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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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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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에 해당되는 글 10건

  1. 2008/06/08
    이명박과 폭력시위, 그리고 주민소환제 (13)
  2. 2008/04/12
    두 개의 대체역사소설 (8)
  3. 2008/04/08
    진보신당은 대안이 아니다? 누구 마음대로? (9)
  4. 2008/02/27
    드라마틱 소사이어티 : 중산층의 복수 (5)
  5. 2007/12/06
    [서울대저널] 냉소주의의 위협과 제국의 역습 - 2007년 대선의 정치극장 (7)
  6. 2007/11/22
    아이센가드 (3)
  7. 2007/11/12
    [프레시안] 이회창은 왜 돌아왔는가? (14)
  8. 2003/12/19
    노무현 지지자들의 이중성과 그릇된 믿음에 대해
  9. 2003/02/14
    [이대교지] 조선일보 -수구세력의 탁월한 선동가
  10. 2002/12/05
    권영길 표 이회창에서 온다. 수구세력에 놀아나지 말라.

이명박의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몇몇 사람들의 섣부른 예측을 보고 '아직 이명박은 패배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생각 혹은 깡다구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불교계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그는 "소나기는 언제나 피해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고 또 어디선가 촛불시위의 배후를 친북세력이라 말했다고도 하는데, 물론 청와대는 이런 보도들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걸로 대통령의 생각을 유추해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대통령은 시위하는 시민들을 '잃어버린 10년' 동안 좌파정권에 오염당한 이들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고, 자율규제를 통한 협상 보완과 측근들 몇 명의 사표 수리로 여론수렴의 생색만 낸 후 자신의 프로그램 대로 계속 통치를 진행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답이 없다. 여론이라는 게 수렴을 하려고 하면 무섭지만, 아예 수렴을 포기하면 아무것도 아닌 측면이 있다. 대선도 총선도 끝났고 국민소환제도 없는 마당에 어떤 방법으로도 정부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지금의 시위는 물론이거니와, 청와대에 진격해봐도 별 무소용일 것이다. 마침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가서 시위해도 별 소용없다. 겁은 안 나고, 기분만 나쁘다."며 시위대에게 쓴소리(?)를 한 참이다.


그런 상황에서 폭력시위의 탄생은 거의 논리적 필연이다. 물론 지금의 시위대의 구성에서 폭력시위가 '전술적으로' 합당한 방법이 아님은 분명하다. 폭력시위야말로 이명박이 바라던 것이고, 그는 폭력을 행사하는 '배후세력'을 구속시키고 촛불시위를 강경진압할 명분을 찾을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이 조치에 단일한 목소리로 저항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바야흐로 '느슨한 시위'의 장점이 단점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화물연대의 파업 이전까지는 이 시위대가 '불법 비폭력 시위'의 틀은 유지해 주길 바랬는데, 결국 일은 이렇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폭력시위를 시작한 몇 사람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앞서 말한대로 이 정도 정국에서 정부가 성의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행동이 점차 격화되는 것도 당연하다. 제발 폭력시위 좀 해달라고 그렇게까지 꼬드기고 있었는데, 결국 폭력시위자가 나타나는 건 인지상정이다. (나는 사람에게 별스런 기대를 하지 않는 축이다.) 이건 이처럼 '느슨한 시위'가 아니라 강력한 지도부가 있어 "폭력 쓰면 안돼!!!"라고 외치고 있어도 우발적으로 폭력이 터질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인들이 폭력시위를 안 해본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지인들은 아닌, 생활환경에서 만난 사람 중 많은 이들이 '이러다 화염병에 쇠파이프 나온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거의 다 30대 초반이었는데, 이 90년대 초반 학번들은 물론 '폭력 가투'를 가장 열심히 한 세대다.


아주 거칠고 단순하게 말한다면 이렇게 얘기해 볼 수 있다. 모두가 이명박에게 체념하고 있을 때 십대들이 그들 또래 특유의 교우관계를 통해 결집하고 정부를 규탄했다. 이때 다른 세대들이 안 나온 건 아니지만, 모두가 그들의 방식을 공유했다. 그러자 정부는 장학사와 교사를 보내 십대들을 제압했다. 이에 열받은 이십대가 그들이 해본 유일한 집단적인 짓거리, 즉 월드컵 거리응원의 방식으로 거리에 뛰쳐나왔다. 한동안 다른 모든 세대가 이 방식을 공유하며 잘 놀았다. 하지만 정부는 닭장차로 청와대 쪽 길만 막아놓고 귀를 막았다. 이런 상황에선 이십대의 방식이 또한 무용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삼십대가...... 폭력가투의 방식으로? 무슨 시간을 역류하는 SF 소설 같기도 하고 차례차례로 적들과 이에 대한 대응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 같지도 하지만 현실이 대충 그렇다.


