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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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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에 해당되는 글 3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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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08/04/27
    [씨네21/유토디토] 운동 망해도, 나 안 망한다 (3)
주대환을 위한 변명
김정진, 2008-09-13 08:18:58 (코멘트: 4개, 조회수: 726번)

주대환을 위한 변명

 

1.

주대환 민주노동당 전 정책위원장의 시대정신 기고글은 사실 별다를 것이 없다. 기고한 매체가 뉴라이트 성향이라는 것이 문제면 문제였지 그 글은 평소에 그의 주장을 정리해 놓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대환을 여전히 1991년 신노선 이전의 기억으로 바라보거나 아니면 유럽 사민주의와 인상비교만으로 그를 질타하는 것은 별로 적확한 것은 아니다.

  많은 분들의 현란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주대환이 제기하는 문제제기는 명확한 것이다. 역시 낡기는 했지만 영국노동당 노선이 한국에서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된 지금 과연 지금 현재 한국의 진보진영이 정치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2.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마디로 주대환이 이야기하는 사민주의는 필자가 이해하기로는 세금이다. 사민주의의 기초는 세금이며, 이를 통한 복지가 대중적으로 사민주의의 기반이다. 지금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유럽의 사민주의 체제들이 버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분야의 복지는 보수적 사고를 하건 진보적 사고를 하건 보통 사람들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고, 이것이 유럽통합 이후에도 유럽의 복지의 광범위한 후퇴가 일어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한다. 1990년 이후 실제로 조세부담률은 대부분의 유럽국가에서 줄어들지 않았다. 즉, 이른바 작은 정부는 재정적으로 실현되지 않았고, 심지어 영국에서 대처의 집권 이후에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3.

그러나, 세금과 복지의 확대는 한겨레와 경향 같은 곳에서 아무리 떠들어대도 국민의 40% 가까이가 여기에 찬성을 해도 쉽게 확대되지 않는다. 체제의 변혁을 꿈꾸는 급진적 집단에게 세금은 사소한 개량이겠지만, 혁명적 시기가 아닌 일상시기에서 지배계급에게 세금은 사활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양보는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게다가 세금-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지배계급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조직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강력한 조직은 두말할 것 없이 노동자총연맹과 그에 기초한 정당이다.

  영국노동당은 1920년대 초(1차대전 직후), 전쟁으로 인한 투기 및 불로소득을 환수하기 위하여 유산자들의 재산의 일정비율을 몰수하는 1회성의 부유세를 제안하였다. 당시 영국은 전비를 국채로 조달하여 1년 예산의 50%를 국채이자로 지불하였는데, 사람들이 세금을 내서 전쟁으로 이득을 본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광범위한 비판이 제기되었다. 영국노동당의 이러한 제안은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켜 영국노동당의 급속한 성장에 기여하였고, 당시 재무장관인 처칠인 이러한 반소유권적 정책에 위기감을 가지고 역으로 상속세를 강화하고 노동당으로부터 중간계층을 떼어내기 위해 중산층에 대한 감세안으로 이를 완화시키기도 하였다.

 필자가 이해하기는 세금을 통한 복지확대 전략은 조직적으로 노동조합총연맹과 이에 기반한 노동당이 없이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다. 이것은 OECD에서 조세부담률을 봐도 실증이 되는데, OECD의 경우 오히려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나라일수록 조세부담률은 높은데 그 이유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의하여 국제경제에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일수록 복지수요가 높기 때문이다. 예외가 있다면 일본과 미국인데 이러한 나라들은 경제규모가 커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한국처럼 보수양당이 집권하고 있어 노동당이 3당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조세부담률과 복지수준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여기서도 한국은 극단적인 예외이다. 수출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은데 복지는 극히 미약하다는 것이다. 정치적으로 노동당이 약하다는 것이 그 이유가 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4.

필자가 보기에 사실 추상적으로 복지를 원한다고 해서 사민주의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는 조직노선에서 노동조합-노동당 노선이 아니면 사민주의는 실현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대환이 보기에 한국에서 이것은 파탄이 난 것이다. 그것이 1900년대 영국의 낡은 노선이어서가 아니라 실제로 한국에서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아마 가장 큰 것은 노동당-노동조합이 민족주의자에게 장악된 것이고, 주대환이 보기에 사민주의 노선을 실현해야할 민주노총 내 다수파인 이른바 국민파가 시대착오적인 자주파와 철의 연대를 하고 있고 자신들의 협소한 경제적 이해만을 중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주대환을 비판하는 좌파들이 답해야 할 것은 유럽 사민주의자가 주대환보다 훨씬 폼난다는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그것이 1900년대 이론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세금-복지”라는 유럽에서의 사민주의 우파의 정책을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어떤 정치적 기획과 실천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적극적인 답이다.  한마디로 주대환은 1991년도 신노선을 주장한 이래 노동조합-노동당 노선을 위해 온갖 일을 해보았지만 더 이상 한국에서 실현되기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린 것인데, 이러한 주대환에 대한 비판은 ‘당신은 후지다’가 아니라 ‘이런 정치전략과 기획이 필요하다’이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주대환이 던진 문제의식은 그가 진보신당을 지식인 집단이라고 힐난했지만 진보신당 재창당 과정에서의 주요한 문제의식이어야 한다고 본다.

 

 

4 댓글
한윤형
참이슬
주대환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그의 주장처럼 미국 민주당식 노선 - 비판적 지지 노선과 다를 바 없는 - 을 채택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단순히 "유럽 사민주의자가 주대환보다 훨씬 폼난다"라든가 "주대환은 1900년대 이론을 주워섬긴다", "당신은 후지다"라는 식의 비판이 아니지요.

지금 주대환은 2002년 "권영길은 유럽, 노무현은 미국을 지향한다"고 말했던 그 주대환이 아닙니다. 주대환이 생각한 유럽은 영국일 것이고, 그래서 영국 노동당 노선 얘기를 했을 터인데, 이제 와서 미국 민주당식 노선을 취하자고 한다면 결국 2002년 주대환이 "미국을 지향한다"고 표현했던 노무현과 뭐가 달라지겠습니까?

