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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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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말2아웃'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9/04
    ‘어긋난 짝사랑’의 판타지 (3)
  2. 2007/07/30
    이성 친구 관계 : 몇몇 드라마와 엮어서 (6)
 

이제 막바지로 치닫는 주말 드라마 <9회말 2아웃>은 태어나면서부터 소꿉친구였던 서른살 두 남녀가 사랑을 키워가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에서 남주와 여주는 약간 시간이 어긋나서 서로 짝사랑을 했던 경험이 있다. 홍난희(수애)는 변형태(이정진)를 고등학교 때 좋아했으나 자신이 없어서 대시를 못했고, 변형태는 군대 갔을 때 난희에게 프로포즈하려 했으나 마침 난희에게 다른 남자가 생겨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충 남녀 사이에 스파크가 발생하는 상황을 1) 만나자마자 스파크 2) 만나서 좀 지지고 볶다가 스파크 3) 그냥 일반적인 관계였는데 어쩌다 스파크 로 구별할 수 있다면 이 “어긋난 짝사랑의 판타지”는 3)의 상황을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어쨌든 둘다 한번씩은 서로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동시에 서로 좋아하기만 하면 된다. 맺어주지는 않지만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에서 히로와 히까리가 처한 상황도 대략 그렇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객관적인 입장에서 두 사람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음을 ‘체험’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만에 하나 연애를 주관하는 신의 입장에서 그런 어긋남이 눈에 보인다 해도, 두 사람은 그런 상황을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두 사람이 그 사실을 알아내려면 서로 간에 (혹은 서로의 친구들에게) 굉장히 폭넓은 상황을 조사하고 말을 맞춰 봐야 하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심심해서 할 정도가 되면 둘 다 서로에게 이성으로서의 관심은 떨어졌다고 보는 게 맞다. 옛날에 한번 좋아했다고 또 좋아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남녀관계라는 것은.


그렇다면 두 사람이 ‘어긋난 짝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시 한번 두 사람이 사랑에 빠져서 연애를 하고 과거를 속삭이다가 그것을 발견해 내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이 때 발견해낸 것이 과연 ‘사실’일까? 사랑의 밀어를 속삭일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는가. 거짓말까진 아니더라도 조선일보 수준의 허위, 과장, 왜곡보도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의 리액션이 없는 (그러니까 객관적인 산출물이 없는) ‘짝사랑’이란 감정은 정의하기가 무척 애매하여 도대체 어느 정도의 두근거림부터 짝사랑이라 불러야 하는지 난감하기만 하다. 베갯머리에서 훌쩍훌쩍 울어보는 정도면 충분할까? 사춘기엔 굳이 짝사랑 안 해도 울 때가 있다. 따라서 냉철한 지성의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면, 이 연인이 발견해 냈다는 ‘어긋난 짝사랑’에 대해 “믿기 힘든데.”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는 거다.


그렇기는 해도 내게도 대중문화 텍스트에서 발견한 꽤 그럴듯한 ‘어긋난 짝사랑’이 있었는데, 그건 <배틀로얄>의 치구사 다카코와 스기무라 히로키였다. 영화에서 치구사 다카코는 <킬빌1>에 여고생 고고 유바리로 출연했던 쿠리야마 치아키가 연기했다. 그녀는 소설에 비추어 생각해도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


다카코는 자신을 겁탈하려던 남자 하나를 죽이고 부상을 입은 상태에서 소마 미츠코(낫들고 설치는 여자 불량배들의 수장)에게 총을 맞아 죽는데, 죽기 직전에 히로키는 다카코를 찾아낸다. 히로키는 소꿉친구인 다카코와 자신이 좋아하지만 고백하지 못한 다른 여자 하나를 찾아서 ‘배틀로얄’의 전장을 헤매는 로맨티스트다. 죽어가는 다카코를 발견하고 임종을 함께 하지만, 좋아하는 여자를 찾아냈을 때는 겁에 질린 그녀에게 총을 맞고 죽어버리는 역할이다.


치구사 다카코가 죽어가는 순간에 대한 묘사는 (원작)소설과 만화와 영화의 묘사가 조금씩 다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소설의 판본이다. 만화와 영화에서는, 다카코가 히로키를 ‘명백하게’ 좋아했다고 묘사한다. 하지만 사실 소설에서는 그렇지 않다. 다카코는 소꿉친구 히로키를 좋아했지만, 그 히로키는 다른 여자를 좋아했대더라,는 식의 단순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장면이 또 바뀌어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 그 첫날에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히로키가 물었다 .

