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블로그 이미지
이 모든 것은 기록될 필요가 있다-. a_hriman@hotmail.com
by 한윤형
Statistics Graph
  • 500,711Total hit
  • 460Today hit
  • 669Yesterday hit

'좌파'에 해당되는 글 33건

  1. 2008/09/13
    노정태의 최장집 비판에 대해 (6)
  2. 2008/09/12
    이 시점에서 ‘안티조선’ 담론의 실천적 효용성에 대해 (3)
  3. 2008/04/30
    혁명적 우익의 나라 (8)
  4. 2008/04/01
    뉴타운 작란(作亂) (6)
  5. 2008/03/29
    북한 문제와 중국 문제 (9)
  6. 2008/03/09
    '20대 비례대표'에 찬성하지 않는 이유 (21)
  7. 2008/02/18
    [프레시안] 새로운 진보정당, 이렇게 만들자 (5)
  8. 2008/02/16
    민주노동당과 나 (15)
  9. 2008/02/12
    그곳에 숭례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15)
  10. 2008/01/24
    '일반과목 영어수업'론과 교육정책의 기조에 대해 (12)
정치의 철학화, 철학의 정치화 - 최장집 '고별 강연' 비판 및 실천적 방향에 대하여



노정태가 최장집의 고별강연에 대해 비판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 것인지”가 궁금해서 빨리 써보라고 닦달한 적도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어떤 사적인 자리는 아닌 모임에서 노정태가 그 문제에 대해 얘기를 조금 했고 나도 거기에 대해서 볼멘소리로 대꾸도 좀 했는데, 이제 와서 노정태가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겠다고 나선 데에는 그날의 체험이 사뭇 불쾌했기 때문인가 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노정태의 글이 1) 팩트 확인에 있어서 부실한 게으른 글이며, 2) 어떤 종류의 지적인 논점을 던져주지 못하고 단지 수사만으로 가득찬 ‘반지성주의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그가 말했던 ‘정치의 철학화’라는 단어를 그에게 도로 던져주고 싶은 생각도 있고, 사실 나 역시 분과학문의 문제를 철학의 문제로 워프시키는 많은 이들의 논쟁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수사만으로 가득한 그의 글엔 ‘철학화’라는 레토릭도 아까운 지경이다. 모든 문제를 철학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좀 다르게 말하면 모든 문제를 제로베이스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문화적으로 전승해온 지적인 탐구의 전통들, 분과학문의 방법론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자신의 경험과 상식과 편견에서 논지를 전개하다보니 유사-철학적 성격의 문제로 워프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노정태의 글이 딱 그런 꼴인데, 이 글에선 인문학적인 논점이나 사회과학적인 논점 무엇 하나 제대로 잡히고 있는 것이 없고, 그저 자신의 편견과 뒤틀린 감정을 조금 에둘러 배설하고 있을 뿐이다.


먼저 그가 명백하게 팩트를 틀린 부분부터 지적한다. “이후에 등장한 무슨 웹 2.0이니 뭐니 하는 소리들도 결국 최장집이 깔아놓은 논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것이 내가 받은 인상”은 인상이 아니라 망상이다. 왜냐하면 웹 2.0 담론은 최장집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가 한겨레 지면에서 웹 2.0 세대 운운한 것이 이 담론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당시 이 담론의 숨겨진 목적은 “어째서 20대들은 보수적인데 10대들은 이런 시위를 기획하게 되었을까? 그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해명하는 것이었다. 그 시점은, 가두시위가 시작되기도 전, 그러니까 10대들이 주도한 시청 앞 촛불집회가 정점에 도달했던 때였다. 이후 20대들도 거리시위에 뛰쳐나오게 되자 ‘웹 2.0 세대’라는 말은 조금 우스워지기 시작해서 슬쩍 ‘세대’라는 말은 사라지고 시위현장에서 문자중계질을 하며 경찰들을 피해다니는 젊은이들을 가리킬 때 기사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한마디로, 이 담론은 최장집과 관계가 없다.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결집된 이들이 광장에 모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외친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데, 이건 직접민주주의에 더 가깝다.”라고 눙친다고 해서 이 담론이 최장집과 무슨 관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야바위를 쳐도 정도껏 쳐라.


그런데 이 팩트의 오류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모종의 성급한 단정에서 도출되는 것 같다. 즉 노정태는, 최장집의 논의가 촛불시위대를 담론적으로 무력화시키는데 탁월한 역할을 했다고 가정하고 있다. 나는 이 가정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우선 촛불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최장집의 얘기를 들었더라도 ‘꼰대소리’로 취급했고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촛불시위에 반대한 이들, 보수언론이나 인터넷의 쿨게이들이 최장집의 말을 인용하면서 촛불시위를 깠다는 정황증거도 없다. 적어도 난 그런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도 노정태가 팩트를 왜곡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이해하기로 최장집에게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이 사건이 “대의 민주주의 그 자체의 한계”를 지시한다고 해석하고 싶어했던 좌파들, 그리고 “이제는 그만 들어갔으면 한다.”는 식의 어느 인터뷰에서의 그의 발언에 분개했던 극히 일부의 시위참여자들이었다. 그런데 노정태도 기억하겠지만 최장집은 고별강연에서 “사실 내 역할은 지금 이순간 촛불시위에 나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고 천명한바 있다. 즉 후자의 영역에서 최장집은 강력하게 견해를 개진하지도 않았고, 개진했더라도 사실상 한발 물러선 셈이다.


사실 이 두가지 사안은 명백하게 구별될 수 있다. 즉 촛불시위와 같이 대중이 직접 거리로 뛰쳐나와 집단적으로 정치적 주장을 개진하는 사태가 벌어진 원인이 1) 정당정치가 제대로 확립되고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2) (아마도 정당정치는 제대로 작동했지만?) 대의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이걸 두고 노정태가 말했듯이 ‘정치의 철학화’라고 말해야 할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서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총론에서 실천적으로 따라나올 수 있는 정책적 쟁점으로 국민소환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구현하는 정책의 효용성에 대한 찬반논쟁이 있을 수 있겠는데, 이 문제도 진지하게 논의되지는 않았다.


한편 “(시위참여자, 혹은 정치인들이) 지금 이 순간 촛불시위에 나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방금 언급한 총론에 비하면 아주 미세한 각론의 문제다. 이것은 굳이 최장집의 총론에 동의하더라도, 그 총론에 입각해서 해석을 달리하면 다른 결론이 나오는 문제다. 나는 씨네21에 기고한 글에서 최장집의 총론을 긍정하면서도 “촛불시위에 거는 희망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것은, 떨어지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제 것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타 정당들의 한심한 역량이다. 시위를 지도하려다가 욕먹은 민주노동당과 얌전히 시위를 따라다니면서 ‘아고라의 여당’이라 불리게 된 진보신당의 길을 넘어, 시민들의 욕망을 정치적 지향으로 전환하는 설득에 성공하는 그런 정당과 그런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게 최장집이 은퇴 강연에서 말한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역할이 아닐까. 지금 정당이 촛불시위에 결합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고, 거리의 대중과 호흡하면서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가진 이가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정치에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라고 썼다. 레디앙에 기고한 이재영의 글은 이보다는 최장집에 비판적이었지만, 역시 “최장집의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지금 우리는 촛불시위에 나가야 할 때다.”라는 논지의 주장을 펼쳤다. 이처럼 최장집의 총론에 동의하면서도 얼마든지 각론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있다.