영국 노동당에서 미국 민주당으로 U턴한 주대환의 행보는 한 마디로 더 이상의 진보정당 운동을 포기하고 자유주의적인 보수정당에 가담하여 보수정치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야기가 되어 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주대환을 둘러싼 논쟁은 정치 전략과 기획의 여부를 떠나, 진보정치냐 보수정치냐 둘 중 어느 하나를 택할 것이냐에 대한 정치철학의 문제가 되어 버리는 거죠.
2008-09-13 17:02:50
조반유리
공감이 가는 글입니다. 주대환씨가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아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래서 그의 고민 방향에 함께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해야할 전략적인 고민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저도 들었습니다. 말 그대로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전략적인 문제제기라는 거죠. 근데 그래도 그 분이 너무 많이 나간 것 같아요, 요즘 이탈리아에서 과거 좌파민주당(구 공산당)이 아에 미국 민주당식노선으로 간다고 하더니 그런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지... 좀 안타까워요.
2008-09-13 17:59:56
김영아
민주노동당에 갓 입당했을때 <진보정당은 비판적 지지를 넘어설 수 있는가>주대환씨의 이 책을 읽고 지역위원회에 책리뷰와 함께 위원장에게 이책 박스로 사서 당원들에게 돌리자고 했다가 노빠 출신 주제에 여기 들어와서 황당한 짓하고 있다는 핀잔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주대환씨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해는 하지만 인정은 할 수 없숩니다. 한국에서 의회주의 선거제도로 권력 획득을 원한다면 언젠가는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라고 봅니다. 회의적이고 패배주의적이긴 하지만 양당구도의 지배집단 체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고민해봐야 합니다. 명박이 맨날 욕하지만 대안정치세력이 없는 한 지배세력들도, 당하는 민중들도 이 지배체제에 수긍하게 될 것입니다.
2008-09-13 23:27:05
리버럴
비교적 정확하게 주대환 논지의 핵심을 잘 파악한 것 같습니다. 논의 물줄기를 제대로 잡아주었습니다.
2008-09-15 02:44:29
Re: 주대환을 위한 변명
한윤형, 2008-09-16 21:18:48 (코멘트: 0개, 조회수: 62번)

김정진 동지의 정리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주대환의 문제의식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저는 한국의 양당제가 지극히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참여정부가 민주당 노선을 말아먹어서, 한나라당 지지율이 빠져도 민주당이 그 지지율을 받아먹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만일 이명박 정부가 계속해서 삽질을 한다면, 한나라당도 비슷한 꼬라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우 다른 종류의 정치세력에 한번의 기회는 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그게 좌파정당이 될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이런 상황에서 뭔가를 노려보지 않는 건 너무 패배주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주대환의 계획 역시 큰 규모의 정계개편이 있을 거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짜여져 있지요.


둘째, 저는 '일본 공산당'이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컬의 영역에서 그들이 이루어놓은 것들이 많지요. 진보신당이 만일 일본 공산당의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독자적인 존재의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대환의 그림은 지나치게 커서 일본 공산당이나 유럽의 녹색당 류의 정당들의 의의를 과소평가하는 지점이 있는데... 그런 관점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주대환 선생님의 주장은 진보신당에게 필요한 논점을 던져주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기획을 천명하는 것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진보신당은 사실 그런 류의 거대한 그림을 그릴 입장에 처해 있지도 않고, 재창당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운동권 당원과 비운동권 당원의 문화적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그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등등의 아주 기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할 입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장 비정규직이나 영세 자영업자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라고 질문을 던지고 고민을 해야 할 시점에, 좀 소모적인 논쟁이 일어났다는 생각입니다.


주대환 선생님이 자신의 기획으로 정당을 만든 후 좌파들에게 "비판적 지지"를 요구하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입니다. 설마하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추가적인 코멘트.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주대환은 진보신당이 녹색당의 길을 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의 전략적 판단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가 그리는 큰 그림은 적어도 누군가에게 폭력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레디앙의 주대환 인터뷰와 홍기표의 주대환 옹호글은, 꽤 흥미로웠다. 그리고 홍기표의 주장은 수긍할 수 있는 논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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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당원게시판 쟁점과 토론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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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진보정당 건설을 위해 노력했으며 민주노동당의 이론가 중 한 명이기도 했던 주대환 전 정책위의장이 <시대정신>에 기고한 "민주노동당의 분당 사태와 좌파의 진로"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조선일보의 류근일 주필이 그의 커밍아웃(?)을 칭찬하는 칼럼을 썼고,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여러 사람들이 그 글에 대해 반대의견을 쓰더니 급기야 최병천이 레디앙 지면을 통해 주대환을 옹호하고 나섰다. 이 논쟁은 논점을 제기한 이들의 선의를 인정한다면 좌파정당의 진로 및 전략에 관한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켜야 할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지겹게 반복되어온 얘기들이 재탕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은 근본적으로는 논점을 제기한 주대환에게 있다고 본다. 그의 논변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외면하고 ‘생산적인’ 논점만 따로 떼어내어 토론하자는 최병천의 시도는 지지받기 어렵다. 따라서 나는 이 기회에 주대환이 그리고 있는 ‘전략’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명백하게 밝히고자 한다. 그의 오류가 무엇인지가 드러나면 이른바 ‘생산적인’ 논점들을 따로 떼어 내어 토론할 기회도 생길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은 “주대환 논쟁 다듬어 보기”다.


이번 글에서, 그리고 과거 딴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론할 수 있는 이론가 주대환의 현실인식은 다음과 같다.


1) 한국인들은 이념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매우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2) 그러므로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 좌파정당의 모델은 이념적 결사체로서 출범한 독일 사민당 모델은 아니다. 노동조합을 통해 탄생한 영국 노동당의 모델이다.

3) 따라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를 받아 결성된 민주노동당은 한국 좌파들이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모델이다. 다른 가능성은 없다.

4) 다른 가능성은 없기 때문에, ‘사민주의’ 정당을 원하고자 한다면 민주노동당 내에서 NL 운동권들과 투쟁을 해서 승리했어야 했다.

5) 명백하게 진실인 4)의 충고를 외면하고 민주노동당은 분당되었기 때문에, 이제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사민주의 정당의 가능성은 없다.

