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블로그 이미지
이 모든 것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 a_hriman@hotmail.com
by 한윤형
Statistics Graph
  • 500,715Total hit
  • 464Today hit
  • 669Yesterday hit

'운동권'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08/06/07
    [펌] 6월 5일 현재 운동권의 뇌구조 / 닷오르 님 (12)
  2. 2008/05/26
    혼란 (11)
  3. 2008/02/14
    왜 학생 운동 조직은 20대로부터 멀어졌나? (10)

6월 5일 현재 운동권의 뇌구조


이러다 또 정세 바뀌면 어찌될지 모름.

더 큰거 만들어서 몇 가지 추가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귀찮아서...



-------------------------------------------------------------------------------------------------


푸하하하하하하.....;;;;;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2 AND COMMENT 12

나는 2001년도에 대학에 들어왔다. 학생정치조직에 소속된 이들을 흔히 '운동권'이라 칭했다고 본다면, 운동권도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나 역시 운동권으로 분류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90년대 후반에 대학에 들어와 학정조에 소속되었던 대부분의 '운동권'들과 나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간단히 말하면 그네들은 '가투 경험'이 있고,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쇠파이프도 화염병도 만져 본 적이 없다. 이 두 사물은 내게는 소설 속에서만 접했던 물건들처럼, 머리 속에 개념과 양태는 입력되어 있으되 질감의 기억은 수반되지 않는 추상적인 물건들일 뿐이다.


일인시위나 촛불시위 같은 것은, 가투가 사라진 (물론 전체 사회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공간이나 어떤 영역에서) 곳에 나타난 새로운 시위 양식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참여정부 시절 집시법은 개정되기는커녕 개악되었고, 촛불시위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은 일종의 '환상'이었다고 폄하할 수도 있겠지만, 촛불시위가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간 것은 분명하다. 비록 그 문화가 만들어지면서 그 이전의 집회문화를 지나치게 폄하한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원래 새로운 것이 생겨날 때엔 이전 것들을 부정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학부모와 여중 여고생들을 포함한) 여성들이 유입된 최근 한달 간의 '촛불문화제'는 여러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사과 아닌 사과를 하고, 조중동은 그 사과를 감동적으로 포장하고, 이명박의 지지율은 다시 조금 높아지는 가운데, 실망한 시민들의 움직임은 촛불시위 정국을 또 한번 변화시켰다. 행진을 시작했고, 저지가 있었고, 충돌이 발생했다. 주류언론과 인터넷 알바들은 촛불시위가 폭력시위로 변질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참여자들은 단지 행진을 의도했을 뿐이라고 한다. 물론 행진 자체가 불법이긴 하지만 말이다.


일요일 새벽부터 갑자기 철지난 가투가 벌어졌고, 시민과 경찰의 대치가 있었다. "거리가 90년대로 돌아갔다."고 어느 90년대 학번이 말했다. 그런데 차이가 있는 것은 그 90년대의 거리에 서 있는 시민들이 가투 경험이 있었던 그 90년대 대학생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연행조가 뻔히 있는데도 들이밀자고 하고, 경찰이 의도하는 대로 휩쓸려서 뺑뺑이 돌다가 토끼굴로 몰려간 다음 토끼몰이를 당한다. 좀 아는 사람들이 방향 조정을 하려고 하면 의견충돌이 생겨 한참 동안 의사진행이 마비가 된다고 한다. 집회 참여자들끼리 충돌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지금 '거리의 정치'는 2000년대의 문법과 90년대의 문법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헤매는 중이다. 이러다가 더 큰 일이 생기지나 않을지 걱정이 된다.


우리의 '시민'들은 대개 자신들을 '운동권'과 구별짓고자 했다. 경찰조직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강하게 조직화시켜 온 그 집단을 혐오하고, 자신들은 다른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시민들이 우리의 국가권력을 유순하게 길들여 놓은 후에 나온 인식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실상은 사자 몸통 위에 얹어 놓은 양의 머리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을 뿐이다. 사자 몸통은 김대중-노무현 시절에도 여기저기서 발톱질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머리마저 다시 사자 머리로 바뀌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이전 시대의 가투로 돌아가자고 말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시민들의 자발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집회 참여자들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방책을 강구해야 할 터인데, 워낙에 급작스러운 일이다보니 진보신당 등에서도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입장을 정하지 못한 것 같다. 뭘 정한다고 해서 시민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일 터이고. 매정하고 무력하게 말하자면 십중팔구 이 사태는, 모두의 손을 떠나,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것이다. 혼란스러운 나날들이다.  




