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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제와 중국 문제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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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펌] 최장집 / 촛불집회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7) | 2008/06/18 |
| 이명박과 폭력시위, 그리고 주민소환제 (13) | 2008/06/08 |
| 촛불시위에 있는 것과 이끌어 내야 할 것 (12) | 2008/06/07 |
| [링크] 시국판단 + '축제'와 탈진을 넘어 (16) | 2008/06/03 |
(1) 현재 상황 브리핑
최초의 촛불시위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을 계기로 터진, MB식 사회정책과 (아마도, 특히) 교육정책에 대한 (주로, 여성으로 구성된) 학부모와 청소년들의 참여를 통해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이 불씨를 지피는 데엔 MBC PD 수첩의 저널리즘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정부와 조중동이 이에 대해 ‘잘못된 방송의 선동’, ‘비과학적인 괴담’, ‘배후세력론’으로 대응하면서 점차 ‘사람들이 뿔났다’. 다이나믹하고 감정적인 한국 사람들은 머슴을 자처하던 대통령의 흰소리를 참지 못했다. 갑자기 사람들의 정서는 “너는 대체 뭔 용가리 통뼈길래 우리 말을 이렇게 안 쳐듣는 건가효?”로 바뀌기 시작했다. 즉, ‘국민 여론을 수렴하지 않는 정부에 대한 항의’ 쪽으로 가닥이 잡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할 정치세력은 거의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 ‘민주주의’론은 촛불시위의 대세가 되었다. 박근혜와 이회창마저도 재협상론을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성난 시민들의 ‘조중동 광고 기업 불매운동’은 조중동의 논조를 길들여 드디어 조중동조차 이명박 정부의 협상은 졸속적이었고, 이유야 어찌됐든 정부가 여론과 소통하는데 실패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기에 이르렀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은 청와대가 제발 독자적으로 사고치지 말고 자신들의 ‘보수적(!)’ 태도에 귀기울이길 원한다. 거리에서 십만 명이 자신들을 욕하는 꼴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청와대 사람들도 사표를 던지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아직까지는 한나라당과 조중동에 항복할 의사가 없는 것 같다.
(2) 시위의 성격
앞서 얘기했듯이 이 시위는 참여자들이 느끼기에는 ‘민주주의’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이르렀는데, 여러 사람들이 지적했다시피 국제적으로는 ‘반-세계화 시위’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구호를 반-세계화의 문맥에서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무지(?)’를 하나의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이 시위가 ‘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명박이 독재정권이라서가 아니라, 1)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국가의 권한을 약화시키고, 2) 그 결과 국가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달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외칠 수 있도록 국가의 권한을 시장에 양도하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 사람들이 국가와 시장을 하나의 대상을 포섭하는 두 개의 다른 권력으로 생각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국가가 삼성에 권력을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보다는, 국가의 바깥에 존재하는 외국기업에게 양도할 때 느끼는 위기감이 월등한 것이다. FTA에 대해서도 그것이 우리 국가를 허문다고 생각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이 (말타고 벌판 달리는 참여정부의 공익광고의 이미지에서 드러나듯이) 우리의 국가를 더 강하게 만든다고 생각한 듯 싶다. 그것이 이 시위의 성격을 ‘친 참여정부’적인 것으로 만든다. 노빠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를 한번이라도 지지했거나 잠깐이라도 호감을 가졌던 이들이 모두 그러하다.
여기서 참여정부의 성격을 간략하게 규명하면, 시위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민주주의’나 ‘국가’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 것인지를 대략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참여정부는 간단하게 말하면 ‘관료들의 나라’였다. 정치경제적으로는 관료들이 대기업 편의적인 경제정책과 그 편의적 정책의 한 방편으로서의 자유무역을 추구하는 것을 장려하는 체제였다. 참여정부가 2002년 이회창 후보의 경제정책을 그대로 따라했다는 임종인 전 의원의 지적이나, 참여정부가 써버릴 수 있는 정책을 다 써버려서 (이명박 정부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이한구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의 지적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러므로 양극화의 심화는 참여정부의 정책이 실패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이 의도한 바대로 성공을 거두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관료조직의 외곽에 있는 ‘위원회’를 통해 문화적인 면에서는 민족-국가담론을 유포하는데 힘썼다. 민족주의자들의 용어를 활용하면 민족정기를 바로잡으려 한 것이다. 조중동이 비아냥거린 ‘위원회 공화국’이라는 명칭이 거기서 나왔다. 과거사 진상규명, 친일파 청산, 문화재 복원 등을 실시했던 이 위원회들을 한나라당과 뉴라이트는 이념적인 이유로, 그리고 이명박은 반실용주의적이라는 이유로 부인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참여정부의 개혁성이라는 것은 바로 이 위원회에 있고, 이것을 통해 참여정부의 경제시책마저 국가를 강화시키는 것으로 정의된다. ‘희망의 군국주의자 노무현’이라 일컬어진 참여정부의 군비 확장 정책을 보자면, 참여정부의 담당자들조차도 지지자의 판타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즉, 그들은 실제적으로는 국가를 약화시키고 있었으면서도, 스스로는 국가를 강화시키고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수입 정책은 이처럼 다소 혼란스러운 ‘국가’나 ‘민주주의’의 개념으로 봐도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국가’의 이념을 훼손시키는 것이 명명백백한 정책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참여정부의 ‘우파적 관료주의’를 더 오른쪽에서 혁명적으로 돌파하려다 삽질을 거듭하고 있다. 그래서 시위대와 그 지지자들은 그들이 이명박이 노무현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경험’했다고 믿는다. (이 믿음은 정당하다.) 따라서 참여정부의 문제를 갈파하는 이들이 아무리 분석한다 해도, 이 경험은 넘어설 수 없고, 참여정부에 대한 향수도 막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이 시위대의 구호가 자기 진화하여 그 향수에 모순되는 행위에 나서도록 시위대와 ‘함께 하는’ 일이다.
