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any cuts should I rep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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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윤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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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Y'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7/02/20
    근대 그림 속을 거닐다 (4)
  2. 2004/06/29
    퇴진이 아닌 탄핵으로 노빠와 대립각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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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직접 교보문고에서 사서, (출판사에서 몇권 안 주셨단다.) 사인까지 해서 준 책이라서, 홍보를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애석하게도 서평으로 쓸만한 감상이 없다. 책이 안 좋다는 게 아니라, 책은 꽤나 재미있게 읽었는데, 내가 끼어들어 얘기를 할 지점이 안 보이는 것이다.

뭔가 얘깃거리가 있으면 알라딘 서평란에도 올려보고, 혹시나 5만원 적립금을 타게 되면 그 돈으로 백종현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순수이성비판이나 사야겠다... 뭐 이런 기대를 할 수 있을 법도 한데, 이건 뭐 당췌 얘기가 안 나온다.

첫째는 내가 그림에 관심이 없는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그림'을 안 본건 물론이고, 최근 내가 본 '그림' 관련 책이 낸시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이니 이것과 엮어서 얘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다못해 조이한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 읽기>라도 봤으면 후안무치하게라도 소비자 입장에서 몇 마디 비교할 수 있었을텐데 그런 것도 아니고. 이 책에서도 언급된 웬디 수녀의 '인상비평'은 동생 책장에 꽂혀 있는데도 안 봤다.

둘째는 이 책이 훌륭한 교양도서이되 입문서나 개론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입문서나 개론서일 경우, 나같은 아마추어라도 그것이 독자에게 미칠 긍정적인 효과가 무엇인지를 계산하여 평가할 잣대를 대략적으로나마 수립할 수 있다. 가령 전달하려는 지식의 분량이 어느 정도인가, 그 지식을 쉽게 풀어쓰는 데 얼마나 성공하였는가가 일차적인 평가의 기준이 되겠다. 그후엔 이 책이 '다른' 책을 찾아 보고 싶은 욕망을 주어 지성세계로 가는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이 모든 지식을 섭렵한 '선생'임을 과시하는데 그 목적이 있는지를 나누어 전자 쪽에 힘을 실어줄 수가 있겠다. 마지막으로 적절한 참고문헌이 달려있는지를 보고 독자에게 얼마나 친절한지를 판단할 수가 있겠다. 하지만 이런 잣대는 이 책에 적용될 수 없다. 저자는 서구의 특정한 시각을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방식으로 프랑스와 영국 두 나라의 '근대'가 인상파와 라파엘 전파의 그림 속에 어떻게 맺혀있는지를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작업이 적절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아예 내 능력밖의 일이다.

하지만 두 가지 점에서 사소한 참견은 가능하다. 참견 하나는 저자가 평균적인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계급'이란 단어를 훨씬 더 자주 사용하는데, 독자들은 그 점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말의 어감에서 '계급'은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인 텍스트 안에 갇혀 있다. 이 단어가 그 바깥으로 나올 경우, 사람들은 그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일종의 범주오류라고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가령 마네가 계급을 보여주고 있다는 서술을 보며, 이 말의 의미를 일상언어 속에 복원시키는 작업이 전혀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참견 둘은 저자가 대중교양도서를 쓰기 위해 문체의 측면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문장구조도 비교적 쉽고, 약간 어려워질라치면 몇 문장을 거치면서 논리구조를 차근히 짚어주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저자가 블로그에 올리는 글보다도 더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단어에서도, 가령 '플라톤 할아버지'나 '마르크스 할아버지' 따위의 표현은 나름대로 구어체를 의도한 것인데, 솔직히 이에 대한 내 반응은 'ㅋㅋㅋ'였다. (이때 'ㅋㅋㅋ'는 대략 두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아니 안 어울리시게 이런 짓을." 또 하나는 "어라, 이거 의외로 잘 어울리시잖아?" 어느 쪽인지는 굳이 공개하지 않는다.) 언젠가 KDY는 저자의 <한국문화의 음란한 판타지>에 대한 '인상비평'에서 그 문체가 김영민 문체와 진중권 문체의 중간쯤에 위치한다고 주장했다. 같이 술먹다가 책펴보고 나온 말이라서 크게 신경을 안 썼는데, 나름대로 선견지명일 수가 있겠다.