그렇다고 현실이 아예 판타지 소설일 수는 없으니까 90년대 초반 학번들이 우르르 열을 지어 쇠파이프를 드는 꼴을 볼 수는 없을 거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짓 했다간 바로 구속이고, 그들은 이미 다 생활인이다. 여하간 이런 식의 '이행'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정부가 점점 더 사람들을 열받게 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챙기고 있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새벽의 폭력시위는 우발적이었(던 것 같)다. 시위를 통제하려 드는 대책위의 행동이 마음에는 안들지만 그들이 사주한 것 같지도 않았고, 등장한 쇠파이프나 각목은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인근 공사판에서 주워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다시는 거리응원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한번 거리로 뛰쳐나온 후에는 다시는 광장의 촛불시위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정부에게 이 시위대를 분쇄할 확고할 명분이 생겼다. 앞으로의 시위는 훨씬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도 대통령이 저 정도로 반응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을 적당히 길들이면서 보수세력의 결집과 반격을 시도하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두언 인터뷰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대통령의 측근들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대해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모르겠다. 만일 그가 조선 중앙의 조언조차 생까는 대인배라면 상황은 무척 재미있어진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선과 중앙은 대통령의 기를 적당히 꺾어서 무난하게 국정을 운영하도록 하거나, 대통령이 이에 불응할 경우 한나라당으로 하여금 대통령을 통제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을 것 같다. 그들이 킹메이커라고 착각하고 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명박이 만일 그들의 말조차 듣기를 거부하면 그들로서도 방법이 없다. 한국에서 대통령과 언론 중 누가 더 강한지를 이명박이 한번 보여줄 필요까지도 없다. 이명박이 시위대를 분열시킬 수만 있어도 조선 중앙은 다시 열렬한 나팔수로 돌아설 것이다. 쪽은 팔리고, 차라리 노무현 때가 좋았다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똑똑하다면 눈 딱감고 다시 '야당지'로 복귀하여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이건 이명박의 전횡이고, 한나라당이 통채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뭐 이런 식의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다. 정두언 인터뷰는 바로 그런 작업의 시작 쯤에 위치했던 것 같다. 이명박을 간신들의 늪에 빠진 군왕으로 만들어 간신들 몇만 숙청하고 정권을 '정상으로' 되돌리거나, 정 이명박이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면 대통령까지 통제하려 했던 게 그들의 노림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명박이 이렇게까지나 레임덕을 완고하게 거부하면, 결국 이명박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 한나라당과 동반 몰락하게 된다. 지방선거 이후의 이명박은 노무현 말기처럼 노상 신경질을 부리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런 식으로 짜증을 부리면 한나라당도 같이 망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조선 중앙이 배팅을 해야 할 이유는 크게 줄어든다. 어차피 대통령을 꺾을 수 없고, 대략 망하는 게 진실이라면, 그저 임기 동안이라도 평탄하게 지내는 쪽이 편하다.


노무현은 민주당을 '대안이 안 되는 세력'으로 만들었고, 이명박은 한나라당을 바로 그렇게 만들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다음 대선과 총선이 어떤 국면으로 전개될지는 감도 잡을 수 없다. 이건 좋은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망한다고 좋은 일이 아니다. 이렇게 독불장군 두 명에 의해 시스템이 아예 붕괴된 곳에 건전한 정책정당이 들어서게 된다고 기대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차라리 박근혜가 남은 4년을 '보수적으로' 이끌어가는 동안 다른 세력들이 실력을 키우고 있는게 낫다. (쑥쑥 크는 세력이 없을 경우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이회창 선생님이 된다.)


그렇다면 이명박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는 걸까? 우석훈과 다음 아고라의 몇몇은 '주민소환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회의원에 대해서 우리는 '국민소환제'를 사용할 수 없다. 제도가 없으니까.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우리는 주민소환제라는 제도를 지니고 있다. 이걸 사용해서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을 줄줄이 떨어뜨리면서 한나라당을 압박하자는 얘기다.


설마하니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해서 약간 찾아봤더니 제도적으로는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이 제도에는 '놀랍게도' 소환 사유에 대한 제약의 규정이 없다. 아예 제약의 규정이 없다니, 어떤 의미에선 악법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지금 제도적으로 기댈 곳은 이 법밖에 없다는 게 사실이다.


가능할까? 사실 이조차도 비관적이다. 순전히 '네가 너무너무 미운 이명박 씨와 같은 당인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라는 사유만으로, 지방자치단체 장들을 소환하자는 데에 동의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까지 한나라당을 미워하지 않을 이들을 빼더라도, 일단 사유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며 눈쌀을 찌푸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눈딱감고 2년을 기다리는 쪽이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의 무능함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다림도 매우 기약없는 것일 것. 어쩌면 소환 자체의 물리적 효과보다도, 정치적이거나 상징적인 효과가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지방선거의 구도를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무리한 얘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향후 2년을 예측하는 것은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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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1997년과 2002년 대선에서 김대중과 노무현의 '승리'는 엄청나게 많은 변수들이 조합된 기막힌 우연의 산물이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는 '운이 좋았다.'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 최근에는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당장 지금보다 더 좋은 세상이 되었을 것만 같은 두 개의 대체역사 시나리오가 떠오른다. 하나는 큰 사건에 대한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단 좀 더 작은 사건에 대한 가정이다.


첫번째 가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운좋은 일이라 여겨졌던 2002년 노무현의 당선.


2002년 당시로 돌아간다면 다시 노무현을 찍을 수밖에 없겠다는 사람들의 말에는, 동의한다. 그 당시 주어진 자료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왕 한나라당 정권 5년을 견뎌내야 한다면 이명박보다는 이회창 쪽이 훨씬 나아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2002년의 이회창은 지금의 이회창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었다. 성향과 삶의 궤적이 전혀 다른 두 대선후보의 불꽃튀는 대결이 된 대선정국에서, 이회창은 진보 쪽 표를 흡수하려고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집권 초에 오히려 상대편을 안배하는 정책이 나왔으리라고 생각해도 어색하지는 않은 시점이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무슨 짓을 할 수 있었던 간에, 한미 FTA가 그리 갑작스럽게 추진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야당이 결사반대했을 테니까. 그런 와중에 한나라당 경제정책이 전혀 서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염증으로 그동안 야당정치를 통해 좀더 성숙한 민주당의 노무현이 2007년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면, 이건 지금보다 나쁘기는커녕 훨씬 좋은 시나리오다.


이 역사소설의 아이러니는 노무현과 개혁당의 능력치를 높게 잡을수록 우리가 2002년 노무현의 당선이 그리 좋은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동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회창이 집권하자마자 구민주당계는 노무현과 개혁당을 탄압하려 했을 게다. 그런 상황에서 노무현-유시민-개혁당계는 가령 이라크 파병 같은 여당의 정책에 강력하게 반대하면서 개혁적 유권자들을 결집해 나갔을 것이고... 이들이 이 결집을 통해 민주당을 서서히 바꾸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이 시나리오의 미래는 아주 좋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통합민주당과 접점이 사라져버린 개혁적 지식인 그룹의 의견 역시 청취되었을 것이라고 본다면 말이다.


