진보신당을 만들었다.


분당은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가 있었다. 2007년 대선에서 코리아 연방공화국 등 민생과 전혀 상관없는 공약을 내세우던 민주노동당이 민생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반면 그 민생공약들을 만든 이들이 탈당하여 만든 진보신당은 인지도가 너무 낮아 홍보에 곤란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수도권에서 선전했다는 사실은 큰 의미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두 개의 지역구에서 승리를 거둔 적이 있지만, 조직화된 노동자들이 유권자의 1/3에 해당하는 도시에서 이룬 성과였다. 반면 수도권의 지지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 자영업자들을 포괄하는 여러 종류의 서민들일 것이다. 비록 아직 정당지지율로 이끌어내진 못했지만, 이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서민의 이해관계를 노회찬, 심상정 두 후보에게 투영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수많은 지식인과 연예인들이 이 두 사람을 지지한 것 역시 그렇다. 이 인물에 대한 지지를 어떻게 정당정치 안에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인가가 앞으로의 진보신당의 과제가 될 것이다. 한국 정치를 향한 그들의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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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당원게시판의 "쟁점과 토론" 게시판에 올린 게시물입니다.

방문자 중 당원이 있다면 주인장을 도와주도록 합시다. -0-;;;

원문주소는,
http://www.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2&no=9


제안) 당원 권리선언 조직화
한윤형, 2008-04-13 00:34:41 (코멘트: 40개, 조회수: 423번)
 
취지 :


사실상 총선용 정당을 만드는 제1창당 과정은 당원들의 폭넓은 의사를 수렴하지 못하고 급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당원들의 불만이 조금씩 누적되었습니다. 물론 급하게 선거를 대비해야 했던 당시의 현실은 충분히 이해될만 합니다. 


하지만 제2창당 과정은 일반 당원들의 폭넓은 의사를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현재 입당하는 많은 분들이 보여주는 놀라운 열정을 지속가능한 것으로 만들 필요가 있는데요. 그러려면 그들의 의사가 수렴되는 제도의 확립이 절실하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노사모의 열정은 그들을 정치의 주인으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지자들은 열정의 대열에서 이탈하거나, 소수 정치인이나 ‘논객’들의 말에 맹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의 열정은 그것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합니다.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의 정치문화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입니다.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원칙은 민중의 자기 자신에 대한 지배입니다. 우리의 정당이 민주적인 조직이 되려면 당원들의 토의와 추인 과정을 거쳐서 규칙이 정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규칙이 당원들의 당 활동을 규율해야 합니다. 당의 규칙과 무관한 일부 정파의 활동이 당을 망가뜨리는 모습을 우리는 민주노동당에서 보아 왔습니다. 따라서 저는 창당 과정의 민주적 의사결정은 당원들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당이 정당한 권위를 행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당원들이 창당의 주체가 되려면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우리의 지도부는 새로운 정당명을 언제쯤 정할지에 대한 생각을 이미 하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의 지도부는 새로운 당헌과 당규에 대해 이미 몇 사람에게 검토를 부탁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의 지도부는 이미 전체 진보진영에 대한 연대 제안을 언제쯤 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로 인터넷 게시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의 토론은, 철저하게 지도부가 먼저 정치적 행위를 한 후 그에 대해 반응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움직임이 없다면, 앞으로의 일정 역시 지도부의 주장과 그에 대한 일부 당원들의 반발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막상 의결이 시작되면 어떤 정파에 소속된 당원들은 정파의 의사에 의해 투표할 것이고, 대다수 당원들의 의사는 분산될 것입니다.


이래서는 당원들이 창당의 주체가 되기 어렵습니다. 당이 당원들을 알아주기를 바라기 이전에, 당원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당에 어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한명의 당원으로서, 매우 많은 당원들이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 선언을 조직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선언에 많은 당원들이 동의하고, 우리의 당이 이 기초적인 사실을 존중한다면, 이 틀 위에서 우리의 제2창당이 그 어느 정당보다 매우 정당성 있는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방선거까지 2년입니다. 지도부에서도 시간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매우 높은 수준의 민주적인 방식으로 탄생하는 진보정당을 만드는 것은 약간의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의미를 지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당원 동지 여러분들께 다음과 같은 선언을 제안합니다.



제2창당에 임하는 진보신당 당원들의 권리선언 : 


우리 당원들은, 당연히 보장되어야 할 우리의 권리들이 다음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나, 진보신당 연대회의의 새로운 이름은 당원들의 토론과 의결로 정한다. 의결 방식에 대한 다양한 구상들에 대해서도 당원들의 의견을 모으도록 한다.