노정태 글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 총론-각론 구별이 없다는 데에서 생겨나고 있다. 먼저 노정태가 동시대에 쓰여진 타인의 텍스트를 잘 안 읽는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심지어 그를 옹호하겠다고 떠벌이는 자들조차도 최장집의 '카리스마'론에는 일말의 관심이 없다."는 그의 진술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일단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노정태가 내가 씨네21에 쓴 글을 다 읽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를 옹호하겠다고 떠벌이는 자들’의 숫자가 극히 적었고 그중에 대중적인 잡지에 실린 글은 거의 내것 하나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단언은 몹시 어리둥절하다. 참고로 나는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담은 정책을 확대하는 좌파적 기획에 호의적인 쟁가 님과 다른 블로그에서 덧글 논쟁을 하면서 최장집의 주장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것” 직접민주주의 운운하는 좌파들의 주장을 “그게 안 되니까 고양이 목을 따버리자는 것”으로 정리했고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역할은 “고양이 목에 누군가 방울을 달아야 하니까 요구될 수밖에 없었던 실천적인 역할”로 보았다. 시위에 개근하기에도 바쁜 그가 이런 인터넷 쪽글들을 챙겨보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자기한테 안 보인다고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어느 멍청한 유아론적 관념론자의 태도에서는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노정태에게 최장집의 ‘총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도 확인된다. 그리하여 총론과 각론을 구별하지 않고, 그의 얘기가 현실정치에 미친 효과를 두고 (그것도 다른 이들이 보기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효과를 두고) 최장집의 총론을 규탄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다. “정당정치의 복원 내지는 활성화를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 강화가 최장집의 정치학이 지향하는 바라면, 대체 왜 한나라당이 대선과 총선 모두를 압승하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어야 했다.”라고 그가 물었을 때 내가 느낀 황망함이란! 노정태가 말했듯 최장집의 정당정치론이 ‘이상적인’ 기획이라면, 한나라당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은 최장집의 기획을 반증하는 것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기획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이 될 텐데도 말이다. 최장집의 “민주주의” 시리즈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게다가 노정태는 한나라당이 대선과 총선 모두 압승하는 현실이 대체 납득하지 하지 못할만큼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인데, 나는 뭐가 납득이 안 간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선과 총선의 텀이 짧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사건은 이해불가능한 사건이기는커녕 무난하게 이해할만한 사건이다. -쇠고기 정국 이후에 총선 치른 것도 아니다.- 지금의 정치상황은 보수 양당제의 구도에서 한축을 담당했던 민주당 계열이 참여정부 이후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빠지더라도 그것을 챙겨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그러므로 노선의 변화나 정계개편, 혹은 이틈을 노린 다른 정치세력의 양강구도로의 진입이 필요한 실정인데, 전자는 민주당의 무능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후자에 성공할만큼 진보진영은 국민의 신뢰를 쌓지 못했다. 진보신당에 관한 농담 하나. “민주노동당이 삽질하면 진보신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진보신당이 열심히 하면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올라간다.” 동작을에 출마했던 진보신당 김종철 후보는 선거운동을 하다가 “그러니까 민주노동당 8년 역사가 얼마나 거대하고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는지.”라고 중얼거렸다. 여기에 무슨 추가적인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 선거의 결과는 놀랍지 않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정치적인 파국을 초래하고 있긴 하지만.)


세번째로 노정태가 최장집의 ‘총론’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끈덕지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감지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최장집을 적극적으로 탓할 생각이 그다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정태의 글의 제목은 최장집 고별강연 비판이고 글에서도 그 사실은 명백하다. 노정태는 촛불시위에 대한 최장집의 언급이 그가 말하는 “정치의 철학화” 현상을 이끌어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의 정리에 따르면, “그 대립 구도가 언어의 형태로 던져졌을 때, 그것을 수용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다. 수용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인데 이게 왜 최장집을 비판해야 할 이유가 될까? 이 점이 궁금해지지만 노정태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한편 노정태는 최장집이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던진 것에 대해 비판한다. 그리고 “그의 '카리스마'론은 사실 사회적 논쟁의 주제가 될 수 있었고 또 그랬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담론적 현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이 구절이 쓰여진 문단은 새로 덧붙여진 것인데, 여기서 상술하기는 귀찮지만 노정태가 그렇게 한 이유는 최장집이나 박상훈이 말하는 카리스마적 정치인이라는 개념이 노정태가 진보신당의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노정태가 지금까지 했던 말을 돌이켜보면 ‘카리스마적 정치인’을 비판할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찬사를 보낸다면 모를까.) 그것이 의미는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의 담론적 현실상’ 이런 식으로 튀어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자기 맘대로다. 그나마 들어줄만 한 건 ‘카리스마’ 개념이 아직 미완성이라는 건데, 이것도 고별강연의 짧은 텍스트만으로 내린 단정이라면 민망하다. 그리고 최장집이 이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개념을 이용해서 촛불을 비판한 적도 없기 때문에, 도대체 여기서 그가 무엇과 싸우려는지 알 수가 없어진다.


여기서 그는 다시 ‘맥락’ 비판을 넘어 ‘총론’ 비판으로 향한다. 결국 최장집이 마르크스에서 베버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 그가 분석을 잘못 하게 된 원인이라고 단언한다. 심지어 글 초반부에 “사상적 전향”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말이다. 내가 지금 고별강연 팜플렛을 분실하여 그의 인용을 검토할 수는 없지만, 정치학자가 요즘 들어 마르크스보다 베버에게 강조점을 더 주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여 ‘사상적 전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믿는 그의 사회과학에 대한 얄팍한 이해의 수준이 두렵기까지 하다. “어떤 민주주의인가”에 실린 최장집의 인터뷰를 보면 마르크스와 베버가 동시에 그의 지적 연원 중 하나로 언급된다. 20년 전이라면 모르겠으나, 노정태와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의 최장집은 한 거장의 이론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이론을 펼치는 학자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이렇게 주장을 하려고 했다면 처음부터 최장집의 총론이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분석에 실패했다고 말하면 되는 일이다. 그는 그렇게는 말하지 않다가 나중에 이렇게 듬성듬성한 소리는 하는데, 이거야말로 씹고는 싶은데 어떻게 씹어야 할지는 모르겠고 해서 일단 맥락 탓이나 하다가 나중에 내용도 한번 찔러는 보는 그런 심보가 아닌가? ‘카리스마’ 담론에 완결성을 요구하기 전에 도대체 자신이 최장집을 비판하는 논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해 볼 일이다. 그의 글을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뒤집어봐도 ‘논점’이란 걸 찾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들은 최장집 주장의 총론과 각론을 구별한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노정태가 “최장집 논쟁”에 대해 지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면 대충 다음과 같은 세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 한국 정치의 문제에 대한 해법이 “정당정치 강화”라는 최장집의 주장을 지적으로 공격한다. 둘째, 최장집의 총론은 기본적으로 긍정하되,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국민소환제 등과 같은 제도들이 어째서 유용한지를 지적으로 밝힌다. 셋째, 최장집의 총론을 긍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이 최장집의 총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최장집의 논의에 비추어 밝힌다. 구별될 수 있는 논점으로부터 따라나오는, 필연적인 결론이다. 하지만 노정태는 이중 아무것도 택하지 않는다. “지금은 정당의 외연이 운동으로 넓어져야 하고, 동시에 정당이 운동의 역량을 흡수하여야 할 시점이다.”라는 언술은 세 번째 것에, 그러니까 이재영이나 내가 택했던 방식에 맞닿아 있지만, 노정태는 이 주장이 최장집에 대한 ‘반론’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나! 최장집의 주장에 지적으로 맞설 의사도 능력도 없으면서, 수사법만으로 스크래치를 내려고 덤비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반지성주의적 작태다. 그것에 포함될뿐더러, 가장 훌륭한 예시이기도 하다. (구)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의 글을 반지성주의의 예문으로 쓰는 건 그들이 쓰는 비문 때문에 무척 피로한 일이므로, 나는 오늘부로 노정태의 글을 한국적 반지성주의의 집적체로 선언하기로 한다. “반면 '나는 직접민주주의자가 아니오'라고 베드로처럼 부인하면, '그럼 촛불을 끄고 국회의 개원을 촉구합시다'라는 온건한 자들에게 대꾸하기가 매우 난망해진다.”라는 말을 들어보라. 난망하기는 뭐가 난망한가. 머리라는 건 그런 말을 하는 이들에게 반박할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얘기했던 것처럼 정당과 운동이 모순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직접민주주의자가 아니라면 운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따위의 명제를 짓밟는 건 최장집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습다.


