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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가 최장집의 고별강연에 대해 비판하기로 했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고, 솔직히 말하면 “도대체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 것인지”가 궁금해서 빨리 써보라고 닦달한 적도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어떤 사적인 자리는 아닌 모임에서 노정태가 그 문제에 대해 얘기를 조금 했고 나도 거기에 대해서 볼멘소리로 대꾸도 좀 했는데, 이제 와서 노정태가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겠다고 나선 데에는 그날의 체험이 사뭇 불쾌했기 때문인가 보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노정태의 글이 1) 팩트 확인에 있어서 부실한 게으른 글이며, 2) 어떤 종류의 지적인 논점을 던져주지 못하고 단지 수사만으로 가득찬 ‘반지성주의적인 글’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그가 말했던 ‘정치의 철학화’라는 단어를 그에게 도로 던져주고 싶은 생각도 있고, 사실 나 역시 분과학문의 문제를 철학의 문제로 워프시키는 많은 이들의 논쟁방식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수사만으로 가득한 그의 글엔 ‘철학화’라는 레토릭도 아까운 지경이다. 모든 문제를 철학적으로 만든다는 것은, 좀 다르게 말하면 모든 문제를 제로베이스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즉, 인간이 문화적으로 전승해온 지적인 탐구의 전통들, 분과학문의 방법론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저 자신의 경험과 상식과 편견에서 논지를 전개하다보니 유사-철학적 성격의 문제로 워프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노정태의 글이 딱 그런 꼴인데, 이 글에선 인문학적인 논점이나 사회과학적인 논점 무엇 하나 제대로 잡히고 있는 것이 없고, 그저 자신의 편견과 뒤틀린 감정을 조금 에둘러 배설하고 있을 뿐이다.
먼저 그가 명백하게 팩트를 틀린 부분부터 지적한다. “이후에 등장한 무슨 웹 2.0이니 뭐니 하는 소리들도 결국 최장집이 깔아놓은 논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는 것이 내가 받은 인상”은 인상이 아니라 망상이다. 왜냐하면 웹 2.0 담론은 최장집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가 한겨레 지면에서 웹 2.0 세대 운운한 것이 이 담론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당시 이 담론의 숨겨진 목적은 “어째서 20대들은 보수적인데 10대들은 이런 시위를 기획하게 되었을까? 그 원인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을 해명하는 것이었다. 그 시점은, 가두시위가 시작되기도 전, 그러니까 10대들이 주도한 시청 앞 촛불집회가 정점에 도달했던 때였다. 이후 20대들도 거리시위에 뛰쳐나오게 되자 ‘웹 2.0 세대’라는 말은 조금 우스워지기 시작해서 슬쩍 ‘세대’라는 말은 사라지고 시위현장에서 문자중계질을 하며 경찰들을 피해다니는 젊은이들을 가리킬 때 기사에서 사용되는 용어가 되었다. 한마디로, 이 담론은 최장집과 관계가 없다.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결집된 이들이 광장에 모여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외친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는데, 이건 직접민주주의에 더 가깝다.”라고 눙친다고 해서 이 담론이 최장집과 무슨 관계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야바위를 쳐도 정도껏 쳐라.
그런데 이 팩트의 오류는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모종의 성급한 단정에서 도출되는 것 같다. 즉 노정태는, 최장집의 논의가 촛불시위대를 담론적으로 무력화시키는데 탁월한 역할을 했다고 가정하고 있다. 나는 이 가정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우선 촛불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최장집의 얘기를 들었더라도 ‘꼰대소리’로 취급했고 진지하게 반응하지 않았다. 촛불시위에 반대한 이들, 보수언론이나 인터넷의 쿨게이들이 최장집의 말을 인용하면서 촛불시위를 깠다는 정황증거도 없다. 적어도 난 그런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도 노정태가 팩트를 왜곡하고 있다고 본다.
내가 이해하기로 최장집에게 격렬하게 반응한 것은 이 사건이 “대의 민주주의 그 자체의 한계”를 지시한다고 해석하고 싶어했던 좌파들, 그리고 “이제는 그만 들어갔으면 한다.”는 식의 어느 인터뷰에서의 그의 발언에 분개했던 극히 일부의 시위참여자들이었다. 그런데 노정태도 기억하겠지만 최장집은 고별강연에서 “사실 내 역할은 지금 이순간 촛불시위에 나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고 천명한바 있다. 즉 후자의 영역에서 최장집은 강력하게 견해를 개진하지도 않았고, 개진했더라도 사실상 한발 물러선 셈이다.
사실 이 두가지 사안은 명백하게 구별될 수 있다. 즉 촛불시위와 같이 대중이 직접 거리로 뛰쳐나와 집단적으로 정치적 주장을 개진하는 사태가 벌어진 원인이 1) 정당정치가 제대로 확립되고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2) (아마도 정당정치는 제대로 작동했지만?) 대의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인지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렵다. 이걸 두고 노정태가 말했듯이 ‘정치의 철학화’라고 말해야 할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서지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러한 총론에서 실천적으로 따라나올 수 있는 정책적 쟁점으로 국민소환제와 같은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구현하는 정책의 효용성에 대한 찬반논쟁이 있을 수 있겠는데, 이 문제도 진지하게 논의되지는 않았다.
한편 “(시위참여자, 혹은 정치인들이) 지금 이 순간 촛불시위에 나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방금 언급한 총론에 비하면 아주 미세한 각론의 문제다. 이것은 굳이 최장집의 총론에 동의하더라도, 그 총론에 입각해서 해석을 달리하면 다른 결론이 나오는 문제다. 나는 씨네21에 기고한 글에서 최장집의 총론을 긍정하면서도 “촛불시위에 거는 희망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것은, 떨어지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제 것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타 정당들의 한심한 역량이다. 시위를 지도하려다가 욕먹은 민주노동당과 얌전히 시위를 따라다니면서 ‘아고라의 여당’이라 불리게 된 진보신당의 길을 넘어, 시민들의 욕망을 정치적 지향으로 전환하는 설득에 성공하는 그런 정당과 그런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게 최장집이 은퇴 강연에서 말한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역할이 아닐까. 지금 정당이 촛불시위에 결합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고, 거리의 대중과 호흡하면서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가진 이가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정치에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라고 썼다. 레디앙에 기고한 이재영의 글은 이보다는 최장집에 비판적이었지만, 역시 “최장집의 총론에는 동의하지만, 지금 우리는 촛불시위에 나가야 할 때다.”라는 논지의 주장을 펼쳤다. 이처럼 최장집의 총론에 동의하면서도 얼마든지 각론에 대해서는 반대할 수 있다.