하나, 제2창당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당헌과 당규는 당원들의 토론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초안이 홈페이지에 공개된 뒤 당원들을 위한 공청회가 열려야 하며, 이런 과정을 거친 뒤 당원들 다수의 동의로 확정한다.


하나, 당원들은 제2창당 과정에서 우리 진보신당 연대회의가 평등, 평화, 생태, 연대의 가치를 지향하는 다양한 세력과 연대 논의를 하는 것을 적극 지지한다. 하지만 연대 또는 재창당을 위한 논의에 참가하는 책임자들은 이 논의와 관련한 주요 과정과 결과를 당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하며, 당원들 다수의 요구가 있을 때는 협상에 임하기 전에 공개된 방식으로 당원들의 의견을 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협상 뒤에는 당원들 다수의 동의로 확정한다.



최초의 제안에 비해 문구를 가다듬었고, ‘평당원’이라는 명칭이 조직의 권유에 의해 입당한 당원을 배제하는 것 같다는 의견에 따라, 가장 일반적인 수준에서 정당 민주주의의 구성원인 ‘당원’으로 명칭을 수정했습니다.


현재까지


고형권, 권민혁, 권병덕, 김민하, 김성수, 김유평, 남원근, 노정태, 류장원, 생태조아, 박수영, 박충일, 박현배, 박홍기, 배대웅, 송기상, 신세림, 신현아, 우효섭, 유진성, 이건호, 임반석, 임홍선, 전미영, 한윤형 (25명)


의 동의가 있었습니다. (생태조아 님이 이 글을 보시면 되도록 실명을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취합이 되면 당에 제출하려는 권리선언인 만큼, 실명인 편이 나을 듯 합니다.)


duripop 님은 당 대표 소환제도나 회의 결정 소환제도 등을 포함시켜도 좋지 않을까, 라고 제안하셨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현재의 선언은 제도를 만드는 민주적 원칙에 대한 합의인 만큼, 구체적인 제도의 문제는 이와 별도의 것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제안에 동의하시는 분은 덧글로 참석의사를 밝혀주세요. 그리고 권리선언의 내용 중 지나친 부분이 있다거나, 더 추가되어야 할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덧글이나 댓글로 의사를 밝혀주세요. '당원 권리선언의 조직화'라는 이 작업부터  될 수 있으면 여러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형식으로 추진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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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승리'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들이 조합된 기막힌 우연의 산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는 '운이 좋았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최근에는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당장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었을 것만 같은 두 개의 대체역사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하나는 큰 사건에 대한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단 좀 더 작은 사건에 대한 가정이다.


첫번째 가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운좋은 일이라 여겨졌던 2002년 노무현의 당선.


2002년 당시로 돌아간다면 다시 노무현을 찍을 수밖에 없겠다는 사람들의 말에는, 동의한다. 그 당시 주어진 자료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왕 한나라당 정권 5년을 견뎌내야 한다면 이명박보다는 이회창 쪽이 훨씬 나아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2002년의 이회창은 지금의 이회창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성향과 삶의 궤적이 전혀 다른 두 대선후보의 불꽃튀는 대결이 된 대선정국에서, 이회창은 진보 쪽 표를 흡수하려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집권 초에 오히려 상대편을 안배하는 정책이 나왔으리라고 생각해도 어색하지는 않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무슨 짓을 할 수 있었던 간에, 한미 FTA가 그리 갑작스럽게 추진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당이 결사반대했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한나라당 경제정책이 전혀 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염증으로 그동안 야당정치를 통해 좀더 성숙한 민주당의 노무현이 2007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면, 이건 지금보다 나쁘기는커녕 훨씬 좋은 시나리오다.


