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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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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6/08
    이명박과 폭력시위, 그리고 주민소환제 (13)
  2. 2008/06/06
    [씨네21/유토디토] 누가 10대와 20대를 분리하는가 (19)

이명박의 정치생명이 끝났다는 몇몇 사람들의 섣부른 예측을 보고 '아직 이명박은 패배하지 않았다.'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대통령의 생각 혹은 깡다구가 이 정도인 줄은 몰랐다. 불교계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그는 "소나기는 언제나 피해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고 또 어디선가 촛불시위의 배후를 친북세력이라 말했다고도 하는데, 물론 청와대는 이런 보도들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걸로 대통령의 생각을 유추해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간단히 말하면 대통령은 시위하는 시민들을 '잃어버린 10년' 동안 좌파정권에 오염당한 이들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고, 자율규제를 통한 협상 보완과 측근들 몇 명의 사표 수리로 여론수렴의 생색만 낸 후 자신의 프로그램 대로 계속 통치를 진행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답이 없다. 여론이라는 게 수렴을 하려고 하면 무섭지만, 아예 수렴을 포기하면 아무것도 아닌 측면이 있다. 대선도 총선도 끝났고 국민소환제도 없는 마당에 어떤 방법으로도 정부를 통제할 방법이 없다. 지금의 시위는 물론이거니와, 청와대에 진격해봐도 별 무소용일 것이다. 마침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가서 시위해도 별 소용없다. 겁은 안 나고, 기분만 나쁘다."며 시위대에게 쓴소리(?)를 한 참이다.


그런 상황에서 폭력시위의 탄생은 거의 논리적 필연이다. 물론 지금의 시위대의 구성에서 폭력시위가 '전술적으로' 합당한 방법이 아님은 분명하다. 폭력시위야말로 이명박이 바라던 것이고, 그는 폭력을 행사하는 '배후세력'을 구속시키고 촛불시위를 강경진압할 명분을 찾을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이 이 조치에 단일한 목소리로 저항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바야흐로 '느슨한 시위'의 장점이 단점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화물연대의 파업 이전까지는 이 시위대가 '불법 비폭력 시위'의 틀은 유지해 주길 바랬는데, 결국 일은 이렇게 된 셈이다.


그렇다고 폭력시위를 시작한 몇 사람을 윤리적으로 비난하고 싶지도 않다. 앞서 말한대로 이 정도 정국에서 정부가 성의있는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행동이 점차 격화되는 것도 당연하다. 제발 폭력시위 좀 해달라고 그렇게까지 꼬드기고 있었는데, 결국 폭력시위자가 나타나는 건 인지상정이다. (나는 사람에게 별스런 기대를 하지 않는 축이다.) 이건 이처럼 '느슨한 시위'가 아니라 강력한 지도부가 있어 "폭력 쓰면 안돼!!!"라고 외치고 있어도 우발적으로 폭력이 터질 상황이다. 게다가 한국인들이 폭력시위를 안 해본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지인들은 아닌, 생활환경에서 만난 사람 중 많은 이들이 '이러다 화염병에 쇠파이프 나온다'고 예측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거의 다 30대 초반이었는데, 이 90년대 초반 학번들은 물론 '폭력 가투'를 가장 열심히 한 세대다.


아주 거칠고 단순하게 말한다면 이렇게 얘기해 볼 수 있다. 모두가 이명박에게 체념하고 있을 때 십대들이 그들 또래 특유의 교우관계를 통해 결집하고 정부를 규탄했다. 이때 다른 세대들이 안 나온 건 아니지만, 모두가 그들의 방식을 공유했다. 그러자 정부는 장학사와 교사를 보내 십대들을 제압했다. 이에 열받은 이십대가 그들이 해본 유일한 집단적인 짓거리, 즉 월드컵 거리응원의 방식으로 거리에 뛰쳐나왔다. 한동안 다른 모든 세대가 이 방식을 공유하며 잘 놀았다. 하지만 정부는 닭장차로 청와대 쪽 길만 막아놓고 귀를 막았다. 이런 상황에선 이십대의 방식이 또한 무용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삼십대가...... 폭력가투의 방식으로? 무슨 시간을 역류하는 SF 소설 같기도 하고 차례차례로 적들과 이에 대한 대응이 등장하는 판타지 소설 같지도 하지만 현실이 대충 그렇다.