P.S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렇게 대충 넘어가면 된다고 믿는 정부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디시에서 거리 시위에 관한 지침을 보고 있자니, 굉장히 생경하다. 남한의 모든 게시판이 시위 얘기를 하고 있다. ㄷㄷㄷ 이래도 이명박이 이길까? 어디 한번, 두고 볼 일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2 AND COMMENT 11

88만원 세대의 당사자 조직을 고민하는 희망청 포럼에서 발제문으로 쓰였던 글입니다. 포럼은 어제였죠. 발제를 할 때는 중간중간에 사례 설명을 좀 했는데, 글 자체는 건조하군요. ^^;

-----------------------------------------------------------------------------------------------------


  쉽지 않은 얘기다.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자칫하면 ‘탓’ 공방이 되기가 쉽다. 사회구조를 통한 접근이나 20대 자질론 양쪽 다 그렇다. 그래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대한민국 성립 이후 한국 사람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진 방식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미국대사관의 문정관으로 근무하던 그레고리 핸더슨이란 사람은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중앙정치의 과잉현상을 ‘소용돌이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회사, 조합, 교회, 우애단체 등 시민사회의 성립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개인과 국가 간의 중간 단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구조에서 중앙 정치가 아무런 여과 없이 개인을 대량으로 동원했던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런 중앙 정치는 생활세계의 이슈를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독재정권이 들어서면서 민주화라는 화두가 사람들의 정치의식을 지배할 때조차 상황은 그러했다. 민주화 이후 사람들은 정치에서 무엇을 논의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지역주의라든가 삼김이라는 상징을 만들게 되었다. 지금의 20대는 그러한 ‘소용돌이의 정치’가 자신의 삶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한 최초의 세대라 볼 수 있다. 어려운 문제는 그것 이외에 다른 종류의 정치가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20대뿐 아니라 다른 세대도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가지고 있지 않다.


  ‘소용돌이의 정치’의 세계에서 대학생들이 일정한 영역을 차지했던 이유는 쉽게 추론될 수 있다. 대학생이라는 신분 자체가 일종의 특권신분, 엘리트로 받아들여졌고, 비교적 모임을 쉽게 조직할 수 있었다. 그런 대학생들에게 사회가 하나의 역할을 부여했다. 마르크스가 먹고 살만 하고 조직을 쉽게 만들 수 있는 대공장 노동자들에게서 혁명의 희망을 보았던 것과 비슷한 이치다. 이런 대학생들의 역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념적인 측면에선 80년대 운동권을 지배했던 이념인 NLPDR이 사회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고, 문화적인 면에서는 20대가 대학생이 되는 비율이 현저하게 높아지면서 엘리트라는 상징성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 있고, 경제적인 접근으로는 ‘고용없는 성장’의 시대가 개막되면서 더 이상 대학이 경쟁의 무풍지대가 아니라 가장 가혹한 경쟁의 장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대학생이 한국 정치의 주역이 되는 시대는 저물어 갔다고 볼 수 있겠는데, 여기서 “중앙정치에 간섭하던 대학생들이 왜 자신들의 문제를 이슈로 하는 정치적 조직을 결성하는데 실패했는가?”라는 질문이 가능해진다.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원론적인 차원에선 다시 ‘소용돌이의 정치’라는 개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즉 우리는 중앙정치와 생활세계의 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경험적 학습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학생들로서는 자신들의 문제가 바로 사회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말해보자. 2000년 이후 소위 ‘등록금 투쟁’이 운동권에서도 이슈로 등장했다. 하지만 운동권들은 이것을 정치문제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대개 운동권 정파들은 그것을 ‘복지 공약’으로 생각했고, 복지 공약으로 학생들의 인심을 얻은 후 총학 집권에 성공하여 우리 정파의 정치 활동을 강화해 나가겠다는 식으로 사고했다. 학생운동이 퇴조하고 있던 그 시점에서 아마도 등록금 문제는 전체 학생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단 하나의 문제였을 것이다. 각 대학에서 공동으로 대응을 하고, 각 학교와 협상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 차원으로 문제를 가져가 학자금 대출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슈를 제기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그때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결국 그것은 실현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어디까지나 사후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경제적인 차원에서 20대 문제라는 것이 제기된 것은 사실상 <88만원 세대>의 출판 이후 부터이기 때문이다. 학생정치조직(학정조)의 쇠퇴기에 학생들은 이념의 시대가 저 멀리 날아감을 아쉬워하거나, 더 이상 학생들이 모여서 무언가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야 했다. 그러한 두 개의 감상 사이에서 학정조는 꾸준히 쇠퇴했다. 외양간이 헐리는 것을 잠자코 보고만 있었는데, 나중에야 그 안에 소가 들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격이다.