반면 노무현 그룹이 버티지 못하고 쓸려나갔을 거라든가, 버티긴 했으되 어차피 지금처럼 한나라당과 비슷한 경제정책으로 이행해 나갔을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정치공학을 생각해 볼 때 이건 좀 극단적인 가정일 것 같은데) 이 시나리오 역시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 재수가 없으면 이 시나리오에서도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는 일이 (민주당이 깨지지 않았으므로 박빙 승리였겠지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 민주노동당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단 집권 초기에 분노에 찬 노빠들에게 조낸 밟혀서 사이트가 만신창이가 되었겠지. 이라크 파병할 때 "봐!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라는 소리도 들었겠지. 우리 세계를 아는 사람 눈으로 보면 좀 우스운 상황이겠지만,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성장이 억압되어서 자주파에게 점거를 당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주파들도, 민주당 비판적 지지론자와 민주노동당 접수론자로 양분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그렇기는 하지만 이런 군소정당의 운명은 작은 변수에도 요동치기 때문에 소설가가 그리기 나름이다.


두번째 가정은...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된 조승수가 같잖은 이유로 선거법의 제재를 받고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9석의 정당과 10석의 정당이 의정활동에서 크나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문제는 자주파가 역시 민주노동당을 말아먹었다고 치고, 분당 정국에 들어섰을 때다.


조승수는 우리의 세계에서 선도탈당파였다. 그리고 저쪽 세계에서도 조승수는 선도탈당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역구 의원은 탈당을 해도 의원직을 상실하지 않으니까. 노회찬 심상정이 나올 때까지 진보신당이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못했던 상황을 생각해 보라. 의원직을 유지한 조승수의 선도탈당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구조의 진보신당을 만들었을 것이고, 도전할 만한 지역구를 두 개에서 세 개로 늘렸을 것이며, 1명에 불과하지만 의원을 보유한 정당으로서의 진보신당은 우리 세계의 그것보다 훨씬 여론의 주목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진보신당은 지금보다 아주 약간 더 좋은 성과, 즉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성과를 냈을 확률이 아주 높다. 이건 득표수로 치면 아주 약간 더 좋은 성과이지만...... 그것이 미치는 결과로 치면 결코 작은 차이가 아니다. 이 생각을 하면 약간 속이 쓰린다.


부질없는 짓 같지만, 이런 상황을 상정해 보는 것은, 지금 우리가 처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조금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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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은 대안이 아니다 (이녁 님)


이글루스 유저가 아닌지라 누군가의 제보에 의해 글을 좀 늦게 보았다. 사실은 아직도 이런 논변이 있을 줄은 몰랐다. 이제는 과거처럼 '비판적 지지'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정국이다.


이녁 님은 대한민국은 우파국가이기 때문에 우파를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재미있는 논변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체지방 과다라면, 그는 오늘 저녁 식단도 햄버거를 선택해야 하는 가보다. 지금 <슈퍼 사이즈 미> 찍으시나? 과도한 우파국가라면 좌파도 좀 있어야 겠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상식적이다. 이 상식을 뒤틀기 위해 이녁 님은 묘한 곡예를 시작한다. 그 곡예가 얼마나 타당하지 않은지는 이녁 님이 지적한 '시궁창 현실'을 같이 탐구하면서 말해보자.


진보신당은 노회찬 심상정 두 지역구가 당선되거나, 재수없으면 한 곳도 당선이 안 될 것이다. 맞다. 시궁창이다. 진보신당의 정당투표율은 3%를 넘지 못해 비례대표 의원을 당선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3% 턱걸이 한다고 해도 1-2석 확보가 고작일 것이다. 맞다. 시궁창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보신당의 예상의석수가 낮다는 '사실'에서 어떻게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냐는 거다.


반한나라당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말이 안 된다. 이녁 님의 글을 읽고 감명받은 누군가가 노회찬 심상정 두 지역구에서 통합민주당 후보를 찍는다고 치자. 그러면 그는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도와주게 된다. 이녁 님의 글을 읽고 감명받은 누군가가 정당 투표도 통합민주당에 던진다고 치자. 그런다고 반한나라당 세가 커지는가? 그렇지 않다. 정당투표는 지지율에 따라 의석수를 배분하기 때문에 진보신당의 의석이 생긴다고 해서 한나라당의 의석이 늘어나지 않는다. 반한나라당 세력의 의석수는 (상황에 따라 한석 정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동일하게 유지된다.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걸까?


아니면 이런 얘기일까?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대립각을 세우는 부분, 즉 가령 대운하, 영어몰입교육,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같은 문제에서, 진보신당이 한나라당 편을 들지도 모른다는 얘기일까? 만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반한나라당 세가 흐트러진다는 주장이 실천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녁 님이라도 그렇게 생각하진 않으실 거다.


남은 것은 딱 하나, 진보신당과 그 지지자들(지식인을 포함해서)이 통합민주당 비판하는 것이 기분나쁘다는 것이다. 그게 냉소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 지점에서 이녁 님을 포함한 민주당 지지자들이 시궁창같은 현실을 보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한나라당 과반의석 저지는 애저녁에 물건너 갔는데도 진보신당 압박하는 게 무슨 의미 있느냐는 소리까진 안 하겠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참여정부가 실패했다는 평가가 늘어나고 냉소주의가 팽배한 이유를 조중동 등 수구언론의 공세와 좌파들의 비판에서(만)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2002년 참여정부는 분명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개혁을 바라는 이들의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다. 2004년에는 탄핵 열풍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이 동반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그후 열린우리당은 정체성을 잃고 흔들거렸다.


