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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정국에 관한 잡담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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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28
홍준표의 선택과 김근태의 선택 (9)
(1) 현재 상황 브리핑
최초의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을 계기로 터진, MB식 사회정책과 (아마도, 특히) 교육정책에 대한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학부모와 청소년들의 참여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 불씨를 지피는 데엔 MBC PD 수첩의 저널리즘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조중동이 이에 대해 ‘잘못된 방송의 선동’, ‘비과학적인 괴담’, ‘배후세력론’으로 대응하면서 점차 ‘사람들이 뿔났다’. 다이나믹하고 감정적인 한국 사람들은 머슴을 자처하던 대통령의 흰소리를 참지 못했다. 갑자기 사람들의 정서는 “너는 대체 뭔 용가리 통뼈길래 우리 말을 이렇게 안 쳐듣는 건가효?”로 바뀌기 시작했다. 즉, ‘국민 여론을 수렴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 쪽으로 가닥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할 정치세력은 거의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 ‘민주주의’론은 촛불시위의 대세가 되었다. 박근혜와 이회창마저도 재협상론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성난 시민들의 ‘조중동 광고 기업 불매운동’은 조중동의 논조를 길들여 드디어 조중동조차 이명박 정부의 협상은 졸속적이었고, 이유야 어찌됐든 정부가 여론과 소통하는데 실패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청와대가 제발 독자적으로 사고치지 말고 자신들의 ‘보수적(!)’ 태도에 귀기울이길 원한다. 거리에서 십만 명이 자신들을 욕하는 꼴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청와대 사람들도 사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항복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2) 시위의 성격
앞서 얘기했듯이 이 시위는 참여자들이 느끼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는데,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다시피 국제적으로는 ‘반-세계화 시위’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호를 반-세계화의 문맥에서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무지(?)’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 시위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명박이 독재정권이라서가 아니라, 1)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국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2) 그 결과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달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외칠 수 있도록 국가의 권한을 시장에 양도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사람들이 국가와 시장을 하나의 대상을 포섭하는 두 개의 다른 권력으로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국가가 삼성에 권력을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보다는, 국가의 바깥에 존재하는 외국기업에게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이 월등한 것이다. FTA에 대해서도 그것이 우리 국가를 허문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말타고 벌판 달리는 참여정부의 공익광고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의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듯 싶다. 그것이 이 시위의 성격을 ‘친 참여정부’적인 것으로 만든다. 노빠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를 한번이라도 지지했거나 잠깐이라도 호감을 가졌던 이들이 모두 그러하다.
여기서 참여정부의 성격을 간략하게 규명하면, 시위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민주주의’나 ‘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참여정부는 간단하게 말하면 ‘관료들의 나라’였다. 정치경제적으로는 관료들이 대기업 편의적인 경제정책과 그 편의적 정책의 한 방편으로서의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체제였다. 참여정부가 2002년 이회창 후보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임종인 전 의원의 지적이나, 참여정부가 써버릴 수 있는 정책을 다 써버려서 (이명박 정부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지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양극화의 심화는 참여정부의 정책이 실패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의도한 바대로 성공을 거두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관료조직의 외곽에 있는 ‘위원회’를 통해 문화적인 면에서는 민족-국가담론을 유포하는데 힘썼다. 민족주의자들의 용어를 활용하면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다. 조중동이 비아냥거린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거기서 나왔다. 과거사 진상규명, 친일파 청산, 문화재 복원 등을 실시했던 이 위원회들을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는 이념적인 이유로, 그리고 이명박은 반실용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부인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참여정부의 개혁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 위원회에 있고, 이것을 통해 참여정부의 경제시책마저 국가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희망의 군국주의자 노무현’이라 일컬어진 참여정부의 군비 확장 정책을 보자면, 참여정부의 담당자들조차도 지지자의 판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즉, 그들은 실제적으로는 국가를 약화시키고 있었으면서도, 스스로는 국가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수입 정책은 이처럼 다소 혼란스러운 ‘국가’나 ‘민주주의’의 개념으로 봐도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국가’의 이념을 훼손시키는 것이 명명백백한 정책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참여정부의 ‘우파적 관료주의’를 더 오른쪽에서 혁명적으로 돌파하려다 삽질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시위대와 그 지지자들은 그들이 이명박이 노무현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정당하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문제를 갈파하는 이들이 아무리 분석한다 해도, 이 경험은 넘어설 수 없고,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도 막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이 시위대의 구호가 자기 진화하여 그 향수에 모순되는 행위에 나서도록 시위대와 ‘함께 하는’ 일이다.