노정태 글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이 총론-각론 구별이 없다는 데에서 생겨나고 있다. 먼저 노정태가 동시대에 쓰여진 타인의 텍스트를 잘 안 읽는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심지어 그를 옹호하겠다고 떠벌이는 자들조차도 최장집의 '카리스마'론에는 일말의 관심이 없다."는 그의 진술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일단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노정태가 내가 씨네21에 쓴 글을 다 읽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그를 옹호하겠다고 떠벌이는 자들’의 숫자가 극히 적었고 그중에 대중적인 잡지에 실린 글은 거의 내것 하나뿐이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의 단언은 몹시 어리둥절하다. 참고로 나는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담은 정책을 확대하는 좌파적 기획에 호의적인 쟁가 님과 다른 블로그에서 덧글 논쟁을 하면서 최장집의 주장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것” 직접민주주의 운운하는 좌파들의 주장을 “그게 안 되니까 고양이 목을 따버리자는 것”으로 정리했고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역할은 “고양이 목에 누군가 방울을 달아야 하니까 요구될 수밖에 없었던 실천적인 역할”로 보았다. 시위에 개근하기에도 바쁜 그가 이런 인터넷 쪽글들을 챙겨보아야 할 이유는 없지만, 자기한테 안 보인다고 이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어느 멍청한 유아론적 관념론자의 태도에서는 벗어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두번째로 노정태에게 최장집의 ‘총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도 확인된다. 그리하여 총론과 각론을 구별하지 않고, 그의 얘기가 현실정치에 미친 효과를 두고 (그것도 다른 이들이 보기엔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도 의심스러운 효과를 두고) 최장집의 총론을 규탄하는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고야 만다. “정당정치의 복원 내지는 활성화를 중심으로 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 강화가 최장집의 정치학이 지향하는 바라면, 대체 왜 한나라당이 대선과 총선 모두를 압승하는지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석을 내놓을 수 있어야 했다.”라고 그가 물었을 때 내가 느낀 황망함이란! 노정태가 말했듯 최장집의 정당정치론이 ‘이상적인’ 기획이라면, 한나라당이 득세하고 있는 ‘현실’은 최장집의 기획을 반증하는 것이 될 수 없고 오히려 그 기획의 필요성을 증명하는 것이 될 텐데도 말이다. 최장집의 “민주주의” 시리즈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게다가 노정태는 한나라당이 대선과 총선 모두 압승하는 현실이 대체 납득하지 하지 못할만큼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인데, 나는 뭐가 납득이 안 간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선과 총선의 텀이 짧았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이 사건은 이해불가능한 사건이기는커녕 무난하게 이해할만한 사건이다. -쇠고기 정국 이후에 총선 치른 것도 아니다.- 지금의 정치상황은 보수 양당제의 구도에서 한축을 담당했던 민주당 계열이 참여정부 이후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잃어서,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빠지더라도 그것을 챙겨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그러므로 노선의 변화나 정계개편, 혹은 이틈을 노린 다른 정치세력의 양강구도로의 진입이 필요한 실정인데, 전자는 민주당의 무능으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고 후자에 성공할만큼 진보진영은 국민의 신뢰를 쌓지 못했다. 진보신당에 관한 농담 하나. “민주노동당이 삽질하면 진보신당의 지지율이 떨어지고, 진보신당이 열심히 하면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올라간다.” 동작을에 출마했던 진보신당 김종철 후보는 선거운동을 하다가 “그러니까 민주노동당 8년 역사가 얼마나 거대하고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는지.”라고 중얼거렸다. 여기에 무슨 추가적인 설명이 더 필요할까? 이 선거의 결과는 놀랍지 않다. 그 결과가 지금의 정치적인 파국을 초래하고 있긴 하지만.)
세번째로 노정태가 최장집의 ‘총론’을 이해하지 않으려고 끈덕지게 노력하고 있다는 점도 감지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나는 최장집을 적극적으로 탓할 생각이 그다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정태의 글의 제목은 최장집 고별강연 비판이고 글에서도 그 사실은 명백하다. 노정태는 촛불시위에 대한 최장집의 언급이 그가 말하는 “정치의 철학화” 현상을 이끌어냈다고 말한다. 그것은 그의 정리에 따르면, “그 대립 구도가 언어의 형태로 던져졌을 때, 그것을 수용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이다. 수용한 사람들의 태도 때문인데 이게 왜 최장집을 비판해야 할 이유가 될까? 이 점이 궁금해지지만 노정태는 전혀 설명하지 않는다.
한편 노정태는 최장집이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던진 것에 대해 비판한다. 그리고 “그의 '카리스마'론은 사실 사회적 논쟁의 주제가 될 수 있었고 또 그랬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담론적 현실상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변한다. (이 구절이 쓰여진 문단은 새로 덧붙여진 것인데, 여기서 상술하기는 귀찮지만 노정태가 그렇게 한 이유는 최장집이나 박상훈이 말하는 카리스마적 정치인이라는 개념이 노정태가 진보신당의 정치인들에게 요구하던 것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노정태가 지금까지 했던 말을 돌이켜보면 ‘카리스마적 정치인’을 비판할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찬사를 보낸다면 모를까.) 그것이 의미는 있을 수 있지만, ‘한국의 담론적 현실상’ 이런 식으로 튀어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정말 자기 맘대로다. 그나마 들어줄만 한 건 ‘카리스마’ 개념이 아직 미완성이라는 건데, 이것도 고별강연의 짧은 텍스트만으로 내린 단정이라면 민망하다. 그리고 최장집이 이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개념을 이용해서 촛불을 비판한 적도 없기 때문에, 도대체 여기서 그가 무엇과 싸우려는지 알 수가 없어진다.