시위참여자들이 잘못된 프레임에 빠졌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 될까. 한명의 학자가 자신의 소신을 발언해도 그것이 잘못된 프레임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정말이지 그 학자의 책임인가? 답변이 어렵다면 책임 운운은 집어치우고, 그렇다면 그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따져보자. 답은 간단하다.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시민이든, 그렇지 않은 시민이든,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더욱 정확한 이해를 하게 되었을 때, 최장집의 발언이 잘못된 형이상학적 대립구도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이쪽이든 저쪽이든 사람들은 더 똑똑해져야 한다. 프레임에 빠지는 건 우리가 충분히 알지 못해서다. 그러한 무지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므로, 비난받을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렇더라도 “무지가 도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은 진실이다. 노정태가 남들보다 최장집을 더 안다고 생각했다면, 그의 말이 그러한 프레임에 빠질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으로 밝혔어야 했다. 공동체의 문제를 지적으로 취급하기 위해선, 바로 그러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노정태는 그런 작업은 하지도 않으면서, 정치의 철학화를 비판하고, 철학의 정치화를 말하면서, 최장집을 비판하고, 공부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글의 실천적 효용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한 학자의 소신있는 발언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러면 당시의 최장집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1) 소신대로 발언을 한다. 2) 소신대로 발언하지 않고 적당히 촛불시위대를 찬양한다. 3) 입을 닫는다. 이것 뿐이다. 2)가 비록 노정태가 보기에 흐뭇한 행동일지라도, 적어도 그것이 ‘지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1)과 3)이다. 이 상황이 침묵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침묵하는 것이 ‘철학의 정치화’에 도움을 주는 행동인가? 무슨 선불교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딨나? 그리고 지금이 입을 닫아야 하는 시점이라는 판단은 도대체 누가 내리는가? 노정태?


발화자는 자신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왜곡되는 방식을 모조리 다 책임져야 한다는 류의 주장에 대해, 지난 세월 나와 노정태는 반대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따지면, 아무 말도 못한다. 이를테면 조중동과 노빠가 싸우고 있다. 노빠를 까면 조중동이 인용하고, 조중동을 까면 노빠가 인용한다. 그러면 노빠도 싫고 조중동도 싫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왜곡의 방식을 모조리 책임지려면, 말을 마는 수밖에. 그러므로 노정태의 최장집 비판이 옳다면 과거에 나도 노정태도 아가리를 닥쳐야 했다. 이제 와서 그런 방향으로 견해를 수정한 거라면 내게 알려주길 바란다. 그러면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둘다 변호하려고 한다면, 그곳에는 이론적인, 아니 유사-철학적인, 아니 수사적인 곡예의 길만이 남을 뿐이다.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쓸모있는 대답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선 동의할 수 있다. 동의할뿐더러 나 역시 문제적으로 느끼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사실도 관찰해 왔다. “지식인들은 현실에 대해 쓸모없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들은 탁상공론이나 한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지식인을 비난할 때, 그 비난의 대상은 종종 가장 현실에 밀착해서 발언을 하려는 지식인들이었다. 당연하다. 탁상공론하는 지식인들은 대중과 반목할 이유도 없으니까. ‘지식인 무용론’으로 특정한 지식인을 규탄하는 저러한 목소리는,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의 상식(혹은 편견?)과 지적인 탐구의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완고한 고집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주로 진중권이나 최장집같은 지식인들이 그같은 고집스런 목소리의 비난을 들어왔다. 오늘의 노정태가 최장집에 대해 하는 말의 구조도 그 고집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그는 최장집의 이론에 지적으로 정당하게 덤빌 생각도 않고, 한국의 맥락이 어쩌구 하면서 최장집의 책임도 아닌 외곽을 때리다가, 그것을 핑계로 최장집 주장의 의의마저 부정하려는 비겁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만일 정말로 그 지식인이 자신의 책무를 게을리하는 더러운 글을 썼다면, 노정태는 그 지식인보다 더 지적인 레벨에서 그를 논파했어야 했을 거다. 노정태의 글은 과연 그런 글이었나? 물론 내 대답은 단호하게 "No!"다.


“결국 우리는 지고 또 지면서도 꾸준히 배워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부하고 싸우고, 싸우면서 공부해야 한다. 그게 바로 철학의 정치화이다.”


갑툭튀 '철학'이 소환되어 정치화까지 하라니 아직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공부하자"는 말엔 동의한다. 내가 노정태에게 하고 싶은 말도 바로 그거다. 이 긴 글을 통해 나는 노정태의 무의식을 분석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다만 그의 무식을 타파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글이 워낙에 배배꼬여 있어 이 작업이 무척 수고스러웠기 때문에, 이 친절한 작업에 합당한 경의를 그에게 요구하는 바이다. 결론은 이만하면 됐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6

진보신당 당원게시판 쟁점과 토론 게시판에 올린 글.

-----

소위 “주대환 논쟁”과 관련해서 매체의 문제가 중요한 논점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김수민이 주대환과 최병천을 비판하면서 ‘안티조선’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었다. 이전에도 얘기했듯이 나야 언론문제에 있어서는 주대환 최병천보다야 김수민과 생각이 가깝다. 언론학자 강준만으로부터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은 1)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가 되었다는 사실 2) 게다가 한국의 언론, 특히 조선일보는 대단히 정략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 결과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행위는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타당한 결론을 도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소리이지만 당시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언론은 도구일 뿐이라는 관점이 우세해서 좌파지식인들도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일이 빈번했고 민주당 지지자나 민주노동당 지지자도 조선일보를 구독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런 일을 하면 나이브하다고 욕을 쳐먹는다. 언론문제를 독립적인 성격의 문제로, 분석의 대상으로 격상시킨 것이 (초기) 안티조선 운동의 지대한 공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론문제를 분석하는 관점에서, 혹은 언론운동을 실천하는 관점에서, 여전히 안티조선이라는 프레임은 유의미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답이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김수민의 주대환-최병천 비판이 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너무 단순한 대답을 도출해낸 상황에서 이루어진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안티조선 운동의 정당성이 확립이 되던 시기인 2001년으로 돌아가보자. 그 시기로 돌아가서 이번 논쟁의 주인공인 주대환과 관련이 있었던 사건을 추려내보자. 사실 주대환과 안티조선 운동의 악연(?)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다. 어느날 민주노동당의 운동가 박용진은 감옥에서 심심하게 지내다가 강준만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읽었다. 그리고 읽고 졸라 빡이 돌아서 민주노동당의 월간지 <이론과 실천>에 피토하는 심정의 규탄문을 썼다. “비판적 지지론자 이 개객기야!!!!” 그러자 이 세상의 모든 잡지를 구독하는 강준만이 그 외침을 듣고 다음달에 반론을...아니 달래는 글을 썼다. “제 책은 민주당 지지자들 보라고 쓴 겁니당. 민노당 분들 열받지 마세요.” 근데 달래기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천하의 강준만이다보니 대충 이런 말이 나왔다. “근데 님의 글에 6개의 오류가 숨어 있네요. 첫째는 어쩌구 둘째는 어쩌구...” 그냥 좌파 내부의 비지론자들 단속하려고 고함친 죄밖에 없는 박용진이 머쓱해질 타이밍에 이론과 실천 편집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주대환이 출동하면 어떨까?” 그리하여 주대환-강준만 논쟁이 시작되었다.