6) 그러므로 다음으로 가능한 것은 미국 민주당의 모델이다. 한국의 좌파들은 미국 민주당과 같은 무지개 스펙트럼의 정당을 기획해야 하고, 그 정당의 한 분파로 참여해야 한다.


그가 그리고 있는 전략은 이처럼 모종의 연역추론에 기반한다. 나는 위에 서술된 명제 하나 하나가 그럭저럭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저것들이 2008년 대한민국의 어느 영역에서나 통용되는 보편적인 명제인 것은 아니다. 이것은 저것들뿐만이 아니라, 사회의 흐름을 서술하는 모든 명제들에게 해당하는 ‘유일하게 보편적인 진실’이다. 그런데 주대환의 모든 추론과 정치적 판단은 위에 서술된 자신의 명제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신념에 기초해 있다. 그런 신념에 기초해서야 주대환이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현실과 유리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보통의 사람들은 ‘목표’나 ‘지향’을 설정하면 거기에 맞춰서 하위의 명제들을 수정한다. 가령 전방 200미터에 중국집이 있고 나는 똑바로 직진해서 그곳에 이르겠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치자. 도중에 계산이 잘못되어 내가 오른쪽으로 2도 정도 삐끗하더라도 내가 중국집에 이르지 못할 일은 없다. 왼쪽으로 2도 수정해서 나아가면 되는 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컴퓨터처럼 치밀하고 냉철한 주대환은 1) 중국집에 간다. 2) 그것은 전방에 있다. 3) 그러므로 똑바로 나아간다. 라는 판단을 내린다면, 모종의 사건이 생겨 자신이 왼쪽으로 2도 정도 삐끗하더라도 결코 3)의 명제를 수정할 생각을 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간다. 그리하여 200미터를 나아갔을 때는 중국집이 아니라 문방구점에 이르러 밥을 굶고 만다.


이런 식으로 주대환이 밥을 굶은 사건이 작년부터 시작해서 두 번쯤 있었다. 그중 하나는 그가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권영길을 지지한 것이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당시 NL 운동권들은 권영길을 밀었고 NL에 반대한 이들은 노회찬이나 심상정을 밀었다. 결선투표제가 있었기 때문에 2위 후보인 심상정이 권영길과 결선에서 맞붙었고 한번 해볼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때 주대환은 당시 다수파였던 NL의 전횡을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 어떤 PD 정파의 사람들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주사파’를 비판했던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심상정이 아니라 권영길을 지지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본인의 설명에 의하면 “민주노총이 선택한 후보였기 때문”이란다. “노조에 기반한 정당이어야 한다.”는 자신의 하위명제에 충실하느라 좌파정당 하나를 말아먹을 판단을 내린 셈이다. 대선후보가 된 권영길은 주대환이 좋아하는 사민주의 노선과 가장 거리가 먼 선거운동, 민생공약은 내팽개치고 코리아 연방공화국의 깃발을 펄럭이는 코미디같은 선거운동을 펼쳤다. 이런 꼬라지를 봤으면 자신의 판단의 오류를 자인하거나 반성하거나 적어도 회의는 해야 할 터인데 이후 그가 공적인 글에서 저 지랄맞은 사건에 대한 소회 한마디 쓰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위명제에 충실했던 자신이 여전히 옳다고 믿고 있는 걸까?
  

다른 한번은 모두 알다시피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정국에서 그가 보여준 태도였다. 알다시피 당시 일심회의 범죄자를 옹호하는 NL들에게 질린 사람들은 혁신파 vs 분당파로 나뉘어 팽팽히 맞섰다. 그렇지만 분당파가 이탈하기 시작한 이상 혁신파가 다수가 되어 NL을 압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가능했던 것은 단 하나, 숙주를 죽이길 원하지 않는 NL 정파들의 자정작용이 일어나 혁신안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우직한 NL들의 다행스러운 고집으로 불발되었고 모두 알다시피 진보신당 연대회의가 창설되었다. 주대환은 이 국면 내내 1) 민주노동당이 망하면 사민주의 정당의 가능성은 끝난다. 2) 우리는 죽어도 이 링안에서 싸우다 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 이상 저 정당의 테두리 내에서 NL을 이길 가망이 없어진 상황에서도 말이다. 물론 이 역시 위에 정리한 주대환 컴퓨터의 논리회로에 정확히 부합하는 주장이었다. 2월 3일 임시 당대회의 파국 이후 이제 당내에 같이 싸워줄 사람이 없음이 명백해지자 그는 NL 지도부들을 비난하며 자신을 제명하라고 외쳤다. 어제까지 분당에 반대했던 처지로 제발로 걸어나가기는 뻘쭘했던 것일까? 그러다가 NL이 코방귀도 안 뀌자 그는 슬그머니 민주노동당에서 나와, 진보신당에 입당하지도 않은 채 무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한다. 단 한마디, “미안하다. 잘못 생각했다.”라고 하면 끝날 일을 가지고 그는 이렇게 어렵고 힘든 길을 걸어간다. 안쓰럽다. 그냥 2도 왼쪽으로 수정해서 중국집, 아니 진보신당에 와서 밥을 드시면 된다니까요. 왜 문방구에서 먹지도 못하는 지우개를 들고 우두커니 서 계세요.


안쓰럽기는 하지만 그 혼자 밥을 굶는다면 문제가 심각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가 저토록 논리정연한 글로 여러 사람들을 굶기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거다. 기륭전자 앞에서 밥을 굶는다면 칭찬해줄 일이겠으나, 밥을 먹겠다고 우르르 몰려가서 밥을 굶는 것은 매우 볼썽사납다. 주대환은 2007년 대선 경선에서 민주노동당 내의 사민주의자 다수가 권영길을 지지하도록 하는데 성공했고,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국면에서 “NL도 PD도 한심한 건 똑같아. 진보신당? 흥! 웃기고 자빠졌네-”라는 반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냉소주의자들에게 친절한 떡밥을 던졌다. 그는 자신의 원칙에 지나치게 충실하면서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었고, 본인이 생각하는 목표 및 지향에서도 자꾸 멀어져만 갔다. 도대체 왜 이래야만 하는 것일까?