여기서 그는 다시 ‘맥락’ 비판을 넘어 ‘총론’ 비판으로 향한다. 결국 최장집이 마르크스에서 베버로 옮겨가고 있는 것이 그가 분석을 잘못 하게 된 원인이라고 단언한다. 심지어 글 초반부에 “사상적 전향”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말이다. 내가 지금 고별강연 팜플렛을 분실하여 그의 인용을 검토할 수는 없지만, 정치학자가 요즘 들어 마르크스보다 베버에게 강조점을 더 주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고 하여 ‘사상적 전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믿는 그의 사회과학에 대한 얄팍한 이해의 수준이 두렵기까지 하다. “어떤 민주주의인가”에 실린 최장집의 인터뷰를 보면 마르크스와 베버가 동시에 그의 지적 연원 중 하나로 언급된다. 20년 전이라면 모르겠으나, 노정태와 내가 기억하는 한에서의 최장집은 한 거장의 이론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이론을 펼치는 학자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하여간 이렇게 주장을 하려고 했다면 처음부터 최장집의 총론이 이러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분석에 실패했다고 말하면 되는 일이다. 그는 그렇게는 말하지 않다가 나중에 이렇게 듬성듬성한 소리는 하는데, 이거야말로 씹고는 싶은데 어떻게 씹어야 할지는 모르겠고 해서 일단 맥락 탓이나 하다가 나중에 내용도 한번 찔러는 보는 그런 심보가 아닌가? ‘카리스마’ 담론에 완결성을 요구하기 전에 도대체 자신이 최장집을 비판하는 논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리해 볼 일이다. 그의 글을 이리 뒤집어 보고 저리 뒤집어봐도 ‘논점’이란 걸 찾을 수가 없으니 말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것들은 최장집 주장의 총론과 각론을 구별한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이다. 노정태가 “최장집 논쟁”에 대해 지적으로 접근하고자 했다면 대충 다음과 같은 세가지 방법이 있었다. 첫째, 한국 정치의 문제에 대한 해법이 “정당정치 강화”라는 최장집의 주장을 지적으로 공격한다. 둘째, 최장집의 총론은 기본적으로 긍정하되, 어떤 이들이 주장하는 국민소환제 등과 같은 제도들이 어째서 유용한지를 지적으로 밝힌다. 셋째, 최장집의 총론을 긍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시위를 이어나가는 것이 최장집의 총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님을 최장집의 논의에 비추어 밝힌다. 구별될 수 있는 논점으로부터 따라나오는, 필연적인 결론이다. 하지만 노정태는 이중 아무것도 택하지 않는다. “지금은 정당의 외연이 운동으로 넓어져야 하고, 동시에 정당이 운동의 역량을 흡수하여야 할 시점이다.”라는 언술은 세 번째 것에, 그러니까 이재영이나 내가 택했던 방식에 맞닿아 있지만, 노정태는 이 주장이 최장집에 대한 ‘반론’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에나! 최장집의 주장에 지적으로 맞설 의사도 능력도 없으면서, 수사법만으로 스크래치를 내려고 덤비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반지성주의적 작태다. 그것에 포함될뿐더러, 가장 훌륭한 예시이기도 하다. (구)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의 글을 반지성주의의 예문으로 쓰는 건 그들이 쓰는 비문 때문에 무척 피로한 일이므로, 나는 오늘부로 노정태의 글을 한국적 반지성주의의 집적체로 선언하기로 한다. “반면 '나는 직접민주주의자가 아니오'라고 베드로처럼 부인하면, '그럼 촛불을 끄고 국회의 개원을 촉구합시다'라는 온건한 자들에게 대꾸하기가 매우 난망해진다.”라는 말을 들어보라. 난망하기는 뭐가 난망한가. 머리라는 건 그런 말을 하는 이들에게 반박할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그가 얘기했던 것처럼 정당과 운동이 모순의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직접민주주의자가 아니라면 운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따위의 명제를 짓밟는 건 최장집을 인용하지 않아도 우습다.
시위참여자들이 잘못된 프레임에 빠졌다면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 될까. 한명의 학자가 자신의 소신을 발언해도 그것이 잘못된 프레임에 빠져 들어가는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정말이지 그 학자의 책임인가? 답변이 어렵다면 책임 운운은 집어치우고, 그렇다면 그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따져보자. 답은 간단하다. 촛불시위를 지지하는 시민이든, 그렇지 않은 시민이든, ‘민주주의’라는 개념에 대해 더욱 정확한 이해를 하게 되었을 때, 최장집의 발언이 잘못된 형이상학적 대립구도로 미끄러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이쪽이든 저쪽이든 사람들은 더 똑똑해져야 한다. 프레임에 빠지는 건 우리가 충분히 알지 못해서다. 그러한 무지는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는 아니므로, 비난받을 일은 아닐 수 있다. 그렇더라도 “무지가 도움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라는 마르크스의 말은 진실이다. 노정태가 남들보다 최장집을 더 안다고 생각했다면, 그의 말이 그러한 프레임에 빠질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지적으로 밝혔어야 했다. 공동체의 문제를 지적으로 취급하기 위해선, 바로 그러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데 노정태는 그런 작업은 하지도 않으면서, 정치의 철학화를 비판하고, 철학의 정치화를 말하면서, 최장집을 비판하고, 공부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글의 실천적 효용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 한 학자의 소신있는 발언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러면 당시의 최장집에게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1) 소신대로 발언을 한다. 2) 소신대로 발언하지 않고 적당히 촛불시위대를 찬양한다. 3) 입을 닫는다. 이것 뿐이다. 2)가 비록 노정태가 보기에 흐뭇한 행동일지라도, 적어도 그것이 ‘지적인’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1)과 3)이다. 이 상황이 침묵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침묵하는 것이 ‘철학의 정치화’에 도움을 주는 행동인가? 무슨 선불교 수행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딨나? 그리고 지금이 입을 닫아야 하는 시점이라는 판단은 도대체 누가 내리는가? 노정태?
발화자는 자신의 발언이 사회적으로 왜곡되는 방식을 모조리 다 책임져야 한다는 류의 주장에 대해, 지난 세월 나와 노정태는 반대해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따지면, 아무 말도 못한다. 이를테면 조중동과 노빠가 싸우고 있다. 노빠를 까면 조중동이 인용하고, 조중동을 까면 노빠가 인용한다. 그러면 노빠도 싫고 조중동도 싫은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왜곡의 방식을 모조리 책임지려면, 말을 마는 수밖에. 그러므로 노정태의 최장집 비판이 옳다면 과거에 나도 노정태도 아가리를 닥쳐야 했다. 이제 와서 그런 방향으로 견해를 수정한 거라면 내게 알려주길 바란다. 그러면 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때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둘다 변호하려고 한다면, 그곳에는 이론적인, 아니 유사-철학적인, 아니 수사적인 곡예의 길만이 남을 뿐이다.
한국사회의 지식인들이 사회의 문제에 대해서 충분히 쓸모있는 대답을 내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해선 동의할 수 있다. 동의할뿐더러 나 역시 문제적으로 느끼는 상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사실도 관찰해 왔다. “지식인들은 현실에 대해 쓸모없는 대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들은 탁상공론이나 한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지식인을 비난할 때, 그 비난의 대상은 종종 가장 현실에 밀착해서 발언을 하려는 지식인들이었다. 당연하다. 탁상공론하는 지식인들은 대중과 반목할 이유도 없으니까. ‘지식인 무용론’으로 특정한 지식인을 규탄하는 저러한 목소리는, 대부분의 경우에 자신의 상식(혹은 편견?)과 지적인 탐구의 결과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완고한 고집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주로 진중권이나 최장집같은 지식인들이 그같은 고집스런 목소리의 비난을 들어왔다. 오늘의 노정태가 최장집에 대해 하는 말의 구조도 그 고집의 구조와 매우 흡사하다. 그는 최장집의 이론에 지적으로 정당하게 덤빌 생각도 않고, 한국의 맥락이 어쩌구 하면서 최장집의 책임도 아닌 외곽을 때리다가, 그것을 핑계로 최장집 주장의 의의마저 부정하려는 비겁한 자세를 보이고 있으니 말이다. 만일 정말로 그 지식인이 자신의 책무를 게을리하는 더러운 글을 썼다면, 노정태는 그 지식인보다 더 지적인 레벨에서 그를 논파했어야 했을 거다. 노정태의 글은 과연 그런 글이었나? 물론 내 대답은 단호하게 "No!"다.