반면 시위의 성격을 그 자체로 뜯어 고치려는 행위는 아예 가능하지 않고, 따라서 적절한 반응도 아니다. 차라리 그보다 일관성있는 비평은 아예 시위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위가 해야 할 일들이 좀 있기 때문에, 이 역시 적절한 반응은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른 파트에서 논의한다.
(3) 이명박이 할 수 있는 일
카드가 별로 없다. 크게 보아 1) 계속 이대로 간다! 와 2) 한나라당(박근혜와 홍준표?)에 항복한다. 는 선택지만 있을 뿐이다. 재협상 수준에 근접하는 자율규제라는 카드를 내밀었지만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그것은 비관세 무역장벽이며, WTO 위반에 해당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재협상보다도 미국 행정부를 더 당황하게 만들 일이다.
이명박은 재협상을 실시하여 시위대를 만족 혹은 분열시키고 한나라당에 대한 청와대의 우위를 지속시킬 수도 있다. 현재로서는 이게 임기 초반 레임덕을 막을 유일한 카드다. 왜냐하면 계속 이대로 밀어붙여봤자 길게 보아 2년 후 지방선거 참패 이후에는 한나라당에 항복하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명박은 그게 도저히 내릴 수 없는 결단이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는 결코 한미 FTA를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멍청하다. 만일 그가 정말로 스스로 말한대로, “한미 FTA 협정은 한국에 유리하다.”고 믿고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협상을 파기할 생각이라면 말이다. 어느 정도 멍청하냐하면, 한미 FTA가 한국 경제의 살 길이라고 믿는 노무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 두 멍청한 정치인들은 의도되지 않은 합작 플레이로 그 둘보다 멍청하다고 단언할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위인인 이명박을 외통수로 몰아넣고 있다. 이명박이 처한 곤경을 ‘노무현의 덫’, 혹은 ‘거짓말쟁이의 늪’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들이 정권을 ‘잃어버린 10년’ 동안 되뇌어 왔던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다는 것이다.
1) 참여정부는 한미 동맹 관계를 훼손해 왔거등요~
2) 어머, 근데 참여정부가 한미 FTA를 체결했어!
3)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값으로 한미 FTA만은 비준해야돼!!
뭐 이런 논법이다. (덧붙여, 지금 한국의 모든 정치세력들이 성장의 방법으로 한미 FTA 이외의 대안을 못 찾고 있다는 점이 있고 이게 더 큰 이유일 수도 있지만, 이건 다른 파트에서 설명한다.) 그래서 부시 있을 때 협정처리하려고 다 퍼주며 매달렸는데, 촛불시위대에 부딪혀 어떻게 하지도 못하게 생겼고, 조금 있으면 또다른 멍청이 오바마가 나타나 친히 밥그릇을 차줄 운명이다. 이명박, 두 멍청이들의 뚝심에 아주 바보되게 생겼다.
자 그렇다면 이것은 이명박과 박근혜의 대립인가? 박근혜라는 건 영남 보수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기호에 불과하고, 크게 보아 이 싸움은 한나라당 내부에서 ‘제가 한 거짓말을 진실로 믿고 있는 멍청이들’ vs ‘제가 한 거짓말이 거짓말이란 사실은 알고 있는 악랄한 놈들’의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에서 멍청이들보다는 악랄한 놈들이 이기는 쪽이 대한민국에는 좋다. 이명박은 멍청이들의 수장이고, 계속 전진하다가 악랄한 놈들에게 패배하거나, 바로 지금 항복하는 길밖에 없다.
(4)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이런 틀에서 볼 때 시위대가 할 수 있는 일, 또는 해야 할 일도 생기게 된다. 죽쒀서 개주는 꼴이지만 일단 한나라당과 조중동, 혹은 구체적인 인물로서 박근혜가 승리하는 것만으로도 시위대는 승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국면에서 좀더 완벽한 승리는 앞서 말했던 ‘악랄한 놈들’을 확실히 승리시키는 것이다.
이것을 ‘사회경제적인 면에서의 참여정부로의 회귀’라고 부를 수 있겠다. 재협상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속단할 수 없지만, 대운하와 민영화를 저지하고, 다시 관료들의 느긋한 흐름에 나라를 맡길 수 있게 된다면 이 정부는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가 된다. 박근혜와 홍준표를 지속적으로 압박하면 이 정도까지는 갈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정당의 지지기반이라는 것이 있어서 대북정책은 되돌리기 힘들 것 같기도 한데, 적어도 관료들에게 맡긴다 치면 지금의 꼴통 외교는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압박이 시위대가 할 일이다.
나는 2008년 6월에 이명박 정부에 우리가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낙관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명박이 입조심 좀 한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이 아니다. 거리에서 시위할 수 있는 권리를 되찾았다고 우리가 승리를 거두고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명박이 갑자기 미쳐서 한번 더 폭력진압을 하고 말 그대로 6. 10 항쟁이 일어나 정권이 붕괴할 가능성도 있기는 있다. 하지만 폭력진압이 오히려 사람들을 흥분시킨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이명박 정부는 청와대 쪽 문만 굳게 걸어 잠그고 "너희들은 떠들어라. 하지만 국가는 내가 운용한다."라는 식으로 반응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은 '인터넷 여론 담당자'를 두겠다고 밝혔지만 지금까지 그의 여론에 대한 태도를 고려해 보건대, 이 담당자는 '수렴'보다 '통제'를 위해 활동할 것이다. 정부는 네이버나 다음에 대해 어떤 식의 통제가 가능할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것이며, (이미 금칙어 설정 등의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올블로그에 대한 누군가의 해킹 시도도 석연치 않다. 만일 이명박의 속내가 그러하다면, 정말로 이제 변수는 화물연대의 파업이 된다. 유가폭등으로 인해 파업을 선언한 화물연대는 또한 미국산 쇠고기 거부 투쟁 역시 선언한 상태인데, 촛불시위와 ‘불법파업’을 분리시켜 대응하려는 정부에 대해 시위대가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인지에 따라 이명박 정부의 레임덕의 시기가 달라질 수 있다. 화물연대 파업을 시위대가 지지하고 강경진압에 반대하는 거리행진을 시작한다면 이명박은 정말로 궁지에 몰린다.