그렇다고 현실이 아예 판타지 소설일 수는 없으니까 90년대 초반 학번들이 우르르 열을 지어 쇠파이프를 드는 꼴을 볼 수는 없을 거다. 지금 상황에서 그런 짓 했다간 바로 구속이고, 그들은 이미 다 생활인이다. 여하간 이런 식의 '이행'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정부가 점점 더 사람들을 열받게 하면서 자신의 정당성을 챙기고 있었다는 것도 분명하다. 새벽의 폭력시위는 우발적이었(던 것 같)다. 시위를 통제하려 드는 대책위의 행동이 마음에는 안들지만 그들이 사주한 것 같지도 않았고, 등장한 쇠파이프나 각목은 미리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인근 공사판에서 주워온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다시는 거리응원의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다. 한번 거리로 뛰쳐나온 후에는 다시는 광장의 촛불시위 방식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정부에게 이 시위대를 분쇄할 확고할 명분이 생겼다. 앞으로의 시위는 훨씬 더 힘든 싸움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도 대통령이 저 정도로 반응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그들은 인기가 떨어진 대통령을 적당히 길들이면서 보수세력의 결집과 반격을 시도하려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정두언 인터뷰를 확대 재생산하면서 대통령의 측근들을 흔들고 있다고 생각된다. 여기에 대해 대통령이 어떻게 반응할 지는 모르겠다. 만일 그가 조선 중앙의 조언조차 생까는 대인배라면 상황은 무척 재미있어진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선과 중앙은 대통령의 기를 적당히 꺾어서 무난하게 국정을 운영하도록 하거나, 대통령이 이에 불응할 경우 한나라당으로 하여금 대통령을 통제하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을 것 같다. 그들이 킹메이커라고 착각하고 있으니까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명박이 만일 그들의 말조차 듣기를 거부하면 그들로서도 방법이 없다. 한국에서 대통령과 언론 중 누가 더 강한지를 이명박이 한번 보여줄 필요까지도 없다. 이명박이 시위대를 분열시킬 수만 있어도 조선 중앙은 다시 열렬한 나팔수로 돌아설 것이다. 쪽은 팔리고, 차라리 노무현 때가 좋았다 싶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들이 똑똑하다면 눈 딱감고 다시 '야당지'로 복귀하여 한나라당과 이명박을 분리하려는 시도를 할 것이다. 이건 이명박의 전횡이고, 한나라당이 통채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뭐 이런 식의 여론몰이를 하는 것이다. 정두언 인터뷰는 바로 그런 작업의 시작 쯤에 위치했던 것 같다. 이명박을 간신들의 늪에 빠진 군왕으로 만들어 간신들 몇만 숙청하고 정권을 '정상으로' 되돌리거나, 정 이명박이 하는 짓이 마음에 안 들면 대통령까지 통제하려 했던 게 그들의 노림수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명박이 이렇게까지나 레임덕을 완고하게 거부하면, 결국 이명박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에 가서 한나라당과 동반 몰락하게 된다. 지방선거 이후의 이명박은 노무현 말기처럼 노상 신경질을 부리게 될 가능성도 높다. 그런 식으로 짜증을 부리면 한나라당도 같이 망한다. 사정이 이렇다면, 조선 중앙이 배팅을 해야 할 이유는 크게 줄어든다. 어차피 대통령을 꺾을 수 없고, 대략 망하는 게 진실이라면, 그저 임기 동안이라도 평탄하게 지내는 쪽이 편하다.


노무현은 민주당을 '대안이 안 되는 세력'으로 만들었고, 이명박은 한나라당을 바로 그렇게 만들 공산이 크다. 이렇게 되면 다음 대선과 총선이 어떤 국면으로 전개될지는 감도 잡을 수 없다. 이건 좋은 일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망한다고 좋은 일이 아니다. 이렇게 독불장군 두 명에 의해 시스템이 아예 붕괴된 곳에 건전한 정책정당이 들어서게 된다고 기대하긴 어렵다. 그보다는 차라리 박근혜가 남은 4년을 '보수적으로' 이끌어가는 동안 다른 세력들이 실력을 키우고 있는게 낫다. (쑥쑥 크는 세력이 없을 경우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이회창 선생님이 된다.)


그렇다면 이명박을 막을 방법이 전혀 없는 걸까? 우석훈과 다음 아고라의 몇몇은 '주민소환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국회의원에 대해서 우리는 '국민소환제'를 사용할 수 없다. 제도가 없으니까.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우리는 주민소환제라는 제도를 지니고 있다. 이걸 사용해서 한나라당 소속 자치단체장들을 줄줄이 떨어뜨리면서 한나라당을 압박하자는 얘기다.