이명박 이전에 '실용주의' 운운했던 정동영 등만 집어서 말하는 게 아니다. 열린우리당 내에서 가장 지지자들에게 어필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 역시 마찬가지다. 지지자들도 인정하듯이, 그리고 널리 선전하듯이,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다른 무엇보다도 정치개혁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정치개혁을 첫번째 이슈로 생각한 나머지, 경제정책은 한나라당과 똑같아졌다. 임종인 의원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이회창 후보의 공약대로 움직였음을 지적한바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스스로가 임기 말에 이렇게 말했다. "경제는 누가 해도 똑같다."고. 지금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이렇게 말한다. "참여정부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써버려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고. 이미 법인세 같은 걸 다 내려버려서 이명박 정부가 재벌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 억지로 성장률 높이려고 대운하나 파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말로는 진보, 그것도 좌파들을 비난하면서 유연한 진보를 자처했다. 국가전체의 경제성장률은 나쁘지 않았지만, 서민경제는 어려워졌다. 서민경제 어렵게 만들면서 스스로를 진보라 자처하니 당연히 서민들은 진보가 나라말아먹은 줄 안다. 민주노동당이라도 다른 이슈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자주파가 잡고 있다 보니 열린우리당 따라 국가보안법 폐지 같은 이슈에나 전 당력을 집중했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누가 해도 똑같은 그 경제'의 기조를 벗어나는 다른 것을 체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이놈이 안 되니 저놈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것이고, 거기서 좌절하면 또 급속히 실망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해봤자, 정치권력 바꿔봤자 나아지는 게 없더라는 것이다. 이런 느낌이야말로 냉소주의를 불러온 것이다. 이게 참여정부 씹은 좌파지식인들 책임인가?


민주당 지지자들이 심히 싫어할 최장집 같은 사람이 (이 사람은 좌파가 아니다. 그냥 민주주의의 신봉자일 뿐이다.) 노회찬이나 심상정의 생환을 위해 유세장에까지 나오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적어도 진보신당은 국가 권력이 서민들의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고 말한다. 좌파고 우파고를 떠나서 이것이 핵심이다. 대운하 파서 경제 살리겠다는 야바위를 믿을 게 아니라면, 빈곤층을 어떤 방식으로 지원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 서구 사회의 좌우파는 주로 이런 문제를 가지고 싸운다. 어떻게 돕느냐를 가지고 싸우는 거지, 빈곤층은 죽게 냅두라는 그런 법은 없다.


노무현 대통령과 유시민 장관이 한미 FTA 추진해놓고 비전 2030으로 복지정책도 늘리고 있다고 말한 것은 잘 알고 있다. 나는 비전 2030이 그대로 진행될 수도 없었을 거라고 보지만, 이미 이명박 정권이 그 계획을 폐기했고 민주당이 그에 대해 별다른 반발도 안 하는 상황이다. 손학규 대표는 대운하 반대 회동을 하자고 해도 종종 파토를 놓는다. 이게 무슨 '반한나라당'을 하자는 태도인가?


진보신당이 냉소주의를 유포하고 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오히려 진보신당이야말로 냉소주의를 주적으로 삼아 싸우고 있다. 내가 좌파가 아닌 사람들에게도 진보신당의 지지를 호소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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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틱 원고 소급적 업데이트 완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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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서울대 경제학부 이준구 교수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대운하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올려 언론과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준구 교수는 학계에서 권위있는 미시경제학자로, 고시생과 경제학도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몇몇 저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그는 이전에도 자신의 홈페이지에 종부세 찬성론이나 한미 FTA 찬성론 등 민감한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였던 이력이 있다.


대선 기간 내내 이명박 당선자의 심복 노릇을 했던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교수의 주장이 이해부족에서 나온 것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일개 국회의원이 새만금 사업과 경부고속철 사업 타당성 평가에 참여했던 학계의 중견 경제학자에게 ‘이해부족’을 운운할 수 있다니 세상이 참 재밌기는 하다. 하지만 지식인들의 발언이 짓뭉개지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고, 그의 단언의 배경에 있는 자신감의 근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준구 교수는 자신의 글에서 “일반의 예상과 달리, 여론조사에서 사업에 대한 지지율이 비교적 높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가 바로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적절하다. “기회만 있으면 행정도시, 혁신도시 등을 건설한다는 명분으로 전국의 지가를 올린 참여정부를 비난”해 왔던 당선자 측 사람들이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단기적 경기부양책을 준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기대심리를 이용하는데 있을 것이다.


사실 강남 사람들이 대운하에 굳이 찬성해야 할 이유는 없다. 전국적으로 집값이 상승해 봤자 그들에게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압도적으로 이명박을 지지했지만, 그만큼이나 대운하 공약을 지지하진 않았을 것이다. 총선 이후 특별법 제정이라는 강행돌파를 가능하게 하는 건, 그들을 제외한 대운하 사업에 대한 심정적 지지층, 강남 이외의 지역의 중산층들이다.


강남 사람들과 조중동 등 보수언론은 참여정부의 반기업 정서가 경제를 말아먹었다는 자신들의 선전이 먹혀들어서 정권이 교체되었다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중산층들은 강남의 집값을 폭등시키고 자신들도 투기에 뛰어들 때쯤 종부세를 신설한 참여정부의 ‘불공평한 투기 진작’ 정책에 뿔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닫혀버린 문을 다시 여는 것, 저 욕망의 문 안에 자신도 들어서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은 언젠가 <월간중앙>에서 강남이 한국 사회에서 “욕망의 폭주기관차”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썼다. 적절한 비유다. 그 폭주기관차는 근 20년 동안 속도를 계속 높여왔는데, 그러다보니 기관차가 멈춘 이후에도 뒤따르는 차량들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탐욕스럽게 돌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산층들은 “아직도 배가 고프다.” 그리하여, “철마는 계속해서 달리고 싶다.” 