그렇더라도 한국의 행정부는 힘이 세다. 지방선거가 참패한 이후라면 이명박은 박근혜에게 궁극적으로 패배하게 되겠지만, 그전까지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이명박 시대에 우리는 안타깝게도 ‘거리의 정치’를 지속적으로 보게 될 것이고, 거기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박근혜가 승리한 이후라도 한나라당 정부의 남은 임기를 ‘위원회 없는 참여정부’의 수준은 되도록 압박하는 것이 시민의 역할이 된다. 여기까지만 하더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다고 나라가 확연히 좋아지는 건 아닌데도 그렇다.
천운이 도와 시위대가 이명박을 수월하게 패배시킨 경우에도 ‘민주주의’라는 시위의 구호에서 도출될 수 있는 정치적인 행위가 남아 있다. 이명박의 독선은 선거가 없는 기간에 대통령의 폭주를 막기 힘든 ‘87년 체제’의 허점을 드러낸다. 이 점에 대해서는 보수세력들도 불만이 있다. 조중동의 일각에선 ‘(노무현의 원포인트) 개헌안을 받을 걸 그랬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통령이 단임제라서 여당이나 ‘여당 나팔수’말도 안 쳐듣는다는 것이다. 이명박이 하야하고 박근혜 스스로 대통령이 되는 사태가 오지 않는 이상, 박근혜와 홍준표의 한나라당은 내각제 개헌을 시도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정치 행위는 시위대가 원했던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거나, 오히려 배치되는 행위다. 행정부의 임기와 입법부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노무현식 개헌안은 선거가 없는 기간 동안 국민들이 무력한 ‘위임 민주주의’를 오히려 조장한다. 내각제 역시 국민들의 입장에서는 대통령제보다도 시위를 통해 압박하기 힘든 정치체제다. 이런 제안에 반대하여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의제 등을 고민하고 의미있는 의제로 주창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심지어 성취해낸다면, 시위대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아니 200% 이상 달성한 것이다.
(5) 참여정부도 싫어하는 이들이 해야 할 일
참여정부에 향수를 느끼는 시민들의 시위대가 해야 할 일도 이렇게나 많기 때문에, 나는 이들에게 이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보고 있다. (아마도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물론 이런 저런 비일상적인 변수가 오묘하게 개입하여 정말로 우리의 시위가 더 이상을 이룩해버릴 가능성도 없지는 없겠으나, 그런 가능성에 기대고 상황을 분석해야 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부정적이다. 참여정부의 그것과 구별되는 사회경제정책으로 민주화를 심층화시키려는 이들은 시위대를 통해서가 아니라 진보정당을 통해서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 말하자면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다른 종류의 실현성 있는 사회경제정책을 총괄적으로 수립해 나가고, 또한 홍보해야 한다. ‘거리의 정치’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러한 홍보의 장도 더 크게 열릴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시위대 자체의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이는 다른 문제다.
진보정당의 정치인들과 지지자들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관료주의의 문제다. 정책을 실현하는 것은 관료다. 지금껏 한 가지 방향으로 정책을 운용해온 우리의 관료들은 우리의 지향에 도움을 줄 수 없는데, 그렇다고 그들을 경험적인 면에서 이기기란 매우 어렵다. 구호를 통해 권력만 잡는다고 그들을 통제하여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관료들을 닦달한 이명박 정부의 무능은 좌파 정치인의 무능으로 답습될 수도 있다. 과거 민주노동당의 정책보좌관 출신들이 대거 합류한 진보신당의 경우 이 문제에 신경쓰고 있다고 생각되지만, 관료들의 경험을 습득할 수 없는 진보정당의 입장에서 심화된 정책연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두 번째는 성장 동력의 문제다. 성장-분배 논쟁이란 건 이름부터가 성장주의자들의 승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그 실현과 성과가 매우 의심스러운) 한미 FTA 이외에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가장 어필할 수 있었던 것은 문국현의 ‘중소기업론’이었겠지만, 그는 이 대안이 고통스러운 개혁을 수반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심화된 정책연구로 제시하지도 않았다. 다만 CEO 시절의 업적과 불가능한 구호(몇백만 일자리, 8% 성장)로 그 이미지를 압축시키면서 자신을 진정으로 이명박의 대항마인 코미디언으로 전락시켜 버렸다. 진보신당도 가령 심상정의 3박자 경제론 등을 보완 발전시켜 분배 문제뿐 아니라 우파 정당과 구별되는 성장 동력을 제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아마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좌파정당 있는 민주주의 정당체제’를 한국에서 보기란 어려울 것이고, 진보신당은 일본 공산당식으로 기초의원의 구역으로 내려가 지역 사회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데에 힘쓰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 [펌] 최장집 / 촛불집회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7) | 2008/0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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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너무 빨리 변하죠. 가두시위가 시작되고, 20대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이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원고는 잡지가 나간지 2주 후에 인터넷판으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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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 나온 10대들을 상찬하다가 “그런데 20대는…”이라고 비판하는 게 요즘 유행인 모양이다. 386들의 술자리에서 무럭무럭 자란 풍문은 실체없는 허깨비마냥 떠돌더니 급기야 “십대는 촛불시위하는데 대학생들은 원더걸스에 열광해”류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원더걸스에 열광한 대학생들 중에선 촛불시위에 나간 사람이 없었을까? 촛불시위에 나선 십대 중에선 연예인에 열광한 친구들이 없었을까? 이 정도 수준의 보편화(?)가 합당하다면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이런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촛불시위에 나가고 있는데 자신은 술을 마시며 20대나 씹고 있는 어느 386 남성.’ 제발 이렇게 유치하게 놀지 말았으면 좋겠다.
