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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07/18
- 2003/02/14
정치학자 최장집은 최근의 촛불시위에 대해 ‘정당정치의 부재’가 만들어낸 사건이라 진단했다. 결국 정당정치 강화가 해답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진단을 “이제 그만 촛불을 꺼야 할 때”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였고, 분개했다. 왜 현 시점에서 ‘촛불시위 반대’로 오인받을 만한 주장을 개진하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맥락’이 아니라는 것인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최장집의 주장에 분명 ‘맥락’이 있다고 본다. 가령 오마이뉴스에서 시위군중의 모습을 비추는 대형 전광판을 동원할 때, 거리에 저 유명한 ‘전대협’의 깃발이 등장할 때, 나는 87년의 스펙터클을 재현하려는 어떤 욕망을 본다. 이 욕망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최장집의 말대로 87년은 정치제도의 변혁이라는 관점에서는 성공한 사례라고 보기 어려운데 말이다. 이번에도 ‘운동’과 따로 노는 정치를 만들 것인가?
87년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대통령 직선제’라고 믿었다면, ‘again 1987’의 감상에 젖은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국민소환제’라고 믿는 것 같다. 87년에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대통령 직선제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했다면 세상은 더 나아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87년과 달리 지금의 촛불시위는 한두 가지 제도의 변혁을 성취하기도 벅찬 처지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직접민주주의가 이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간접민주주의가 실시된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담은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무조건 정당한 흐름이다.” 그리 현명한 생각이라 보기 어렵다. 굳이 ‘민중의 자기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로부터 따진다면, 대의제뿐만이 아니라 다수결조차 문제가 된다. ‘만장일치적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자율성과 국가의 권위를 양립시키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온전히 실현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을 조금이라도 실현하려는 정책이 올바른 것이 될까. 오히려 오늘날의 많은 정치학자들은 만장일치를 유도하는 의사결정에 파시즘의 우려가 있다고 볼 것이다. 가령 정당정치는, 이견과 갈등을 드러내려는 장치로서 만장일치제에 모순된다. 그러므로 정당을 해산하는 것이 더 민주주의적인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이며, 천상의 제도가 아닌 세속적인 이해관계의 타협의 산물이다. 설령 어떤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지닌 정책이 도입된다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본질적인’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나는 최장집이 우려한 낭만주의가 그러한 착각이라 생각한다. 결국에는 국민소환제 역시 이 제도가 어떤 효용을 지닐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할 뿐이다.
다시 문제는 정치다. 촛불시위에 거는 희망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것은, 떨어지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제 것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타 정당들의 한심한 역량이다. 시위를 지도하려다가 욕먹은 민주노동당과 얌전히 시위를 따라다니면서 ‘아고라의 여당’이라 불리게 된 진보신당의 길을 넘어, 시민들의 욕망을 정치적 지향으로 전환하는 설득에 성공하는 그런 정당과 그런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게 최장집이 은퇴 강연에서 말한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역할이 아닐까. 지금 정당이 촛불시위에 결합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고, 거리의 대중과 호흡하면서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가진 이가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정치에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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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중앙일보는 자본의 이해를 철저히 대변하는 상업신문으로서, 보수적이긴 했으나 다른 이의 사상을 문제삼을 만큼 극우적이진 않았다. 오히려 대북정책과 관련해서는 조선일보의 맹목적 딴지와는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킹메이커를 자처하며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게 되자, 97년 대선에서는 "이회창 대통령 만들기"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또한 동아일보는 박정희 시절 독재정권에 가장 비판적인 야당지였으며, 5.18 민주항쟁을 전두환 정권이 무력진압했을 때도 "백지사설"로 항의하는 등 (비판적인 사설을 썼다면 당시 상황에서 게재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사설의 자리를 비워놓은 것이다.) 나름대로 독재세력과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왔다. 동아일보는 97년 대선까지 "중립"을 지켰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언론사 세무조사"를 계기로 DJ 정권의 맹렬한 안티세력이 된 동아일보는, 위에서 보았듯이 2002년에 "노무현 비토"에 참가하게 된다.
그들이 보여주는 정치적 행동은 상당부분 "조선일보의 성공"에서 영향받은 것이다. "한나라당 기관지" 역할이 줄 수 있는 사회적 영향력을 탐낸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단순히 한나라당을 대변하는 "한나라당 기관지" 수준을 넘어, 한나라당의 승리를 위한 전략을 제시하는 "한나라당 참모지"로 도약하고 있다. 이번 대선국면의 경우, 월간조선의 편집장인 조갑제 씨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에서, 노무현을 "좌파"로 규정하고 이 선거를 "좌우대결"과 "이념검증"으로 이끌어 가라고 한나라당에 주문한다. 또, 이회창이 권영길이 제안한 부시 사과 요구 성명서에 서명한 사건에 격분하여 "반미운동에 우파 지도자가 동조함으로써 이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일조하고 있는 그의 이상한 전략은 일종의 자해적 선거운동"이라고 외친다. 그는 한나라당이 취해야 할 구체적인 선거전략까지 제시하는데, 그중 "행정수도 이전하면 수도권 땅값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려라."는 주문은 실제로 그 후 한나라당에 채택되기도 했다. 이는 조선일보가 수구세력의 단순한 대변인이 아닌, 탁월한 선동가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또,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대선공간에서 <극우세력>을 지지하기는 했지만, 스스로 극우세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사실도 고려해야겠다. 중앙 동아의 극우세력 지지는 이권과 관계가 있지만, 조선의 극우세력 지지는 사상적인 일관성을 가진다.