이 역사소설의 아이러니는 노무현과 개혁당의 능력치를 높게 잡을수록 우리가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회창이 집권하자마자 구민주당계는 노무현과 개혁당을 탄압하려 했을 게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유시민-개혁당계는 가령 이라크 파병 같은 여당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개혁적 유권자들을 결집해 나갔을 것이고... 이들이 이 결집을 통해 민주당을 서서히 바꾸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이 시나리오의 미래는 아주 좋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통합민주당과 접점이 사라져버린 개혁적 지식인 그룹의 의견 역시 청취되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반면 노무현 그룹이 버티지 못하고 쓸려나갔을 거라든가, 버티긴 했으되 어차피 지금처럼 한나라당과 비슷한 경제정책으로 이행해 나갔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정치공학을 생각해 볼 때 이건 좀 극단적인 가정일 것 같은데) 이 시나리오 역시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재수가 없으면 이 시나리오에서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일이 (민주당이 깨지지 않았으므로 박빙 승리였겠지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 민주노동당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집권 초기에 분노에 찬 노빠들에게 조낸 밟혀서 사이트가 만신창이가 되었겠지. 이라크 파병할 때 "봐!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라는 소리도 들었겠지. 우리 세계를 아는 사람 눈으로 보면 좀 우스운 상황이겠지만,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성장이 억압되어서 자주파에게 점거를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주파들도, 민주당 비판적 지지론자와 민주노동당 접수론자로 양분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군소정당의 운명은 작은 변수에도 요동치기 때문에 소설가가 그리기 나름이다.


두번째 가정은...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조승수가 같잖은 이유로 선거법의 제재를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9석의 정당과 10석의 정당이 의정활동에서 크나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자주파가 역시 민주노동당을 말아먹었다고 치고, 분당 정국에 들어섰을 때다.


조승수는 우리의 세계에서 선도탈당파였다. 그리고 저쪽 세계에서도 조승수는 선도탈당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역구 의원은 탈당을 해도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으니까. 노회찬 심상정이 나올 때까지 진보신당이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못했던 상황을 생각해 보라. 의원직을 유지한 조승수의 선도탈당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구조의 진보신당을 만들었을 것이고, 도전할 만한 지역구를 두 개에서 세 개로 늘렸을 것이며, 1명에 불과하지만 의원을 보유한 정당으로서의 진보신당은 우리 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여론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신당은 지금보다 아주 약간 더 좋은 성과, 즉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이건 득표수로 치면 아주 약간 더 좋은 성과이지만...... 그것이 미치는 결과로 치면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이 생각을 하면 약간 속이 쓰린다.


부질없는 짓 같지만, 이런 상황을 상정해 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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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진보신당의 지지를 호소하는 글은 아니다. 나는 소심한 사람으로, 선거법을 위반하려는 의사가 전혀 없다. 다만 나는 진보신당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진보신당이 왜 생겨났고 어떤 당인지에 대해 약간의 정보를 전달하려고 한다.


1. 왜 민주노동당에서 떨어져 나왔나?


2004년 소위 민주노동당에서 '자주파'가 당권을 잡은 후 많은 문제가 누적되었다. 자주파의 세계관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남한에서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를 실현시키는 '자주적 민주정권'이 탄생하면, 이 남한 정부와 북한 정권이 연방제 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문제가 해소된다고 그들은 믿는다. 자주파를 북한의 의중을 대변하는 완전한 '종북주의자'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연방제 통일 방안은 북한 정권이 체제 경쟁에 나름대로 자신있을 때 만들어낸 것으로, 지금의 북한 정권은 이런 방식의 통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주파는 대선 정국에서 김대중이나 노무현 등 개혁적이라 알려진 민주화 진영의 후보에 대해 소위 '비판적 지지'를 해왔다. 그들이 대통령이 되면 국보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가 실현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 기대가 좌절되자 그들은 대거 민주노동당에 입당하여, 민주노동당 집권을 통해 자신들의 꿈을 실현하려고 했다.


자주파가 아닌 사람들은 이들이 대중정당에서 운동을 하면 무언가 바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은 거기에서 멈춰 있었고, 2004년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원내에 진출하는 소득을 거둔 이후 적극적으로 민생정치를 펼치는데 큰 장애가 되었다. 가령 이들에겐 국가보안법 철폐가 그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당 예산의 대부분을 거기에 쏟아부으면서 다른 문제는 외면했다. 국가보조금까지 받는 정당이었던 민주노동당의 재정이 날로 악화되었다.


열린우리당이 소위 4대 개혁입법에만 신경을 쓰고 사회경제적 문제에선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태도를 취하여 지지를 잃어 가고 있던 그 상황에서 민주노동당 역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좀 더 과격하게 열린우리당의 노선을 표방하는 것으로 인지되었고, 의미있는 세력으로 국민에게 각인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일심회 사건'이라는 것이 터졌다. 민주노동당의 주요 간부에 대한 정보를 어느 자주파 활동가가 북한에 넘겼다는 사실이 밝혀진 사건이었다. 민주노동당의 친북성향에 대한 세간의 의구심이 증폭되었고, 자성과 혁신의 목소리가 일어났지만,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 자주파들은 '코리아 연방 공화국'을 내세운 권영길 후보를 대선 3수생으로 선출했다. 권영길 의원은 원래 자주파는 아니었지만, 이때엔 자주파의 지지를 얻어 당선되었다.