반면 시위의 성격을 그 자체로 뜯어 고치려는 행위는 아예 가능하지 않고, 따라서 적절한 반응도 아니다. 차라리 그보다 일관성있는 비평은 아예 시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위가 해야 할 일들이 좀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적절한 반응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파트에서 논의한다.
(3) 이명박이 할 수 있는 일
카드가 별로 없다. 크게 보아 1) 계속 이대로 간다! 와 2) 한나라당(박근혜와 홍준표?)에 항복한다. 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재협상 수준에 근접하는 자율규제라는 카드를 내밀었지만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것은 비관세 무역장벽이며, WTO 위반에 해당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재협상보다도 미국 행정부를 더 당황하게 만들 일이다.
이명박은 재협상을 실시하여 시위대를 만족 혹은 분열시키고 한나라당에 대한 청와대의 우위를 지속시킬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게 임기 초반 레임덕을 막을 유일한 카드다. 왜냐하면 계속 이대로 밀어붙여봤자 길게 보아 2년 후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는 한나라당에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그게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결단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는 결코 한미 FTA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멍청하다. 만일 그가 정말로 스스로 말한대로, “한미 FTA 협정은 한국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협상을 파기할 생각이라면 말이다. 어느 정도 멍청하냐하면, 한미 FTA가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고 믿는 노무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두 멍청한 정치인들은 의도되지 않은 합작 플레이로 그 둘보다 멍청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위인인 이명박을 외통수로 몰아넣고 있다. 이명박이 처한 곤경을 ‘노무현의 덫’, 혹은 ‘거짓말쟁이의 늪’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정권을 ‘잃어버린 10년’ 동안 되뇌어 왔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1) 참여정부는 한미 동맹 관계를 훼손해 왔거등요~
2) 어머, 근데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체결했어!
3)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값으로 한미 FTA만은 비준해야돼!!
뭐 이런 논법이다. (덧붙여, 지금 한국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성장의 방법으로 한미 FTA 이외의 대안을 못 찾고 있다는 점이 있고 이게 더 큰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이건 다른 파트에서 설명한다.) 그래서 부시 있을 때 협정처리하려고 다 퍼주며 매달렸는데, 촛불시위대에 부딪혀 어떻게 하지도 못하게 생겼고, 조금 있으면 또다른 멍청이 오바마가 나타나 친히 밥그릇을 차줄 운명이다. 이명박, 두 멍청이들의 뚝심에 아주 바보되게 생겼다.
자 그렇다면 이것은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립인가? 박근혜라는 건 영남 보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호에 불과하고, 크게 보아 이 싸움은 한나라당 내부에서 ‘제가 한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는 멍청이들’ vs ‘제가 한 거짓말이 거짓말이란 사실은 알고 있는 악랄한 놈들’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멍청이들보다는 악랄한 놈들이 이기는 쪽이 대한민국에는 좋다. 이명박은 멍청이들의 수장이고, 계속 전진하다가 악랄한 놈들에게 패배하거나, 바로 지금 항복하는 길밖에 없다.