지각있는 부자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렇게 황당한 정책으로 환경까지 망가뜨려 가며 집값을 올리고 싶냐.”고. 그러면 평균적인 중산층들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러는 당신들은 그렇게 윤리적인 방법으로 돈을 벌었느냐.”고. 이명박의 당선은 국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은 부자들의 욕망과 중산층의 분노가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는데, 여기서는 그 결합이 흔들리고 있다. 정권의 속성상 앞으로의 5년이 약속할 세상은 보수주의자들이 원했던 그 안온한 세상은 아니다. 부자들은 그들이 그토록 진저리나게 싫어했던 ‘개혁 포퓰리스트’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에 중산층들에게 당신들을 부자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이상한 포퓰리스트들을 불러들였다. 지켜질 수 없는 약속을 지키는 시늉을 하기 위해 그들은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조중동은 이제는 그 사실을 깨닫고 있을까? 향후 대운하 논쟁에 있어 그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잘못하면 이명박 정권 하에서도 보수주의자들은 발언권을 박탈당할 것이다. 지금은 이회창 정도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모든 사람들이 부자가 될 수는 없다. 계층문제를 사회적 연대나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를 거부하는 정서적 충동은 파시즘 그 자체는 아니더라도 파시즘의 조건 중에 하나는 된다. 정권교체를 이룬 민주주의 제도는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정치문화의 후퇴가 우려스러운 것은 그래서다. 중산층의 욕망을 무엇으로 제어할 수 있을까? 이준구 교수의 소신발언 이후 경제학자들과 전문가들의 집단이 노력할 수도 있겠으나, 결국엔 부자들이 나서야 한다. 기관차가 지도의 기능을 망각하고 제 밥그릇을 불리는 데에만 급급한다면, 더 탐욕스러운 후발주자들이 기관차를 짓밟고서라도 지나갈 것이다.  -한윤형 (드라마틱 31호,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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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쯤 썼으면 이제 이번 대선에 대해선 그만 써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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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론부터 말하자면, 모두 알다시피 민주주의 국가의 기본적인 이념은 국민이 자기 자신을 통치하는 것이다. 모든 종류의 정치제도는 조금이나마 그 이상에 근접하려는 노력의 표현이다. 따라서 올바른 종류의 정치담론은 한 사람의 시민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조직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고찰하고, 그 고찰의 내용을 공동체에 투영하는 것이라야 한다. 만일 그런 이상이 어느 정도 구현된 사회라면, 모든 종류의 정치논의와 선거담론은 이런 모습을 지닐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이러이러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대변하는 그를 지지한다.”


하지만 주위에서 이런 말을 듣기가 힘들다. 한국 사회에서 저런 말을 내뱉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윤리적인 행위가 되어버렸다. 국가의 주인인 국민에게도 책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만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정치세력이 생활세계의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우리는 로마 시민들이 콜로세움에 앉아서 검투사의 전투를 보듯 정치인들의 이전투구를 지켜보아야 한다. 환상의 정치극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환상극 속에서도 그것을 끝장낼 하나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이 지랄맞은 정치쇼에 등장하는 요소 요소의 상징적 의미를 해설해 줄 나같은 사람이 필요하게 된다.


이명박, 물신주의와 냉소주의의 결혼


이명박에 대한 지지를 경제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은 경제를 무시하는 짓이다. 일본보다도 더한 토건국가에서 살고 있는 대한민국 경기를 삽질해서 살리겠다는 그의 주장이 어째서 경제적인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그가 경제를 살려줄 거라고 믿는 40~50대들의 정서적 지지는 물신주의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이분들은 경제가 살아나기를 바라지만, 경제가 어떻게 해서 경제인지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www.mbplaza.net
 

지난 10월 26일 고 박정희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한 이명박 후보. 그는 박정희의 계승자를 자처하지만, 추구하는 경제정책은 전혀 다르다.

박정희가 잘못 죽었다. 박정희의 추종자들은 그를 신화화하는 데 열중하고 있고, 그의 반대자들은 그를 깡그리 부정하기만 한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부유하게 만든 그의 성공적인 경제정책이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를 이해하지도 못한 채, 그를 계승하니 마니 하는 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의 경제정책의 성격은 무엇인가? 어떻게 그 정책이 대한민국을 부유하게 만들었나?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궁금하다면, 개발경제학자 장하준의 책을 보면 된다. 그리고 과거의 교훈을 활용하여 현재의 경제정책을 구성해야 한다. 이것이 사물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의 방식이다. 하지만 신화적인 감수성은 그런 시시한 도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키작고 다부진 몸매의 선글라스 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가 남다른 애국심과 청렴결백함과 민주주의자들에게 타협하지 않는 강단으로 대한민국을 일으켰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대한민국을 일으킨 건 박정희라는 독재자를 수식하는 형용사들의 포스다. 그리하여 그 형용사들을 대충 누군가에게 붙여놓고 그가 같은 포스를 보여줄 거라고 믿는다. ‘경제대통령’, ‘CEO 대통령’ 따위의 수식어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이명박의 아우라의 의미는 바로 그것이다. 박정희의 계승자를 자처하는 이명박과 박근혜의 경제정책이 박정희의 그것과 안드로메다만큼이나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심란해진다.