2007년 대선에서 2002년 대선만큼의 지지율도 얻지 못하는 '참패'를 기록하자, 당내에서 혁신을 말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자주파 노선에 대한 비판과, 일심회 사건에 연루된 당원에 대한 징계 요구가 이어지면서, 조승수 전 의원을 비롯한 일부 당원들이 탈당하기 시작했다. 심상정 의원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선임되어 민주노동당을 개혁하려고 했지만, 일심회 사건 연루자 제명 등의 내용을 담은 최소한의 수준의 당대회 안건이 자주파에 의해 부결되자 신당 창당에 합류하게 되었다.


심상정, 노회찬 전 의원을 중심으로 추가적인 탈당자들이 나와서 기존의 탈당자들과 함께 '진보신당 연대회의'라는 것을 결성하게 되었다.



2. 왜 진보신당이란 당명을 채택했나?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현재 진보신당의 정식명칭은 '진보신당 연대회의'다.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1만 5천명이 넘는 당원이 탈당했으되, 그중에서 8천명 가량의 당원이 진보신당에 입당했다. 진보신당은 아직 당 체제와 당 강령을 완전히 확정짓지 못한 상태다. 총선에 너무 임박한 상태에서 갈라져 나왔기 때문에, 창당 당원 사이에 충분한 토론의 기회를 가질 수 없었고, 바로 총선 정국에 뛰어들어야 했다. 심상정 전 의원 등 당 지도부는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총선 전 진보신당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1차적으로 창당하고, 총선 후 민주적 논의를 통해 창당의 절차를 마무리 짓자는 2단계 창당론을 제시했다. 현재 진보신당 연대회의는 1단계 창당만 진행되어, 총선에 임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민 경제의 문제를 끌어안는 진보정당의 가치는 표명했으되, 구체적인 체제와 강령, 당명 등은 총선 후에 완전히 결정될 것이다.



3. 그들은 왜 진보신당이 필요하다 생각하나?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의 경제적 이념이 동일하다고 보고 있고, 이 문제에 대해 기존의 민주노동당이 올바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제는 누가 해도 똑같다."라고 말한 바 있고, 이명박 정권의 경제 브레인인 이한구 역시 "참여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버려서 (경제정책에서) 그다지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대북정책과 일부 정치적인 문제에서 차이가 있고 반목할지라도, 경제 문제에서는 대동소이하다는 의미다. 그런 결과로 경제성장과는 상관없이 서민들의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져만 가고 있다고 진보신당 사람들은 생각한다.


민주노동당이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 대응해야 했으나, 앞서 언급했듯 자주파들의 세계관을 따라 국보법 철폐 등의 문제에만 지나치게 강경대응함으로서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사람들은 이명박을 지지해서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금세 지지율의 거품이 꺼지고 있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구에게도 온전한 신뢰를 보내지 못한다. 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이 서민들의 경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는 것이다. 이 믿음이 완전히 사라진다면 한국 사회는 정치적인 것에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는 매우 낙후한 국가가 될 것이다. 진보신당은 민생 정치에 대한 요구를 정치권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하려 한다. 비록 당장은 조직도 부족하고 역량도 부족할 수 있지만,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진보신당은 그외에도 민주노동당 시절 많이 챙기지 못했던 생태 문제와 여러 종류의 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 평등 / 생태/ 평화 / 연대 라는 구호는 이런 맥락에서 배출되었다.




4.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나?


앞서 언급된 것처럼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후 우수한 의정활동을 벌인 노회찬, 심상정 전 의원이 주도적이다. 홍보대사로 <말죽거리 잔혹사>에 출연한 영화배우 김부선, 문화평론가 진중권, 영화감독 변영주, 박찬욱, 임순례, <불멸의 이순신>의 소설가 김탁환 등이 활동하고 있다. 영화계와 지식인들은 별도의 지지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른 네명의 지역구 후보가 출마한 가운데 노원병에서 한나라당 홍정욱 후보에게 박빙 우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회찬 후보의 선거운동 현장에는 영화배우 박중훈과 가수 하리수가 도움을 주고 있고, 고양 덕양갑에서 한나라당 후보에 맞서 선전하고 있는 심상정 후보를 영화배우 문소리가 적극 지지하고 있다. 비례대표 후보는 11명인데 1번에 장애인 여성 운동가 박영희, 2번에 이랜드노조의 이남신이 선출되었다.  