10대들의 목소리는 광우병 정국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밀착한 문제에서 정치성을 느꼈고, 그 모든 것을 지금 현장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그들은 광우병 문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들은 쇠고기 문제에서 폭발한 것이었을까? 이 문제가 ‘약한 고리’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도 장학사와 교사들이 그들을 잡으려고 거리를 헤매고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들은 오히려 교육정책에 대해 당사자인 십대가 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선언을 더 불편하게 받아들였을 거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부모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전략적 목표를 타격했다.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소녀들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기성세대들이 희희낙락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치적이라고 상찬받는 그 청소년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그 부조리에 저항할 권리 역시 철저하게 억압받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나는 그들이 거리로 나올 권리를 지켜주고, 그들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10대와 20대 모두를 타자화시키는 10대 예찬론은 그런 의무를 다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 예찬이 왠지 386세대의 정치적 무기력을 숨기기 위한 자조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설령 이명박이 탄핵되더라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그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그들은 10대에게서 희망을 보아야 할 것이다. 10대가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든 말이다.
‘20대의 보수성’이란 말은 ‘20대의 원자화’라는 표현으로 고쳐져야 한다. 학부제 실시 이후 혼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은 청소년들만큼도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2002년과 2004년의 촛불시위에 거리로 나온 경험이 있다. 이번에 그들이 시큰둥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바람과 참여에 정치권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느꼈고, 그리하여 급속하게 냉소주의로 돌아섰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정말이지 참여정부의 공로가 혁혁했다. 이런 ‘과거’를 상기한다면, 슬프게도 오늘 거리로 나온 10대들이 훗날 그런 20대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물론 나도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그때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오늘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10대를 예찬하고 있지 않을까? 또 한번 20대들을 안주로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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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가 저 유명한 <군주론>을 저술한 까닭은, 자신이 군주들의 통치기술에 대해 아는 것이 많다는 사실을 과시하여, 군주들에게 관료로 등용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 책은 금서가 되었고, 군주들은 마키아벨리 평생토록 그를 잡아가두려고 노력했다. 군주들의 통치기술을 솔직하게 폭로하는 행위는 군주들의 바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저 실용외교라는 것은 가장 고차원적인 수준에서조차도 마키아벨리의 역설을 벗어날 수 없다. 모든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자기 자신의 편익을 추구한다. 그렇지만 “나는 나 자신의 이득만 취할 거야!!”라고 끝없이 외치는 누군가와 친구가 되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외교의 세계는 물론 사적인 친교의 세계보다 냉혹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절차에 대한 예의와 철저한 준비가 더 중요해진다.
조공과 몰이해
이명박 정부의 실용외교라는 것을 보면, 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알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한미 FTA 의회 비준을 위해 무리하게 진행된 ‘쇠고기 조공 협상’에 대해선 조선일보조차 비난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협상단의 숫자나 전문가의 폭, 1주일에 그친 협상 최종 준비, 쇠고기 업무 전문가 부재, 쇠고기 업무 경험 없는 통역이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전문적인 수의 용어를 알아듣지 못하여 미국측 통역의 도움을 빌린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자기 화투장을 보여주며 ‘이게 뭐에요?’라고 물었다는 얘기인데, 정말이지 기도 안 찬다. 우리가 대충 퍼주면 미국이 알아서 챙겨줄 거라는 이 근거 없는 기대심리를 설명하려면 그야말로 ‘조공’이라는 한마디 표현이 적절하다.
한편으로는 오히려 ‘조공’ 관계의 원산지인 중국과의 외교 관계에서는 그들의 ‘대국’ 심리를 고려하지 않은 무성의한 대응이 눈에 띤다. 원래 한국 외교의 전통(?)이 대미 외교를 축으로 하고 다른 나라들은 종속변수로 삼는 것이기는 하다. 이것은 일본이 오랫동안 견지하다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아 최근에는 탈피하려는 외교 노선이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도 그런 식의 외교 노선을, 일본보다도 더 철저하게 추구하려고 한다. 참여정부보다 더 오른쪽으로 가려는 이명박 정부의 집착은 미국 밖에 보지 못하는 ‘시야가 좁은’ 외교 관계를 만들고 있다. 별다른 일도 없었는데 취임 후 특사 파견같은 자질구레한 문제에서도 중국측이 기분이 상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기본적인 예절을 안 지켰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이번 성화 봉송 당시 중국인 폭력 상태에 대한 대응을 보면, 중국에게도 당당하게 대응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무신경과 몰이해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줏대없는 대북정책
대북정책의 난맥상은 한국의 국익에 실질적인 손해를 끼치고 있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국민의 정부 이후 시행된 ‘햇볕정책’을 줄곧 비난해 왔지만, 사실상 햇볕정책은 대북문제에 관련해서 수립된 ‘최초의’ 외교 정책이다. 이념에 대한 동의 여부룰 떠나, 여기엔 여하간 ‘전략’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보수주의자들이 햇볕정책을 거부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다른 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북한을 거부하다가 미국과 북한이 교류를 시작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곤란한 처지에 빠졌다. 미국이 북한에 50만톤 쌀을 지원한다는데 한국은 지원을 안 할 수도 없고 지원을 하자니 이전에 내세운 조건들이 걸리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대로라면 돈은 돈대로 내고 북한으로부터는 대화의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한 김영삼 정부의 전철을 밟을 판이다. 냉온탕을 오가려거든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탕밖으로 나오는 것이 더 낫다는 따끔한 지적도 나온다.