링 위에 올라온 주대환은 매우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실패했는데 무슨 또 비지론이냐고 흥분한 박용진을 달래기 위해 “김대중 정부 실패했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에게 실패인 것이 그들에게는 성공이다.”라고 말했다. “양극화는 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개혁이 성공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하준 정승일이 들으면 좋아할만한 얘기였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아예 갈 길이 다르다는 선언이었다. “노무현은 미국으로 가자는 거고, 권영길은 유럽으로 가자는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극우 헤게모니? 그거 이미 깨졌는데 뭘 그래.”라고 주장해서 여러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이에 대해 강준만은 “극우 헤게모니가 깨지긴 왜 깨졌어요. 저기 눈앞에 보이는구만. 그리고 아무튼 노무현은 좀 짱인 것 같다능.”이란 식으로 대답했고 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지라 논쟁은 그쯤에서 끝났다.



매체에서 벌어진 이 논쟁은 인터넷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키보드워리어’라는 말은 생기지 않았지만 키보드워리어 1세대쯤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안티조선 우리모두라는 사이트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말하자면 프로토스의 고향은 아이우, 키워의 고향은 우리모두... 이건 좀 아니고, 여하간 2001년이라면 PC통신의 ‘논객’들이 안티조선 우리모두로 흘러들어와 서로 잘난척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고, 대략 2002년부터 이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거나 들어도 잘 모르는 여러 종류의 키보드워리어의 서식지들을 만들게 된다. 



주대환-강준만 논쟁이 인터넷판으로도 전해지자 김동렬 등을 위시로한 친민주당 or 노무현 성향 키워들이 아예 민주노동당 노선을 밟아버리려고 규탄을 하면서... “민주노동당의 강준만 죽이기”를 막고 있다고 외쳤다. ‘극우 헤게모니’가 없다고 해버렸으니 안티조선 운동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현실 모르는 소리로 비쳤겠는가. 이에 맞서 좌파 쪽에는 주대환을 옹호하기도 하고 아니면 주대환이 좀 성근 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민주노동당은 짱이라능이라고 답변하기도 하는 식이었는데 가만히 싸움 구경을 하던 나는 불현 듯 이렇게 외쳤다. “그, 그러니까...전선이 두 개라능! 왜 두 개냐믄...이렇게 피터지게 싸우는거 보니 하나는 아닌 거 같고....그냥 두 개면 되잖냐능!!” 그 글을 쓴 심정은 대충 이랬지만 실은 졸라 길고 재미없는 글이었다. 훗날 최병천은 2002년 대선국면에서 이걸 들고 가 당시까진 아직 노빠였지만 나중에 ‘반-진중권 좌파연대’의 수장이 되는 전설적인 키워 수군작에게 “이게 아흐리만이란 아해가 쓴 ‘두 개의 전선론’이라는 건데요~”라고 말했지만, 수본좌께서는 “그건 뇌의 착각이며, 비겁한 변명에 불과해. 좌빨은 두 개 세 개 이런 거 모린다...좌빨은 모노닷!!”이라고 반응하여 (비록 본질은 겉은 빨갛고 속은 노란 사과에 불과했지만) 그의 포스를 증명하시기도 했다.



여하간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극우 헤게모니’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안티조선 운동이나 소위 민주당 개혁파 노선의 유의미성을 강조하던 이들이 그때부터 수 년동안이나 심심할 때마다 읆조리던 단어다. 이 말은 강준만이 주대환과의 논쟁에서 사용했지만, 강준만이 만든 말은 아니다. 척봐도 강준만이 만들 어휘로 생기지는 않았다. 이 말을 21세기 한국사회의 어떤 모습을 지시하는 정치평론의 용어로 끌어온 건 홍세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때려치고 한국사회의 ‘전사’로 거듭나기 위해 귀국한 그는 귀국 일성으로 강준만이 만들던 월간 인물과 사상에 장문의 글을 기고한다. 그 글의 제목이 바로 (워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 극우 헤게모니와 조선일보의 진지전과 기동전”이었다. 이 좌파의 언어가 안티조선 운동 진영으로 흘러들어와 강준만이 그간 경험적으로 추적해 왔던 “조선일보만의 특수성”이란 테제를 이론적 언어로 지시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그 결과 강준만은 주대환과의 논쟁에서 자연스럽게 ‘극우 헤게모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왜 ‘극우 헤게모니’와 ‘진지전’과 ‘기동전’이란 단어가 필요했던가? 그것은 안티조선 운동을, 조선일보가 지지하는 한나라당을 정치적 경쟁자로 삼는 민주당 세력이 아닌, 좌파들에게도 의미있는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했다. 만일 어떤 이가 극우라면, 대충 이런 얘기들이 가능해진다. “유럽에서는 좌와 우가 힘을 합쳐 양극단을 몰아내더라... 좌파들이 자기 정치세력화를 위해 운동하는 건 또 따로 할 일이지만, 이들을 왕따시키는 데 힘을 보태는 것도 좌파가 마땅히 해야할 한 역할이 아니겠니?” 이게 이 논변에 대한 ‘약한 해석’이었고, (내가 만들었다는 ‘두개의 전선론’은 명백하게 이 ‘약한 해석’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십라 극우 헤게모니가 살아있는데 사치스럽게 좌파는 무슨 좌파! 얼른 노무현 짱 밑에 와서 깃발을 바치라능!!”이라고 좌파들을 욕하는 게 ‘강한 해석’이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약한 해석은 2002년 대선 국면이 닥치기 전에 폭넓게 수용이 되었다. 한편 강한 해석은 꾸준하게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이 좌파들한테 뭐라고 하면 좌파들은 또 “비판적 지지론자 개객기야!!”라고 반응을 하기도 하고... 약한 해석을 말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노빠 키워가 대선 때 상황이 급해지니까 갑자기 강한 해석으로 돌아서고.... 등등등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처럼 이 개념은 안티조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긴 했는데, 2001년 말부터 거세게 전개된 ‘노사모 운동’ (...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리라.)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지나칠 수 없는 개념이다. 비록 노사모의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한 노무현 지지자들이 직접적으로 이 단어를 언급하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자 이제 이 담론이 구체적으로 조선일보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말인즉슨 조선일보는 한국 사회의 ‘극우 헤게모니’를 유지시키기 위해 전략전술적 책동을 하는 그런 사악한 집단이다... 라는 얘기가 되겠다. 그런데 이 극우라는 개념은 한국사회에서는 반공주의나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란 소재와 연결될 수밖에 없어서, 주로 장기수들에 대한 사상전향서(김대중 정부에서 ‘준법서약서’로 바뀐 후 나중에 사라짐)의 문제나 국가보안법의 문제, 그리고 문민정부 이후로 언론들이 주도했던 공직자에 대한 ‘사상검증’ 등이 어떤 이가 ‘극우’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가장 중요한 판단의 잣대로 작용한 것은 맨 마지막 것이었다.



김영삼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가’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이후, 언론권력이 정부의 성향을 ‘통제’하는 기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사상검증이었다. 말하자면 김영삼이 뭔가 진보적이라고 알려져 있던 학자를 장관으로 만든다.... 그러면 월간조선이 “그 개객기 빨갱이야!!”라고 소리친다... 조선일보가 “빨갱이를 공직자로 임명하다니...” 그러면 다른 신문들이 그 말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하고 “빨갱이라고 소문난 이를 공직자로 임명하다니 엄훠 그런 경솔한...”이라고 하기도 해서 종국엔 인사에서 낙마하는... 그런 식이었다. 한모 장관, 김모 장관, 이모 장관 (이인제는 아니다.)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조선일보가 저 유명한 “최장집 사건”을 일으켰을 때... 세월이 좀 바뀌었는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월간조선이 선빵을 날리고 조선일보가 심혈을 기울여 지랄을 했는데도 다른 언론사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당시 중앙일보 권영빈 논설위원은 “뭐냐 이 메카시즘....졸 지겹거든?!”이라고 칼럼에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일보가 고립된 것이다.