하지만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은 물신주의자 뿐만이 아니다. 그들에 결합한 냉소주의자들을 무시해선 안 된다. 여론조사에 의하면 2002년에 노무현을 찍었던 유권자의 1/3이 이명박을 지지하고 있다고 한다. 2002년에 그들은 감성주의자였다. 그들은 물신주의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 노무현이라는 명사 앞에 포스 넘치는 형용사들을 줄줄이 이어붙이고 그가 대한민국을 윤리적이고도 강력한 국가로 재탄생시켜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들이 정동영이나 문국현의 지지자들보다 나은 것은 적어도 그 믿음이 박살났다는 사실은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권하거나, 물신주의자들의 선택에 결합하는 방식으로 정치에 대한 그들의 분노를 표출하기로 했다. 40~50대 물신주의자들과 그에 결합한 일부 386 냉소주의자들이라고 말하면 이명박 지지율에 대해 할 말은 다한 셈이다.


이회창, 엘리트 제국의 역습

ⓒ뉴시스
 

지난 11월 7일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 선언에 환호하는 지지자들.


하지만 후보 등록을 하기도 전에 대통령처럼 굴던 이명박은 뽑히기도 전에 탄핵당할 분위기다. BBK가 진실로 밝혀지면 그는 한나라당의 당규에 의해 당원자격을 박탈당하고, 선거법은 더 이상 당원이 아닌 그를 한나라당 후보로 인정하지 않는다. 후보등록일자에 임박해서 김경준이 귀국했기 때문에, 사태가 그리 진전되면 한나라당은 더 이상 후보를 낼 수조차 없다. “하지만 이회창이 출동하면 어떨까?” “이!” “회!” “창!” 댓글놀이가 성공했고, 이런 어이없는 파국을 막기 위해 왕년의 용사가 돌아오셨다.


우석훈의 말을 빌리자면 이회창은 한국 보수주의자들이 박정희 다음으로 사랑한 인물이다. 이 사랑의 근거는 적어도 이명박에 대한 유권자들의 애정보다는 합리적인 이유로 추려낼 수 있다. 그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나, 곱게 자랐고, 잘 교육받았으며, 부유한 이들 중에서나 간혹 나오는 원칙주의적인 강단으로 세상사에 대처했다. 물론 그도 비리에 연루되었다. 자식은 병역을 기피했고, 그 자신은 차떼기로 대선자금을 마련했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금을 모으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회창은 상속세도 증여세도 내기 싫어 자기 회사에 일가 친척들을 위장취업시키고 가짜 월급을 수백만 원씩 뿌려대던 어느 시정잡배와는 다른 사람이다. 적어도 대통령은 그들과 비슷한 사람이길 바라는 한국인들의 허위의식이 없었다면, 그는 진작에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돈이면 답니까”라는 그의 외침에 좌파들조차 뭉클했다. 하지만 그는 분명 60~70대 반공주의자들의 가치를 대변하는 위인이다. 그의 구호는 햇볕정책의 전면적인 폐기를 약속하는 대북정책의 변경을 포함하고 있다. 이명박과 참여정부가 미워서 그를 지지하려는 사람들은 그 점을 상기해야 한다.


386의 분화와 20대의 선택


ⓒ뉴시스 / www.moom21.kr
냉소주의에 투항하지 않은 386들은 정동영과 문국현으로 갈려있다. 이들이 물신주의, 반공주의와 함께 2007년의 정치극장을 삼분하고 있는 세력이다. 삼국지로 치면 촉나라쯤 될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삼성의 돈을 먹고 한나라당보다 더 과격한 승자독식주의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이들을 향한 지지가 정치적으로 뭘 의미하는지는 불분명하다. 문화적인 관점에서야 물론 386의 세대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집단적 마스터베이션이 될 게다.


문국현이 똑똑한 인물이라는 희망주의자들의 의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국현은 버티고 버티면 새로운 자유주의 정당을 탄생시킬 수도 있다. 또 하나, 코리아연방제와 100만 민중대회라는 공약을 통해 “우리는 꼴통 운동권 세력이오!”라는 사실을 폭로하고 자폭해버린 권영길 후보를 언급할 수 있다. 그들은 한심하지만, 그래도 미래의 한국 정치에 필요한 요소들을 체현하고 있다. 지금은 증시로 치면 조정장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개미들은 손을 털고 나가지만, 현명한 애널리스트들은 주가가 떨어졌을 때 오히려 투자를 하라고 가르친다. 문국현과 권영길 두 사람의 지지율은 약소할 테니, 나는 나와 같은 20대에게 차라리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해보고 두 사람 중 하나에게 투표하라고 권고하고 싶다. 약한 그들을 지지한 다음 나중에 뻐기면서 자신의 정치적 요구들을 그들에게 요구하라고 권하고 싶다. 2007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겨우 그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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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센가드는 견고하고 경이로운 땅으로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었다. 위대한 영주들과 서쪽 곤도르의 섭정들, 그리고 별을 관측하는 현자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사루만은 자신의 변덕스러운 목적에 맞게끔 천천히 변형시켰으며, 또 더욱 견고하게 조성했다고 스스로 자부했다. 그러나 그것은 미망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옛 지혜를 버리고 대신 선택한 것이었으며, 또 경솔하게도 자신이 고안했다고 여긴 모든 책략과 간계는 사실 모르도르에서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가 만들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암흑의 성채 바랏두르의 거대한 요새와 병기고, 감옥과 화덕을 조그맣게 모방한 어린애 장난에다, 노예의 아첨에 지나지 않았다. 암흑의 성채는 실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면서, 사루만의 이런 아첨을 비웃으며 자부심과 한량없는 힘을 간직한 채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 <반지의 제왕 2> "두개의 탑" 중에서 )