(4)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이런 틀에서 볼 때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할 일도 생기게 된다. 죽쒀서 개주는 꼴이지만 일단 한나라당과 조중동, 혹은 구체적인 인물로서 박근혜가 승리하는 것만으로도 시위대는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국면에서 좀더 완벽한 승리는 앞서 말했던 ‘악랄한 놈들’을 확실히 승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의 참여정부로의 회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재협상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지만, 대운하와 민영화를 저지하고, 다시 관료들의 느긋한 흐름에 나라를 맡길 수 있게 된다면 이 정부는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가 된다. 박근혜와 홍준표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면 이 정도까지는 갈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정당의 지지기반이라는 것이 있어서 대북정책은 되돌리기 힘들 것 같기도 한데, 적어도 관료들에게 맡긴다 치면 지금의 꼴통 외교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압박이 시위대가 할 일이다.
나는 2008년 6월에 이명박 정부에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낙관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명박이 입조심 좀 한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서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명박이 갑자기 미쳐서 한번 더 폭력진압을 하고 말 그대로 6. 10 항쟁이 일어나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폭력진압이 오히려 사람들을 흥분시킨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쪽 문만 굳게 걸어 잠그고 "너희들은 떠들어라. 하지만 국가는 내가 운용한다."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인터넷 여론 담당자'를 두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그의 여론에 대한 태도를 고려해 보건대, 이 담당자는 '수렴'보다 '통제'를 위해 활동할 것이다. 정부는 네이버나 다음에 대해 어떤 식의 통제가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이미 금칙어 설정 등의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올블로그에 대한 누군가의 해킹 시도도 석연치 않다. 만일 이명박의 속내가 그러하다면, 정말로 이제 변수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된다. 유가폭등으로 인해 파업을 선언한 화물연대는 또한 미국산 쇠고기 거부 투쟁 역시 선언한 상태인데, 촛불시위와 ‘불법파업’을 분리시켜 대응하려는 정부에 대해 시위대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인지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의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화물연대 파업을 시위대가 지지하고 강경진압에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시작한다면 이명박은 정말로 궁지에 몰린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행정부는 힘이 세다. 지방선거가 참패한 이후라면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궁극적으로 패배하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명박 시대에 우리는 안타깝게도 ‘거리의 정치’를 지속적으로 보게 될 것이고, 거기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박근혜가 승리한 이후라도 한나라당 정부의 남은 임기를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의 수준은 되도록 압박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 된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다고 나라가 확연히 좋아지는 건 아닌데도 그렇다.
천운이 도와 시위대가 이명박을 수월하게 패배시킨 경우에도 ‘민주주의’라는 시위의 구호에서 도출될 수 있는 정치적인 행위가 남아 있다. 이명박의 독선은 선거가 없는 기간에 대통령의 폭주를 막기 힘든 ‘87년 체제’의 허점을 드러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수세력들도 불만이 있다. 조중동의 일각에선 ‘(노무현의 원포인트) 개헌안을 받을 걸 그랬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통령이 단임제라서 여당이나 ‘여당 나팔수’말도 안 쳐듣는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하야하고 박근혜 스스로 대통령이 되는 사태가 오지 않는 이상, 박근혜와 홍준표의 한나라당은 내각제 개헌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정치 행위는 시위대가 원했던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배치되는 행위다. 행정부의 임기와 입법부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노무현식 개헌안은 선거가 없는 기간 동안 국민들이 무력한 ‘위임 민주주의’를 오히려 조장한다. 내각제 역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제보다도 시위를 통해 압박하기 힘든 정치체제다. 이런 제안에 반대하여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의제 등을 고민하고 의미있는 의제로 주창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심지어 성취해낸다면, 시위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니 200% 이상 달성한 것이다.
(5) 참여정부도 싫어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
참여정부에 향수를 느끼는 시민들의 시위대가 해야 할 일도 이렇게나 많기 때문에, 나는 이들에게 이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이런 저런 비일상적인 변수가 오묘하게 개입하여 정말로 우리의 시위가 더 이상을 이룩해버릴 가능성도 없지는 없겠으나, 그런 가능성에 기대고 상황을 분석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참여정부의 그것과 구별되는 사회경제정책으로 민주화를 심층화시키려는 이들은 시위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보정당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말하자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다른 종류의 실현성 있는 사회경제정책을 총괄적으로 수립해 나가고, 또한 홍보해야 한다. ‘거리의 정치’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러한 홍보의 장도 더 크게 열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위대 자체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이는 다른 문제다.