진보신당연대회의 홈페이지 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성명/논평이나 정책 공약 해설 등의 자료를 통해 어떤 성격의 당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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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이 점도 논의의 여지는 있지만 일단 그들을 극우파라 가정한다면) 극우파의 역사교과서가 출간되었다는 것보다 더욱 쪽팔린 것은 국사 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당연하게 여기고 살고 있지만 세상에 그런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우리는 일본인들의 교과서가 왜곡되었다고 무시하지만, 사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의 역사인식 수준을 비웃을 때 곧잘 하는 말이 국사 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는 나라라는 말이다. 국가에서 가르쳐준 것 외에 무엇을 더 아냐는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여러 가지 시각의 다양한 역사책이 출간되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가장 널리 읽히는 역사책이 국사책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러한 조소를 전적으로 부정하기는 어렵다. 국사 교과서가 하나밖에 없는 현실은 국사 교과서를 둘러싼 지나친 힘겨루기를 낳기도 한다. 가령 ‘환빠’를 탄생시킨 재야사학자들은 1980년대에 소위 강단사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기보다는 신군부에 로비를 하는 쪽을 택했는데, 국사 교과서에만 서술이 포함되면 사실상의 정사(正史)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속셈 때문이었다. 


청소년들이 악영향을 받을 거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단지 역사 교과서 한 권만으로 그들의 역사의식이 결정될 거라는 식의 우려는 지나친 감이 있다. 만일 그런 식의 우려가 정당하다면, ‘국사 교과서 한 권밖에 없는 나라’에 대한 일본인들의 조소 역시 전적으로 정당한 것일 테다. 교과서가 출간되는 것과 그 교과서가 몇 개의 학교에서 채택되느냐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다. 교과서에 실려 있는 관점이나 해석에 비판적이라면 비판을 하면 될 일이지 출간 자체가 개탄할 일이라는 식의 접근은 인정받기 어렵다.


오히려 다양한 관점의 역사교육이 실시 될 때, 상이한 역사적 해석에 대한 이해를 평가하기 어려운 현행의 학력 평가 방식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실천적인 일이겠다. 그리고 현행 국사 교과서가 ‘좌파’적이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에 동의하지 못 한다면, 또 다른 관점의 국사교과서를 만드는 일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상의 논의는 그저 원론적인 수준인데, 언론에 소개된 교과서의 대략의 내용을 보니 이 사건을 평가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엔 박정희에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이 꽤 많고, 그 심정적 동의를 이용해 먹는 거대한 정치세력도 있다. 이러한 나라에서 박정희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역사교과서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많은 시민단체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고 해서 나는 또 “5.16=혁명 / 4.19=반란”이라 주장하기라도 한 줄 알았다. 그런 것도 아니다. 적어도 사실판단과 가치판단의 문제는 구별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들의 가치판단에 반대할 수 있는 다른 사료나 다른 도덕률을 제시하면 될 일이다.


서로의 논쟁을 위해서도 뉴라이트의 주장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쪽이 좋다. 막연한 정서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하나의 역사관이 정립된다면 문제는 다르다. 매우 타당하게도 독재정권의 긍정적 역할을 강조하는 그들은 일제 식민지 시기나 이승만 정권의 역할에 대해서도 재평가하고 있다. 일제엔 이를 벅벅 갈고 이승만은 무능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박정희만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어느 소시민의 시각보다는 훨씬 정합적이고, 역사적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논리적으로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고 박정희 독재정권을 옹호하는데 성공하는 어떤 역사관이 있을 수도 있겠으나, 일단 여기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만일 박정희를 좋아하면서도 식민지 근대화론은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뉴라이트 역사교과서를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리고 시민단체들이 그런 이들의 힘까지 빌려 반대파의 숫자를 불려서 그들을 비난한다면, 나는 오히려 그렇게 운동하는 이들의 사고방식이 더 우려스럽다. 대중의 정서가 우리 편일 경우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활용하는 자세는, 당장엔 이득이 될지 몰라도 결국 정치 행위 전체를 수렁으로 빠뜨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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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좌파정당입니다.) 의 이 사건에 대한 논평자료. 양쪽 다 비판적이나 진보신당 쪽의 논평에 조금 더 내가 말한 문제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노동당 보도자료] 최순영 의원 “뉴라이트 왜곡 교과서, 용납안돼”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뉴라이트 황당 왜곡 역사교과서
최순영 의원, “일제침략, 군사독재 미화 용납해선 안돼”