“결국 우리는 지고 또 지면서도 꾸준히 배워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부하고 싸우고, 싸우면서 공부해야 한다. 그게 바로 철학의 정치화이다.”
갑툭튀 '철학'이 소환되어 정치화까지 하라니 아직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공부하자"는 말엔 동의한다. 내가 노정태에게 하고 싶은 말도 바로 그거다. 이 긴 글을 통해 나는 노정태의 무의식을 분석하려는 의도가 없었고, 다만 그의 무식을 타파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의 글이 워낙에 배배꼬여 있어 이 작업이 무척 수고스러웠기 때문에, 이 친절한 작업에 합당한 경의를 그에게 요구하는 바이다. 결론은 이만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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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신당 당원게시판 쟁점과 토론 게시판에 올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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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주대환 논쟁”과 관련해서 매체의 문제가 중요한 논점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김수민이 주대환과 최병천을 비판하면서 ‘안티조선’이라는 잣대를 들이밀었다. 이전에도 얘기했듯이 나야 언론문제에 있어서는 주대환 최병천보다야 김수민과 생각이 가깝다. 언론학자 강준만으로부터 시작된 안티조선 운동은 1) 언론권력이 정치권력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가 되었다는 사실 2) 게다가 한국의 언론, 특히 조선일보는 대단히 정략적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고 그 결과 ‘조선일보를 구독하는 행위는 한나라당에 투표하는 행위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타당한 결론을 도출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연한 소리이지만 당시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언론은 도구일 뿐이라는 관점이 우세해서 좌파지식인들도 조선일보에 기고하는 일이 빈번했고 민주당 지지자나 민주노동당 지지자도 조선일보를 구독하기도 했다. 이제는 이런 일을 하면 나이브하다고 욕을 쳐먹는다. 언론문제를 독립적인 성격의 문제로, 분석의 대상으로 격상시킨 것이 (초기) 안티조선 운동의 지대한 공로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언론문제를 분석하는 관점에서, 혹은 언론운동을 실천하는 관점에서, 여전히 안티조선이라는 프레임은 유의미한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답이 간단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나는 김수민의 주대환-최병천 비판이 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너무 단순한 대답을 도출해낸 상황에서 이루어진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안티조선 운동의 정당성이 확립이 되던 시기인 2001년으로 돌아가보자. 그 시기로 돌아가서 이번 논쟁의 주인공인 주대환과 관련이 있었던 사건을 추려내보자. 사실 주대환과 안티조선 운동의 악연(?)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야기의 발단은 이렇다. 어느날 민주노동당의 운동가 박용진은 감옥에서 심심하게 지내다가 강준만의 <노무현과 국민사기극>을 읽었다. 그리고 읽고 졸라 빡이 돌아서 민주노동당의 월간지 <이론과 실천>에 피토하는 심정의 규탄문을 썼다. “비판적 지지론자 이 개객기야!!!!” 그러자 이 세상의 모든 잡지를 구독하는 강준만이 그 외침을 듣고 다음달에 반론을...아니 달래는 글을 썼다. “제 책은 민주당 지지자들 보라고 쓴 겁니당. 민노당 분들 열받지 마세요.” 근데 달래기만 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천하의 강준만이다보니 대충 이런 말이 나왔다. “근데 님의 글에 6개의 오류가 숨어 있네요. 첫째는 어쩌구 둘째는 어쩌구...” 그냥 좌파 내부의 비지론자들 단속하려고 고함친 죄밖에 없는 박용진이 머쓱해질 타이밍에 이론과 실천 편집부가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주대환이 출동하면 어떨까?” 그리하여 주대환-강준만 논쟁이 시작되었다.
링 위에 올라온 주대환은 매우 인상적인 플레이를 펼쳤다. 그는 김대중 정부가 실패했는데 무슨 또 비지론이냐고 흥분한 박용진을 달래기 위해 “김대중 정부 실패했다고 말하지 마라. 우리에게 실패인 것이 그들에게는 성공이다.”라고 말했다. “양극화는 개혁이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개혁이 성공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하준 정승일이 들으면 좋아할만한 얘기였고,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아예 갈 길이 다르다는 선언이었다. “노무현은 미국으로 가자는 거고, 권영길은 유럽으로 가자는 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극우 헤게모니? 그거 이미 깨졌는데 뭘 그래.”라고 주장해서 여러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이에 대해 강준만은 “극우 헤게모니가 깨지긴 왜 깨졌어요. 저기 눈앞에 보이는구만. 그리고 아무튼 노무현은 좀 짱인 것 같다능.”이란 식으로 대답했고 둘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던지라 논쟁은 그쯤에서 끝났다.
매체에서 벌어진 이 논쟁은 인터넷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키보드워리어’라는 말은 생기지 않았지만 키보드워리어 1세대쯤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안티조선 우리모두라는 사이트에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말하자면 프로토스의 고향은 아이우, 키워의 고향은 우리모두... 이건 좀 아니고, 여하간 2001년이라면 PC통신의 ‘논객’들이 안티조선 우리모두로 흘러들어와 서로 잘난척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고, 대략 2002년부터 이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면서 오늘날 우리가 이름을 알고 있거나 들어도 잘 모르는 여러 종류의 키보드워리어의 서식지들을 만들게 된다.
주대환-강준만 논쟁이 인터넷판으로도 전해지자 김동렬 등을 위시로한 친민주당 or 노무현 성향 키워들이 아예 민주노동당 노선을 밟아버리려고 규탄을 하면서... “민주노동당의 강준만 죽이기”를 막고 있다고 외쳤다. ‘극우 헤게모니’가 없다고 해버렸으니 안티조선 운동 하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현실 모르는 소리로 비쳤겠는가. 이에 맞서 좌파 쪽에는 주대환을 옹호하기도 하고 아니면 주대환이 좀 성근 소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민주노동당은 짱이라능이라고 답변하기도 하는 식이었는데 가만히 싸움 구경을 하던 나는 불현 듯 이렇게 외쳤다. “그, 그러니까...전선이 두 개라능! 왜 두 개냐믄...이렇게 피터지게 싸우는거 보니 하나는 아닌 거 같고....그냥 두 개면 되잖냐능!!” 그 글을 쓴 심정은 대충 이랬지만 실은 졸라 길고 재미없는 글이었다. 훗날 최병천은 2002년 대선국면에서 이걸 들고 가 당시까진 아직 노빠였지만 나중에 ‘반-진중권 좌파연대’의 수장이 되는 전설적인 키워 수군작에게 “이게 아흐리만이란 아해가 쓴 ‘두 개의 전선론’이라는 건데요~”라고 말했지만, 수본좌께서는 “그건 뇌의 착각이며, 비겁한 변명에 불과해. 좌빨은 두 개 세 개 이런 거 모린다...좌빨은 모노닷!!”이라고 반응하여 (비록 본질은 겉은 빨갛고 속은 노란 사과에 불과했지만) 그의 포스를 증명하시기도 했다.