진보정당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관료주의의 문제다.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관료다. 지금껏 한 가지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해온 우리의 관료들은 우리의 지향에 도움을 줄 수 없는데, 그렇다고 그들을 경험적인 면에서 이기기란 매우 어렵다. 구호를 통해 권력만 잡는다고 그들을 통제하여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료들을 닦달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은 좌파 정치인의 무능으로 답습될 수도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정책보좌관 출신들이 대거 합류한 진보신당의 경우 이 문제에 신경쓰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관료들의 경험을 습득할 수 없는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심화된 정책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두 번째는 성장 동력의 문제다. 성장-분배 논쟁이란 건 이름부터가 성장주의자들의 승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그 실현과 성과가 매우 의심스러운) 한미 FTA 이외에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문국현의 ‘중소기업론’이었겠지만, 그는 이 대안이 고통스러운 개혁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심화된 정책연구로 제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CEO 시절의 업적과 불가능한 구호(몇백만 일자리, 8% 성장)로 그 이미지를 압축시키면서 자신을 진정으로 이명박의 대항마인 코미디언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진보신당도 가령 심상정의 3박자 경제론 등을 보완 발전시켜 분배 문제뿐 아니라 우파 정당과 구별되는 성장 동력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좌파정당 있는 민주주의 정당체제’를 한국에서 보기란 어려울 것이고, 진보신당은 일본 공산당식으로 기초의원의 구역으로 내려가 지역 사회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에 힘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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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국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해요?”라는 질문을 두 서너번 받은 적 있다. 언제나 농담처럼 “유시민 지지하는 사람들보단 훨씬 낫지 뭐.”라고 말하며 지나갔다. 문국현과 유시민은 2002년에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두 개의 선택지로 보인다. 물론 그 시절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 중의 다수가 이명박을 지지하거나, 정치냉소주의자로 돌아섰겠지만, 일단 그 사람들은 논외로 치자.
참여정부 노선이 올바르고, 잘 해왔고, 앞으로도 잘 통할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유시민을 지지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유시민은 대선출마를 포기하고 이해찬 캠프로 들어가 버렸지만, 이해찬보다는 유시민이 더 ‘친노노선’을 본질적으로 표현한다. 이해찬은 유시민보다는 좀 더 대중적으로 가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이런 사람들은 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선 나의 ‘적’에 해당한다. 언제나 그들은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을 핑계로 볼멘소리를 하고 있는데, 적어도 지금 현재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것은 조중동이나 한나라당이 아니라 참여정부다.
반면 문국현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참여정부 노선이 올바르지 않거나, 설령 올바르더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지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 사람들 역시 반성적 성찰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문국현을 띄우는 방식은, 예전에 그들이 노무현을 띄웠던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다만 이번엔 잘 되지 않고 있고, 성공할 확률이 극히 드믈다는 것이 다를 뿐. 이를테면 그들은 노무현이 실패하긴 했지만 그를 선택한 그들의 판단은 옳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다.
나 역시 2002년으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노무현 대통령’이 재앙이 될 거라는 사실은 예측하지 못할 것이다. 그때는 이런 식으로 생각했다. ‘사실 이렇게 검증이 안 되어 있고 장관 잠깐 해본 정도의 커리어를 지닌 사람을 대통령으로 민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긴 하다. 보수적으로 판단한다면 이회창 쪽이 훨씬 낫다. 하지만 그래도 노무현이라는 인물은 괜찮은 것 같고, 잘 할 것이다.’ 그 판단은 틀렸다. 그렇다면 저 판단의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사람보는 눈이 크게 바뀐 건 아니기 때문에, 문국현 역시 꽤 괜찮은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단 문국현 주위에 몰려오는 사람들은 문국현만큼 신뢰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문국현 역시 세력을 쌓기 위해 참여정부에 긍정적인 평가를 하려는 의도가 보이는데, 그렇다면 그를 지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참여정부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해찬을 지지하면 된다. 그 바깥을 두리번두리번하는 사람들은 참여정부가 점유하고 있는 ‘개혁’이라는 단어를 뺏어서 올바른 맥락으로 되돌리고 싶은 사람들이다. 문국현이 그 일을 하지 않겠다면, 굳이 대통합민주신당 바깥에 있을 필요도 없다. 너무 기준이 엄격하다고? 하지만 후보 때도 지지자말을 안 듣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된 후에 지지자말을 들을 리는 없다. 더 힘센 친구들과 손을 잡기 마련이지.
