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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와 정치평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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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너무 빨리 변하죠. 가두시위가 시작되고, 20대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이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원고는 잡지가 나간지 2주 후에 인터넷판으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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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 나온 10대들을 상찬하다가 “그런데 20대는…”이라고 비판하는 게 요즘 유행인 모양이다. 386들의 술자리에서 무럭무럭 자란 풍문은 실체없는 허깨비마냥 떠돌더니 급기야 “십대는 촛불시위하는데 대학생들은 원더걸스에 열광해”류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원더걸스에 열광한 대학생들 중에선 촛불시위에 나간 사람이 없었을까? 촛불시위에 나선 십대 중에선 연예인에 열광한 친구들이 없었을까? 이 정도 수준의 보편화(?)가 합당하다면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이런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촛불시위에 나가고 있는데 자신은 술을 마시며 20대나 씹고 있는 어느 386 남성.’ 제발 이렇게 유치하게 놀지 말았으면 좋겠다.
10대들의 목소리는 광우병 정국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밀착한 문제에서 정치성을 느꼈고, 그 모든 것을 지금 현장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그들은 광우병 문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들은 쇠고기 문제에서 폭발한 것이었을까? 이 문제가 ‘약한 고리’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도 장학사와 교사들이 그들을 잡으려고 거리를 헤매고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들은 오히려 교육정책에 대해 당사자인 십대가 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선언을 더 불편하게 받아들였을 거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부모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전략적 목표를 타격했다.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소녀들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기성세대들이 희희낙락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치적이라고 상찬받는 그 청소년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그 부조리에 저항할 권리 역시 철저하게 억압받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나는 그들이 거리로 나올 권리를 지켜주고, 그들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10대와 20대 모두를 타자화시키는 10대 예찬론은 그런 의무를 다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 예찬이 왠지 386세대의 정치적 무기력을 숨기기 위한 자조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설령 이명박이 탄핵되더라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그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그들은 10대에게서 희망을 보아야 할 것이다. 10대가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든 말이다.
‘20대의 보수성’이란 말은 ‘20대의 원자화’라는 표현으로 고쳐져야 한다. 학부제 실시 이후 혼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은 청소년들만큼도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2002년과 2004년의 촛불시위에 거리로 나온 경험이 있다. 이번에 그들이 시큰둥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바람과 참여에 정치권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느꼈고, 그리하여 급속하게 냉소주의로 돌아섰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정말이지 참여정부의 공로가 혁혁했다. 이런 ‘과거’를 상기한다면, 슬프게도 오늘 거리로 나온 10대들이 훗날 그런 20대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물론 나도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그때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오늘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10대를 예찬하고 있지 않을까? 또 한번 20대들을 안주로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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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관위는 대통령 선거 180일 전인 지난 22일부터 선거일인 12월 19일까지 인터넷 게시판이나 자신의 홈페이지에 특정 후보자나 정당 등에 대한 지지나 반대의 글을 올리면 선거법에 의해 처벌을 받는다는 내용의 ‘선거일전 180일 도래에 따른 제한·금지 사항’을 발표하고 사이버 감시팀을 운영해 감시·단속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02년의 내게 선관위의 기준을 소급적용한다면 일천여건의 범법행위가 적발될 것이다. 20대 중반이 되니 이제 겁이 많아져서 감히 선관위를 거스르는 일은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선관위가 “특정 후보자나 정당 등에 대한 지지나 반대”를 하지 말라면 하지 말 수밖에. 대신 ‘선관위에 대한 반대’를 가지고 뭐라고 하진 않겠지?
특정 후보의 당선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대한민국이라는 정치공동체를 생각하는 입장에서 시민들이 인터넷에 정치적인 의사표현을 원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정말로 하나마나한 소리인데,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떠들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한 만큼,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둘은 매체의 정치평론의 수준이 개판 이분전이기 때문이다. 가령 시민들이 직접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채 엘리트들의 정치싸움을 구경하는 엘리트 정치를 하려고 해도, 도대체가 감정이입할 대상이 없다. 그런 대상을 만들어내라고 요구하고 그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평론의 역할일 테지만, 정치평론은 전혀 그런 역할을 안 하고 있다. 이를테면 시민들은 직접 떠들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얻기는커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스스로 떠들고 싶을 수밖에.