이제 진보신당의 현실로 돌아와, “선생님. 계속 고집피우신다면 내일도 밥을 굶으실 것 같아요. 왜냐하면...”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근거들을 몇 가지 들고자 한다.


첫째, 나는 민주노동당 분당에 PD 운동권의 책임도 있다고 하는 주대환의 주장을 긍정한다. 가령 PD들이 주장하고 관철시킨 ‘당직 공직 겸직 금지’ 제도나 ‘지구당 폐지 반대’ 당론에 대한 그의 비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특정한 시점, 그러니까 2008년 2월의 시점에서 생각한다면, 진보신당 창당 이외의 답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주대환의 말은 옳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이제 한국에서 사민당의 가능성은 끝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아무런 가능성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소라도 가능성이 있는 쪽으로 이행했어야 했다. ‘좌파정치’ 자체를 포기할 게 아니었다면 말이다.


둘째, 나는 진보신당이 대중적 사민주의 정당이 아니라 PD 운동권의 당이었기 때문에 총선에서 실패했다는 주대환의 평가에 동의할 수 없다. 주대환은 자신의 노선에 따라 당을 만들면 지지자가 금방 생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치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대중적 사민주의’ 강령을 선포한다 하더라도 (사실 진보신당은 당강령도 없이 몇 개의 민생정책만으로 총선에 임했다. 주대환이 생각하는 대중적 사민주의 정당의 총선홍보와 뭐가 그리 달랐을지 의문이다.) 사람들이 곧바로 신뢰를 주리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은 부당하다. 진보신당은 만든지 너무 얼마되지 않아서 신뢰를 줄 수 없었고, 노회찬 심상정 등은 의정활동을 하면서 신뢰를 쌓았기 때문에 그나마 선전할 수 있었다. 진보신당은 총선에서 고전했지만, 그 고전은 분당하는 순간 예견된 것이었다. 만일 분당이 필연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면, 이 고난은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진보신당은 고난을 당한 이후에야 대중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를 주게 되었고, 그 결과 총선 이후 민주노동당원 출신이 아닌 입당자가 증가했다. 진보신당은 이런 식으로 ‘대중’과 만나게 되었던 것인데, 주대환은 이런 현실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비평을 하고 있다.


셋째, 나는 그가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PD 운동권’이라는 말이 어느 정도로 정확한 용어인지 의심스럽다. 물론 나도 편의상 ‘PD 운동권’이란 말을 사용하기는 한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명백한 정치적 실체를 추종하는 NL 운동권과는 달리, 소위 PD들은 소련 붕괴 이후에 다양한 이론적 모색을 겪게 되었고 그 결과 자기들끼리도 높은 수준의 이념적 동질성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어린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주대환은 이런 상식을 뒤집고 과거 민주노동당의 PD 운동권들을 단일한 실체처럼 호명하고 마치 그들이 모두 “사회주의로의 민주적 도정”이란 원칙에 반대하는 이들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나로서는 믿기 어렵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이제 진보신당에는 민주노동당을 경유하지 않은 당원들이 즐비하다. 누군가의 통계로는 6 대 4 정도로 오히려 비-민주노동당 출신이 많다고 한다. 이질적인 문화의 이 두 집단이 어떤 식으로 의사소통할 것인가, 진보신당의 지도부는 이들을 ‘운동권 정파의 조직원’ 대하듯이 하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으로 대우할 수 있을 것인가, 등의 문제가 내가 지금 생각하는 진보신당의 구성원과 관련된 문제다. “PD 운동권 문화 축출”이라는 그의 구호(?)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진보신당은 지금 주대환의 현실인식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에 봉착해 있다. 비록 그것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주대환의 비평이 진보신당에 무용한 까닭도 그것이다.


넷째, NLPDR을 비판하는 주대환의 논법은 NLPDR과 마찬가지로 ‘단계론적 사유’에 기초해 있다. 즉 우리 사회의 단계는 이 정도이므로, 우리에게 있는 문제나 과제는 이것이고, 이전 단계의 문제나 이후 단계의 문제를 고민하거나 해결할 수는 없다는 식이다. “먼저 수구세력을 척결하고 그 다음에 좌우대립구도를 만들자.”고 좌파들을 압박한 ‘비판적 지지론’ 역시 단계론적 사유의 전형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좌파”를 평가절하할 때 주대환은 강고한 ‘단계론적 사유’를 보여준다. 반면 나는 하나의 사회, 특히 한국처럼 압축성장한 사회에선 서구 사회의 다양한 시대에서 발생했던 문제들이 중첩되어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이런 문제들 모두를 대면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대환식의 ‘단계론적 사유’는 극복해야할 ‘과거 운동권의 악습’ 중 하나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주대환의 비평이 올바른 것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일단 인정하고 그 다음을 말해보자. 진보신당은 어떤 정당을 지향해야 할까? 1) 양당제의 한축이 되기를 욕망할 수 있다. 2) 녹색당과 같이 문제제기를 하는 소수정당이 되기를 희망할 수 있다. 3) 중앙정치에서 성공하지 못할 경우 일본 공산당과 같이 중앙정치에서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지방자치 레벨에서 진보적인 실천을 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논의가 가능할 것인데, 주대환은 이에 덧붙여 4) 미국 민주당 모델 정당의 한 분파로서의 좌파 정치세력화를 주장한다. 


먼저 이 문제가 몇 명의 전략가들이 방향을 제시하고 이론적인 논쟁을 해서 결론을 내야 하는 성격의 문제인지가 의문이다. 처음부터 녹색당이나 일본 공산당을 욕망하는 사람이 있을까? 현실적인 조건들에 부딪히고 좌절하면 차선, 차선을 택하다가 그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을 뿐이다. 1)은 아예 가능성이 없으니 애초에 2)나 3)을 추구하는 맞춤형 전략을 짜자는 주장도 가능하기는 한데 내가 보기엔 좀 에러다. 왜냐하면 현재의 상황은 양당제의 한축인 민주당이 전적으로 신뢰를 잃고 이탈한 이명박 지지층도 ‘줏어먹기’ 하지 못하는 ‘난세’이기 때문이다. 조만간 양당제의 한축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세력간의 이합집산과 투쟁이 있을 텐데, 이 정국에 무언가를 노려보지 않는다는건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말과 같다.