“야, 육상부 선배 가운데 무지 멋있는 남자 선배가 있다면서?”


의외로, 그 선배를 좋아하는구나, 라는 의미가 들어있었다.


“누구한테 들었어?”


“뭐, 그냥. 잘 돼가?”


“전혀. 그 선배는 애인이 있는걸. 넌 걸프랜드 아직 없어?”


“쳇, 그만 둬.”


우리는 항상 서로 엇갈렸다. 서로 약간은 좋아했을지도 모르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일까? 적어도 나는 약간이지만, 네가 좋았어. 그건 그 선배를 좋아했던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야. 이해해 줄 수 있겠니?


현재의 히로키의 얼굴이 떠올랐다. 울고 있었다.


“다카코, 죽지 마.”


뭐야. 너. 남자답지 못하게. 울지 마. 덩치는 커다란 녀석이 조금도 나아진 게 없네.


신의 장난이라고나 할까, 다카코는 꼭 한번 더 정신이 들었다. 멍한 눈을 떴다.


오후의 따스한 햇살 속에 스기무라 히로키가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는 사춘기의 “어긋난 짝사랑의 판타지”의 딜레마가 모두 적혀 있으면서도, 그 판타지가 실현되고 있다. 판타지는 다카코의 상상의 영역에서 내려온다. 히로키의 회상씬이 나오지는 않는다는데 꽤 매력적이다.




(...)그 자세로 있다가, 치구사 다카코는 약 2분 뒤에 숨을 거두었다. 스기무라 히로키는 생명을 잃고 온몸을 중력에 맞긴 채 축 늘어진 다카코의 몸을 끌어안고 한동안 울었다.(...)




다카코가 히로키의 품안에서 죽어가는 그 장면을 나는 매우 좋아했다. <배틀로얄> 전체에서 가장 서정적인 장면이다. 처음 봤을 때는 아마 울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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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는 명제는 반박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해체의 대상이다. 왜냐하면 이 명제에서 '친구'라는 단어는 뭔가 고정불변한 무엇으로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딱 잘라 말해 그런 식의 '친구' 관계는 없다. 동성 간의 우정도 발생과 성장기, 안정기를 겪으며 어떤 경우는 쇠퇴와 반목을 거듭한 후 소멸되어 버린다. 이성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성 친구 관계의 경우엔 그 소멸의 방식 중 한쪽 혹은 쌍방이 상대방에게 연애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별도로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해서 반드시 친구관계가 소멸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사람들이 저런 명제를 읊조리게 되는 이유는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남자의 경우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했던 여성 친구에게 새로운 감정을 느끼게 될 때 저 명제를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여자의 경우는 자신에게 매우 친절했던 남성 친구가 결국엔 짝사랑(혹은 흑심?)을 숨겨왔던 것임을 깨달을 때 주로 저런 명제를 읊조린다. 남자친구가 있는 여성을 공략할 때, 마음을 숨긴 채 그저 친구로 지내다가 남자친구와 결별 국면으로 들어섰을 때 믿음직한 조언자로 가장해 그녀의 빈공간을 공략하여 사랑을 쟁취하려고 시도하는 남자들은 꽤 있다. 이런 술수(?)를 써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게 매우 어렵고 복잡한 스킬로 보이겠지만, 실은 군대 내무반에서도 논의될 수 있는 보편적이고 평범한 방법일 뿐이다. 여자들에게 다행스러운 점은 두 세번 겪어보면 이성친구로써의 친절과 짝사랑의 친절 정도는 구별이 가게 된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이러한 사례들을 '반박'하려는게 아니다. 다만 그런 사례들은 존재했던 하나의 친구 관계가 소멸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이성 친구 관계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짝사랑을 철저하게 숨겨왔던 남자의 경우처럼 애초에 친구 관계를 위장하는 경우도 물론 있다. '위장된' 과거의 친구관계를 친구관계로 봐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말하려면 갑자기 논의가 철학적(!) 수준으로 뛰어 버리니까 이 부분은 그냥 넘어가자. 그렇기는 해도 두 사람에게 친구였던 친구 관계와 한 사람은 위장이었던 친구관계를 (적어도) 구별할 수는 있을 것이다.