내가 읽어본 것 중 정치평론에 대한 가장 탁월한 비평은 <역사와 사회> 2004년 여름호에 실린 정치학자 전인권의 “재판관의 얼굴을 한 독자의 노예 : 17대 총선 기간의 4대 신문 사설 분석”이다. 탄핵부터 2004년 총선까지라는 특정한 기간에 한정된 연구이지만, 그 시기의 특수성 때문에 한국 정치평론-물론 여기선 신문사설에 국한되어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의 정치평론이 사설을 본뜨고 있으므로-에 대한 가장 탁월한 비평이 탄생했다.
이 글은 요약하고 싶어도 전해주고 싶은 부분이 너무 많아서 요약할 수가 없다. 며칠 내로 타이핑해서 파일로 올려보던지 해야겠다. 다만 그는 그 기간에 신문들이 공론public opinion 형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증거로 전혀 언급되지 않은 두 가지 문제를 거론한다.
이렇게 신문 사설이 자신의 본분을 잃고 정치적 쟁점에 끌려 다니며, 공론의 과정이 아니라 정치가들처럼 사태의 결과를 계산하며 이리 갈까 저리 갈까 걱정하거나, 노도 같은 대중의 눈치를 보다보니, 너무도 중요한 두 가지 오류를 범하고 말았다. 그 하나는 애당초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결정을 내린 선관위가 원래의 결정문과 다른 공문을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사실이다. 이 사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이 거짓 공문은 3월 11일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고, 경우에 따라서는 탄핵 가결에도 실질적인 방아쇠 역할을 했을 정도로 중대한 사건이다. 이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기만행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신문도 이 문제를 제대로 거론하지도 못하고 있다. 선관위의 기만행위는 지금이라도 그 진실을 밝혀 엄중 문책해야 하는 사안이다.
다른 하나는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의 탄핵 반대 성명이다. 이 기관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 기관은 특별한 엄격함과 신중성,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 소리 없이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진실을 규명하는 한시적 역할을 맡고 있다. 이런 기관이 탄핵 찬반처럼 뜨거운 정치적 쟁점에 견해를 표명한다면, 늘 논란이 따르는 의문사진상규명의 신뢰성을 어떻게 담보한다는 말인가? 자신들의 견해를 표현하지 않아도 국민의 70%가 적극적으로 탄핵 반대를 표현하고 있는 마당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은 본래의 임무를 망각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이 위원회의 탄핵 반대 성명은 공무원노조나 전교조의 탄핵 반대와 전혀 성격을 달리하는 것인데, 어떤 신문도 이 위원회의 어처구니없는 행위를 효과적으로 규탄하거나 문책하지 못했다. 이 역시 대한민국이란 공동체나 정치평론가의 관점이 아니라 신문사의 편협한 시각 때문에 놓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문제들은 정치평론이 제기하고 시민들에게 수용되어야 하는 것인데, 신문이나 시민들 모두 당파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지각되지 않는다. 가령 선관위의 기만행위.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에게는 선관위가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수구기득권 세력의 대변인이라는 증거가 되기 때문에 이것이 따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반면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대통령이 누구에게 기만당하건 말건 아무 관심이 없다.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의 경우도 비슷하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는 탄핵이 그냥 도덕적으로 부당한 사안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탄핵을 반대하는 것이 정상이다. 한나라당 지지자는 공무원노조나 전교조도 성명을 내서는 안 된다고, 혹은 아예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의문사진상조사위원회의 성명을 따로 문제삼을 이유가 없다.
최근의 논쟁구도도 이와 다를 바 없다. 대통령에 온정적인 사람들은 대통령이 특정 후보를 비판하는 것을 선거법 위반으로 규정한 선관위의 판결 자체를 ‘나쁜’ 것으로 보고, 그 나쁜 것에 대항하는 대통령의 행동은 ‘좋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 반대편은 정확히 그 반대고. 도덕적으로 경직된 사고방식이다. 이 부분에서 선관위의 행동이 비판받아야 한다면 그것은 기회주의적인 처신 때문이다. 선관위는 야당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통령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일차적으로는 이 점이 가장 큰 문제다.
대통령의 특정 후보 지지나 반대 여부를 허용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의 법규를 선택하는 문제다. 대통령이 무슨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이듯이 자신이 원하는 법규를 내놓으라고 헌법기관들에게 투정을 부리는 것이 바람직한 정치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첫째로는 대통령을 한 명의 시민과 동등하게 볼 수 있느냐는 문제가 있고, 둘째로는 시민 불복종 운동 자체의 문제도 있다. 자연법의 관점에 입각한 시민 불복종이 용인되느냐의 문제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다만 선진국일수록 시민 불복종에 관용적인 법집행 문화가 있을 뿐이다.