이번 대선국면에서도 조선일보는 대략 중앙일보·동아일보와 행동을 같이 하기는 했지만, 일정부분 차별되는 면을 보여주었다. 그중 큰 부분은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조선일보의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나는 "이들이 반대한 세력"에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열정을 소유한 사람"을 포함시켰다. 조선·중앙·동아가 대개 "노무현 비토"에 앞장섰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민주당 노무현이 진보적 열정도 포함한다는 것이냐, 진보정당의 독자성을 무시하는 분석이 아니냐."고 말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수구언론이 형성하는 세력구도가 <양강구도>에 국한된다고는 보지 않으며, 그들이 포괄적으로 노무현과 권영길을 포함한 반수구세력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고 보고 있다. 조선일보가 형평성을 맞추느라 권영길 현상에 대해 긍정적인 시론을 한번 게재했다 해서, 한겨레와 오마이뉴스가 "수구세력이 권영길을 띄워 노무현 표를 잠식하려 한다!"는 식으로 반응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수구언론은 권영길에 대해 적절한 대접을 해주지 않았으며, 특히 조선일보의 경우 노골적인 적대감을 보였다.
권영길을 위한 무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대선 TV 토론 이후, 조선일보만큼 "제 3후보"의 존재를 공격한 언론은 없다.
기본적으로 이회창·노무현 후보의 양자대좌였다면 더 본격적일 수 있었을 토론이, 그렇지 않은 3자대결로 진행된 탓으로 집중력과 긴박감에서 미흡했다는 지적을 들을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 사설] 허와 실 함께 드러낸 TV토론 12.4)
이·노 후보 간의 첨예한 상호 공방 속에서 권영길 후보의 질책성 결론 제시는 여론조사상의 지지율 분포를 무색케 하는 모습이었다. ([조선일보 시론] 형식에 얽매인 토론 12.5)
이런 가운데 권 후보의 참가로 TV토론이 희극화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당선 가능성이 높고, 실제 유권자 관심이 높은 이회창·노무현 후보의 공방이 제대로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권영길 현상? / 민노당 “TV토론 선전…득표율 상승 기대”12.5)
사설과 외부필진의 시론 뿐 아니라, 권영길의 부상을 점친 박스 기사에서마저 "지지율 분포"를 이유로 권영길의 토론 참가를 탐탁치않게 바라보는 시선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앙·동아의 보도행태와는 구별되는 점이다. 수구언론이 권영길을 달갑지 않게 생각한 이유는 "부패정권 심판론"을 희석시켰기 때문인데, "극우" 조선일보는 그것과 함께 진보세력의 성장에 대해서도 일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의 "꼬마 조선일보"화 경계한다
2002 대선은 한국언론이 공정성에 대한 고려없이 특정 정치권력을 창출하려고 노력하는 세력임을 보여주었다. 이는 다른 언론들이 주로 조선일보의 행동을 모방하면서 생긴 현상이므로, 수구세력의 탁월한 선동가인 조선일보의 보도행태는 앞으로도 지속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수년간의 "안티조선 운동"은 <조선일보>의 영향력은 감소시켰으나, <조선일보적인 행동>이 가져올 이득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그래서 중앙 동아 등 수구언론 뿐 아니라, 개혁성향의 대안언론들 역시 정치세력화 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나름대로 중도적이었던 동아일보가 "조중동" 연합전선에 가담하면서, 반대편에 선 한겨레의 영향력이 갑자기 커졌다. 그러나 한겨레 역시 "조선일보적"으로 이 영향력을 활용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이득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한 한겨레와 오마이뉴스는, 수구언론만큼은 아니더라도 분명 비판받아야 할 역(逆)편향 보도를 일삼았다.
오마이뉴스에 비해서는 언론의 정도를 지켰던 한겨레에 대해서만 간단히 역편향 보도의 사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한겨레는 "한반도 평화정착 방안"에 대한 3인 후보의 [5대 국정과제 비교평가] 기사에서 민주노동당의 평화협정 방안이 <남북미평화협정>임에도 불구하고 <남북평화협정>으로 소개했다. 같은 기사에서 한겨레는, 핵위기의 근본책임에 대한 민주노동당의 입장은 <미국과 북한>의 동시책임론이었음에도 <미국>만 서술하고 있으며, 거꾸로 노무현 후보는 <북한>책임을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북한> 동시 책임으로 소개하고 있다. 또한 한겨레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민주노동당의 공약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노무현 후보의 공약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 이런 보도가 오보(誤報)인지 왜곡보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진보진영의 "노무현 비판적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 내지는 욕망이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가 수구언론에게 요구하는 것은, 정치적 입장은 자유롭게 표방하되, 보도는 공정하게 하라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설에선 적합한 근거를 들어 주장을 개진하되, 기사에서는 형평성을 지키라는 뜻이다. 이런 요구는 다른 언론에도 예외일 수 없다. 사람들의 <감정>을 자극해서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세력을 지원하는, 조선일보의 방식을 답습하는 언론은 민주사회의 건전한 여론형성에 방해가 될 뿐이다. 언론은 정치를 하는 집단이 아니라, 보여주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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