실용외교라는 수사로 치장했지만, 사실은 아무런 원칙없이 자극에 ‘반응’하는 수준의 외교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명박 정부다. 참여정부는 관료들에게 너무 의존해서 비판을 받았는데, 이 정부가 하는 일을 보면 관료들 하는 일에 간섭이나 하지 말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겠지만,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도대체 뭘 하고 싶어서 정권을 잡았냐’라고 묻고 싶은 심정이다.
(대학내일 4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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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주간 너무 뜨거웠던 사안인지라, 잡지에 실린지 2주나 지나 인터넷판에 올라온 내용을 올리려니 뭔가 굉장히 옛날 글 같은 느낌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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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명박 정부에 억울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들의 말대로 이 협상은 참여정부에서 수립한 일정을 일관성있게 중단없이 진행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혁신도시는 계승 안 하겠다는 그들이 자신들의 판단에 대한 책임을 참여정부에 떠넘긴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이 논변으론 누리꾼이 참여정부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했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는 있어도 현 정부의 책임을 덜 수는 없다.
광우병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조소하는 이들의 말처럼 협상 반대론자들이 유포하는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과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조건없는 수입의 정당성을 증명하지는 못한다. 피뢰침을 세워도 재수없는 사람은 벼락에 맞아 죽고, 피뢰침을 안 세워도 대부분의 사람은 벼락과 상관없는 일상을 살아가지만, 이 경우 확률을 계산하여 피뢰침 건립에 들어가는 비용을 아까워하는 것이 ‘과학적인’ 태도이겠는가. 물론 한국인들의 안전불감증은 일상화되어 있고 그들이 미국산 쇠고기에 평소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겠지만, 이 경우 해야 할 말은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안전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해보자’가 되어야지 ‘너희들은 원래 안전을 신경쓰지 않던 민족인데 광우병이 무슨 대수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인체에 유해한 것인지 확실히 검증되지도 않았던 쓰레기 만두에 흥분하던 국민들이 이 사안에 이만큼도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해괴한 일일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책적인 접근은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하나는 광우병이라는 위험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동물성 사료 사용 금지가 전제되어야 하고, 쇠고기를 어떻게 검역할 것인지 그 방책이 논의되어야 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한 원칙은 한우에게나 수입산 쇠고기에게나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적어도 국민의 건강에 관한 문제는 무엇을 위해 무엇을 내준다는 식의 ‘정치논리’에 휘둘리지 말고 나름의 기준을 준수해야 한다는 합의가 필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황망하게도 ‘다 내주었다’는 비판이 ‘정치논리’라고 반박했지만, 이 문제를 아예 정치적인 것으로 몰고 가는 것은 대통령 자신이다.
다른 하나는 이 문제를 정치적 문제로 간주했을 때, 얼마나 타당한 셈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이다. 쇠고기 협상이 가장 비난받는 이유는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도 뚜렷한 답이 없기 때문이다. 냉소주의자들의 말대로 정말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심대하게 과장되어 있다고 치자. 그런데 왜 그 심대한 과장의 베일을 우리가 애써 벗겨줘야 하는가. 그 과장된 공포의 내용을 미국쪽에 들이밀고, 쇠고기 수입 제한을 푸는 대가로 많은 것을 얻어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정 ‘국익’을 추구하는 ‘실용주의’적인 자세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얻어낸 것이라고는 한-미 관계에 대한 추상적인 합의와 한-미 FTA 의회 비준에 대한 막연한 동의 정도밖에 없다. 그 동의가 얼마나 효력을 가질지도 미지수지만, 나처럼 한-미 FTA 자체가 ‘국익’에 어긋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이 협상이 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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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사실관계 및 상황, 그리고 그것에 대한 판단들을 정리해 보려고 메모하는 것이구요. 그렇게 큰 공을 들이지 못한 만큼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집단지성의 힘을 빌려보려고 올려보는 글인만큼 틀린 부분이나 다른 의견이 있을 경우 기탄없이 코멘트를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1) 광우병의 발병원인
(1)-(1) 식인습관이 있는 원주민에게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쿠루’병과 마찬가지로, 광우병은 ‘소에게 소를 먹이는’ 사료정책의 결과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가설은 광우병의 원인을 변형 프리온 단백질로 보는 가설과 연루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아직까지 확립된 이론은 아닌 만큼, “동성애 풍습이 에이즈를 낳았다.”는 기술처럼 윤리적 감정이 과학적 설명에 투영된 서술일 가능성도 있다. 광우병에 대한 공포는 자본주의의 (환경?) 윤리적 파국에 대한 예감과 결부되어 있는 것 같다.
(1)-(2) 광우병의 원인으로 변형 프리온 단백질을 지목하는 견해가 우세하다. 하지만 이 역시 ‘이론’이라 불릴 만큼 정립된 가설은 아니다. 광우병의 발병원인은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1)-(3) 정황증거로 보건대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었을 경우 사람은 인간 광우병vCJD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 인간 광우병의 발병원인이 광우병에 걸린 소에 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하지만 종간 장벽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광우병 소를 먹은 경우라 하더라도 반드시 인간 광우병이 발병하지는 않는다.
(2) 광우병의 위험성
(2)-(1) 인간 광우병의 환자가 몇 되지 않더라도, 이 질병이 장래에 에이즈와 같은 재앙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관리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 주류 의학계는 인간 광우병이 장래에 급속히 확산될 가능성은 그리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인간 광우병의 위험이 분명히 존재하고, 그 위험이 어째서 발생하는지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만큼, 그것에 대한 관리는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2)-(2) 인간 광우병 증세를 보이는 사람은 대개 몇 개월 만에 사망하게 된다.