이걸 보고 강준만이 “오케바리!!!! 딱이군!!!!!! 드디어 걸려들었어!!!!!!!!”이라며 조선일보를 신나게 맹비난해대다가...말지 정지환 기자와 함께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에게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고... 그걸 보고 분노한 홍세화가 한겨레에 “나도 고소하라능!”이라고 칼럼을 쓰고 어이를 상실한 진중권이 “낄낄. 이한우 학동 맛동산 사먹고 싶은가봐. 벌금은 네티즌들이 성금으로 모아서 주자고!”라며 인터넷에서 모금운동을 시작한 것이 소위 안티조선 운동이란 것의 우발적인(?) 시초다. 뭐 이런 식으로 잠깐의 시기 동안 좌파와 우파가 같이 모인 지식인운동이 하나 시작되었고 이것을 대중운동으로 확산시키려고 노력을 했던 것인데... 여기서 우리의 전설적인 홍세화짱의 정리는 이렇다.



“자자, 보라구!! ‘조선일보나 중앙 동아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지? 여기서 실천적으로 그게 아니라는게 드러나잖아? 뭐라고? 그건 그때 한번이고 지금은 별 차이없다고? 문화면에 좌파들 얘기도 잘 받아준다고? 에헤... 이 사람들 답답하네. 그러니까 설라무네 그때 저번이 ‘기동전’이었다면, 지금은 ‘진지전’을 하고 있는 거라능! 이렇게 진지전을 해서 평소에 부드러운 이미지로 지식인과 독자들을 속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영향력을 가지고 다시 기동전, 그러니까 빨갱이 사냥을 할거라능!!! 이제 정리되지? got it??"



......그렇게 조선일보는 나쁜놈이 되었던 것이다.    



홍세화의 논변은 당시의 구체적인 운동 정국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었다. 그렇게 기민하고 정확했던 분석의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그의 ‘진지전’과 ‘기동전’론을 “조선일보만의 특수성”을 위해 적용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조선일보는 그후에 홍세화가 말했던 의미의 ‘기동전’을 펼친 적이 없다......OTL



물론 조선일보는 노무현도 괴롭혔고... 요번에 촛불도 괴롭혔다... 그런데 그 논변...혹은 논변 수준에도 못 미치는 땡깡들이 다른 신문들과 비교해 ‘극우’라고 규정지을만한 어떤 특수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명백해져갔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두 가지 정도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조선일보의 ‘최장집 사건 학습효과’... 결국 최장집은 공직에서 낙마했고 월간조선에 걸었던 명예훼손 소송도 취하하긴 했지만... 조선일보로서도 두 번 다시 그런 식으로 왕따당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둘은...중앙과 동아가 그후 더욱 꼴통이 되었다는 것... 그 계기는 2001년에 있었던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였다. 솔직히 안티조선 초기에 중앙과 동아는 이 운동을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데 이용해 먹고픈 유혹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한놈만 패! 그러면 효과는 나와!!”라는 전략전술적 거시기로 시작한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들이 바랬던 것이었다. 동아는 “신동아 보라능?! 우리 가끔 진보적이라능!!”이라고 말했고... 중앙일보는 “우리는 저렇게 허접한 반공주의자는 아니고 시장의 합리성을 믿는 보수거등여?!”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들을 강타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안티조선 운동은 대중운동의 영역에서 크게 확산되기는 했지만 ‘조중동’은 서로 결합해 버렸다. “아...안되겠다능?!! 우린 같은 편이라능!!!” 특히 90년대 말까진 ‘자유주의자’ 유시민이 칼럼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독립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던 동아일보가 사주의 그릇된 판단으로 ‘조선보다 더한’ 길로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조선일보’의 특수성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빛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최근의 정국을 통해 생각해보자. 사노련 관계자들 체포 때 조중동은 어떻게 반응했던가? 조선일보는 “옛날엔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문건만으로 법원이 영장 청구해줬는데 투덜투덜... 하여간 조사 좀 더 잘해보라능!”이라고 말했고 중앙일보는 “조사 좀 잘해서 넘기지 왜 바꾸를 맞고 지랄이냐능?”이라고 반응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선 반응이 없었다. 약간의 차이가 감지되기는 하지만, 이거 가지고 뭐라고 하기는 우습다. (예전처럼 조선일보가 ‘기동전’을 한번 더 뛰어준다면 “이...이건 진지전이라 비슷한 거라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명박에 대해선 동아일보가 가장 격렬한(?) 옹호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고, 시장권력에 대한 맹동적인 추종에서 중앙일보는 조선일보를 찜쪄먹는다. 이런 사정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세 신문을 구별하기가 그렇다. 참여정부 말기에 언론운동 단체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조중동’이 아니라 ‘조동’이라고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참 한심했던 적이 있다. 중앙일보의 폐해도 만만치 않은데 단지 중앙일보과 노무현과 잠깐 밀월관계를 형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빼려고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히려 촛불시위 지지자들의 조중동 반대운동이야말로 안티조선 운동이 지니고 있던 실천적 효용성이 끝났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판단된다. 물론 조중동에 이번에 문제의식을 지니게 된 시민들은 과거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들이 만들어낸 많은 이론이나 서사를 통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환기시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과거에는 ‘조선일보’로 특징지을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조중동’으로 묶어서 비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 변화가 있었기에 그들이 ‘안티조선’이 아닌 ‘안티 조중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초의 안티조선 운동과 촛불정국의 안티조중동 운동은 시민사회의 언론운동의 연장선상에 있고, 문제의식도 동일하다. 그러나 전략의 부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특수성을 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친일, 친독재, 수구세력 옹호...의 레퍼토리로 대변되는 조선일보 88년의 역사를 모두 읊는다. 그것은 이른바 ‘극우 헤게모니’론을 통해 조선일보의 특수성이 이론적으로 분명히 정립된 상황에서는, 가능하고 필요한 서사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너져버린 지금 상황에서, 그 역사를 읊는 것만으로 조선일보와 다른 신문의 차이를 말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가령 친일을 생각해보자. 1930년대 조선일보의 맹목적인 친일은, 현재의 조선일보 문제와 연관을 지니는가? 큰 맥락에서 그들이 줄곧 권력추종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말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친일로 따지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아일보도 했다. 물론 프랑스에서 그랬듯 그런 신문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폐간시켰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건 정당하다. 그런데 그 친일을 한 동아일보가 1970년대까지 ‘일등신문’이었고, 그것도 조선일보식의 ‘일등신문’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가장 매서운 비판자로서의 일등신문이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의 광고탄압 사건 이전까지의 동아일보를 부인할 수 없다면, 친일을 했기 때문에 바로 너는 오늘도 ㅅㅂㄹㅁ다라는 식의 접근은 무리가 있다. 친일파야 개인의 정체성을 지니지만, 오늘의 언론사를 구성하는 이들은 그때의 구성원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은, 물론 친독재였고 박정희한테 ‘밤의 대통령’이란 별명을 하사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별명은, 훗날 그의 팔순잔치 때 조선일보 임직원들이 주장했듯 그가 정치적으로 힘이 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라 밤에 박정희랑 안가에서 술먹고 놀 때 기생이랑 잘 논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친일, 친독재 운운하지만 박정희 정권 때까지 조선일보는 굳이 안티를 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전두환 집권 당시 노골적으로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그후 파시스트 정권의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으며 동아일보를 제끼고 일등신문이 된 이후의 조선일보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일보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80년전에 친일을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연성과 힘의 관계들이 조응하여 벌어진 일이다. 1990년대 후반의 동아일보가 나름의 품격은 지키고 있다가 급격하게 ‘수구’세력에 합류한 사건도 그렇고, 21세기 이후 소위 ‘조중동’이 예전에 비해서도 점점 더 친화성을 키워가고 있는 현실도 그렇다. 안티조선 운동의 분석틀은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안티조선’이라 일컬어지는 전략의 부분에서는 분명 현실의 힘의 관계들을 토대로 다시 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안티조선이라는 프레임은 여전히 유효한가? 즉, 진보신당의 언론 정책에서, ‘조선일보’만을 특별히 배제해야 할 어떠한 실천적인 타당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아예 안티조중동을 실천하는 것은 논변적으로는 깔끔하지만 현실에서는 지나친 손해를 보게 되고, 안티조선을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에서 체면치레를 하는 수준에 그친다. 굳이 나더러 택한다면 후자를 택하는게 좋겠다고 주장하고는 싶지만, 이 정도 수준의 타당성이라면 이 모든 것을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에도 일리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김수민의 (안티조선 논변에 입각한) 주대환-최병천 비판이 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너무 단순한 대답을 도출해낸 상황에서 이루어진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첫 번째 문단에서의 나의 말에 대한 의미가 이제는 드러났기를 바란다. 물론 맨처음에 언급했듯이, 이는 “주대환 논쟁”의 핵심적인 논점과는 관계없이 별도의 논점을 구성하는 글이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3