또한 그러한 논의가 가능하다 하더라도, 진보신당이 당원 중심의 정당인 이상 당원들의 논의의 차원에서 결론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가령 나는 4) 미국 민주당 모델 정당의 한 분파로서의 좌파 정치세력화라는 주장이 때려죽어야 할 주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정치적 선택이 이루어지려면 전체 당원들의 의결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덧붙여 나는 정당 레벨에서 한나라당 이외의 보수정당들과 사안별 연대를 하거나 연정 등을 꿈꾸는 것도 유효한 전략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최병천이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런 ‘전략’을 꿈꾸려고 해도 일단은 진보신당이 모종의 지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적어도 의석이 있는 정당이라야 상대편에서 연대니 연정이니를 논의할 건덕지가 생길 것이다. 의석이라는 점에서 보면 진보신당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당인데, 탄생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시기에 나중에 커서 외교관이 되니 판사가 되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까. 진보신당이 독자생존할 수 있는 세력이 되야 연대니 연정이니도 가능할 것이다.


한편 주대환을 향한 비판 중에는 필요이상으로 과잉된 것도 있는 것 같다. 변절의 테크트리를 타고 있다는 비판도 그렇고, “위대한 대한민국”이라는 수사에 대한 반감도 그렇다. ‘위대한’이란 수사가 찜찜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주대환이 말한 것은 1) 대한민국이 NLPDR의 단계를 넘어서 있다는 것, 2) 공화주의를 인정하는 차원에서 좌파질을 하자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정통성이라는 단어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나는 주대환이 대한민국의 나쁜 면도 모두 긍정하자는 의미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그는 정통성이라는 단어를 우파들이 쓰듯이 정태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대한민국사가 진전되면서 쌓여온 것이라는 식으로 동태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적절한 언급방식인 것 같다. 그의 역사관에 동의안 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의 언급 자체가 부적절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모든 것을 요약해서 그를 ‘사민주의 우파’라고 비판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이에 대해선 Lollapalooza 님의 “주대환의 사민주의? 1900년산 영국제 시계를 버려라”라는 탁월한 텍스트가 있으니 내가 더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주대환과 마찬가지로 스스로를 ‘사민주의 우파’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입장에 대한 것이다. 나는 이 시대엔 사민주의 우파라도 진보신당에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 우파 정당들도 복지정책을 확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물론 좌파정당의 성장이 없었다면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진보신당이 직접 ‘사민주의 우파’의 정책을 입안하고 실현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진보신당이 성장하지 않는다면 기타 보수정당들이 ‘사민주의 우파’의 정책을 추구하는 일이 일어날 리가 없다. 나는 PD 운동권들의 ‘한계’를 질타하는 주대환이 진보신당에 와서 자신이 싫어하는 PD 운동권들도 제어하고 비-민주노동당원 출신의 새로운 당원들과도 소통하면서 자신의 정치적 지향을 펼쳐나가기를 바란다. 이것은 2004년 정책위의장 선거에서 그를 위해 운동했던, 그것도 단지 ‘반 NL 후보’로서 지지한게 아니라 (비록 종종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의 논리적이고 유려한 글을 좋아했던 한 명의 지지자, 아니 왕년의 팬이 그에 대해 가지는 바람이다.  




P.S Lollapalooza 님의 두 번째 글, “조선일보에 놀아나는 다원주의는 없다”에 대해서도 할말이 좀 있다. 물론 나는 주대환-최병천의 언론관이 아니라 Lollapalooza 님의 언론관에 동의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안티조선 운동의 현황에 대해 비판적 점검없이 그 논변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지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낀다는 것이다. 즉 나는 그와는 달리 ‘안티조선’이라는 구호가 지니는 타당성이 즉각적으로 납득될 정도로 충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 문제는 이 글의 논점에서 다소 벗어나는 것이므로 가까운 시일 안에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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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동면상태지만 이건 원래 쓰는 거라거...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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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최장집은 최근의 촛불시위에 대해 ‘정당정치의 부재’가 만들어낸 사건이라 진단했다. 결국 정당정치 강화가 해답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진단을 “이제 그만 촛불을 꺼야 할 때”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였고, 분개했다. 왜 현 시점에서 ‘촛불시위 반대’로 오인받을 만한 주장을 개진하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맥락’이 아니라는 것인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최장집의 주장에 분명 ‘맥락’이 있다고 본다. 가령 오마이뉴스에서 시위군중의 모습을 비추는 대형 전광판을 동원할 때, 거리에 저 유명한 ‘전대협’의 깃발이 등장할 때, 나는 87년의 스펙터클을 재현하려는 어떤 욕망을 본다. 이 욕망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최장집의 말대로 87년은 정치제도의 변혁이라는 관점에서는 성공한 사례라고 보기 어려운데 말이다. 이번에도 ‘운동’과 따로 노는 정치를 만들 것인가?


87년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대통령 직선제’라고 믿었다면, ‘again 1987’의 감상에 젖은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국민소환제’라고 믿는 것 같다. 87년에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대통령 직선제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했다면 세상은 더 나아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87년과 달리 지금의 촛불시위는 한두 가지 제도의 변혁을 성취하기도 벅찬 처지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직접민주주의가 이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간접민주주의가 실시된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담은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무조건 정당한 흐름이다.” 그리 현명한 생각이라 보기 어렵다. 굳이 ‘민중의 자기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로부터 따진다면, 대의제뿐만이 아니라 다수결조차 문제가 된다. ‘만장일치적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자율성과 국가의 권위를 양립시키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온전히 실현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을 조금이라도 실현하려는 정책이 올바른 것이 될까. 오히려 오늘날의 많은 정치학자들은 만장일치를 유도하는 의사결정에 파시즘의 우려가 있다고 볼 것이다. 가령 정당정치는, 이견과 갈등을 드러내려는 장치로서 만장일치제에 모순된다. 그러므로 정당을 해산하는 것이 더 민주주의적인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이며, 천상의 제도가 아닌 세속적인 이해관계의 타협의 산물이다. 설령 어떤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지닌 정책이 도입된다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본질적인’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나는 최장집이 우려한 낭만주의가 그러한 착각이라 생각한다. 결국에는 국민소환제 역시 이 제도가 어떤 효용을 지닐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할 뿐이다.