(2)-(3) 하지만 광우병의 치사율이 100%라고 말하는 것은 조금 난센스다. 왜냐하면 인간 광우병은 죽은 이후에 뇌의 부검을 통해서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질병이기 때문이다. 죽은 후에야 확인할 수 있는 질병이므로 치사율이 100%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변형 프리온이 일부 활성화된 경우라도, 뇌용량이 2MB 정도로 낮아진 상태로 별다른 증상없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다.
(2)-(4) 30개월령 이상의 소가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다. 광우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변형 프리온은 광우병 특정위험물질(SRM)에서 더 많이 검출된다. 그러므로 연령제한이나 SRM 제한은 인간 광우병의 발병 가능성을 현저하게 낮춘다. 그러나 위험을 완전하게 제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30개월령 미만의 소에서도 광우병의 발생이 보고되어 있으며, 변형 프리온은 SRM 이외의 부위(가령 살코기)에서도 발견되는 경우가 있다.
(2)-(5) 일부 네티즌들이 퍼트리고 있는 바, 소가죽으로 만든 젤라틴 역시 광우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물론 광우병에 대한 연구가 완전하지 않은 만큼 그 주장을 100%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광우병 걸린 소의 가죽으로 만든) 젤라틴에 의해 광우병에 감염될 확률이 (광우병 걸린 소의) 쇠고기 시식을 통해 광우병에 감염될 확률과 같은 정도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만일 당신이 광우병을 겁내 쇠고기와 쇠고기가 포함된 식품을 멀리한다면,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을 충분히 0에 수렴할만큼 낮출 수가 있다. 단, 극미량의 (광우병 걸린 소의) 쇠고기만으로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있다는 사실은 이론적으로 사실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2)-(6) “광우병은 전염병이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 광우병이 전염성이 강한 질병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일상생활을 통해 전염될 확률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인간의 경우 헌혈을 통해서 전염이 일어난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2)-(7) "(2)-(5)"와 "(2)-(6)"에 의거 쇠고기를 전혀 섭취하지 않더라도 인간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존재하기는 한다. 실제로 채식주의자가 인간 광우병에 걸린 사례가 보고되어 있다.
(2)-(8) 아시아 혈통의 유전자형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학계에서도 찬반양론이 있다.
(2)-(9) 한국인의 식습관이 광우병에 취약하다는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살코기 이외의 부분을 대개 버리는 서구인들과는 달리 내장도 먹고 뼈도 고아서 먹는 식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뼈 있는 부분까지 갈아서 만들어지는 햄버거 패티를 반례로 제시하면서 그러한 식습관이 그리 의미있는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3) 미국 쇠고기와 한우의 위험성 비교
(3)-(1) 미국산 소에서 광우병이 발병한 전례가 있다.
(3)-(2) 미국에서 지금까지 인간 광우병으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3명이다. 그러나 이들의 경우 미국산 쇠고기의 시식이 원인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최근 인간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미국에서 사망했고, 이 사람이 인간 광우병으로 확정될 경우 처음으로 미국산 쇠고기에 의한 인간 광우병 발병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당국은 이 환자가 인간 광우병이 아니라고 잠정 발표했다. (PD 수첩의 보도는 이 발표 전이었으니 왜곡 과장이었다고 볼 수는 없다.)
(3)-(3) 광우병 발발 이후 유럽이나 일본에선 동물성 사료를 완전히 금지하였으나 미국에서는 동물성 사료가 완전히 금지되지 않았다. 미국산 소는 개체마다 카드를 만들어 관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엄밀한 연령진단이 어렵다. 치아로 연령을 대략적으로 판별하기 때문에, 30개월 미만의 소를 확실하게 골라내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미국산 소 중 육안으로 문제가 있어 보이는 극히 일부만이 광우병 검사의 대상이 된다. 이상의 사실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의심하게 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3)-(4) 최근 걷지 못하는 소를 도축하는 동영상이 공개되어 미국 전역에서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대규모 리콜 사태가 벌어진 바 있다.
(3)-(5) 한국은 공식적으로는 광우병도 인간 광우병도 발병한 적이 없는 나라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광우병 의심 소나 광우병 의심 환자에 대한 진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광우병 문제에 있어 그간 한국 정부의 대응은 ‘무대책’ 그 자체였다. 한국 역시 동물성 사료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 않으며, 소에 대한 전수검사를 실시하지도 않는다. 국제수역사무국OIE의 기준에서 볼 때 한우는 미국산 소보다 나을 것이 없다.
(3)-(6) 한국인들은 과거 광우병 위험이 있는 미국산 소를 대량 수입해 먹었던 전력이 있다. 물론 그때는 광우병이라는 질병이 밝혀지지 않았던 때였다.
(3)-(7) 미국인들은 미국산 소를 먹지 않는다는 주장은 좀 과장된 부분이 있다. 하지만 30개월령 이상의 소나 SRM 부위를 미국인들이 잘 먹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미국소는 20개월 언저리에서 도축되고, SRM 부위는 미국의 음식문화에서 원래부터 먹는 부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3)-(8) 미국인들도 잘 먹는 고기를 우리는 왜 못 먹느냐는 주장도 좀 상황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미국의 식품시장은 ‘하이엔드 마켓’과 ‘로우앤드 마켓’이 완전히 분화되어 있다. 즉 돈 있는 사람들이 먹는 식품과 돈 없는 사람들이 먹는 식품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그런 분화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평균적인 한국인들이 먹는 음식은 미국의 서민들이 먹는 음식보다는 훨씬 안전하지만, 돈있는 한국인이라도 그보다 특별히 더 안전한 음식을 먹지는 않는다. 지금 수입되려는 미국의 쇠고기는 전형적인 ‘로우앤드 마켓’의 식품에 해당하는데, 이것이 수입되면 우리나라에서는 돈있는 사람이나 돈없는 사람이나 골고루 이 리스크를 부담하게 된다.