폴 크루그먼은 그의 저서 <대폭로>에서 부시 행정부를 ‘혁명적 우익’으로 규정한 바 있다. 재무설계사가 되기 전 인터넷 논객의 하나였던 김대영은 이 규정을 고스란히 노무현에게 적용하여 노빠들의 원성을 샀다. 이 규정의 내용을 재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겉으로 천명된 목표를 보고 정책 제안이 그 이치에 닿는다고 추정하지 말라.
2. 약간의 숙제를 해서 진짜 목표를 찾아내라.
3. 유용한 정치 규칙이 실제 적용된다고 지레 짐작하지 말라.
4. 혁명적 세력은 공격으로써 비판에 대응한다는 것을 예상하라.
5. 혁명적 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적어보니 이것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겉으로 천명된 목표, 즉 물류 비용 감소나 사교육비 절감과 같은 수사를 보고 대운하나 영어몰입교육이 이치에 닿는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약간의 숙제를 해서, 이 정책들의 실제 목표, 즉 땅값상승을 통한 경기부양이나 영어만 잘 하는 강남 중산층 자녀들의 비정규직 영어교사 채용이라는 그들의 목적을 간취할 필요가 있다. 유용한 정치규칙이 실제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비리가 드러난다고 해서 장관이 경질될 거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이재오가 설친다고 대통령의 형님이 일선에서 물러날 거라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총선 당시 공약에서 삭제되었던 정책이 다시 추진된다는 사실에 놀라서도 안 된다. 그들의 목표에 한계가 없다는 점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그야말로 혁명적 우익 만세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에서 생각해 볼 때, 혁명적 우익이라는 개념에 대한 접근은 노무현이나 이명박에 대한 인물 분석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돌연변이와도 같은 부시 행정부의 행동을 마음껏 조소할 수 있었던 폴 크루그먼과 달리, 우리의 경우 과연 ‘혁명적 우익’이 특수한 현상이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한국의 우익들은 언제나 혁명적 우익이었다. 지켜야 할 전통적 가치가 무엇인지 규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우익이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한국의 우익 정치인들은 언제나 이전의 정권을 부인하면서, 혁신적인 수사를 내세우며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해 왔다. 언제나 혁신을 얘기했지만 그런 행동만큼은 모두 비슷비슷했다.   


반면 리영희나 장준하의 사례에서 보듯 오히려 정통적인 보수주의자의 성향을 지닌 이들이 비판적 지성의 전통을 이어왔다. 좌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진보신당이 자신의 테두리를 어디까지 확장할지는 모르지만, 2차세계대전 이전의 사민주의를 옹호하는 노회찬의 모습은 어느 우파 정치인들보다도 더 ‘보수적’이다. 좌파들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볼 때) 전통적인 가치지향을 계승하려는 ‘보수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혁신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요즈음엔 주로 경영학의 내용 안에 포섭되어 사용되고 있다. 부단한 자기 혁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에게 필수적인 덕목이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어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신의 기업에 대한 처자식의 지분만은 필사적으로 고수하려고 하는 이건희 회장의 사례를 생각해 보건대, 과연 한국의 기업인들이 그토록 혁신에 철저한 사람들일까 하는 의문은 들지만, ‘혁명적 우익’을 요구했던 한국 우익의 전통(?)의 맥락에선 기업가가 새로운 정치 리더가 되는 것이 거의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뭐가 문제가 된단 말이냐. 혁신은 필요한 것이며, ‘좋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될 수 있겠다. 혁신을 사랑하는 행동주의자들은 언제나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개발을 이야기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론자들이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를 논증(?)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왜 그들이 혁신적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사례들, 가령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을 조롱하는 매우 전통적인 우화로 ‘끓는 물에 삶아지는 개구리’의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 “개구리는 언제나 폴짝 뛰어 다른 냄비에 튀어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언제나 다른 냄비로 뛰어드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펄펄 끓는 냄비에 제 발로 뛰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혁명적(!)으로 추진한 한미 FTA나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정책을 보면, 정말이지 이 개구리가 어느 끓는 물에 뛰어들지 걱정이 된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정치 > 용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산층  (9) 2008/10/01
[대학내일] 실용외교?  (0) 2008/05/27
혁명적 우익의 나라  (8) 2008/04/30
'국개론'과 '민주주의'  (8) 2008/04/22
현직 대통령의 정치 혐오증  (2) 2008/04/21
이기적 전체주의 vs (일)국가적 자유주의  (4) 2007/05/01
TRACKBACK 0 AND COMMENT 8
한나라당에서 펼치는 "대운하 없다-" 놀이만큼은 아닐 지도 모르지만, 서울 곳곳에서 나오고 있는 뉴타운 추진 공약도 웃기기는 마찬가지다. 뉴타운 작란질인지, 뉴타운 장난지랄인지 모르겠다. 내가 사는 지역구인 동작을의 정동영 후보는 정몽준 후보의 뉴타운 발언를 선관위에 고발했다. 정몽준 후보는 유세 중에 "오세훈 시장으로부터 뉴타운 건설을 약속받았다."고 말했다. 정동영 후보 고발의 요지는, 이건 관권선거 아니냐는 것이다.


사실 서울에는 이미 25곳의 뉴타운이 계획되어 있고 이것들이 그 동네 집값만 올리면서 잘 진행이 안 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임기 중에 이것들도 다 추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더 이상의 뉴타운은 없다고 못 박은 적도 있다. 그러니까 정동영 입장에선 억울한 게 맞다. 오세훈 시장이 정몽준과 자신 둘 중 누구를 거짓말쟁이로 만들 것인지, 그게 아니면 뉴타운 말고 다른 재개발을 계획했다고 교묘한 오리발을 내밀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그런데 여기서 더 코미디는 정몽준 후보의 '뉴타운 밀약'을 관권선거로 규탄하는 정동영의 공약 역시 '뉴타운 추진'이라는 것이다. 아니 서울시장의 업무에 속하는 뉴타운 사업을 야당 국회의원이 무슨 수로 공약을 해? 여기서 이 공약은 더욱 더 심오한 차원으로 비약하는데, 무려 "2년 후부터 추진"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다. 2년 후면 지방자치단체 선거가 있다. 2년 후에 민주당이 서울시장 자리를 탈환하고, 그 다음부터 정동영 후보의 명에 복종한 서울시장의 책임 하에 뉴타운을 추진하겠다는 장쾌한 정략 구상이 이 한마디 단서 안에 들어 있다. 이쯤되면 이게 공약인지 소설책인지 구별이 안 간다.