설마하니 그런 일이 가능할까 해서 약간 찾아봤더니 제도적으로는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이 제도에는 '놀랍게도' 소환 사유에 대한 제약의 규정이 없다. 아예 제약의 규정이 없다니, 어떤 의미에선 악법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데 지금 제도적으로 기댈 곳은 이 법밖에 없다는 게 사실이다.


가능할까? 사실 이조차도 비관적이다. 순전히 '네가 너무너무 미운 이명박 씨와 같은 당인 한나라당이기 때문에' 라는 사유만으로, 지방자치단체 장들을 소환하자는 데에 동의할 이들이 얼마나 될까? 그렇게까지 한나라당을 미워하지 않을 이들을 빼더라도, 일단 사유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며 눈쌀을 찌푸릴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보다는 차라리 눈딱감고 2년을 기다리는 쪽이 더 나아 보인다. 하지만 민주당의 무능함도 익히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다림도 매우 기약없는 것일 것. 어쩌면 소환 자체의 물리적 효과보다도, 정치적이거나 상징적인 효과가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지방선거의 구도를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무리한 얘기일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 향후 2년을 예측하는 것은 절대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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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국이 너무 빨리 변하죠. 가두시위가 시작되고, 20대들이 시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 이전에 쓰여진 글입니다. 이 유토피아 디스토피아 원고는 잡지가 나간지 2주 후에 인터넷판으로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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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에 나온 10대들을 상찬하다가 “그런데 20대는…”이라고 비판하는 게 요즘 유행인 모양이다. 386들의 술자리에서 무럭무럭 자란 풍문은 실체없는 허깨비마냥 떠돌더니 급기야 “십대는 촛불시위하는데 대학생들은 원더걸스에 열광해”류의 기사를 만들어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원더걸스에 열광한 대학생들 중에선 촛불시위에 나간 사람이 없었을까? 촛불시위에 나선 십대 중에선 연예인에 열광한 친구들이 없었을까? 이 정도 수준의 보편화(?)가 합당하다면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은 이런 것이다. ‘아내와 아이들은 촛불시위에 나가고 있는데 자신은 술을 마시며 20대나 씹고 있는 어느 386 남성.’ 제발 이렇게 유치하게 놀지 말았으면 좋겠다.


10대들의 목소리는 광우병 정국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밀착한 문제에서 정치성을 느꼈고, 그 모든 것을 지금 현장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지적했듯이 그들은 광우병 문제뿐만 아니라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고 있다. 그런데 왜 하필 그들은 쇠고기 문제에서 폭발한 것이었을까? 이 문제가 ‘약한 고리’였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물론 지금도 장학사와 교사들이 그들을 잡으려고 거리를 헤매고 있지만, 교사와 학부모들은 오히려 교육정책에 대해 당사자인 십대가 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선언을 더 불편하게 받아들였을 거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부모의 승인을 받을 수 있는 전략적 목표를 타격했다.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소녀들이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기성세대들이 희희낙락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정치적이라고 상찬받는 그 청소년들이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고, 그 부조리에 저항할 권리 역시 철저하게 억압받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라. 나는 그들이 거리로 나올 권리를 지켜주고, 그들의 ‘말’을 주의깊게 듣는 것이 ‘어른들’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10대와 20대 모두를 타자화시키는 10대 예찬론은 그런 의무를 다하고 있는 걸까? 나는 그 예찬이 왠지 386세대의 정치적 무기력을 숨기기 위한 자조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설령 이명박이 탄핵되더라도 박근혜가 대통령이 될 그 현실을 견디기 위해서, 그들은 10대에게서 희망을 보아야 할 것이다. 10대가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든 말이다.


‘20대의 보수성’이란 말은 ‘20대의 원자화’라는 표현으로 고쳐져야 한다. 학부제 실시 이후 혼자서 대학을 다니는 대학생들은 청소년들만큼도 조직화되어 있지 않다. 그럼에도 그들은 2002년과 2004년의 촛불시위에 거리로 나온 경험이 있다. 이번에 그들이 시큰둥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지에 대해서도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바람과 참여에 정치권이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느꼈고, 그리하여 급속하게 냉소주의로 돌아섰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정말이지 참여정부의 공로가 혁혁했다. 이런 ‘과거’를 상기한다면, 슬프게도 오늘 거리로 나온 10대들이 훗날 그런 20대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물론 나도 안 그랬으면 좋겠다). 그때 개혁세력을 지지하는 우리의 기성세대들은, 오늘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다시 새로운 10대를 예찬하고 있지 않을까? 또 한번 20대들을 안주로 삼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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