더 이상은 참견할 수 있는게 없고, 월급 타면 책 한권 사서 누군가에게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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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나는 이 짓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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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김선일씨 사건 이후 상대적으로 조용하던 노빠들이 '탄핵' 얘기하니까 우루루 다 튀어나온다. 이게 우리 할 일이다.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들 중에 김선일을 위해 우는 것이 아니라 노짱의 고뇌의 결단을 동정하며 우는 이들을 분리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까지 노무현을 지지한다는 것은 죄다. 그 점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게 죄가 아니라고 방방 뜨는 놈들과 싸워야 한다. 왜냐하면 그건 죄니까.


현실 좋아하는 노빠들, 내가 현실을 알려줄까? 노정권은 앞으로 3년간 조선일보 따라하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다. 극렬빠돌 5-6만을 제외하곤 지지자들을 모두 실망시킨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이냐. 노무현이 무슨 일을 하든 노무현 찍은 사람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고, 노무현이 조선일보를 따라하면 이회창 찍은 사람은 좋아할 것이다. 그런 상황이라면 노무현은 조선일보를 따라하게 되어 있다. 이게 현실이다. 이 정권 이미 끝났다. 그러려니 차라리 지금 탄핵시키는 게 노무현과 국민 모두에게 이롭다. 잘 생각해 봐라. 이 노빠들아.


오해가 있다. 이런 오해가 있는 것을 보면 좌파들의 인권감각도 세계평균보다는 한국평균을 따르는 모양이다. 김선일씨 피납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파병강행이라는 정책과 구별되는 부분이 있다. 이라크 파병은 물론 헌법 제5조 1항에 현저히 위배되는 행위다. 그러나 국회가 침략전쟁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파병을 결의했으므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 이라크 전쟁의 성격에 대한 '토론'이나 할 여지가 있다. 그리고 국회가 정한 정책을 수행하다가 발생하는 손실이 있다면, 그것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맞다. 군인의 죽음이나 테러로 인한 민간인의 죽음 자체가 탄핵사유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김선일씨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라. 새벽 5시에 알자지라 방송에서 24시간 내에 파병철회 안하면 자국민을 죽인다고 했는데, 오전 10시에서 11시 사이에 일제히 외무부와 국방부가 "파병방침 불변"이라는 입장을 발표한다. 당연하게도, 이 사실은 알자지라와 외신에 대서특필된다. 외국인들은 한국 정부가 왜 저러고 자빠졌는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조차 정부의 잘못된 대응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에 의한 선행살인이다. 한 국가가 자국민의 목숨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데에, 아니 새벽 다섯시부터 오전 열한시까지 단 '여섯 시간'만 고려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여기엔 토론의 여지가 없다. 대한민국은 이미 국가가 아니며, 헌법은 유린당했다. 노무현은 헌법 위에 엉덩이를 까고 똥을 쌌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는가?


혹자는 벌써 퇴진투쟁을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아 글쎄 퇴진이 아니라 탄핵이라니까. 하여간 내게 이 논리는 이렇게 들린다. "어이, 이게 끝이 아니야. 좀 있으면 사람 더 죽게 되어 있어. 그때 몰아서 단칼에 때리자구. 그게 정치 아니야?" 그렇게 못 하겠다. 이 문제는 그렇게 유치한 정치공학으로 풀어야 할 만큼 시시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일 수 없음은 상대적인 근거 때문이 아니라 절대적인 근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국가가 되려면 노무현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최선은 시민사회의 영역에서 탄핵운동을 전개하고 민주노동당이 못 이기는 척 따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노동당은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정말이지 차선책이라도 탄핵선언을 하라고 압박해야 할 판이다. 둘중 어느 쪽이라도 진보누리는 먼저 입장을 세워야 한다. 생명연습이 말했다 시피, 1차파병 때 탄핵 서명운동을 했던 진보누리가 지금 가만히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때의 서명운도이 '오류'였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인가? 아니면 딴잔련의 탄핵안 발의를 두고 탄핵이라는 제도 자체에 회의가 든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금의 침묵은 이해될 수 없다. 지금은 진보누리가 선도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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