문제는 뉴타운 건설이 과연 지역민들에게 이득이 되느냐는 거다. 동작을에 출마한 진보신당 김종철 후보는 2006년에 민주노동당 서울 시장 후보로 출마했던 그 사람이기도 한데, 당시 자신이 조사했던 성북 길음 뉴타운의 경우를 보면 세입자들은 물론이고 자기 집 가진 사람들도 상당수가 보상금 타내고 은행대출 내고도 새로 지은 집을 살 수가 없어 동네를 떠나야 했다고 한다. 그것도 서울 안에선 갈 데가 없어 의정부, 구리, 남양주 등으로 떠나야 했다는 것이다. 기타 추진이 늦어지고 있는 지역들은 거래할 수 없는 상황의 집들이 값만 올라서 세금만 더 많이 내고 있는 꼴이라고 한다. 모두가 다 한몫 챙길 수 있다는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뉴타운은 보여 주고 있다.


동작구를 서초구로 만들어 주겠다는 정몽준 후보는 말할 것도 없고 중산층과 서민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책까지 내신 정동영 후보도 이런 헛된 망상에 기대어 표를 모으려 하고 있으니 이 부풀려진 꿈의 풍선은 스스로의 크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질 때까지 팽창을 계속할 태세다. 동작을의 경우 흑석동과 동작동 쪽에 커다란 재래시장도 있는데 이런 재래시장이야 말로 뉴타운이 확정되면 제일 먼저 '쓸려 나가야' 할 곳이다. 어제 진보신당 김종철 후보가 유세를 하다가 세탁소 운영하시는 아주머니와 뉴타운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뉴타운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데 조금 멈칫멈칫 하시더란다. 알고 보니 24평형 연립주택을 소유하신 분이었다. "다른 곳과 비슷하게 추진된다면, 보상금에 대출금 타 내도 다시 지은 집을 못 사십니다. 건축비도 일부 부담을 하셔야 하기 때문에......"라고 설명을 했다고 한다. 가치지향이고 뭐고 떠나서 뭐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지부터 챙겨야 하고, 알려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뉴타운은 추진될 경우 60% 이상의 주민 동의가 필요한데, 사당1동의 경우 2년 전 당시에 부동산 업자들이 바람을 그렇게 넣었음에도 50%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동의를 얻어 뉴타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고 한다. 이런 동네에서 정동영 후보는 "서울 시장이 막은 뉴타운, 정동영이 추진하겠습니다."는 플래카드를 걸고 선거에 임하고 있고, 자신이 결코 얻을 수 없는 시장의 언질을 받은 정몽준 후보를 관권선거라고 규탄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모로 우파들이 "좌파 너희들 없어도 우리가 알아서 나라를 잘 꾸려나갈 수 있어."라고 말하기는 우스운 상황이다.




P.S 아침 선거운동을 7시 30분부터 9시까지 하고...후보와 선거운동원들과 함께 떡만두국을 먹고...버스를 타고 오는데 그만 졸다가 내려야 할 적당한 곳을 놓쳤고 눈앞에 보이는 셔틀은 줄이 지나치게 길어서...  빠른 걸음으로 3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를 뛰어서 18분에 주파해서 강의실에 들어갔다. 교수님과 동시에 강의실에 들어섰고, 출석체크하자마자 화장실로 나가서 세수하고 물을 다섯 잔 마셨다. 아, 뛰어다니는 건 싫어... ㅡ.,ㅡ;;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ACKBACK 0 AND COMMENT 6
'영구분단론'은 답이 아니다



위 글을 쓴 노정태와 나의 문제인식은 공유가 되는 지점이 있다. 노정태는 첫째, 현재의 상황이 이어질 경우 북한 정권이 붕괴될 때 북한의 영토와 인구는 중국에 편입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지적하고 있다. 둘째, 티벳 사태에서 보듯이 중국의 소수민족 지배는 그리 관대하지 않으므로, 민족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인권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가능성이 실현되는 것은 북한 주민에게 손해가 되는 일이다. 셋째, 노정태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이 가능성이 실현될 경우 남한의 국가발전이나 장래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동북공정과 같은 중국의 작업들은, 한반도 북부에 대한 역사적 영유권을 주장하려는 그들의 정치적 의도와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이른바 ‘중국 문제’는 한국인들에게는 코 앞에 닥친 문제인데, 대다수의 시민들이 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 큰 문제다. 노정태는 진보진영이 이 문제에 대응하는 잘못된 방식으로 ‘영구분단론’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노정태가 말한 ‘영구분단론’이 나도 주장한 적 있는 “북한을 별도의 외국으로 인정하자.”는 논변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이 주장을 지칭하는 적당한 이름이라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북한을 별도의 외국으로 인정하자는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노정태가 요약했듯) '아, 몰라 씨바, 그냥 지들끼리 알아서 하게 냅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들이 중국 문제에 관한 한 대응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나 정치적 행위에 대한 로드맵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는 노정태의 지적은 옳다. 국가를 운영하는 일은 아직도 좌파들에게 너무 먼 문제이기 때문에, 수권정당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평화 애호라는 추상적인 접근에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진보신당은 남북한 상호 군축을 전망으로 내세우는 것 같고, “대북정책은 남한 자본의 북한 내부 식민지화를 의도하고 있다.”는 박권일의 분석이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나마 이런 말도 많이 들리는 건 아니다. 우석훈 박사의 대안경제 시리즈 3권이 동북아 삼국의 제국주의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하고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 이런 접근이나 분석이 틀린 건 아니지만, 현실정치에서는 하나의 문제에 직면한다. 남한의 내부식민지가 될 것이냐, 중화제국의 소수민족이 될 것이냐라는 선택지가 주어져 있다면 어느 쪽이 북한 주민의 행복에 도움이 될 것이냐라는 문제가 남기 때문이다. 물론 이 문제를 걱정하는 나같은 이들은 당연히 전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부식민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좀 한가하게 들리기도 한다.


철없는 좌파를 철든 우파가 다독이면서 나아가는 게 성숙한 국가일진대,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자신들이 애국자라 주장하는 극우파들조차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것 같다는 것이 문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전없음’을 ‘실용주의’라는 이름으로 치장하는 수준이고, 일관성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한국 극우파의 영혼이신 조갑제옹 마저도 이런 국가적 위기상황에 대한 이해가 있는 것 같진 않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이 문제를 어렴풋하게라도 인정하고 나름의 방책을 강구해 나간 건 참여정부 뿐인 것 같다.


참여정부는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희망의 군국주의자 노무현!”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낼 만큼 군비확장에 힘을 써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민주당 후보 경선 시절 주장한 공약 중에 “통일 후에도 군비확장”이라는, 다소 무시무시한 공약이 삽입되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이 아무 의도없이 그냥 생긴 일은 아닌 것 같다. 국방 문제에 대한 자료가 없는 나로선 추정에 불과하지만, 전시 작통권 인수마저도 한미 관계 재정립보다는 군비확장과 관련이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굳이 끝까지 선의적 해석을 밀고 나가보자면, 내가 경제적으로는 그렇게 반대했던 한미 FTA 역시 중국에 복속되지 않기 위한 주체적인(?) 친미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어떤 일본언론들은 한미 FTA가 미국과의 친목을 통해 중국에 대항하는 원교근공의 정치전략이라는 나름의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참여정부의 대안은 승인될 수도 있고 부인될 수도 있는데, (나의 경우 일부는 승인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한미 FTA는 아니라는 쪽이고) 어쨌든 그들이 북한 문제를 넘어선 외교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하나의 관점(그 정확한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받아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참여정부의 모든 군비확장이 북한을 핑계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포인트다. 이것이 중국 문제에 관한 논의를 어렵게 만드는 점인데, 왜냐하면 한국인들이 그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말을 꺼내는 순간 미국보다도 되바라진 어느 예약된 초강대국을 심각하게 자극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분명 이 문제를 알아야 하지만, 정부나 주요 언론 차원에서 심각하게 공론화해서는 안 된다는 하나의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 딜레마를 깨닫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렇기 때문에 논의가 없는 상황을 단순히 우리 모두의 멍청함 탓으로 돌리기도 어렵다.