문국현에 대한 내 관심은 대략 두 가지 정도다. 김헌태 전 한국여론연구소장은 거기서 무슨 역할을 할 것인가. (아시는 분들이 별로 없겠지만 나는 몇 년 전부터 이 사람을 주목해왔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탈당 1호 임종인 의원은 문국현 캠프로 갈 것인가, 안 갈 것인가. (열린우리당이 지지층인 서민을 배신했으므로 지지층을 대변할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 임종인 의원은, 실제로 만나본 바로는, 비록 매우 지적이거나 분석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뭔가 강준만처럼 강단 있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두 사람 모두 나는 딱 한번씩밖에 못 봤지만.)
문국현을 지지하는 걸 잘 하는 짓이라고 부를 수는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이제는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것을 크게 칭찬할 수도 없다. 민주노동당의 대선후보로 권영길이 선출되었다. 권영길이 민주노동당을 지금까지 이끌고 온 공로는 인정하지만, 그가 연겨푸 세 번이나 대선에 출마할 만큼 대단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현재의 권영길은 ‘노욕’을 부리고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그가 ‘아름다운 퇴진’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가끔은 개인의 선택이 정국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도 그렇다. 권영길의 선택은 한국 정치에 하나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느 정도 효과냐 하면... 한미 FTA나 민주당 분당 등 굵직굵직한 그림자를 드리우신 노무현 대통령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2002년도에 강준만이 진중권과의 연대를 파토내 버리는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의 효과 정도는 된다.
현재의 민주노동당이 훌륭한 진보정당이라고는 볼 수 없다. 민주노동당은 적어도 1) 낡은 NL세력의 ‘북한 정권 온정주의’에서 탈피해야 하고, 2) 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에서 거리두기를 하면서 비정규직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노회찬이나 심상정이 후보가 될 경우 적어도 이 숙제를 해결하려는 척은 했을 것이다. 하지만 NL의 지지를 받으며 당선된 권영길은 그렇지 않다.
민주노동당은 언제나 당이 잘못된 길을 갈 때마다 위기의식을 느낀 평당원들이 세력을 모아 목소리를 내려고 시도했던 자그마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그러한 움직임은 일부 보인다. 나한테도 어느 분이 좀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는데, 솔직히 어느 정도 도와줘야 할지는 모르겠다.
연초에 나는 올해 대선정국에선 할 일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는데, (386에 대한 냉소, 냉소 바깥) 지금 상황도 딱 그 불만에 맞게 돌아가고 있다. 이럴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정말로 이번 학기에는 그 누가 잡아끌어도 이렇게 생산성이 없는 대선에 신경쓰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당이나 정치인 위주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지금 정치권에 요구해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점검해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렇게 요구를 점검해 보면 이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고민하게 되거나, 적어도 이 요구사항이 논쟁거리가 될 수 있는 정치지형도를 만들기 위해 통밥을 굴리게 된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정치에 요구를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88만원 세대>를 보면 대충 답이 나온다. 해결하라고 요구해야 하는 문제는 ‘양극화’이긴 한데, 이 양극화가 어찌하여 발생했는지가 내가 이해한 이 책의 주제다. 양극화가 문제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고 이명박도 이해찬도 권영길도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들은 양극화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알고 있을까? 이 책의 내용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진화론적 다양성을 말살하고 소수 그룹을 공룡처럼 대형화시키면서 근근이 버티고 있는 왜곡된 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다간 쥬라기 말년에 공룡들 멸종하듯 한큐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게 이 책이 전하는 위기의식이고. 그리고 이 공룡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것이 참여정부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이해하면 한나라당 집권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노빠들의 호소에 귀를 막을 수 있게 된다. 문국현은 그래도 좀 구별되지만, 그가 과연 노빠들로부터 완전히 거리를 둘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품고 쳐다보게 되고.