다시 문제는 정치다. 촛불시위에 거는 희망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것은, 떨어지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제 것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타 정당들의 한심한 역량이다. 시위를 지도하려다가 욕먹은 민주노동당과 얌전히 시위를 따라다니면서 ‘아고라의 여당’이라 불리게 된 진보신당의 길을 넘어, 시민들의 욕망을 정치적 지향으로 전환하는 설득에 성공하는 그런 정당과 그런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게 최장집이 은퇴 강연에서 말한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역할이 아닐까. 지금 정당이 촛불시위에 결합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고, 거리의 대중과 호흡하면서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가진 이가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정치에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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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재 상황 브리핑


최초의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을 계기로 터진, MB식 사회정책과 (아마도, 특히) 교육정책에 대한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학부모와 청소년들의 참여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 불씨를 지피는 데엔 MBC PD 수첩의 저널리즘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조중동이 이에 대해 ‘잘못된 방송의 선동’, ‘비과학적인 괴담’, ‘배후세력론’으로 대응하면서 점차 ‘사람들이 뿔났다’. 다이나믹하고 감정적인 한국 사람들은 머슴을 자처하던 대통령의 흰소리를 참지 못했다. 갑자기 사람들의 정서는 “너는 대체 뭔 용가리 통뼈길래 우리 말을 이렇게 안 쳐듣는 건가효?”로 바뀌기 시작했다. 즉, ‘국민 여론을 수렴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 쪽으로 가닥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할 정치세력은 거의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 ‘민주주의’론은 촛불시위의 대세가 되었다. 박근혜와 이회창마저도 재협상론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성난 시민들의 ‘조중동 광고 기업 불매운동’은 조중동의 논조를 길들여 드디어 조중동조차 이명박 정부의 협상은 졸속적이었고, 이유야 어찌됐든 정부가 여론과 소통하는데 실패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청와대가 제발 독자적으로 사고치지 말고 자신들의 ‘보수적(!)’ 태도에 귀기울이길 원한다. 거리에서 십만 명이 자신들을 욕하는 꼴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청와대 사람들도 사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항복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2) 시위의 성격


앞서 얘기했듯이 이 시위는 참여자들이 느끼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는데,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다시피 국제적으로는 ‘반-세계화 시위’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호를 반-세계화의 문맥에서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무지(?)’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 시위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명박이 독재정권이라서가 아니라, 1)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국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2) 그 결과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달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외칠 수 있도록 국가의 권한을 시장에 양도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사람들이 국가와 시장을 하나의 대상을 포섭하는 두 개의 다른 권력으로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국가가 삼성에 권력을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보다는, 국가의 바깥에 존재하는 외국기업에게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이 월등한 것이다. FTA에 대해서도 그것이 우리 국가를 허문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말타고 벌판 달리는 참여정부의 공익광고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의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듯 싶다. 그것이 이 시위의 성격을 ‘친 참여정부’적인 것으로 만든다. 노빠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를 한번이라도 지지했거나 잠깐이라도 호감을 가졌던 이들이 모두 그러하다. 


여기서 참여정부의 성격을 간략하게 규명하면, 시위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민주주의’나 ‘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참여정부는 간단하게 말하면 ‘관료들의 나라’였다. 정치경제적으로는 관료들이 대기업 편의적인 경제정책과 그 편의적 정책의 한 방편으로서의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체제였다. 참여정부가 2002년 이회창 후보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임종인 전 의원의 지적이나, 참여정부가 써버릴 수 있는 정책을 다 써버려서 (이명박 정부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지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양극화의 심화는 참여정부의 정책이 실패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의도한 바대로 성공을 거두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관료조직의 외곽에 있는 ‘위원회’를 통해 문화적인 면에서는 민족-국가담론을 유포하는데 힘썼다. 민족주의자들의 용어를 활용하면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다. 조중동이 비아냥거린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거기서 나왔다. 과거사 진상규명, 친일파 청산, 문화재 복원 등을 실시했던 이 위원회들을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는 이념적인 이유로, 그리고 이명박은 반실용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부인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참여정부의 개혁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 위원회에 있고, 이것을 통해 참여정부의 경제시책마저 국가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희망의 군국주의자 노무현’이라 일컬어진 참여정부의 군비 확장 정책을 보자면, 참여정부의 담당자들조차도 지지자의 판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즉, 그들은 실제적으로는 국가를 약화시키고 있었으면서도, 스스로는 국가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수입 정책은 이처럼 다소 혼란스러운 ‘국가’나 ‘민주주의’의 개념으로 봐도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국가’의 이념을 훼손시키는 것이 명명백백한 정책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참여정부의 ‘우파적 관료주의’를 더 오른쪽에서 혁명적으로 돌파하려다 삽질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시위대와 그 지지자들은 그들이 이명박이 노무현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정당하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문제를 갈파하는 이들이 아무리 분석한다 해도, 이 경험은 넘어설 수 없고,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도 막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이 시위대의 구호가 자기 진화하여 그 향수에 모순되는 행위에 나서도록 시위대와 ‘함께 하는’ 일이다.


반면 시위의 성격을 그 자체로 뜯어 고치려는 행위는 아예 가능하지 않고, 따라서 적절한 반응도 아니다. 차라리 그보다 일관성있는 비평은 아예 시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위가 해야 할 일들이 좀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적절한 반응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파트에서 논의한다. 


(3) 이명박이 할 수 있는 일


카드가 별로 없다. 크게 보아 1) 계속 이대로 간다! 와 2) 한나라당(박근혜와 홍준표?)에 항복한다. 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재협상 수준에 근접하는 자율규제라는 카드를 내밀었지만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것은 비관세 무역장벽이며, WTO 위반에 해당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재협상보다도 미국 행정부를 더 당황하게 만들 일이다.