여하간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극우 헤게모니’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안티조선 운동이나 소위 민주당 개혁파 노선의 유의미성을 강조하던 이들이 그때부터 수 년동안이나 심심할 때마다 읆조리던 단어다. 이 말은 강준만이 주대환과의 논쟁에서 사용했지만, 강준만이 만든 말은 아니다. 척봐도 강준만이 만들 어휘로 생기지는 않았다. 이 말을 21세기 한국사회의 어떤 모습을 지시하는 정치평론의 용어로 끌어온 건 홍세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때려치고 한국사회의 ‘전사’로 거듭나기 위해 귀국한 그는 귀국 일성으로 강준만이 만들던 월간 인물과 사상에 장문의 글을 기고한다. 그 글의 제목이 바로 (워딩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 극우 헤게모니와 조선일보의 진지전과 기동전”이었다. 이 좌파의 언어가 안티조선 운동 진영으로 흘러들어와 강준만이 그간 경험적으로 추적해 왔던 “조선일보만의 특수성”이란 테제를 이론적 언어로 지시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고, 그 결과 강준만은 주대환과의 논쟁에서 자연스럽게 ‘극우 헤게모니’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왜 ‘극우 헤게모니’와 ‘진지전’과 ‘기동전’이란 단어가 필요했던가? 그것은 안티조선 운동을, 조선일보가 지지하는 한나라당을 정치적 경쟁자로 삼는 민주당 세력이 아닌, 좌파들에게도 의미있는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했다. 만일 어떤 이가 극우라면, 대충 이런 얘기들이 가능해진다. “유럽에서는 좌와 우가 힘을 합쳐 양극단을 몰아내더라... 좌파들이 자기 정치세력화를 위해 운동하는 건 또 따로 할 일이지만, 이들을 왕따시키는 데 힘을 보태는 것도 좌파가 마땅히 해야할 한 역할이 아니겠니?” 이게 이 논변에 대한 ‘약한 해석’이었고, (내가 만들었다는 ‘두개의 전선론’은 명백하게 이 ‘약한 해석’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십라 극우 헤게모니가 살아있는데 사치스럽게 좌파는 무슨 좌파! 얼른 노무현 짱 밑에 와서 깃발을 바치라능!!”이라고 좌파들을 욕하는 게 ‘강한 해석’이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면 약한 해석은 2002년 대선 국면이 닥치기 전에 폭넓게 수용이 되었다. 한편 강한 해석은 꾸준하게 지지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이 좌파들한테 뭐라고 하면 좌파들은 또 “비판적 지지론자 개객기야!!”라고 반응을 하기도 하고... 약한 해석을 말하는 것처럼 여겨졌던 노빠 키워가 대선 때 상황이 급해지니까 갑자기 강한 해석으로 돌아서고.... 등등등의 많은 일들이 있었다. 이처럼 이 개념은 안티조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긴 했는데, 2001년 말부터 거세게 전개된 ‘노사모 운동’ (...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하리라.)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지나칠 수 없는 개념이다. 비록 노사모의 외연 확장을 위해 노력한 노무현 지지자들이 직접적으로 이 단어를 언급하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자 이제 이 담론이 구체적으로 조선일보에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살펴보자. 말인즉슨 조선일보는 한국 사회의 ‘극우 헤게모니’를 유지시키기 위해 전략전술적 책동을 하는 그런 사악한 집단이다... 라는 얘기가 되겠다. 그런데 이 극우라는 개념은 한국사회에서는 반공주의나 사상의 자유에 대한 탄압이란 소재와 연결될 수밖에 없어서, 주로 장기수들에 대한 사상전향서(김대중 정부에서 ‘준법서약서’로 바뀐 후 나중에 사라짐)의 문제나 국가보안법의 문제, 그리고 문민정부 이후로 언론들이 주도했던 공직자에 대한 ‘사상검증’ 등이 어떤 이가 ‘극우’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가장 중요한 판단의 잣대로 작용한 것은 맨 마지막 것이었다.
김영삼이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들어가’ 문민정부를 탄생시킨 이후, 언론권력이 정부의 성향을 ‘통제’하는 기제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사상검증이었다. 말하자면 김영삼이 뭔가 진보적이라고 알려져 있던 학자를 장관으로 만든다.... 그러면 월간조선이 “그 개객기 빨갱이야!!”라고 소리친다... 조선일보가 “빨갱이를 공직자로 임명하다니...” 그러면 다른 신문들이 그 말을 그대로 따라하기도 하고 “빨갱이라고 소문난 이를 공직자로 임명하다니 엄훠 그런 경솔한...”이라고 하기도 해서 종국엔 인사에서 낙마하는... 그런 식이었다. 한모 장관, 김모 장관, 이모 장관 (이인제는 아니다.) 등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조선일보가 저 유명한 “최장집 사건”을 일으켰을 때... 세월이 좀 바뀌었는지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월간조선이 선빵을 날리고 조선일보가 심혈을 기울여 지랄을 했는데도 다른 언론사들이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당시 중앙일보 권영빈 논설위원은 “뭐냐 이 메카시즘....졸 지겹거든?!”이라고 칼럼에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조선일보가 고립된 것이다.
이걸 보고 강준만이 “오케바리!!!! 딱이군!!!!!! 드디어 걸려들었어!!!!!!!!”이라며 조선일보를 신나게 맹비난해대다가...말지 정지환 기자와 함께 조선일보 이한우 기자에게 명예훼손 고소를 당하고... 그걸 보고 분노한 홍세화가 한겨레에 “나도 고소하라능!”이라고 칼럼을 쓰고 어이를 상실한 진중권이 “낄낄. 이한우 학동 맛동산 사먹고 싶은가봐. 벌금은 네티즌들이 성금으로 모아서 주자고!”라며 인터넷에서 모금운동을 시작한 것이 소위 안티조선 운동이란 것의 우발적인(?) 시초다. 뭐 이런 식으로 잠깐의 시기 동안 좌파와 우파가 같이 모인 지식인운동이 하나 시작되었고 이것을 대중운동으로 확산시키려고 노력을 했던 것인데... 여기서 우리의 전설적인 홍세화짱의 정리는 이렇다.
“자자, 보라구!! ‘조선일보나 중앙 동아나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지? 여기서 실천적으로 그게 아니라는게 드러나잖아? 뭐라고? 그건 그때 한번이고 지금은 별 차이없다고? 문화면에 좌파들 얘기도 잘 받아준다고? 에헤... 이 사람들 답답하네. 그러니까 설라무네 그때 저번이 ‘기동전’이었다면, 지금은 ‘진지전’을 하고 있는 거라능! 이렇게 진지전을 해서 평소에 부드러운 이미지로 지식인과 독자들을 속이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 영향력을 가지고 다시 기동전, 그러니까 빨갱이 사냥을 할거라능!!! 이제 정리되지? got it??"