안희정의 경우는 대통령이 가장이네 뭐네 하면서 선출된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은 선관위에 통제받는 건 부당하다고 말하는데, 이 발언은 그의 천박함과 무식함을 보여줄 뿐이다. 첫째로 대통령은 가장이 아니고, 둘째로 중앙선관위는 헌법기관이다. 헌법기관이 자신의 고유한 업무사안에 대해 대통령을 통제하는게 ‘부당’하다면 도대체 대한민국에 ‘가당’한 건 무엇인지 스스로 탐구해 볼 일이다. ‘부당’이란 개념은 그럴 때 쓰는 게 아니다. 선관위는 대통령을 통제한 권한이 있다. 선관위의 대통령에 대한 판단에 반대한다면, “선관위의 판단이 부당(혹은 부적절)하다.”고 말해야지 “선관위의 통제가 부당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내게는 정치평론에 있어서, 두 가지 문제의식이 있다. 하나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나눠먹고 있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레토릭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이상주의적이지 않다. 그들은 정책적으로는 지극히 보수적이고, 정치행위 면에서는 (헌법을 우습게 알 정도로) 급진적인 ‘혁명적 우익’ 세력이다. (이 수사는 폴 크루그먼이 조지 부시 일당을 가리킬 때 사용한 것인데, 2002년에 생명연습이란 인터넷 논객이 참여정부에게 헌정한 바 있다.) 한나라당은 결코 현실주의적이지 않다. 그들은 시장지상주의를 추구하는 것을 도덕명제로 생각하는 도착증적인 정치집단일 뿐이다. 그들은 자신에게 부여된 레토릭은 물론, 상대편의 레토릭을 가지기에도 유능하지 않다. 이런 지점들은 정치학자 최장집이 가장 잘 폭로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는 정치평론 자체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을 잘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앞서 언급한 전인권이었는데, 이 분은 안타깝게도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쩌면 이제는 정치평론에 대한 고민은 시민들이 스스로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선관위가 특정 후보에 대해 너무 버닝하지 말라고 배려(?)해 주었으니,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포괄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이 골치아픈 대한민국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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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논의의 결과를 종합해본다면, 1> 현행헌법상 '부당한' 사유에 의한 탄핵은 수월히 이루어지고, 현행헌법상 '정당한' 사유에 의한 탄핵은 냉소를 받는 현실이라면, 탄핵이라는 제도 자체가 헌법과 관련해서 이해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므로, 그런 제도는 없애는 것이 옳음. 2> 의회가 대통령을 규제할 방법이 없어진다면, 대통령은 현행헌법의 대통령보다 더 우월한 존재가 되며, 그런 점에서 '입헌 군주제'로의 '개혁'이 불가피함. 3> 이에 의거해 우리 국민의 위상은 '시민'에서 '신민'으로 격하되는 것이므로, 기본권의 제약이 불가피함. 신민의 목숨은 군왕의 수중에 있으므로, 유사시에 군왕이 신민의 목숨을 판단하는 것 역시 불가피함. 4> 오직 위의 '개혁'이 이루어졌을 때 현재 김선일씨 사건과 관련한 논의가 이해될 수 있음. 대한민국은 자신의 국가 형이상학을 폭로하고, 그것이 서구의 사회계약론적 민주주의보다 우월함을 체제경쟁으로 증명해야 함. 5> 한나라당 지지자는 위에 설명한 제도로써나 충족되는 국가 형이상학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개헌'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솔직하지 못함. 이중적임. 그리고 노무현 지지자는 그런 국가 형이상학을 시인하면서도 서구 선진국의 길로 가는 '개혁'을 입에 담는다는 점에서, 정신분열적임. 민주노동당의 패배주의에 대한 해석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함. 6>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헌법을 가져야 함. 괜히 쓸데없는 헌법 때문에, 사회구성원들을 피곤하게 만들 필요가 없음. 일단 자기 수준대로 낮춰놓고, 나중에 피흘리며 투쟁하며 고치던지 말던지 맘대로 하라고 하고 싶음. 7> 국가는 교육을 '엉터리'로 하여 마치 자신이 민주공화국이라는 듯이 사기를 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전국민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사과를 해야 마땅함. ----------------- -실존적 개인의 입장에서 김선일씨 피살사건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단 두가지임. 즉, 입헌군주제로의 개헌을 주장하고 운동하거나, 헌법에 의한 탄핵을 주장하고 운동하는 것 뿐임. 이 두가지 선택지를 피해갈 자유도 물론 개인에게 있으나, 그 경우엔 '애도'니 '추모'니 헛소리 집어치우고 침묵하기 바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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