언젠가 후라이빵님이 반지의 제왕과 한국 정치를 비교하면서 노무현을 사루만에 대입했는데, 그 순간엔 확 와닿지가 않았지만 나중에 생각해 보면 꽤 그럴듯한 구석이 있었다. 위 인용문은 정말로 참여정부 말기의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 같다. 현자 대통령과 그를 섬기는 386 참모들이 한국의 자유주의 우파 진영을 통째로 한나라당 노선에 헌납한 풍경말이다. 그러고도 그들은 잘했다고 짹짹거리고 있으며, 이명박이 대통령 자격이 없는 것이 자신들의 정당성의 근거인양 뻐기고 있다. 그들이 얼마나 민심을 잃었는지를 이회창이 보여주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나저나 대선이 30일도 안 남았는데, 정말이지 '미워도 권영길'이냐 '적극적 기권'이냐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장고해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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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 타령하는 기성세대는 답해 보라"
  대선, 삐딱하게 읽기 <5> 이회창은 왜 돌아왔는가?
  2007-11-12 오전 10:03:11
  
2007년 대선을 맞아 <프레시안>은 기존 매체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연재를 마련했다. 여론조사의 통계 수치로만 존재했던 20대의 생생한 목소리를 독자에게 들려주기로 한 것. 그간 정치 평론을 독점해 온 40대 이상과는 다른 위치에서 정치 현상을 바라보는 이들의 '새로운' 시각이 오는 대선을 둘러싼 얘깃거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리라고 본다.
 
  한윤형 씨의 이번 글은 대선 정국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한 이회창 후보의 출마 선언을 통해 '희망 없는 한국 정치'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는 "이회창 후보의 등장은 시스템 부재의 한국 정치를 상징하는 일"이라며 "그런 시스템 부재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이 결코 한 인물에 대한 열광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편집자>

  System doesn't work!
 
  <심슨>의 에피소드 중 하나. 워싱턴에서 열리는 웅변대회 본선에 나가게 된 심슨 가족의 딸
리사는 우연히 하원의원의 비리를 목격하고 준비한 원고를 버린 후 격앙된 어조로 미국의
민주주의가 썩었다는 요지의 연설을 시작한다.
 
  연설이 시작되자마자 청중 중에 섞여 있던 요원이 한 상원의원에게 전화를 건다. "소녀 한
명이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잃고 있습니다!" 대경실색한 상원의원은 잇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상원에서, 하원에서 규탄의 결의안에 통과되고 비리의원은 곧바로 체포된다.
리사가 연설을 끝날 때쯤엔 이미 신문에 그 사실이 보도되고 있다. 연설을 끝낸 리사가 신문을
보고 외친다. "System works!"
 
  물론 이 만화에 나오는 미국 정부의 기민한 행동은 과장되어 있고, 설령 실현된다 하더라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것은 정치가 항상 부패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시스템의 책략,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시뮬라크르의 저지 전략'이다. 하지만 체제가 그런 저지 전략조차
취하지 않는 한국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작동하는 체제가 부럽기만 하다.
 
  언젠가 진중권은 대선 자금 수사에 관한 칼럼을 쓰면서, 보드리야르식으로 말하면 미국에서는
부패를 엄중하게 처단하는 것이 시뮬라크르의 저지 전략이지만 한국에서는 '어차피 정치인들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냉소적인 인식이 시뮬라크르의 저지 전략인 것 같다고 썼다. 우리는 다들
 어차피 체제는 작동하지 않는다고 믿고 살고 있다. 그래서 영화 <괴물>에서 그러는 것처럼,
개인적인 차원에서 상황에 대응하려 든다.
  
▲ 지지자들과 악수를 나눅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 ⓒ뉴시스

  우리 일반인뿐만 아니라 정치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가령
이회창의 출마는 그가 한나라당의 경선
체제를 불신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체제가 이명박같은 후보는 마땅히
걸러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니까 개인 이회창이 직
접 나서서 체제가 못한 일을 해야 한다.
 
  문국현과 그 지지자의 처지도 그러하
다. 문국현의 지지자는 범여권의 단일
후보로 문국현이 더 적합하다는 사람과
한나라당과 참여정부 이외에 다른 노선
이 필요하다는 사람이 묘하게 섞여 있
는 덩어리다. 적어도 전자에게, 대통합
민주신당의 경선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
는 체제이며 따라서 자신들이 체제가
하지 못한 일을 대신해야 한다.
 
  시스템에 관한 근본적인 불신이 우리
의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그런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가령 4.19
와 5.16 무렵 미국대사관의 문정관으로
근무했던 그레고리 핸더슨은 한국의 정치를 '소용돌이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국가와 개인 사이에
개인을 조직할 수 있는 중간 단체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고, 그런 구조에서 강대한 중앙 정치는 아
무런 여과없이 개인을 대량으로 동원했다.
 
  오늘날이라고 상황은 달라졌을까? 이전에 비해선 국가와 개인 사이에 여러 가지 것들이 있지만,
신기하게도 그 중간 단체들이 오히려 소용돌이의 정치를 격려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정치를 시
민의 생활의 개선과 관련된 지향의 문제로 다루지 않고, 정치인들의 이전투구에 대한 피상적인 지
지의 문제로 격하시키는 데 정당과 언론을 포함한 많은 종류의 중간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기여한
다. 그 결과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고 언제나 그 동작하지 않는 시스템을 위해 누군가가 나서야 한
다. 한국 사회가 걸핏하면 '인물'을 필요로 하고 '인물의 사이즈'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자전거의 비유
 
  그런 측면에서 2002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내건 '생활정치'나 '참여정치'라는 구호
는 소용돌이의 정치를 일상의 정치로 복원시킬 수 있는 하나의 구호로 보였다. 그러나 차츰 그 구
호가 표현하는 정치 행태는 생활 세계의 이슈를 정치에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 정치에 대한 투
쟁을 일상생활의 차원에서 열심히 하자는 것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런 차원의 참여는 일종의 온라인게임과 같은 중독성을 줄 수는 있으되 우리의 삶에 아무런 도
움이 되지 못한다. 현실사회주의국가의 시민은 정치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철저하게
정치에서 소외되었다. 지금 우리 시민들의 처지도 그것보다 나을 것은 없다. 정치에 열심히 참여하
는 사람이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386세대들이 20대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개탄한다. 20대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것은 사실이고 그것이 우려할 만한 일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20대가 소용돌
이의 정치의 무력함을 깨닫고 그것에 대한 관심을 끊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의 해결은 우리가 20대에게, 더 나아가서 모든 시민에게 소용돌이의 정치가 아닌 다
른 종류의 쓸모 있는 정치에 대한 참여가 무엇인지를 알려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문국현 지지
모임에 갔더니 20대들은 없더라는 식의 개탄은 문제의 본질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보기에 현
재 386들의 정치 참여는 20대들의 정치 냉소보다 그다지 긍정적인 일도 아니다.
 