<88만원 세대>와 <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는 같이 엮어서 이해해야 할 책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굳이 편의적으로 구별하자면 <88만원 세대>는 문제제기 쪽에 치중해 있고, <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과학’을 동원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하지만 <88만원 세대>에도 문제해결을 위한 제언이 나오고, 물론 <샌드위치위기론은 허구다>에서도 문제제기는 나온다. <88만원 세대>는 20대의 암울함을 키워드로 내세워서 여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 책을 단순히 세대론으로 읽는 것은 잘못 읽는 것이다. 책을 읽어도 그렇게 읽으면 인생에도 정치에도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20대가 맞이할 암울한 미래는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낸 예측가능한 결과일 뿐이다. 한국에서 20대의 암울함은 ‘재벌 이외 기업’의 암울함이나 지방의 암울함 등등과 같은 선상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되 ‘과학적’으로 해보자는 게 이 두 권의 책이 이야기하는 바라고 볼 수 있다. 한미 FTA로 문 열어젖혀놓고 “그렇게 자신감이 없습니까?”라고 말하는 노무현이나 “헐리우드와 맞짱뜨겠습니다. 안 된다는 건 패배주의입니다.” 따위의 헛소리나 늘어놓는 심형래는 과학이 아니다. 그들의 ‘의지력 논증(?)’은 전형적인 속류 심리학에 기초해 있다. 한국 기업이 기술이 좋은 이유는 젓가락을 써서 그렇다는 식으로 말하는 이어령의 그림자에 불과한 속류 문화인류학도 과학이 아닌 건 마찬가지다. 이런 잣대로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 이야기들은 책에 나오는 건 아니고 내가 갖다붙인 거다.) 문제는 한국의 40-50대 남성들은 그런 것 이외에는 무슨 학문이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거다. ‘반지성주의’라고 이름을 붙이는게 좀 민망한 구석이 있는 것이, 그들은 “한국인은 젓가락 쓰느라 손재주가 좋아서 기술력이 좋다.”라는 수준의 명제를 ‘지성’적인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 외에 뭐가 또 있는지를 모른다. 그러니까 노무현이 나오고 황우석이 나오고 심형래가 나온다. <디 워>나 <트랜스포머>나 별 차이가 없다고 진지하게 믿는 디빠들이 생긴다. 그리고 물론 40-50대 남성의 자식들도 아버지의 지성을 뛰어넘지 못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보다는 더 공부를 해야하고, 생각을 더 많이 해야 한다. 이 두 권의 책들에서 그런 교훈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독서는 성공이다.
이를테면 지금의 상황은 정치적인 관심을 정치적인 지지로 표출하기는 민망한 상황이다. 한명 한명이 더 똑똑해져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을 할 수 있고, <88만원 세대>같은 책을 권하거나, 권한 후에도 그들이 그 책을 ‘잘못’ 읽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조금 더 구체적인 일이 있다면, 정치권의 이슈에 한미 FTA나 양극화 문제 등이 포함되도록 노력하고, 그 이슈에 관련된 토론에 좀 더 지성적인 이야기가 많이 나오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이렇게 적어놓고 보니 실제로 단순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이 사실 자체는, 우리에게 남겨진 희망의 약소함을 보여준다. 당장 지금 할 일은 없다. 기본기를 쌓으면서, 정신차리고 시대 돌아가는 꼴을 쳐다보면서, 조금이나마 할 일이 생기는 걸 기다리는 것이 할 일이라면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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