......그렇게 조선일보는 나쁜놈이 되었던 것이다.
홍세화의 논변은 당시의 구체적인 운동 정국에 대한 탁월한 분석이었다. 그렇게 기민하고 정확했던 분석의 사례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에 와서 그의 ‘진지전’과 ‘기동전’론을 “조선일보만의 특수성”을 위해 적용하는데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조선일보는 그후에 홍세화가 말했던 의미의 ‘기동전’을 펼친 적이 없다......OTL
물론 조선일보는 노무현도 괴롭혔고... 요번에 촛불도 괴롭혔다... 그런데 그 논변...혹은 논변 수준에도 못 미치는 땡깡들이 다른 신문들과 비교해 ‘극우’라고 규정지을만한 어떤 특수성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시대를 거치면서 이런 상황은 더욱 명백해져갔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두 가지 정도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하나는 조선일보의 ‘최장집 사건 학습효과’... 결국 최장집은 공직에서 낙마했고 월간조선에 걸었던 명예훼손 소송도 취하하긴 했지만... 조선일보로서도 두 번 다시 그런 식으로 왕따당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둘은...중앙과 동아가 그후 더욱 꼴통이 되었다는 것... 그 계기는 2001년에 있었던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였다. 솔직히 안티조선 초기에 중앙과 동아는 이 운동을 자신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는데 이용해 먹고픈 유혹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한놈만 패! 그러면 효과는 나와!!”라는 전략전술적 거시기로 시작한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들이 바랬던 것이었다. 동아는 “신동아 보라능?! 우리 가끔 진보적이라능!!”이라고 말했고... 중앙일보는 “우리는 저렇게 허접한 반공주의자는 아니고 시장의 합리성을 믿는 보수거등여?!”라고 주장하고 싶어했다. 그런데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들을 강타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안티조선 운동은 대중운동의 영역에서 크게 확산되기는 했지만 ‘조중동’은 서로 결합해 버렸다. “아...안되겠다능?!! 우린 같은 편이라능!!!” 특히 90년대 말까진 ‘자유주의자’ 유시민이 칼럼을 쓸 수 있을 정도의 독립된 정체성을 지니고 있던 동아일보가 사주의 그릇된 판단으로 ‘조선보다 더한’ 길로 나아가기 시작하면서 ‘조선일보’의 특수성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빛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최근의 정국을 통해 생각해보자. 사노련 관계자들 체포 때 조중동은 어떻게 반응했던가? 조선일보는 “옛날엔 사회주의자라고 말하는 문건만으로 법원이 영장 청구해줬는데 투덜투덜... 하여간 조사 좀 더 잘해보라능!”이라고 말했고 중앙일보는 “조사 좀 잘해서 넘기지 왜 바꾸를 맞고 지랄이냐능?”이라고 반응했다. 동아일보는 사설에선 반응이 없었다. 약간의 차이가 감지되기는 하지만, 이거 가지고 뭐라고 하기는 우습다. (예전처럼 조선일보가 ‘기동전’을 한번 더 뛰어준다면 “이...이건 진지전이라 비슷한 거라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말이다.) 게다가 이명박에 대해선 동아일보가 가장 격렬한(?) 옹호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있고, 시장권력에 대한 맹동적인 추종에서 중앙일보는 조선일보를 찜쪄먹는다. 이런 사정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세 신문을 구별하기가 그렇다. 참여정부 말기에 언론운동 단체 관계자라는 사람들이 ‘조중동’이 아니라 ‘조동’이라고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참 한심했던 적이 있다. 중앙일보의 폐해도 만만치 않은데 단지 중앙일보과 노무현과 잠깐 밀월관계를 형성했다는 이유만으로 빼려고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히려 촛불시위 지지자들의 조중동 반대운동이야말로 안티조선 운동이 지니고 있던 실천적 효용성이 끝났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판단된다. 물론 조중동에 이번에 문제의식을 지니게 된 시민들은 과거 안티조선 운동의 참여자들이 만들어낸 많은 이론이나 서사를 통해 그들의 문제의식을 환기시킨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과거에는 ‘조선일보’로 특징지을 수 있었던 것이 이제는 ‘조중동’으로 묶어서 비판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 변화가 있었기에 그들이 ‘안티조선’이 아닌 ‘안티 조중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21세기 초의 안티조선 운동과 촛불정국의 안티조중동 운동은 시민사회의 언론운동의 연장선상에 있고, 문제의식도 동일하다. 그러나 전략의 부분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조선일보의 특수성을 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은 친일, 친독재, 수구세력 옹호...의 레퍼토리로 대변되는 조선일보 88년의 역사를 모두 읊는다. 그것은 이른바 ‘극우 헤게모니’론을 통해 조선일보의 특수성이 이론적으로 분명히 정립된 상황에서는, 가능하고 필요한 서사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너져버린 지금 상황에서, 그 역사를 읊는 것만으로 조선일보와 다른 신문의 차이를 말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가령 친일을 생각해보자. 1930년대 조선일보의 맹목적인 친일은, 현재의 조선일보 문제와 연관을 지니는가? 큰 맥락에서 그들이 줄곧 권력추종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고 말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친일로 따지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동아일보도 했다. 물론 프랑스에서 그랬듯 그런 신문들은 해방이 되자마자 폐간시켰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는 건 정당하다. 그런데 그 친일을 한 동아일보가 1970년대까지 ‘일등신문’이었고, 그것도 조선일보식의 ‘일등신문’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가장 매서운 비판자로서의 일등신문이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한다. 박정희 정권의 광고탄압 사건 이전까지의 동아일보를 부인할 수 없다면, 친일을 했기 때문에 바로 너는 오늘도 ㅅㅂㄹㅁ다라는 식의 접근은 무리가 있다. 친일파야 개인의 정체성을 지니지만, 오늘의 언론사를 구성하는 이들은 그때의 구성원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 조선일보 방우영 회장은, 물론 친독재였고 박정희한테 ‘밤의 대통령’이란 별명을 하사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별명은, 훗날 그의 팔순잔치 때 조선일보 임직원들이 주장했듯 그가 정치적으로 힘이 세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 아니라 밤에 박정희랑 안가에서 술먹고 놀 때 기생이랑 잘 논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었다고 전해진다. 친일, 친독재 운운하지만 박정희 정권 때까지 조선일보는 굳이 안티를 해야 할 대상도 아니었다. 전두환 집권 당시 노골적으로 용비어천가를 부르고, 그후 파시스트 정권의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으며 동아일보를 제끼고 일등신문이 된 이후의 조선일보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일보의 모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조선일보가 80년전에 친일을 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한 일이 아니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연성과 힘의 관계들이 조응하여 벌어진 일이다. 1990년대 후반의 동아일보가 나름의 품격은 지키고 있다가 급격하게 ‘수구’세력에 합류한 사건도 그렇고, 21세기 이후 소위 ‘조중동’이 예전에 비해서도 점점 더 친화성을 키워가고 있는 현실도 그렇다. 안티조선 운동의 분석틀은 여전히 유효하겠지만, ‘안티조선’이라 일컬어지는 전략의 부분에서는 분명 현실의 힘의 관계들을 토대로 다시 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안티조선이라는 프레임은 여전히 유효한가? 즉, 진보신당의 언론 정책에서, ‘조선일보’만을 특별히 배제해야 할 어떠한 실천적인 타당성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느낀다. 아예 안티조중동을 실천하는 것은 논변적으로는 깔끔하지만 현실에서는 지나친 손해를 보게 되고, 안티조선을 얘기하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에서 체면치레를 하는 수준에 그친다. 