이명박은 재협상을 실시하여 시위대를 만족 혹은 분열시키고 한나라당에 대한 청와대의 우위를 지속시킬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게 임기 초반 레임덕을 막을 유일한 카드다. 왜냐하면 계속 이대로 밀어붙여봤자 길게 보아 2년 후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는 한나라당에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그게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결단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는 결코 한미 FTA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멍청하다. 만일 그가 정말로 스스로 말한대로, “한미 FTA 협정은 한국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협상을 파기할 생각이라면 말이다. 어느 정도 멍청하냐하면, 한미 FTA가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고 믿는 노무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두 멍청한 정치인들은 의도되지 않은 합작 플레이로 그 둘보다 멍청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위인인 이명박을 외통수로 몰아넣고 있다. 이명박이 처한 곤경을 ‘노무현의 덫’, 혹은 ‘거짓말쟁이의 늪’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정권을 ‘잃어버린 10년’ 동안 되뇌어 왔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1) 참여정부는 한미 동맹 관계를 훼손해 왔거등요~ 
2) 어머, 근데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체결했어!
3)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값으로 한미 FTA만은 비준해야돼!!


뭐 이런 논법이다. (덧붙여, 지금 한국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성장의 방법으로 한미 FTA 이외의 대안을 못 찾고 있다는 점이 있고 이게 더 큰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이건 다른 파트에서 설명한다.) 그래서 부시 있을 때 협정처리하려고 다 퍼주며 매달렸는데, 촛불시위대에 부딪혀 어떻게 하지도 못하게 생겼고, 조금 있으면 또다른 멍청이 오바마가 나타나 친히 밥그릇을 차줄 운명이다. 이명박, 두 멍청이들의 뚝심에 아주 바보되게 생겼다.  


자 그렇다면 이것은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립인가? 박근혜라는 건 영남 보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호에 불과하고, 크게 보아 이 싸움은 한나라당 내부에서 ‘제가 한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는 멍청이들’ vs ‘제가 한 거짓말이 거짓말이란 사실은 알고 있는 악랄한 놈들’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멍청이들보다는 악랄한 놈들이 이기는 쪽이 대한민국에는 좋다. 이명박은 멍청이들의 수장이고, 계속 전진하다가 악랄한 놈들에게 패배하거나, 바로 지금 항복하는 길밖에 없다.


(4)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이런 틀에서 볼 때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할 일도 생기게 된다. 죽쒀서 개주는 꼴이지만 일단 한나라당과 조중동, 혹은 구체적인 인물로서 박근혜가 승리하는 것만으로도 시위대는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국면에서 좀더 완벽한 승리는 앞서 말했던 ‘악랄한 놈들’을 확실히 승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의 참여정부로의 회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재협상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지만, 대운하와 민영화를 저지하고, 다시 관료들의 느긋한 흐름에 나라를 맡길 수 있게 된다면 이 정부는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가 된다. 박근혜와 홍준표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면 이 정도까지는 갈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정당의 지지기반이라는 것이 있어서 대북정책은 되돌리기 힘들 것 같기도 한데, 적어도 관료들에게 맡긴다 치면 지금의 꼴통 외교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압박이 시위대가 할 일이다.


나는 2008년 6월에 이명박 정부에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낙관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명박이 입조심 좀 한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서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명박이 갑자기 미쳐서 한번 더 폭력진압을 하고 말 그대로 6. 10 항쟁이 일어나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폭력진압이 오히려 사람들을 흥분시킨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쪽 문만 굳게 걸어 잠그고 "너희들은 떠들어라. 하지만 국가는 내가 운용한다."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인터넷 여론 담당자'를 두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그의 여론에 대한 태도를 고려해 보건대, 이 담당자는 '수렴'보다 '통제'를 위해 활동할 것이다. 정부는 네이버나 다음에 대해 어떤 식의 통제가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이미 금칙어 설정 등의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올블로그에 대한 누군가의 해킹 시도도 석연치 않다. 만일 이명박의 속내가 그러하다면, 정말로 이제 변수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된다. 유가폭등으로 인해 파업을 선언한 화물연대는 또한 미국산 쇠고기 거부 투쟁 역시 선언한 상태인데, 촛불시위와 ‘불법파업’을 분리시켜 대응하려는 정부에 대해 시위대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인지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의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화물연대 파업을 시위대가 지지하고 강경진압에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시작한다면 이명박은 정말로 궁지에 몰린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행정부는 힘이 세다. 지방선거가 참패한 이후라면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궁극적으로 패배하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명박 시대에 우리는 안타깝게도 ‘거리의 정치’를 지속적으로 보게 될 것이고, 거기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박근혜가 승리한 이후라도 한나라당 정부의 남은 임기를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의 수준은 되도록 압박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 된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다고 나라가 확연히 좋아지는 건 아닌데도 그렇다.


천운이 도와 시위대가 이명박을 수월하게 패배시킨 경우에도 ‘민주주의’라는 시위의 구호에서 도출될 수 있는 정치적인 행위가 남아 있다. 이명박의 독선은 선거가 없는 기간에 대통령의 폭주를 막기 힘든 ‘87년 체제’의 허점을 드러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수세력들도 불만이 있다. 조중동의 일각에선 ‘(노무현의 원포인트) 개헌안을 받을 걸 그랬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통령이 단임제라서 여당이나 ‘여당 나팔수’말도 안 쳐듣는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하야하고 박근혜 스스로 대통령이 되는 사태가 오지 않는 이상, 박근혜와 홍준표의 한나라당은 내각제 개헌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정치 행위는 시위대가 원했던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배치되는 행위다. 행정부의 임기와 입법부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노무현식 개헌안은 선거가 없는 기간 동안 국민들이 무력한 ‘위임 민주주의’를 오히려 조장한다. 내각제 역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제보다도 시위를 통해 압박하기 힘든 정치체제다. 이런 제안에 반대하여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의제 등을 고민하고 의미있는 의제로 주창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심지어 성취해낸다면, 시위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니 200% 이상 달성한 것이다.  