  언젠가 <서프라이즈>의 논객 김동렬최장집의 참여정부 비판을 조소하는 근거로 자전거의 비
유를 들었다. 말인즉슨 이렇다. 민주주의는 자전거와 같은 거라서, 자전거를 탈 줄 아는 사람에게
자전거에 대한 이론을 쫑알쫑알 강연해봤자 실천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우스운 일이라는 것
이다.
 
  민주주의를 그토록 단순화시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하나의 광경이 떠올랐다. 석양의 어스름
속에서, 일군의 무리들이 자전거를 끌고 가고 있다. 다같이 자전거를 끌고 붉은 태양 아래 둑길을
걷던 그들의 공통 체험은 너무나 강렬하여, 그것을 소재로 한 아름다운(?) 수필들이 생산된다. 그들
은 그 수필이 자전거에 대한 지적으로 탁월한 서술이라고 믿는다. 그 수필의 수만큼 그들은 자신들
이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때 노교수가 페달 위에 두 발을 올려놓고 여유롭게 그들을 앞질러 나간다. 사람들은 웅성웅성
한다. 그때 김동렬 자전거족(族)이 말한다. "저 이의 두발은 땅을 딛지 않는다. 저 이는 비현실적이
다." 이로써 노교수의 자전거는 현존하는 물체가 아니라 이데아 세계의 이념으로 소환되어 버린다.
그래서 그들은 그토록 열심히 자전거를 끌고 다녔던가?
 
  사실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을 만나도 욕하지만, 자전거 없이 그냥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사람을 봐도 욕한다. 걸어 다니는 20대를 만나면 그들은 환경에 관심이 없는 녀석들이라고 나무랄
것이다. 자전거라는 물건이 실제로 기능하고 있는가를 따지지 않고, 자전거라는 물건을 소유하고
있는지를 따진다. 타지도 않고 끌고 다닐 자전거를 사는 것은 수고로운 일이다.
 
  무엇이 정치 참여인가?
  
▲2030세대 단체 중 하나인 KYC 행사에 참석한 문국현 창조한국당 후보.ⓒ뉴시스

  시스템이 동작하지 않는다고 믿어지는 곳에서, 우리는 시스템 자체를 작동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 '무언가'가 시스템이 해야 할 역할을 특정한 인물에게 투사하는 정치 행위일 수는 없다. 그것은 계속해서 시스템이 놀도록 방치하는 짓이다. 이명박이나 이회창이나 정동영뿐만이 아니라 문국현에 대한 지지라도 그런 식으로 하는 한, 그것 자체가 시뮬라크르의 저지 전략이다.
 
  굳이 정치냉소주의를 규탄하고 싶다면 다른 방식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여기 <조선일보>조차 정치적으로 동원하지 못하는 '88만원 세대'들이 있다. 그들은 <88만원 세대>라는 책을 보더라도 "내용은 알겠지만 결국 이 책의 내용으로 봐서도 정치에 참여하는 건 실익이 없어. 한 자라도 더 공부하는 게 이득이지"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들 모두가 미래에 대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는 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단적인 증거로, 그들이 '블로깅'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어디서 저런 말을 들었겠는가? 부모
님의 돈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들은 개인적인 차원의 미약한 희망을 야망으로 치
부하고 집단적인 해결은 누군가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자신의 시간을 빼앗기 위해) 종용하는 행
위라고 믿는다. 개인과 국가 사이에 아무 것도 없고, 따라서 국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답이라고 믿는 그들에게 '기권은 나쁘다' 따위의 말을 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다.
 
  <88만원 세대>에 나오는 대안처럼 자신의 세대를 지지하고 싶으면 그들이 직접 운영하는 커피숍
에 일부러 가서 커피를 마신다든지, 만일 미국산 쇠고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미국산 쇠고기를
쓰지 않기로 한 라면 회사의 제품을 일부러 사먹는다든지, 비정규직을 심하게 탄압하는 회사가 있
으면 블로그 위에 로고를 올려놓고 불매할 것을 천명한다든지, 하는 행위들이 사실 본질적인 정치
행위라는 것을, 적어도 그 시작은 된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이런 행위들이 모이고 모여 연대성이라는 것을 낳는다. 지금 우리가 주문하는 연대성은, 아예 아
무런 재료도 없는데 대놓고 무슨 집단을 만들라고 하는 격이다. 그렇게 허투루 만드니 집단이 모여
서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것밖에 없다. "문국현만이 희망이다." 일단 시민들의 정치 행위부터가 존
재해야 하며 그 점에서 볼 때는 20대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세대도 무능하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선 심지어 토익책을 덮어야 할 필요조차 없다. 수다 떠는 시간, 미드 다운로드
받아보는 시간, 하다못해 '연대성을 말하는 놈들은 사기야'라며 인터넷에서 노닥거리는 시간을 활
용하더라도 충분하다. 열성적으로 중앙 정치에 조직화된 소수의 사람들이 정당을 좌지우지하는 식
의 정치참여는 차라리 경멸받아야 한다. 당장은 그 사람들을 선거에서 이기지 못하는데 어찌할 것
인가라는 딜레마가 놓여있지만, 소소한 참여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그 외에는 놀고 있는 체제를 작동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한윤형/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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