  한편으로는 대학교 중심 운동이 가져온 고유한 폐해도 있다. 한참 안티조선 운동을 할 때의 일이다. 처음에는 안티조선 우리모두 사이트 내의 청년우리모두라는 공간에서 20대 청년들이 모였다. 그때는 학생운동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기 힘든 사람들을 조금씩 만날 수 있었다. 가령 대학교에 가지 못하고 페스트푸드점에서 알바를 하고 있던 청년같은 이들을. 하지만 ‘운동’을 위해서 우리는 대학별로 조직을 만들기 시작했고, 그러면서 각 대학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대학 안티조선 모임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미묘한 비율로 섞여 있던 그 모임에서, 연세대의 연고전 축제에 은근슬쩍 편승해 안티조선 문화제라는 것을 개최했고, 그 여세(?)를 몰아 전국 대학생 조선일보 반대모임이란 것을 만들고 기자회견을 했다. 그 활동의 효용은 거기서 끝이었다. 아마도 그 활동의 의의는 ‘기자회견을 했다’는 것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우리는 어떤 사람들은 더 이상 우리 모임에 나오지 않게 되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운 부분이다. 조직력의 동원과 정치적인 공정성이라는 것이 충돌할 수 있는 가치임을 깨닫게 한다.


  학생 운동을 하거나, 학생 신분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지다가 정치적 단체에 가입을 하여 활동한 사례에 대해서는 별도의 분석이 필요하다. 비록 전반적인 20대가 그들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정치현장에서 경력을 쌓고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면 20대들의 구심점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노사모에 참여했던 20대들, 개혁당에 참여했던 20대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참여했던 20대들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부딪혔던 문제는 제각각이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동일했다. 조직에서는 그들을 ‘일꾼’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노사모나 개혁당에 참여했던 대학생들의 경우 오히려 상대적으로 활발한 토론문화를 가졌으나 조직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조직을 잘 알았던 학정조 출신의 민주노동당 대학생들의 경우, 조직의 의사에 자신의 생각을 맡기는 경우가 허다했다. 건조하게 말한다면 참여한 20대가 절대적인 숫자로 많지 않기 때문에 윗세대들에게 지분을 요구할 수 없는 그런 상황인 것 같다. ‘젊은 여성’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는 젊은이들을 대의하는데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중년 남성들에게 어필하는 데 소모된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결과적으로 생각해 볼 때 학생 운동권, 혹은 학생 정치조직에서 20대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것은 단지 그들이 부족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례별로 다르겠지만 그들은 총학 선거에서 나름대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 같다. 그렇지만 평균적인 20대들이 정치적인 접근이나 연대를 통한 문제해결이라는 방식 자체에 대해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정한 가치지향이 아니라, 어떤 집단이나 어떤 연대의식이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가치지향을 품고 다른 이들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손해보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다. 이 인식이 없는 상황에서 정치조직의 가입을 권유한다는 것은 곱셈의 효용성을 의심하는 이에게 인수분해를 가르치는 것과 같다. 학생 운동 조직이 ‘88만원 세대’의 미래에 돌파구를 가져오리라는 희망이 들지 않는 이유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1 AND COMMENT 10

ARTICLE CATEGORY

분류 전체보기 (649)
공지 (3)
정치 (301)
문화 (335)
잡담 (8)
사진 (1)

CALENDAR

«   2008/10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