이명박 정부 들어 난데없는 유령이 하나 둘 출몰하고 있다. 그 유령은 이명박 후보의 당선 결과를 두고 국민들이 무분별한 온갖 역주행을 지지했다고 오해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새정부 인수위의 영어몰입교육과 온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던 한나라당 서울시의원들의 학원영업시간 자율화가 그랬다. 또 하나 나타난 역주행 사례가 이른바 뉴라이트 지식인들의 황당한 역사교과서이다.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3년여의 준비 끝에 기존 역사서술이나 해석과는 사뭇 다른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대안교과서'를 출간했다. 대안교과서는 이미 그 준비과정에서 역사상식을 뛰어넘는 해석으로 4.19 혁명 관련 단체들과 충돌하는 등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관점이 개항과 국제무역 확대 등의 시각으로 표현되고 논란이 뜨거운 식민지시대 한국사회의 성격에 대해서는 ‘일제의 한국지배는 한국인의 정치적 권리를 부정한 폭력적 억압 체제였다’라고 규정하면서도 이 시기에 완전한 의미의 근대적 신분해방과 사유재산제도가 이뤄지고, ‘모던보이’와 같은 근대의 인간군상이 탄생한 시기라는 측면을 강조했다.

또한, 군사정권과 유신체제를 미화하는 등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인식에서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과 역사발전의 과정에 대한 심각한 왜곡된 진술이 포함되어있다.

역사용어 선택 또한 파격을 시도해 ‘명성황후’는 ‘민왕후’로 격하시키는 등 잘못된 역사인식을 그대로 기술하고 있다. 심각한 상황은 ‘교과서 포럼’에서 23일 내놓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집필진 12명 중에는 역사학 전공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청소년들이 역사를 배우는 교과서에 암울했던 일제침략시대와 군사독재시대를 미화하고 긍정적인 면을 내세워 강조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숭고한 항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모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역사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신체를 망가뜨리는 마약을 투입하는 것과 다름없다. 우리는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근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잘못된 역사책이 학교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함께 불매운동을 벌이고 준엄한 꾸짖음에 적극 나서 줄 것을 제안한다. 올바른 역사의식은 가치판단의 잣대이고 우리의 미래를 밝히는 횃불이기 때문이다.

2008년 3월 24일
국회의원 최순영(부천 원미을 국회의원 후보)


[진보신당 논평]
뉴라이트 ‘교과서’와 대통령의 역사인식
역사를 실용주의적으로 보라고 청소년에게 가르칠 수 있나



이영훈 서울대 교수를 주축으로 하는 뉴라이트 계열 지식인들이 현행 고등학교용 역사 교과서를 ‘좌파적 역사 인식’이라고 비판하며 ‘대안 교과서’를 내놓았다. 소위 ‘대안 교과서’에는 기존 역사 서술과 정면으로 맞부딪치는 역사 인식이 담겨 있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대한민국에서 이런 내용의 책이 나오지 못하게 금지할 수는 없다. 또,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난 실용주의적 역사 인식이 학술적으로 정리되었다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제 학계에서 실용주의적, 우파적 역사 인식과 정면으로 대결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책이 ‘교과서’용으로 제작되었다는 것은 위기감을 느끼게 한다. 역사학 학술서로 나왔다면 이 정도로 파문을 일으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 근현대사를 다룬 교과서의 역사인식은 청소년의 역사관과 국가관, 가치관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현행 교과서가 ‘좌파적 역사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검정을 거친 현행 교과서는 역사학계에서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인데, 그러면 한국 역사학계에는 좌파들이 포진하고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느끼는 위기감은 이단적인 역사 인식을 바탕으로 한 책이 출간되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역사를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서 일정 이상의 세력을 갖고 있고, 청소년을 상대로 포문을 열었다는 것 때문이다. 하기야 대통령부터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열린 민족주의’를 주문했으니, ‘교과서 포럼’만의 문제는 아니겠다. 대통령의 역사 인식을 묻고 싶은 시점이다.


2008년 3월 24일

진보신당 대변인 송 경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