굳이 나더러 택한다면 후자를 택하는게 좋겠다고 주장하고는 싶지만, 이 정도 수준의 타당성이라면 이 모든 것을 반대하는 이들의 입장에도 일리가 없다고는 볼 수 없다. “김수민의 (안티조선 논변에 입각한) 주대환-최병천 비판이 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너무 단순한 대답을 도출해낸 상황에서 이루어진게 아닌가 생각”한다는 첫 번째 문단에서의 나의 말에 대한 의미가 이제는 드러났기를 바란다. 물론 맨처음에 언급했듯이, 이는 “주대환 논쟁”의 핵심적인 논점과는 관계없이 별도의 논점을 구성하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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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학자 최장집은 최근의 촛불시위에 대해 ‘정당정치의 부재’가 만들어낸 사건이라 진단했다. 결국 정당정치 강화가 해답이라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진단을 “이제 그만 촛불을 꺼야 할 때”라는 주문으로 받아들였고, 분개했다. 왜 현 시점에서 ‘촛불시위 반대’로 오인받을 만한 주장을 개진하느냐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맥락’이 아니라는 것인데,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최장집의 주장에 분명 ‘맥락’이 있다고 본다. 가령 오마이뉴스에서 시위군중의 모습을 비추는 대형 전광판을 동원할 때, 거리에 저 유명한 ‘전대협’의 깃발이 등장할 때, 나는 87년의 스펙터클을 재현하려는 어떤 욕망을 본다. 이 욕망은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최장집의 말대로 87년은 정치제도의 변혁이라는 관점에서는 성공한 사례라고 보기 어려운데 말이다. 이번에도 ‘운동’과 따로 노는 정치를 만들 것인가?
87년의 사람들이 ‘민주주의=대통령 직선제’라고 믿었다면, ‘again 1987’의 감상에 젖은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국민소환제’라고 믿는 것 같다. 87년에 사람들이 민주주의가 대통령 직선제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님을 이해했다면 세상은 더 나아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87년과 달리 지금의 촛불시위는 한두 가지 제도의 변혁을 성취하기도 벅찬 처지다.
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직접민주주의가 이상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어렵기 때문에 간접민주주의가 실시된다. 그러므로 직접민주주의의 요소를 담은 정책을 추구하는 것은, 무조건 정당한 흐름이다.” 그리 현명한 생각이라 보기 어렵다. 굳이 ‘민중의 자기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로부터 따진다면, 대의제뿐만이 아니라 다수결조차 문제가 된다. ‘만장일치적 직접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자율성과 국가의 권위를 양립시키는 민주주의의 이념을 온전히 실현할 방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을 조금이라도 실현하려는 정책이 올바른 것이 될까. 오히려 오늘날의 많은 정치학자들은 만장일치를 유도하는 의사결정에 파시즘의 우려가 있다고 볼 것이다. 가령 정당정치는, 이견과 갈등을 드러내려는 장치로서 만장일치제에 모순된다. 그러므로 정당을 해산하는 것이 더 민주주의적인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이며, 천상의 제도가 아닌 세속적인 이해관계의 타협의 산물이다. 설령 어떤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지닌 정책이 도입된다 해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본질적인’ 민주주의로 이행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나는 최장집이 우려한 낭만주의가 그러한 착각이라 생각한다. 결국에는 국민소환제 역시 이 제도가 어떤 효용을 지닐 수 있는가라는 측면에서 논의되어야 할 뿐이다.
다시 문제는 정치다. 촛불시위에 거는 희망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것은, 떨어지는 한나라당의 지지율을 제 것으로 가져가지 못하는 타 정당들의 한심한 역량이다. 시위를 지도하려다가 욕먹은 민주노동당과 얌전히 시위를 따라다니면서 ‘아고라의 여당’이라 불리게 된 진보신당의 길을 넘어, 시민들의 욕망을 정치적 지향으로 전환하는 설득에 성공하는 그런 정당과 그런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게 최장집이 은퇴 강연에서 말한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역할이 아닐까. 지금 정당이 촛불시위에 결합해야 한다면 그것은 아직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고, 거리의 대중과 호흡하면서 그런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욕망을 가진 이가 없다면 무슨 수로 우리가 정치에 희망을 걸 수 있겠는가.
| [대학내일] 사회주의자와 국가보안법 (0) | 2008/09/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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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21/유토디토] 촛불시위, 그리고 정치 (8) | 2008/07/18 |
| [씨네21/유토디토] 한-미 FTA (5) | 2008/06/27 |
| [펌] 최장집 / 촛불집회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7) | 2008/06/18 |
| 이명박과 폭력시위, 그리고 주민소환제 (13) | 2008/06/08 |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분석. 전적으로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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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주최 “촛불집회와 한국민주주의”
긴급 시국대토론회 개회사 (2008. 6.16)
촛불집회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최장집 (고려대 교수)
1.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민들의 대규모 촛불집회는 한국민주주의발전에 있어 21년 전 6월 민주항쟁에 비견될 만한 또 하나의 이정표적 사건이라 하겠다. 먼저 오늘의 대규모시위를 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보다 한국의 시민들의 의식은 광범하고도 깊숙이 민주적 가치와 규범을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점에 있어 민주화는 시민의식에 있어서 혁명적 변화를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동시에 체제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대통령과 보수정부는 국가권력의 운영방식과 정책결정방식에 있어 과거 권위주의적 행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즉 우리는 민주화이후 깊숙이 변화된 사회를 한편으로 하고, 보수적 리더십이 갖는 민주주의에 대한 협애한 이해와 구시대적 통치방식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양자 사이에는 위태로울 만치 커다란 간극을 보게 된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리를 국민을 통치할 전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이해한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민주주의의 원리와 제도적 실천과는 크게 다르다. 대통령은 좁게는 자신을 통치자로 만들어준 지지자들을 넓게는 국민전체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들에 대해 책임 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통치자의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대의제민주주의의 핵심 원리 가운데, 대표의 선출과 통치의 위임을 내용으로 하는 “대표”의 원리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수준은 높지만, 많은 사람들 특히 현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대표의 역할이 책임을 수반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 이해의 정도가 얕다. 책임의 원리는 그가 통치자가 된 선거와 다음 선거사이, 즉 평상시에도 항상적으로 이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평상시 통치의 방법과 정책결정에 대한 민주적과정의 실천,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정책내용에 대해서도 상시적으로 국민의 여론과 의사에 반응해야 함을 의미한다. 만약 책임을 수반하지 않는 통치행위, 권력행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군주나 독재자를 선출하는 것 이상이 되지 못한다.