나는 국방 문제 뿐 아니라 외교 문제에 대해서도 자료를 찾아보는 식의 공부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추정에 입각해서 말할 터이니 혹시 잘못된 부분이 발견된다면 지적해 주길 바란다. 이 상황에서 문제의 핵심은 북한 정권이 내부요인에 의해 붕괴할 경우 중국군이 곧바로 압록강을 건너서 넘어올 수 있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아마 중국과 북한 사이엔 군사동맹이 존재할 것이고, 이 동맹은 정권 사이에 맺어진 것인 만큼, 미국과 남한의 침공이 아니라 내부요인에 의해 북한 정권이 위험해 지더라도 중국군은 북한 정권을 구원하기 위해 국경을 넘어올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스스로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북한 지역을 중국에 송두리째 넘기고 싶지 않다면 이때에 대한민국 군대 역시 즉각적으로 휴전선을 넘어 가야 한다는 것, 그러면서도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는 것이 이 문제의 어려움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군대가 휴전선을 넘어갈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가 여기서 핵심이다. 지금으로서는 그것이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규정한 헌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규정 역시 국제적으로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UN 동시 가입 이후 국제사회는 남북한을 사실상 두 개의 국가로 취급해 왔기 때문이다. 헌법의 규정은 다만 대한민국 군대가 휴전선을 넘어가기 위한 핑계가 될 수 있을 뿐이며, 그러다가 대동강 정도에서 중국 군대와 마주쳤을 때, 중국과 남한은 지리한 외교적 공방을 계속하다 서로를 설득하지 못하고 자국 군대가 장악한 지역에 대해서만 실효적 지배를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라인이야말로 바로 통일신라의 강역이다. 고구려사를 한국사로부터 떼어 냈을 때 중국이 얻고자 하는 실리는 바로 이런 종류의 것이라 볼 수 있다. 북한에 대한 권리가 한국에 있음을 주장하는 논거가 좀 더 튼실하더라도, 중국의 국가적 힘이 한국을 훨씬 능가하는 만큼 외교만으로 중국 군대를 물릴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의 입장에서 조선족과 몽고족은 중국의 바깥에서 독립국을 가지고 있는 유이한 종족이다. 이들에 대한 중국의 통치를 확고히 하는 것은 50여개 소수민족을 감싸야 하는 중국 공산당의 입장에선 필수적인 일이다. 그들에게 북한 문제는 외교 문제가 아니라 (티벳 문제와 마찬가지로) 내치의 문제일 수 있다.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미국의 경우 물론 친미국가인 대한민국이 북한 지역을 접수하는 것을 원하긴 하겠지만, 그 갈망이 어느 정도일지,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중국과 어느 정도 불화할 수 있다고 여길지를 추정하긴 어렵다.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노정태의 주장은, 언급되지 않은 부분까지 추려서 말하자면, 이런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북한을 별도의 외국으로 인정하는 조처는 사실상 자해공갈이 아니겠느냐는 의미인 것 같다. 그리고 그런 조처가 중국 문제와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는 질의인 듯하다. 통일이 아니라 분단체제 해체를 추구하는 (이러한 폭넓은 흐름 역시 요샌 ‘통일론’의 일환으로 생각한다는 프레시안 황준호 기자의 지적이 있었다.) 사람들이 노정태가 제기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문제를 ‘북한 외국 인정론자’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동시에 그 조처 자체가 가지는 유익함이 크다고 생각한다.


중국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가 군사동맹 때문이라면, 대한민국 역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새로운 외교관계를 맺음에 있어 군사동맹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어떤 수준의 군사동맹 없이 그저 북한을 외국으로만 인정하는 외교관계는 나 역시 반대할 것이며, 사실 북한과 외교관계를 맺으려는 큰 목적 중 하나가 군사적 긴장관계 해소인 만큼 그런 것을 추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북한을 별도의 외국으로 인정하는 외교관계 확립으로 인해 남한이 얻게 될 이득은 무엇인가? 일단 앞서 상정한 중국군이 남진하고 한국군이 북진하는 상황은, 그 상황에 닥친다면 주저없이 내려야 할 판단이지만, 되도록 피해가려고 노력해야 하는 상황이란 사실이 지적되어야 한다. 추구되어야 할 것은 북한 정권을 인민의 복지에 좀 더 노력하게 만들고, 점진적으로 대한민국에 친화적인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을 위한 노력 중 큰 부분이 북한과 남한 모두에게 내재화된 ‘통일’이라는 목표에 대한 강박을 넘어서는 일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지금의 북한 정권은 통일을 원할 수가 없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다시 자주파의 통일관으로 돌아가 보자. 그들은 남한 지역에 국가보안법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를 실현하는 ‘자주적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과 함께 연방제 통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북한이 과거에, 남한과의 체제경쟁에 자신이 있었을 때 체계화한 주장이다. 지금의 북한은 자주파의 환상 속에 있는 ‘강성대국’이 아니다. 이 점은 북한 당국자들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통일에 대한 강조는 체제 유지의 가능성에 대한 북한 권력자들의 신념을 약화시킨다. 남한에 북한을 붕괴시킬 의도가 없음을 다른 방식으로 각인시켜도 되지 않겠느냐는 반론이 가능하지만, 김정일 방북시 한국군은 체포 구금할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심심찮게 하는 월간조선 등의 극우파가 일정 부분 있는 이상, 정치적인 설득만으로는 북한의 두려움을 없애기엔 역부족이란 게 내 생각이다. 당장 이명박 정부가 90년대의 비핵화 선언에만 의미를 부여하고 두 번의 정상회담의 합의문은 서서히 무시하려고 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 차원의 외교관계 확립을 통해 실질적인 문서를 통한 보증이 필요하다. 


비슷한 보증을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겠다고 말한다면 그런 입장도 수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 방향이 어쩌면 수십 년에 이르는 장기과제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두 주권국 간의 외교관계보다 확실하고 깔끔한 방안이 있을 지는 의문이다.


물론 북한 문제와 중국 문제는 단지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차세대 초강대국의 압력을 약간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외교적 수단의 강구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미일 동맹은 하나의 유효한 방책이지만, 극우파들이 선점하고 있다는 문제가 있고, 일본과는 역사 문제가 걸려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소파 개정의 필요성과는 별도로 주한미군 철수라는 정책 주장이 과연 한국의 자주성을 증진시키는 것인지에 대한 정당한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게다가 장기적으로 볼 때 쇠락하는 제국과의 동맹을 통해 떠오르는 제국에 대항하는 것이 그것만으로 유효한 보증책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가스배관망 등을 통해 러시아와 자원적으로 연결이 되고 유럽과도 육로로 교통할 수 있는 방안이 확립되면 한국이 다원적인 세계 질서에 편입되어 운신의 폭이 넓어질 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측이 이 상황을 방관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문제도 있다.


여러모로 이 문제는 어려운 문제이며 다음 세대에 한국이 이 문제를 잘 풀지 못할 가능성도 높지만, (이 경우엔 중국의 패권 아래에서 어느 정도의 독립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가 새로운 문제로 대두될 것이다.) 북한을 별도의 외국으로 인정하면서 분단체제를 해소하는 외교 관계의 확립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안 중 하나 정도는 된다. 노정태가 언급한 영구분단론에 대한 비판이 이 방안에 대한 적절한 비판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앞에서도 지적했듯 나는 스스로의 게으름과 문제 자체의 어려움 때문에 외교와 국방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한 데이터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이 논의의 후반부는 다소 소설처럼 읽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침 노정태가 사람들의 관심사에서 벗어나 있는 이 문제에 대해 언급을 했으니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 게시물을 남겨둔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