(4) 쇠고기 수입 협상의 상황에 대해
(4)-(1) 모든 나라는 OIE 기준을 넘어서는 검역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그 검역 조건을 제시하는 정부는 그 조건에 대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할 책임을 진다. 일본이 자국의 소에 대해 엄밀한 검사를 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4)-(2) 한국의 경우 광우병에 대해 축적된 자료도 없고, 한우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관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기준을 제시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거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4)-(3) “(4)-(2)”가 올바르다면 이명박 정부는 자신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1) 쇠고기 협상 자체를 질질 끈다. 2) 한우 농가에 대한 검역을 강화하면서 광우병 발병 사례에 대한 과학적인 정보를 축적한다. 3) 그냥 OIE 기준대로 전면 개방한다. 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2)나 3)이나 어차피 한우 농가에 피해가 가는 건 마찬가지니까, 그럴 바에야 한미 FTA 의회비준에 대해 미국측을 압박이나 하자고 생각했을 수가 있다. 한미 정상회담의 시기에 미국측에 가져다주는 ‘선물’로 이 이벤트를 기획했을 것이다.
(4)-(4) 비교적 선의적 해석인 “(4)-(2)”와 “(4)-(3)”에 대한 반론도 가능하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정부가 과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 개정 협의를 위해 30개월 이상 소와 SRM 부위에 대한 위험성에 대한 자료를 축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런 협상방침이 이명박 정부 이후 하루아침에 변경되었다면, 검역주권을 미국에 양도하는 이명박 정부의 판단이 매우 ‘주체적’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단, 당시 정부에서 준비하고 있었던 논변이 미국측에 얼마나 잘 받아들여질 수 있었겠느냐의 문제에 대해선 현재로선 알기 힘들다.)
(4)-(5) “(4)-(2)”와 “(4)-(3)”을 더 신뢰한다면 이 협상은 이명박 정부의 각료가 말했듯 ‘참여정부 정책에 대한 설거지’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노무현의 덫’이라 부를만한 현상이다. ‘반미’ 이미지로 당선되었고 조중동과 한나라당이 줄곧 반미하고 있다고 비판했던 노무현이 한미 FTA를 추진했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그 누구도 FTA를 반대할 수 없게 되었다. 노무현은 양 웬리가 이젤론 요새를 제국군에게 양도하듯 한미 FTA 문제를 차기 정권에 떠넘겼고 그들은 이 프레임에 놀아나고 있다는 음모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4)-(4)”를 더 신뢰한다면 설거지 문제를 떠나 이 협상이 정치적 논리로 인해 일그러진 졸속협상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양자는 상황을 기술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아마 진실은 이 두 서술의 중간쯤에 있을 것이다.
(4)-(6) 인간 광우병 위험이 과장되어 있다는 주장은 올바르다. 하지만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2)-(1)”의 상황판단 위에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검역기준을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협상은 이 기준을 만들 권리 자체를 포기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비난받을 만하다.
(4)-(7) OIE 기준에 의해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국가가 95개국이나 된다는 주장은 일종의 언어유희에 해당한다. 이들 나라 중에는 사실상 미국산 쇠고기를 전혀 수입하지 않는 나라들도 수두룩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출물량의 90%가량을 담당하는 국가들 중 OIE 기준을 받아들인 나라는 캐나다 이후 한국이 유일하다. 캐나다는 제 나라에서도 광우병이 발병한 전례가 있고 그러한 제 나라의 소를 미국에 수출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에 그런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아시아권에서 OIE 기준에 의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며, 미국은 한국의 예를 들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압박할 준비를 하고 있다. 즉, 한국은 얻는 것 없이 제 힘 써가며 다른 국가들에게 미국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고 있는 셈이다.
(4)-(8) 쇠고기 협상의 문제점으로, 1) 축산 농가와의 사전 협의가 전혀 없었다는 것, 2) “(4)-(4)"의 주장이 올바르다면 정치논리로 인해 갑자기 입장변경이 있었다는 것, 3) 협상내용 자체에 검역주권을 내팽개치는 독소조항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광우병 소가 미국에서 발견되어도 수입 중단을 할 수 없다든지) 등을 지적할 수 있다. 광우병 논란이 과장되었다는 주장이 협상에 대한 옹호 논변이 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5) 쇠고기 수입 협상 반대 운동의 정당성 문제
(5)-(1)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에 대해선 동의할 수 있다. 가령 똑같은 식품 문제라도 찬찬히 뜯어보면 유전자 조작 식품GMO 쪽이 더 문제가 될 것 같고, 검역주권을 포기하는 독소조항도 한미 FTA의 투자자 직접 소송제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5)-(2)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협상이 졸속적이고 비민주적이며 국민의 건강을 배려하지 않는 천박한 경제논리에서 이루어진 만큼 이 협상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
(5)-(3) 쇠고기 협상을 반대하는 가장 정확한 논리는 아마추어적이고,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된, 졸속협상 폐기하라, 가 될 것이다.
(5)-(4) 그러나 그 이상의 정책목표를 상정하려고 한다면 문제가 발생한다. 가령 국민의 건강을 주된 문제로 삼는다면 한우 농가에 대한 정부 관리 정책 역시 문제삼지 않을 수 없다. 반면 한우 농가에 대한 보호를 문제로 삼는다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한 강조는 일관성이 없는 일일 수가 있다. 지금까지 주어진 자료로만 볼 때는 한우 역시 못지 않게 위험하며 관리의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5)-(5) 채식주의자나, 채식주의자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장에서 생산된 육류에 반대하는 환경주의자는 일관성 있게 미국산 쇠고기를 반대할 수 있다. 한미 FTA 반대론자라도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일관성 있는 반대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개방이라는 정책의 목표는 한미 FTA 의회 동의에 있기 때문이다.