<9회말 2아웃>에서 홍난희(수애)와 변형태(이정진)는 굉장히 스스럼없는 이성 친구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드라마는 그들의 우정이 사랑으로 커나가는 과정을 보여줄 지도 모르지만, 그렇더라도 둘 사이의 '과거' 친구 관계를 '없었던 것'으로 보아야 할 이유는 없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난희가 형태를 억지로 껴안고 있어도 친구로 보이고, 형태가 난희에게 갑작스러운 감정을 느껴도 그 관계의 틀이 한방에 무너질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경성스캔들>에서 선우완(강지환)이 차송주(한고은)을 끌어안을 때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송주가 자기 몸에 손대지 말라고 명령하는 순간에도 그것은 짜증이 아니라 가벼운 타박 정도로 보인다. 어쩌면 포옹했을 때 분위기가 자연스러운지 아니면 에로틱한지를 보고 (적어도 현재) 그들이 친구 사이인지 아닌지를 감별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다. 


다만 <커피프린스1호점>의 최한결(공유)과 한유주(채정안)은 둘이서 무슨 짓을 하고 있든 친구 관계로 보이지 않는다. 이 관계를 인정하기 힘든 이유는 이들의 경우 한 사람이 위장함으로써 친구 관계가 유지되는 정도가 아니라 애초에 둘다 위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주가 양다리로 비난받는 이유는 바로 그 지점이겠지만, 한결도 비난을 피해갈 수 없다. 


가령 생일선물을 가장 일찍 챙겨주는 정도는 (심지어 남자친구보다도) 오랜 친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쳐도, 선물을 주고 헤어진 후 그녀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 다시 한번 춤을 추며 인사를 하고 있는 꼬라지를 보면 누구나 그들은 연인이라고 느낄 것이다. (연인이 아니라면 그 관계는 '내연'일 수밖에.) 마찬가지로 이성친구가 밤에 불러냈을 때 밤새 벽화를 그려줄 수 있는 여성 화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녀가 다음날 아침까지 남자의 커피숍에서 마치 자신이 안주인인 것처럼 갈등을 중재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지나친 일로 보인다. 두 사람은 함께 있을 때 한번도 친구처럼 보이는 적이 없다. 물론 그것은 근본적으로는 한결이 유주를 짝사랑하고 있고 유주도 그것을 알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겠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훨씬 더 자연스러운 친구관계를 유지하는 이들도 얼마든지 있다. 한결은 유주가 기회를 전혀 안 준다고 말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유주가 하는 짓은 한결에게는 '희망고문' 수준이다.


한편 한결이 한 짓 중에 가장 어처구니 없는 짓은 은찬(윤은혜)에게 끌리는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님을 증명해 보기 위해 유주에게 한번만 안아봐도 되냐고 부탁한 것이다. (이건 이 글의 주제와는 딴 얘기라 괄호 안에 집어넣는데, 그래도 미국에서 살다가 온 친구가 동성애에 관해서 그 정도의 한심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사실상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설령 그가 미국생활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는 정신병이 일종이라 생각했다고 해도, -물론 미국도 기독교 근본주의 국가라서 이런 일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양성애자란게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귀국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이 유주에게 성욕을 느낀다고 해서 어떻게 이성애자라는 확신을 내릴 수 있는 걸까?)


이것은 친애에서 나온 부탁도 아니고 애정을 갈구하는 부탁도 아니며, 단지 자신이 여전히 유주에게 성적 욕망을 느끼는 지를 확인받고 싶어서 한 부탁이다. 물론 지금 그의 정신이 은찬 때문에 혼미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런 부탁 자체가 두 사람의 관계가 '친구 관계'는 아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거다. 어쨌든 친구 관계라는 건 기본적으로 비성적(非性的)이려고 노력하는 관계니까. 남여 친구들의 가장 보편적인 농담-놀이가 "너는 내게 (성적인) 매력이 없어." 놀이가 아니겠는가? 종종 남자들의 경우 친구에게 매력을 넘어 욕망까지 느끼게 될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것을 억누르려고 노력하지 않고는 친구관계를 논할 수 없다. 사실 거리낌없이 지내다보면 그런게 없는게 더 편하기 때문에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억압된다. 한결은 욕망 자체는 억압하려고 한 적이 없고 그 욕망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자제력만 키웠다. 하지만 아무리 친구 관계를 넓혀 잡는다 해도 그것만으로 친구 관계가 성립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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