(5) 참여정부도 싫어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


참여정부에 향수를 느끼는 시민들의 시위대가 해야 할 일도 이렇게나 많기 때문에, 나는 이들에게 이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이런 저런 비일상적인 변수가 오묘하게 개입하여 정말로 우리의 시위가 더 이상을 이룩해버릴 가능성도 없지는 없겠으나, 그런 가능성에 기대고 상황을 분석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참여정부의 그것과 구별되는 사회경제정책으로 민주화를 심층화시키려는 이들은 시위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보정당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말하자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다른 종류의 실현성 있는 사회경제정책을 총괄적으로 수립해 나가고, 또한 홍보해야 한다. ‘거리의 정치’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러한 홍보의 장도 더 크게 열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위대 자체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이는 다른 문제다.


진보정당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관료주의의 문제다.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관료다. 지금껏 한 가지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해온 우리의 관료들은 우리의 지향에 도움을 줄 수 없는데, 그렇다고 그들을 경험적인 면에서 이기기란 매우 어렵다. 구호를 통해 권력만 잡는다고 그들을 통제하여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료들을 닦달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은 좌파 정치인의 무능으로 답습될 수도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정책보좌관 출신들이 대거 합류한 진보신당의 경우 이 문제에 신경쓰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관료들의 경험을 습득할 수 없는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심화된 정책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두 번째는 성장 동력의 문제다. 성장-분배 논쟁이란 건 이름부터가 성장주의자들의 승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그 실현과 성과가 매우 의심스러운) 한미 FTA 이외에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문국현의 ‘중소기업론’이었겠지만, 그는 이 대안이 고통스러운 개혁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심화된 정책연구로 제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CEO 시절의 업적과 불가능한 구호(몇백만 일자리, 8% 성장)로 그 이미지를 압축시키면서 자신을 진정으로 이명박의 대항마인 코미디언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진보신당도 가령 심상정의 3박자 경제론 등을 보완 발전시켜 분배 문제뿐 아니라 우파 정당과 구별되는 성장 동력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좌파정당 있는 민주주의 정당체제’를 한국에서 보기란 어려울 것이고, 진보신당은 일본 공산당식으로 기초의원의 구역으로 내려가 지역 사회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에 힘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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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지데스네...

저는 그 만화 안 봤는데,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선 <20세기 소년>의 켄지같다고 떠들고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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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지아와 긴 전화통화를 했다. 그는 지인들로부터 들은 촛불시위 현장 분위기에 대해 브리핑 해주었는데, '주동자 없는 시위'에 대한 의견을 서로 나누었다. 이 신문기사는 그가 언급했던 것이다. 결국 시민들이 비폭력시위를 선택한 것은 올바른 판단이었던 것 같다. '지도부 없는 시위'라는 건 매우 위험한 일이지만, 지금 상황에서 시민들이 지도부를 받아들일 리가 없다. 10대가 빠져나간 거리에 386과 20대가 나와서, 386은 그들의 방식대로, 또한 20대는 월드컵 거리 응원을 하던 그 방식대로 거리를 점거하고 있다. 이것은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수도 있을 것이고, 어느 순간 유야무야 끝나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현시점에서 그것을 예측할 수 있는 방법은 전혀 없다. 진보신당은 '서민지킴이 변호인단'을 운용하고 있고 인터넷 방송을 하고 있는데, 그것만으로도 작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해봐야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이 점에 있어선 진중권이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 올린 글 http://newjinbo.org/board/view.php?id=discussion&no=7092 에 동의한다.






검·경 ‘촛불’ 강경진압 혼선

검·경 수뇌부가 거리로 나온 ‘광우병 쇠고기’ 촛불 집회에 대해 강경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지만 구체적인 처리 방안에 대해선 머리를 싸매고 있다.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이지만 ‘국민 저항권’이란 여론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특히 검·경 실무 수사진은 거리 시위에 ‘배후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하지만 수뇌부는 배후설을 제기하며 정치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인상이 짙다.

▲ 지난 26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美쇠고기 수입반대 촛불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정부에 美쇠고기 수입재협상을 촉구하며 가두시위를 하려하자 경찰이 막아서며 양측이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경한 법무장관은 26일 “지난 주말부터 정치구호가 난무하는 불법폭력집회로 변질되면서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했다.”며 배후 조종자를 끝까지 근절하라고 검찰에 지시했다. 어청수 경찰청장도 “집회 전문 배후세력이 거리행진을 이끌고 있다. 수백명이라도 체포하겠다.”며 ‘배후설’을 노골화했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의 현장 수사진은 수뇌부와 확연한 인식 차를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대오를 지어 행진하던 지금까지의 집회와는 다르게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등 간단치 않은 양상으로 번져 경찰도, 우리도 당혹스럽다.”면서 “주동자가 있는 게 아니라 우발적인 것이라 고민스럽다.”고 털어놨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도 “국가보안법 위반자나 학생운동 전력자가 개입한 것은 아니다.”면서 “시민들이 쇠파이프 등을 들고 나오지 않는 한 강경진압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수뇌부와 달리 현장 수사진은 여론을 돌보지 않는 사법 처리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셈이다. 실제 주동자를 구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던 경찰은 이날 첫번째 거리 집회 당시 연행자들을 불구속 입건하며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음을 내비쳤다.

지난 주말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도 “나를 잡아가라.”고 항변하며 사법처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행된 시민들은 대부분 20∼30대 평범한 회사원과 자영업자, 주부들이었다. 도로 점거 등 특별한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는데도 연행된 사람들도 있었다.26일 새벽 서울 양천경찰서로 연행된 휴학생 김모(26)씨는 “신촌 거리를 걷다가 경찰들이 한 여성을 강제로 끌고가 이에 항의했는데, 다짜고짜 나를 연행했다.”면서 “집회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는 게 불법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사법처리가 저항을 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국민들의 불만족을 해결하려하지 않고 처벌만이 능사란 식으로 나오는 정부의 판단은 한참 잘못된 것”이라면서 “강경대응이 거리의 촛불을 끌 수 있을진 모르나 국민들 마음속에 타오르는 촛불을 끌 순 없다.”고 진단했다.

유지혜 이재훈 장형우기자 nomad@seoul.co.kr

기사일자 : 2008-05-27    1 면


덧붙임: 프레시안에도 이런 지점과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사가 올라왔다.

"진보정당에는 강기갑ㆍ진중권밖에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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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http://blog.naver.com/nacolulu0707/60051603551



1. 경찰 진압전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