누구로부터 견제 받지 않는 무책임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은 오늘의 촛불정국의 직접적 원인이라 하겠다. 또 그것은 라틴아메리카의 정치학자들이 그들의 민주주의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위임민주주의” (delegative democracy)와 유사한 상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 의회를 우회하고, 민주주의의 제도적 과정을 뛰어넘으며, 투표자들의 의사와 요구를 무시하면서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대통령 명령에 의존해 통치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촛불집회 정국에서 보게 되는 것은 한국에서의 대통령은 집권과 더불어 국익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스스로의 결정을 실제의 정책으로 만들고, 강력한 국가기구와 강력한 여론매체를 동원하여 이를 홍보하고 집행하는, 상명하달식의 일방주의적, 권위주의적 결정방식을 당연시 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정부와 집권여당은 민주화된 사회에서 이러한 방식의 정책결정이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본 강연자는 오늘의 촛불집회는 한마디로 민주화이후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의 결과이고, 그러한 현상을 표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 원인으로, 강력한 국가와 제도적으로 강력한 대통령이 허약한 입법부-허약한 정당 (역시 권력에 대해 자율성이 약한 허약한 사법부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더라도)에 대해 압도적 우위를 갖는 어떤 구조적 특성을 지적할 수 있다. 그것은 정당-의회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한 집행부에 아무런 견제력을 갖지 못하고, 정책결정의 이니셔티브를 포함하여 의미 있는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즉 국가기구 내지는 정부구조 내에서 이른바 삼권분립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정부 밖에 존재하며 사회경제적 균열과 갈등으로부터 발생하는 시민들의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익과 가치, 요구와 의사들을 조직하고 대표하는, 이익집단을 포함하는 자율적 결사체들의 발전수준 역시 매우 허약하다는 사실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이들 자율적 결사체 가운데서도 시민사회의 의사를 조직하여 정치적으로 대표하는 정당의 역할은 민주주의 정치과정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러한 조건이 정부 밖 시민사회가 강력한 국가를 관장하는 대통령에 의해 만들어지는 시민다수의 의사 및 이익에 반하는 권위주의적 정책결정들에 대해 견제력을 행사하고, 대안적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정부 내에서 그리고 시민사회에서 견제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정책과정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지 못하는 조건은 사실상의 권위주의를 의미한다.
오늘의 촛불집회는 그 어떤 것보다도 선출된 통치자가 스스로의 공적행위에 대해 시민에 대해 책임지도록 강제 내지는 압박하는 반대와 견제력을 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촛불집회가 한국민주주의 발전에 확실하게 기여한 부분은 제도권정치와 정당이 무력화 되었을 때 시민사회의 의사를 결집하고 항의를 조직함으로써, 권위주의적 권력행사와 정책결정에 결정적 제약을 가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과 대부분의 언론들은 대통령이 촛불집회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대통령의 의사가 바뀌고 있는지 아닌지, 혹은 대통령의 심기가 어떤지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가지곤 한다. 그러나 대통령의 마음의 향방이나 심기를 살피는 것은 민주주의의 작동의 문제를 구시대적이며, 권위주의적 문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을 민주주의 제도의 틀 속에 위치시켜, 독단적, 권위주의적인 정책결정과 권력행사를 제약하고 견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촛불집회는 민주주의의 제도들이 무기력하고, 작동하지 않고, 그 중심적 메커니즘으로서의 정당이 제 기능을 못할 정도로 허약할 때 그 자리를 대신한 일종의 구원투수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이점에서 촛불집회는 한국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러나 본 강연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역할에도 불구하고 운동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키는 일은 불충분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성격으로부터 나온다. 무엇보다도 현대민주주의는 대의제민주주의라는 점이 다시 강조될 필요가 있다.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스스로 직접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여 그에게 통치를 위임함으로써, 대표로 하여금 통치토록 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그 통치가 주권자로서의 시민의 의사와 요구에 봉사하도록 하기위해서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는 최대한 광범해야 하고, 이들의 삶의 조건을 반영하는 이익과 요구는 정당을 중심으로 한 자율적결사체들을 통해 최대한 광범하게 정책과정에 투입되어야한다. 민주주의는 제도 내에서 사회적 갈등이 처리되고, 문제가 타협되고 결정에 이를 수 있는 제도를 허용한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운동에 대한 필요는 그 만큼 적어진다 하겠다.
한국의 조건에서 운동이 민주주의에 기여할 수 있는 역할과 그 한계에 대해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① 운동은 광범한 대중들의 의사의 분출과 강렬한 에너지를 동원을 통해서, 강력한 권위주의적 권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추구하는 정책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 조직을 가능하게 한다. 반면은 그것은 찬반의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해결에 필요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형성하거나,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여러 대안들을 조정하여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는 지난한 것이며, 따라서 조야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② 운동은 강력한 에너지의 동원을 통해 단일의 목표와 이슈를 다루고 성취하는 데는 유효한 반면에, 여러 이슈들이 다투는 과정에서 각 이슈들 간의 중요성의 우선순위를 위계적으로 배열하고, 이에 기초해 정책의 추구를 일상화 하는 것이 어렵다.
③ 하나의 정책이슈를 운동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할 때, 쇠고기수입협상문제가 끝나면, 민영화, 교육 등, 이슈가 출현할 때마다 시민들은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고,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한국의 민주주의는 국가와 운동 간의 충돌로 일관하게 된다.
④ 운동은 강렬한 열정이 장기간 유지되기 어렵고, 그 참여가 많은 열정과 비용을 수반하기 때문에 참여자들의 계층적 범위를 한정하는 경향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지속되기 어렵다. ⑤ 운동은 시민사회를 활성화하고 강화하는 동안, 하나의 시민사회가 다른 시민사회의 동원을 불러들이는, “시민사회 對 시민사회”의 상황을 만들 가능성이 크다. 특히 운동이 헤게모니를 불러들이게 될 때, 그것은 위험스러운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바이마르 공화국을 연구한 미국의 정치학자 세리 베르만이 지적하듯이, 운동이 자율적결사체를 통해 사민사회를 활성화하는데 몰두하는 반면, 제도정치 내에서 정당을 강화하는데 무관심했던 결과, 반대편에서의 파시즘을 불러드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과 관련하여 관심을 가져야할 부분은 촛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