(5)-(6) “(5)-(5)”에 해당하지 않으면서 이번 협상에 비판적인 사람이라면 조금 더 논리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 국민 건강 문제와 한우 농가 보호 문제가 적어도 지금 당장은 상충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검역 주권을 어느 정도 지켜나가면서, 한우 농가에 대한 검역도 강화해 나가면서, 동시에 한우 농가가 망하지 않도록 지원도 해야 한다는 식의 정책대안을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게 FTA 협정 안에서 가능한 대안인지는 의문이다.
(5)-(7) 물론 하나의 정책에 대한 반대의사의 표출이 완전한 정책대안으로 드러나야 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 협상은 아니다.”라는 의사의 결집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5)-(4)”에서 “(5)-(6)”까지의 얘기는 가령 촛불시위에 참여하거나 인터넷에서 이명박 탄핵 서명을 한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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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은 그의 저서 <대폭로>에서 부시 행정부를 ‘혁명적 우익’으로 규정한 바 있다. 재무설계사가 되기 전 인터넷 논객의 하나였던 김대영은 이 규정을 고스란히 노무현에게 적용하여 노빠들의 원성을 샀다. 이 규정의 내용을 재인용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1. 겉으로 천명된 목표를 보고 정책 제안이 그 이치에 닿는다고 추정하지 말라.
2. 약간의 숙제를 해서 진짜 목표를 찾아내라.
3. 유용한 정치 규칙이 실제 적용된다고 지레 짐작하지 말라.
4. 혁명적 세력은 공격으로써 비판에 대응한다는 것을 예상하라.
5. 혁명적 세력의 목표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적어보니 이것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겉으로 천명된 목표, 즉 물류 비용 감소나 사교육비 절감과 같은 수사를 보고 대운하나 영어몰입교육이 이치에 닿는다고 추정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약간의 숙제를 해서, 이 정책들의 실제 목표, 즉 땅값상승을 통한 경기부양이나 영어만 잘 하는 강남 중산층 자녀들의 비정규직 영어교사 채용이라는 그들의 목적을 간취할 필요가 있다. 유용한 정치규칙이 실제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도 마찬가지. 비리가 드러난다고 해서 장관이 경질될 거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이재오가 설친다고 대통령의 형님이 일선에서 물러날 거라는 기대도 버려야 한다. 총선 당시 공약에서 삭제되었던 정책이 다시 추진된다는 사실에 놀라서도 안 된다. 그들의 목표에 한계가 없다는 점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있다. 그야말로 혁명적 우익 만세다.
하지만 한국의 실정에서 생각해 볼 때, 혁명적 우익이라는 개념에 대한 접근은 노무현이나 이명박에 대한 인물 분석을 뛰어넘는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돌연변이와도 같은 부시 행정부의 행동을 마음껏 조소할 수 있었던 폴 크루그먼과 달리, 우리의 경우 과연 ‘혁명적 우익’이 특수한 현상이었는가라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한국의 우익들은 언제나 혁명적 우익이었다. 지켜야 할 전통적 가치가 무엇인지 규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의 우익이 ‘보수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한국의 우익 정치인들은 언제나 이전의 정권을 부인하면서, 혁신적인 수사를 내세우며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해 왔다. 언제나 혁신을 얘기했지만 그런 행동만큼은 모두 비슷비슷했다.
반면 리영희나 장준하의 사례에서 보듯 오히려 정통적인 보수주의자의 성향을 지닌 이들이 비판적 지성의 전통을 이어왔다. 좌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진보신당이 자신의 테두리를 어디까지 확장할지는 모르지만, 2차세계대전 이전의 사민주의를 옹호하는 노회찬의 모습은 어느 우파 정치인들보다도 더 ‘보수적’이다. 좌파들이야말로 한국 사회에서는 (세계사적 맥락에서 볼 때) 전통적인 가치지향을 계승하려는 ‘보수주의자’인 경우가 많다.
혁신이라는 말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요즈음엔 주로 경영학의 내용 안에 포섭되어 사용되고 있다. 부단한 자기 혁신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에게 필수적인 덕목이다. “처자식만 빼고 다 바꾸어라.”고 말했기 때문에 자신의 기업에 대한 처자식의 지분만은 필사적으로 고수하려고 하는 이건희 회장의 사례를 생각해 보건대, 과연 한국의 기업인들이 그토록 혁신에 철저한 사람들일까 하는 의문은 들지만, ‘혁명적 우익’을 요구했던 한국 우익의 전통(?)의 맥락에선 기업가가 새로운 정치 리더가 되는 것이 거의 필연적인 일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뭐가 문제가 된단 말이냐. 혁신은 필요한 것이며, ‘좋은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될 수 있겠다. 혁신을 사랑하는 행동주의자들은 언제나 박정희의 경부고속도로 개발을 이야기하며, ‘반대를 위한 반대’론자들이 어떤 오류를 범하고 있는지를 논증(?)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왜 그들이 혁신적으로 나라를 말아먹은 사례들, 가령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보수주의자들을 조롱하는 매우 전통적인 우화로 ‘끓는 물에 삶아지는 개구리’의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를 이렇게 바꾸어 보면 어떨까. “개구리는 언제나 폴짝 뛰어 다른 냄비에 튀어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언제나 다른 냄비로 뛰어드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지요. 그러다가 그는 마침내, 펄펄 끓는 냄비에 제 발로 뛰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참여정부가 혁명적(!)으로 추진한 한미 FTA나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정책을 보면, 정말이지 이 개구리가 어느 끓는 물에 뛰어들지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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